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50화 (150/230)

제150화. 타르타로스 (2)

상원은 엘가의 털가죽을 붙잡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분명히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런 하늘 위로 바위 조각이 떠다녔고, 그 사이로 지하 괴조들과 경계 감시자들이 떠돌고 있었다.

엘가가 말했다.

"저들도 꿈의 찌꺼기들이지. 이 땅의 다른 마물들, 일식 사자도, 암흑용도 마찬가지다."

"꿈의 찌꺼기?"

"그래."

무슨 말이지?

경전에서도 노트에서도 그런 단어는 본 적이 없었다.

요새 들어 자꾸, 상원은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게 불안했다.

엘가가 말했다.

"수험자 조상원, 너는 끝없는 지하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

"어떤 곳이냐니?"

"아니다. 그분께서 너는 모르는 게 없다고 하셔서."

상원이 피식 웃었다.

"엘가, 니가 말하는 그분이 지하의 수호자인가? 그 사람이 나한테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던 게 불과 엊그젠데?

엘가의 대답엔 높낮이가 없었다.

"그런가."

엘가의 꽁무니를 따라 거미줄이 늘어졌다.

저 거미줄은 도대체 얼마나 뻗어 나올 수 있는 걸까?

상원은 멀어지는 지상을 향해 끝없이 뻗어 나가는 거미줄을 바라보았다.

그때 엘가가 말했다.

"그분께선 말씀하셨다. 이곳은 꿈의 찌꺼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그래, 그 말은 나도 들었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비유와 상징일 것이다.

온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새하늘교의 경전 '승천계시록'처럼.

"나는 그게 승천 시험의 찌꺼기라고 생각한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승천 시험을 치르면서 쌓이는 원념과 미련, 비애... 그런 것들이 쌓이는 곳이 여기지. 난 여기 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런 느낌일 풍겼거든. 정신체인 나는 아주 잘 알 수 있었지."

"거리를 두고 있게 때문에 더 잘 보인다는 취지인가?"

"비슷하군."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한 게 누구였더라?

아, 황금시대의 군주의 환영이었다.

어쨌든.

"여기는 그런 것들이 고이는 곳이다. 승천 시험의 하수구 같은 곳이지. 그래서, 그분은 어디로든 가실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 있기 때문에, 기어오르면 어디에든 닿으니까."

아아, 지하의 수호자가 메타 차원까지 갈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나?

모든 것들의 밑바닥이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역설이라니.

갑자기 단어 하나가 상원의 머리를 스쳤다.

지하의 수호자가 했던 말 중에, 상원이 처음 듣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갱도는 어떤 곳이지?"

엘가는 대답이 없었다.

"엘가?"

"기다려라 불신자. 대답을 고르는 중이다."

조금 뒤 엘가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새하늘의 찌꺼기가 흘러들어오는 것이라는 것밖엔."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그것뿐인가?"

"그 구멍 너머에는 새하늘의 바깥이 있다. 그리고 황금시대의 군주가 거기서 널 기다릴 거다. 그래, 저기로군."

엘가가 상승하는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끝없이 솟을 것만 같던 하늘에 천장이 있음을 상원은 알았다.

누런 하늘이 커다란 구멍으로부터 왈칵왈칵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커다란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누런 액체가 사방으로 퍼져 하늘을 이루고 있었다.

그제야 상원은 이곳이 새하늘의 찌꺼기라는 게 무슨 뜻인지 그 대략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하늘의 찌꺼기라는 게 이토록 직관적인 뜻이었을 줄이야."

엘가가 상원 쪽을 향해 다리를 뻗으며 말했다.

"잡아라."

상원이 엘가의 다리를 잡자, 엘가가 상원을 배 쪽으로 옮기고 다른 다리들을 뻗어 상원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상원이 엘가의 배에 안겨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엘가가 거미줄을 뻗어 구멍 바로 아래까지 다가갔다.

구멍 안에 탁하고 싯누런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순간 구역질이 몰려와 상원은 입을 가렸다.

"웁."

"이 정도로 구역질은. 이거보다 더한 꼴도 많이 봤을 거면서."

엘가가 구멍 바로 아래까지 다가갔다.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는 온천처럼 싯누런 수면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엘가가 다리를 뻗어 수면을 향해 상원의 몸을 내밀었다.

불쾌하게 미지근한 물이 귓바퀴에 튀었다.

그때 상원의 머리를 스치는 의문이 있었다.

"엘가, 물을 게 하나 있다."

엘가가 여덟 개의 새까만 눈으로 상원을 보며 대답했다.

"뭐지?"

"기관은 시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나?"

엘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었다.

새까만 그녀의 눈에 상원의 얼굴이 비쳤다.

하수의 악취에 코가 적응해 갈 때 즈음 엘가가 대답했다.

"모른다."

"그건, 기관이 시험의 바깥에 대해 모른다는 뜻인가, 아니면 니가 기관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를 모른다는 뜻인가?"

"전자다."

싯누런 하수가 상원을 집어삼킬 듯 꿈틀거렸고 부글거리는 소리가 상원의 귓전을 때렸다.

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다리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내가 계속 이 위치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그래."

엘가가 다리를 접어 상원을 끌어당기자, 그녀의 상체가 더 잘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그대로였지만 머리색과 피부가 달라져 있었다.

