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생명나무 제전 (5)
그 시각, 상원도 본진에 앉아 스크린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섬광이 걷혔다.
천둥망치가 시뻘건 얼굴로 뇌신의 파괴자를 내리 누르고 있었다.
샤믹은 두 손으로 뇌전이 흐르는 망치 머리를 받치고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새파란 스파크가 흘렀다.
'피뢰공'이 작동하는 것이었다.
피뢰공은 이름 그대로 뇌전 데미지를 줄여주는 무공이었다.
상원이 샤믹에게 피뢰공을 익히게 한 건 그녀로 하여금 천둥망치 군나르 인그로소를 상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나운서가 경악에 물든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샤믹 로드리게스가, 뇌신의 파괴자를 막아냈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험을 통틀어 최강의 보구 중 하나라는 '뇌신의 파괴자'를 맞고도 멀쩡한 수험자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을 테니.
샤믹이 망치 머리를 밀쳐내며 외쳤다.
"더 해봐 이 고릴라 자식아!"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시험 최강의 기술이 막혔다.
자존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군나르가 이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군나르가 소리를 지르며 망치를 마구 휘둘렀다.
"이런 빌어먹을 깜둥이 년이!"
망치에 맞을 때마다 꽝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샤믹의 몸이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샤믹의 몸은 금방 재생되었다.
아나운서가 외쳤다.
"놀라운 광경입니다! '뇌신의 파괴자'를 맞고 버틴 것도 모자라서... 벌써 열대 넘게 맞았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탱커가 또 있을까요?"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상원에게까지 들렸다.
평범한 수험자들은 놀라울 것이다.
하지만 상원은 그렇지 않았다.
상원은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샤믹이 지금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상원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샤믹이 군나르와 맞서게 한 건, 군나르와의 대결이 급성장의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샤믹은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며 성장한다.
군나르는 그런 샤믹의 몸을 파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험자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샤믹을 아무런 준비 없이 맞서게 하면 군나르의 손에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뇌전을 견딜 수 있도록 피뢰공을 익히게 한 것이다.
“죽어!”
뇌신의 파괴자가 또한 번 빛을 뿜자 샤믹의 몸이 부서졌다.
이제 부서진 부분에서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보였다.
계획대로, 망치에 맞으면 맞을 수록 그녀의 몸이 단단해졌다.
상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군나르는 마구잡이로 망치를 휘둘렀다.
"으악! 이 년이! 이 년이!"
망치에 맞은 샤믹이 신음을 흘렸다.
"크으윽!"
샤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샤믹을 성장시키는 일이라도,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마주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상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승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승천이다.
샤믹이 느끼는 고통도 그녀의 성장 그리고 상원의 승천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다.
그때 샤믹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왈칵 피를 토했다.
"흐윽!"
마력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원이 중얼거렸다.
"이런."
샤믹의 재생력은 무한이 아니었다.
단지 수호신 '가라앉은 거인'의 마력이 턱없이 많아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
상대는 절대자의 푸쉬를 받는 천둥망치 군나르 인그로소였다.
그라면 가라앉은 거인의 마력을 바닥낼 수도 있었다.
상원의 깍지낀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조금은 더 버텨주어야 할 텐데.'
그때 굉음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오오오오오오!
수십 명의 승려들이 일제히 낮은 진언을 외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와 함께 샤믹과 군나르가 맞부딪히고 있는 전장의 바닥에 커다란 방진이 나타났다.
상원이 스크린 옆에 있는 모래시계를 보며 말했다.
"됐다."
8분을 나타내는 모래시계가 거의 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오브젝트 타이밍이었다.
아나운서가 외쳤다.
"아, 여러분 보십시오! 뱀의 방진이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 오브젝트 타이밍이 다가옵니다! 앞으로 1분 뒤, 방진에서 무시무시한 마수 '생명의 뱀'이 나타납니다! 생명의 뱀을 물리친 팀에는 아주 큰 보상이 주어집니다! 자, 생명의 뱀을 물리치는 팀은 어디가 될까요?"
상원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상원은 스크린에 손을 얹고 전음을 보냈다.
상대는 발할라 본진에 있는 하상효였다.
- 황제 폐하, 들리십니까?
대답이 돌아오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잘 들리는군.
- 싸움 구경은 어떠십니까 폐하?
- 이것도 꽤나 보는 맛이 있구만.
상원이 피식 웃었다.
매번 무림인들의 싸움만 보다가 수험자들의 싸움을 구경하니 색다를 만도 했다.
하지만 황제가 싸움을 계속 보게 하는 건 상원의 계획이 아니었다.
상원이 물었다.
- 개미들 싸움 구경 그만하시고 저희끼리 결판을 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 대장전은 30분까지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라고 공지된 걸 벌써 잊으셨소?
전음을 받은 상원이 피식 웃었다.
‘몸이 근질근질할 거면서 빼기는.’
