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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48화 (148/230)

제148화. 예언 (4)

원탁이 왕이 내뿜는 은빛 기운을 흩날리며, 상원은 해원향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에 꽂은 '바위에 박힌 검'이 상원의 뒤에 남아있었다.

상원은 해원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가 금 간 것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상원은 의체 관리 인터페이스를 열어 모래시계가 얼마나 쌓였는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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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만 표시됩니다.

레벨 16 (21%)

성능: 괴력 75, 용력 85, 술력 75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3), 하늘의 불씨(3), 지하의 문(2), 동굴적 감각(3), 원혼 군주의 절규, 좀비 소환 (더 보기)

모래시계 충전 시간: 2분 21초

강신회로: 태초의 대족장

달성 업적: 네 번째 문의 봉인자, 신성제국의 구원자

일곱 별의 왕관 진척도: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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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21초.'

남은 시간을 곱씹으며 상원은 해원향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영혼이 승천하려는 걸, 육체가 겨우 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상원은 마음속으로 왕에게 물었다.

- 폐하, 2분 21초는 충분한 시간입니까?

- 무엇을 하는데 말인가?

- 저 이무기의 껍질을 벗기는 데 말입니다.

원탁의 왕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 충분하지.

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해원향을 향해 걸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원탁의 왕의 은빛 잔상이 남았다.

해원향이 시퍼런 안광을 줄기줄기 뿜으며 상원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릉!"

"후우."

큰 숨을 내쉰 상원이 스킬을 전개했다.

[스킬 '결투장'을 사용합니다.]

[상대: 이무기 해원향]

[구경꾼들의 시선에 힘이 솟습니다.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상원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녹색 막이 해원향을 집어삼키고 다른 수험자들을 밀어냈다.

막 밖으로 밀려난 수험자들 중 일부가 털썩털썩 무릎을 꿇으며 상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정신력이 약한 수험자들이 원탁의 왕의 위엄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 허허, 아직 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자들이 있다니.

- 저들이 폐하께 힘을 줄 겁니다.

"크르릉."

해원향이 신기한 물건을 본 아이처럼 결투장의 장막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장막 전체가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울렸다.

- 이지를 완전히 상실했군.

- 저희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상원과 함께 해원향을 바라보던 왕이 말했다.

- 이무기를 잡으려면 기사들이 필요하지. 왕이 될 자여, 그대는 기사들을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바위의 박힌 검'의 스킬 '기사단 소환'을 사용합니다.]

[잊혀진 원탁의 기사단이 이 땅에 돌아옵니다.]

상원은 이를 꽉 깨물었다.

기사단 소환은 엄청난 마력을 소비하는 스킬이기 때문이었다.

50번째 시험에 다다랐던 상원의 마력으로도 이 스킬의 마력 소모를 감당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 상원의 마력은 그때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엄청난 현기증이 상원을 덮쳤다.

순간 하늘이 핑 도는 느낌에 상원의 다리가 풀썩 꺾였다.

- 조심하게.

상원의 무릎이 바닥에 닿기 직전, 원탁의 왕이 상원의 몸을 붙잡았다.

왕의 도움을 받은 상원이 몸을 일으켰다.

왕이 인자하게 말했다.

- 그대를 따르는 기사단일세. 왕이 될 자의 위엄을 보여야지.

곧 저 멀리서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히힝!"

이어서 거대한 준마들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천둥 치듯 들려왔다.

상원은 고개를 돌려 멀리 경기장의 반대편을 보았다.

반대편 관중석으로부터, 새까만 마구를 걸친 기사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원탁의 왕의 추종자들, 그들의 주군과 함께 바위에 박힌 검에 봉인된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기사단의 우렁우렁한 함성이 상원의 귓전을 때렸다.

"주군을 위하여!"

대오의 선두, 코끼리만 한 준마에 올라탄 거인 기수들이 상원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 이 얼마 만에 만나는 기사단인가.

상원은 손이라도 흔들고 싶은 반가운 마음을 애써 눌러 참았다.

