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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45화 (145/230)

제145화. 예언 (1)

두툼한 손을 따라 단검의 요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박피 단검.

흑천교의 경전에서 그 칼에 대해 본 후, 하상효는 한 시도 칼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게 있으면 저 괴물 같은 계집년을 죽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걸 얻을 수 있는지 하상효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먼 땅의 오랑캐가 그 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뱀을 통해 칼날에 흐르는 요기를 느꼈던 그 순간, 하상효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그토록 고대해왔던 박피 단검이라는 걸.

하상효가 끌끌 웃었다.

"고맙소 선생."

조상원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심 궁금했었다.

어떻게 그 먼 땅의 오랑캐가 이런 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건지.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박피 단검은 손에 들어왔고, 그걸로 목을 칠 해원향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해원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폐하, 그건."

하상효가 광소를 터뜨렸다.

"끄하하하하하!"

'저년이 저렇게 얼굴을 굳히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태어났을 때부터 대국은 흑천교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 흑천교의 정점에 있는 자가 저 여자, 흑천교주 해원향이었다.

황실 위에 마교가 있는 상황을 하상효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하상효는 불만을 내비칠 수 없었다.

해원향이 무서웠으니까.

황제 자신이 직접 수많은 무림의 고수들을 흡수해서 힘을 키웠지만, 그래도 해원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

해원향은 그런 존재였다.

항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신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

그런데 그런 자가 지금 자기 앞에서 얼굴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하상효가 단검을 쥔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왜 그러시오, 교주. 설마 내가 이걸 들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지?"

해원향이 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잠시만요 폐하, 그건...."

"잠시는 무슨."

하상효가 단검에 마기를 쏟아붓자, 박피 단검의 칼날을 따라 새까만 불길이 솟아올랐다.

하상효마저도 놀랄 정도로 후끈한 열기가 솟구쳤다.

단검을 공중에 그어 보자 그은 자리로 새까만 불길이 남았다.

"잘 봐라 해원향. 그토록 위대하시다는 흑천께서 너의 끝을 위해 예비하셨다는 그 물건, 박피 단검이다."

꿀꺽, 해원향이 침을 삼켰다.

"흑천께서 너의 끝을 위해 예비하신 물건이니, 소중히 받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냐?"

하상효가 해원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년. 황실의 위에 앉아 이 땅을 내려다보며, 황실을 능멸하고 백성들을 혹세무민한 그 죄를 이제 짐이 직접 묻겠노라."

하상효가 땅을 박차자 해원향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단검을 긋자 공간마저 쪼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원향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크읏!"

해원향의 잘린 도포 조각이 너풀거렸다.

하상효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대국의 어떤 보검도, 어떤 무기도 해원향을 상처 입히기는커녕 물러서게조차 할 수 없었다.

중원의 내로라는 검객들을 무참하게 도륙 내버리던 그 모습이 하상효의 눈에 선했다.

그런데 이게 무언가?

해원향이 이토록 무력하게 물러서고 있지 않은가?

"하, 하하하하! 좋아, 좋다!"

하상효가 불타는 단검을 휘두르며 해원향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해원향이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

"하상효!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 위로 새파란 혈관들이 줄기줄기 솟아 있었다.

하상효가 내뱉듯 말했다.

"흥!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건 짐이 아니라 본인 아닌가?"

해원향이 물러서는 속도보다 하상효가 다가서는 속도가 빨랐다.

곧 하상효와 해원향의 거구가 부딪히자 쩡 하는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울렸다.

해원향이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큭!"

어느새 제전에 참여한 수험자들이 곁에 다가와 있었다.

"황제랑... 해원향이 싸운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맙소사... 말도 안 되는."

아나운서가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보십시오 여러분! 대국의 황제 하상효와 흑천교주 해원향이 맞붙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대결은...!"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해원향을 죽일 기회가 목전에 왔다는 것.

하상효는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죽어라 이년!"

하상효가 괴성을 지르며 검을 마구 휘둘렀다.

해원향의 새까만 도포 자락이 잘려나가 공중에 마구 흩날리며 그녀의 뽀얀 살결이 드러났다.

뒤로 물러나던 해원향이 벽에 부딪혔다.

"큭!"

하상효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해원향의 코앞까지 짓쳐들어간 하상효가 해원향의 목을 향해 단검을 찔러넣었다.

팟!

하지만 단검은 빗나가고 말았다.

해원향이 어깨를 틀어 단검을 튕겨낸 것이다.

그리고 하상효는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을 보았다.

박피 단검에 베인 어깻죽지에서 새파란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돋아난 게 아니었다.

'뭐야 이거. 살갗이 벗겨지면서 비늘이 드러난 모양새 아닌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하상효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해원향이 하상효를 노려보며 말했다.

"황제... 그거,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거구려."

하상효를 쏘아보는 해원향의 눈동자가 샛노랗게 변해 있었다.

아, 이건 분명히 본 적이 있는 현상이었다.

해원향의 내단을 집어삼킨 흑천교도들이 이런 식으로 반인반사(半人半巳)의 괴물로 변했었다.

그런데, 해원향이 어떻게?