회청색이 된 피부 위에 새까만 혈관들이 도드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관의 집행사를 상징하는 빛나는 고리가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더 이상 기관원이 아님을 상원은 다시금 되새겼다.

엘가가 말했다.

"기관원들은 새하늘에서 나고 자란 정신체들이다. 시험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들이야."

상원이 그녀의 말에 덧붙였다.

"그래. 직함의 보호가 없으면 새하늘을 벗어나자마자 망가져 버리지."

"맞아. 그런 존재들이, 시험 바깥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그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가져 버리겠지. 평범한 수험자들이 마신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망가져 버리는 것처럼."

"맞아."

엘가가 눈을 감았다.

"설령 누군가는 시험의 바깥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는 더 이상 기관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겠지. 나처럼 말이야."

엘가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기관원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들은 시험의 바깥을 모른다고 봐도 좋은 거군. 설령 사마에트라도."

상원의 말에 엘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고 있지, 불신자? 존재의 지평을 아득하게 넘어선 사실들은,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부술 수 있다."

엘가가 상원을 감쌌던 다리를 풀었다.

"불신자. 저 너머에 무엇이 있건 간에, 부디 너의 존재가 망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상원이 힘없이 웃었다.

"그 말에 담긴 호의는 내가 당신을 타락으로부터 구해주었기 때문에 있는 건가?"

"그래. 그때의 보답이라고 하지."

엘가의 다리가 풀리자 상원의 몸이 갱도를 향해 두둥실 떠올랐다.

'아니 이게 떠오르는 게 맞나? 물에 빠지는 것도 같고.'

이제는 엘가의 가냘픈 손만이 상원의 두툼한 손을 잡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이 어쩐지 엘가를 끝없는 지하로 보내던 때와 비슷하다고 상원은 생각했다.

"무사하길 바란다."

무심한 듯 말하는 엘가의 눈이 흔들렸다.

걱정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인 상원이 엘가의 손을 놓았다.

곧 악취가 진동하는 누런 물이 상원의 몸을 삼켰다.

그렇게 상원은 싯누런 하늘을 끝없이 뱉어내는 구멍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상원은 동굴 속에 있었다.

동굴 벽과 바닥, 천장을 따라 흐르는 물결이 별빛 같은 창백한 흰 빛을 내뿜으며 동굴 속을 비추고 있었다.

동굴은 높이만 해도 수십 미터에 폭도 그와 비슷해 보였다.

뒤에서 들리는 굉음에 상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을 따라 흐르던 물결들이 상원의 등 뒤에서 거대한 폭포를 이루며 거대한 구멍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 물결이 저 거대한 구멍을 거쳐서 끝없는 지하를 이루는 거군.'

상원은 물결에 손을 넣어 한 줌을 쥐어 보았다.

창백한 빛을 내뿜는 물결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도대체 이 물결은 무엇이며... 어째서 저 구멍을 거치면 악취 나는 구정물이 되는 거지?'

그때였다.

동굴 저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상원을 불렀다.

"어이, 어서 오라고."

저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바로 '황금시대의 군주'.

상원은 발목을 타고 부드럽게 흐르는 별빛 물결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마침내 그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한 거한이 바위에 걸쳐 앉아 있었다.

바로 '황금시대의 군주'였다.

"반갑군."

마치 처음 만난 듯한 태도에 상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구면 아닙니까?"

황금시대의 군주가 몽둥이 같은 손가락으로 상원의 심장을 톡톡 두드렸다.

"자네가 만났던 건 시계에 남아 있던 기억일 거야.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념이지."

황금시대의 군주가 몸을 일으켰다.

상원은 일어서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목을 꺾어 올렸다.

"자, 가자고. 자네도 봐야지. 이 시험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황금시대의 군주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상원은 그의 성문 같은 등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황금시대의 군주가 멈춰 섰다.

"불신자 선생. 자네, 신의 몸이란 거 알고 있지?"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몸, 새하늘에 기거하는 승천자들의 몸.

"잘 봐, 이게 내 몸이야."

황금시대의 군주가 비켜서자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안 그래도 넓었던 통로가 높이와 너비가 수백 미터는 될 듯한 공동으로 이어졌다.

공동의 바닥에는 별빛 액체가 고여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상원은 보았다.

호수 속에 잠겨 있는, 적잡아도 수백 미터는 될 듯한 거인의 유해를.

'화산정의 혐오체'의 본체였던 불타는 본드래곤이 그저 ‘따위’라고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위용이 느껴졌다.

목구멍으로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이게 바로... 주신의 신체로군.'

황금시대의 군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불신자 선생? 한때는 절대자의 자리에 있었던 승천자의 신체가?"

상원이 유해를 천천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무시무시하군요. 그런데."

상원이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습니다."

황금시대의 군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럴 거야. 그럴 수밖에 없지."

"시계 때문입니까?"

"시계도 시계지만 말이야,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어."

황금시대의 군주가 손을 뻗어 자기 유해를 가리켰다.

"자, 잘 봐. 저기 보면 말이야, 갈비뼈 숫자가 다르지? 하나가 빈단 말이야. 그거 어디로 갔을 것 같아?"

상원을 내려다보는 군주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갈비뼈가 하나 빈다고? 설마...?'

"이걸...?"

상원이 자기 얼굴을, 정확히는 '신화의 몸'의 얼굴을 가리켰다.

"빙고."

황금시대의 군주가 껄껄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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