그것은 위엄 있는 왕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바위에 박힌 검을 이어받아 원탁의 기사들을 부리는 이라면, 능히 그에 걸맞는 위엄을 보여야 한다.

자세를 가다듬은 상원이 해원향을 향해 시뻘건 검기를 두른 박피 단검을 겨누었다.

"기사단이여. 원탁을 가로막은 이무기를 처단하자."

상원의 목소리에 오래된 바위 같은 왕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원탁의 영광을 위해!"

상원의 외침에 유령 기사들이 전음으로 답했다.

- 원탁의 영광을 위해!

침묵의 함성을 지르며, 기사단이 해원향에게 부딪혀갔다.

육중한 마상창이 해원향의 다리에 박혔고, 기둥 같은 화살이 그녀의 비늘을 꿰뚫었다.

"크아아악!"

괴성과 함께 해원향이 사지와 꼬리를 마구 휘두르며 새파란 안개를 토해냈다.

- 원탁의 영광을 위해! 물러서지 마라!

발길질 한 번에, 꼬리짓 한 번에 기사들이 검불처럼 우수수 튕겨져 나갔다.

원탁의 기사들이라고 해원향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수험자들의 공격과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기사단이 해원향의 몸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원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르르릉...!"

마구 날뛰는 해원향의 표피에 난 균열이 점점 커지며, 균열을 따라 새파란 안개가 화산의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이대로 물러난다 해도 해원향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등선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별을 얻는 조건인 '생명의 나무에서 해원향을 죽이는 것'을 달성하려면, 상원이 직접 해원향을 승천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이대로 물러나면 해원향은 상원의 손에 승천한 게 아니게 된다.

해원향의 몸에 검을 박아야 한다.

순간 상원의 뱃속에서 기침이 올라왔다.

"쿨럭."

기침과 함께 상원은 새빨간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저토록 많은 기사단을 이 땅에 붙들어두고 있는 건 전적으로 상원의 마력이었다.

저들이 해원향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사이 그녀의 육신을 완전히 끝장내야 했다.

왕이 말했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서 가세.

왕이 박피 단검을 높이 쳐들고 그의 준마를 불렀다.

상원이 늘상 타던 그 해골마였지만, 상원이 불렀을 때와는 달리 온몸에 은빛 마구를 걸치고 있었다.

해골마가 지나는 자리로 안개 같은 은빛 잔상이 남았다.

상원은 해골마의 등에 올라타 등자를 박찼다.

그러자 해골마가 하늘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해골마를 타고 하늘을 박차는,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 상원을 감쌌다.

단전으로부터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와중에도, 오랜만에 하늘을 나는 즐거움에 상원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 즐거운가?

- 그렇습니다.

해골마의 다리가 빨라졌다.

상원은 하늘을 가르는 빛줄기처럼 똑바로 날아갔다.

그 끝에 날뛰는 해원향의 미간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해원향의 미간이 가까워졌다.

저곳이다.

저곳에 단검을 박아야 한다.

단검을 쥔 상원의 손을, 왕이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자 상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 오오라가 짙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원향이 고개를 돌려 상원을 쳐다보았다.

총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눈에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왕의 모습이 비쳤다.

그의 등 뒤로 새하얀 기운이 날개처럼 너울거렸다.

그 뒤로 은빛 안개와 함께 박피 단검에서 뻗어 나간 붉은 검기가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마지막 남은 지성의 조각이었을까, 순간 해원향의 눈빛에서 상원은 슬픔을 읽었다.

상원은 그 처연한 눈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해원향의 눈에 순간 나타났던 빛은 사라졌다.

대신 시퍼런 안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또 한 번, 그녀의 꼬리 끝에서부터 새파란 기운이 머리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해무 광선이 준비되고 있었다.

- 어림없지.

왕이 부드럽고 단호하게 박차를 밟았다.

상원이라면 결코 따라 할 수 없었을 그 동작에, 해골마가 속도를 붙였다.