해원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단검, 말 그대로 껍질을 벗기는 물건이요. 그래요 그 칼은 말 그대로 예언자의 껍질을 벗기는 물건이지. 그렇다면 내가, 사람의 껍질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상효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닥쳐라 이년! 이 년이 이번에도 그 혓바닥으로 짐을 능멸하려 하는구나!"

해원향이 피식 웃었다.

"어디 계속 해보시오. 어떻게 되는지."

"크아아악!"

하상효가 괴성과 함께 다시 해원향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어차피 박피 단검을 들고 해원향의 목숨을 노리려고 했었다.

이제 와서 그만둔다 해도 해원향의 밥이 되는 결말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느니 죽이 되는 밥이 되든, 해원향과 결말을 보는 게 나았다.

하상효가 해원향을 향해 단검을 마구 휘둘렀다.

해원향은 그 거구를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단검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하는 데도 한계는 있는 법.

박피 단검이 해원향의 몸을 스칠 때마다 해원향의 새하얀 피부가 떨어져 나가며 파란 비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 이대로 이 년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분명히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해원향이 신음을 흘리며 하상효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크으으윽!"

새까만 불길이 해원향의 꼬리를 막아냈다.

화경의 고수들도 막아내지 못했던 공격을 하상효는 손쉽게 막아냈다.

하상효가 공중에 검을 그으며 웃었다.

"흐흐흐!"

그때였다.

문득 멈춰선 해원향이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결국 이렇게 할 것이었구려."

황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뭐, 이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근거라도 있었나?"

황제의 말을 무시하듯 해원향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알겠나이다 흑천이시여. 이것이 진정 당신의 뜻이라면."

"이년이, 뭐라는 거냐?"

황제가 다시 한번 단검을 휘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그때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해원향이 황제를 향해 짓쳐들어온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항상 보였던 웃음기가 없었다.

그녀가 나직히 말했다.

"끝을 봅시다, 황제."

"뭐...?"

해원향의 꼬리가 황제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큭!"

간발의 차로 꼬리를 빗겨선 황제가 그녀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웬걸, 해원향은 하상효의 칼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때서야 하상효는 알았다.

박피 단검이라고 해서 그녀의 살을 뚫을 수는 없다는 걸.

그녀의 목을 향해 찔러넣은 단검이 살을 뚫지 못하고 빗겨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의 목에 난 생채기에서 파란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해원향이 말했다.

"아느냐 황제. 지금껏 나는 등선을 미뤄 왔다. 흑천께서 말씀하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해원향이 휘두른 오른팔을 간신히 피해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황제의 머리통을 향해 해원향의 왼손이 떨어졌다.

미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황제는 단검을 들어 해원향의 왼손을 막아냈다.

"컥!"

무시무시한 충격에 황제는 검은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도대체 뭐야...? 단검으로 막아내도 이 정도라고? 고작 주먹질 하나가?'

해원향의 왼팔에도 파란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크윽!"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선 황제가 자세를 고치고 해원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황제가 미친 듯 단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녀의 연약한 도포 자락이 잘려나가며 해원향의 사지가 드러났다.

그리고 황제는 보았다.

새파란 뱀 비늘이 그녀의 온몸을 덮어가는 모습을.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해원향이 황제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샤아아아악!"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새빨간 혀가 날름거렸다.

그녀의 목에선 더 이상 사람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상효가 단검을 떨어뜨리며 두 귀를 막았다.

머릿속에 해원향의 전음이 울렸다.

- 나 흑천교주 해원향. 여기서 인간의 껍질을 벗는다!

어느새 하얗게 새어버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디선가 불어온 돌풍에 흩날렸다.

하상효가 나직이 내뱉었다.

"이런... 젠장!"

해원향이 하상효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느 칼보다도 날카로운 그녀의 손톱이 하상효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간발의 차로 손톱을 피해냈지만 끝이 아니었다.

중심을 잃은 하상효의 눈에, 그의 심장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해원향의 굵은 꼬리가 보였다.

하상효는 직감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하상효는, 날카롭고 차가운 꼬리 끝이 가슴 근육을 파고드는 걸 느꼈다.

피부가 갈라지고 근육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서졌다.

그리고 심장이 꿰뚫렸다.

위대한 대국의 황좌에 앉은 이, 황제의 심장이 그렇게 뚫렸다.

"허."

헛숨을 뱉으며, 하상효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하상효는 보았다.

흰 머리를 하고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 조상원이 그를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그제야 하상효는 알아차렸다.

'아... 속았구나.'

해원향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던 그 마음이, 이런 파국을 불렀음을.

'네 이놈!'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꿀럭거리는 선지피만 목구멍으로 쏟아져나올 뿐이었다.

잠시 후, 심장을 꿰뚫었던 꼬리가 빠져나갔다.

하상효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울컥울컥 솟아나는 핏줄기가 곤룡포를 적시고 바닥에 고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괴물이 되어버린 해원향의 그림자가 황제를 덮었다.

해원향이 그를 내려다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스으으으읏."

그때였다.

황제의 손에 있던 박피 단검이 뱀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갔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단검이 날아간 곳을 보았다.

박피 단검은 조상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상원이 말했다.

"이제 인간 해원향이 완전히 죽을 차례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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