순간 그 엄청난 속도에 상원은 숨이 막혔다.

"헙."

마치 공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속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상원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해원향의 미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기사단의 마상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비늘, 그 사이의 조그만 틈이 보였다.

다른 틈도 아닌, 바로 그 틈에 단검을 꽂아야 했다.

상원이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가 이무기의 미간에 박아 넣을 이 단검은, 그 누구도 대신 휘둘러줄 수 없다.

그것을 알았는지, 검을 쥔 손에서 갑자기 은색 오오라가 사라졌다.

상원은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박피 단검에 쏟아부었다.

박피 단검에서 뻗어 나온 새빨간 송곳 같은 검기가 마침내 해원향의 정수리에 박혔다.

그 어떤 무기로도 뚫지 못했던 이무기의 가죽을, 한 자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단검이 뚫었다.

순간 상원을 덮친 엄청난 반발력에, 상원은 자기도 모르게 입과 코에서 피를 한 움큼이나 쏟아냈다.

"큭!"

박피 단검을 쥔 오른팔의 피부가 터져 나가 새까만 인조 근육이 드러났고, 그 인조 근육들마저 산산이 찢어지고 있었다.

상원이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흐아아악!"

해골마의 튼튼한 다리가 허공을 밀어냈다.

그리고 한순간, 왕이 말했다.

- 수고했네, 용사여.

그와 함께, 오른팔이 해원향의 비늘 사이로 쑥 하고 빨려 들어갔다.

새파란 냉기가 상원을 덮쳤다.

"흐아아아아."

죽음을 앞둔 해원향의 마지막 울음은 어쩐지 사람의 울음을 닮아 있었다.

박피 단검의 새빨간 독기가 해원향의 거구 위로 혈관처럼 순식간에 뻗어 나갔다.

이어서 해원향의 전신을 뒤덮은 새빨간 자국으로부터 새파란 증기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원은 직감했다.

시계를 쓸 마지막 타이밍이 도래했다는 걸.

원탁의 왕의 당황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 아니, 잠깐! 이것은...!

그래, 당신은 모를 것이다.

상원의 돌진은 동귀어진이었다는 걸.

해원향이 이무기의 껍질을 완전히 벗고 용이 되어 승천할 때, 육신에 남은 모든 에너지를 터뜨릴 거라는 사실을 왕이 알았겠는가?

상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탁의 기사들은 모두 재가 되어 사라져 있었고, 수험자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 폭발에 휘말릴 자는 오로지 상원뿐이었다.

상원이 중얼거렸다.

"곧, 또 만날 겁니다."

- 안돼!

왕의 외침이 멀어졌다.

그리고 새파란 폭발이 상원을 집어삼켰다.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힘의 물결 사이로, 상원은 보았다.

온몸이 새파란, 끝도 없이 거대한 용이 저 높은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용이 상원을 내려다보았다.

- 불신자.

세계라도 한 바퀴 휘감을 수 있을 것처럼 끝도 없이 거대한 용, 그것이 해원향이 이루어낸 등선의 모습이었다.

- 그는 묵과 같은 옷에 눈과 같은 머리칼을 하였으니, 생명나무의 제전에서 껍질이 벗겨져 죽음을 맞으리라.

해원향이, 아니, 해원향이었던 용이 말했다.

- 너도 그 꼴이 아니냐?

용의 말에 상원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나부끼는 새하얀 머리칼 사이로 넝마가 된 새까만 옷과 피부가 벗겨져 드러난 인조 근육들이 보였다.

상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들렸다.

[생명의 나무에서 흑천교주 해원향을 죽였습니다. 업적 <생명나무 뱀 살해자>를 달성하였습니다.]

생명의 나무가 부서지며 드러난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했고 그 사이로 새하얀 은하수가 뱀 같은 몸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사이로 찬란한 빛덩이 하나가 내려왔다.

[일곱 별의 왕관을 이루는 일곱 별들 중 세 번째 별을 획득하였습니다.]

연달아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시험에서 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멈추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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