- 그건 폐하께서 바꾸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제전 주최자의 권한으로 말입니다.
잠시간의 침묵 후 하상효가 답을 보냈다.
- 그래서,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순순히 나오지는 않겠다는 거지?'
- 왜냐하면 제가 폐하를 위한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기 때문이지요.
- 오호, 그게 무엇인가?
피식 웃은 상원이 미끼를 던졌다.
황제가 진실로 바라는 것, 바로 천재일우의 기회.
- 칼을 들고 해원향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해원향은 무기 든 자의 알현을 받지 말라는 흑천의 계시를 지켰다.
그러니 '박피 단검'이 있어 봐야 그걸 해원향에게 찌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상원은 황제에게 그걸 준다고 했다.
황제의 전음에서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
- 선생이 그걸 어찌...? 아니... 네놈, 정체가 뭐냐?
상원이 피식 웃고 대답했다.
- 확인하고 싶으면 탑으로 오십시오. 내 친절히 알려드릴 테니.
상원은 스크린에서 손을 뗐다.
대장전이 선포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볼까?
그때 아나운서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잠시, 긴급...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뭐 그렇게 한다면야. 네."
잠시 후 아나운서가 말을 이었다.
"진행에 혼란이 있었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이번 게임에는 특이한 상황이 많네요. 지금 시각은 제전 시작 후 7분 45초입니다. 예… 대장전이 선포되었습니다. 각 팀 대장들이 제전에 참여합니다.”
한참 샤믹을 망치로 내려치던 군나르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부서진 몸으로 무릎 꿇은 샤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임마, 큰일 났어. 우리 대장이 오면 너 같은 건 그냥 끝나는 거야.”
“뭐…?”
천둥망치의 눈에서 시퍼런 뇌전이 튀었다.
"그 입 더 이상 못 놀리게 해주마."
분노한 군나르가 내뿜은 뇌전이 스크린을 새하얗게 덮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샤믹이 영구적인 상해를 입게 된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대장전이 시작됩니다. 각 팀 대장들은 전장에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후우.”
큰 숨을 내쉰 상원이 본진을 나섰다.
하늘 저 멀리서 하상효가 내뿜는 새까만 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가자."
상원이 '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 들고 해골마를 불렀다.
그러자 새까만 마구를 걸친 해골마가 상원의 등 뒤에 섰다.
상원은 해골마에 올라타 박차를 밟았다.
- 푸히히힝!
힘찬 소리와 함께 해골마가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다.
* * *
그보다 조금 전, 탑 라인의 전장.
망치를 든 군나르가 노호성을 질렀다.
"크아아악! 깜둥이 년 주제에!“
[성현 '거인 박살'을 사용합니다.]
거인 박살, '뇌신의 파괴자'에 마력을 담아 일격을 가하는 스킬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뇌신의 파괴자'는 최강의 보구, 그래서 '거인 박살'의 위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 년은, 왜 쓰러지지 않는 건가?'
깜둥이가 두 손으로 망치 머리를 잡자,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돌로 된 팔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비명이 나와도 모자라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꾸 깜둥이 깜둥이 하지 마, 이 새끼야. 내 이름은 샤믹 프란세스코다."
"컥!"
순간 배에 가해진 충격에 군나르가 헛숨을 뱉었다.
샤믹의 발길질이었다.
군나르는 세브로 랭킹에 들어있지도 않은 이런 잡배가 자신과 겨루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군나르가 피 섞인 침을 뱉었다.
"퉷, 이런 개같은...."
사실 격차는 명확했다.
군나르는 외상을 조금 입은 정도였던 반면, 샤믹은 가루처럼 부서졌다 재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라앉은 거인'이 주신급에 가까운 마력량을 가졌다 해도, 화신을 무한정 재생시킬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군나르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세브로 랭킹에도 들지 않은 깜둥이 잡년과 이 정도로 실랑이를 버리고 있다니.
게다가 한참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시공간의 세습자'는 5분 만에 상대 전원을 도륙해버렸는데.
그때 아나운서가 말했다.
"대장전이 선포되었습니다. 각 팀 대장들이 제전에 참여합니다.”
군나르는 두 귀를 의심했다.
'대장전이라고? 지금?'
“뭐야, 갑자기 무슨…?”
부서진 몸으로 무릎 꿇은 샤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임마, 큰일 났어. 우리 대장이 오면 너 같은 건 그냥 끝나는 거야.”
“뭐…?”
군나르의 눈에서 시퍼런 뇌전이 튀었다.
"그 입 더 이상 못 놀리게 해주마."
뇌신의 파괴자가 새하얀 뇌전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이제 끝내자."
새하얀 뇌전을 줄기줄기 쏟아내는 망치를 들고, 군나르는 샤믹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분명히 마지막 일격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샤믹은 웃고 있었다.
군나르가 물었다.
"죽을 때가 되니 돌아버렸나?"
"아주 멀쩡해."
샤믹이 흙먼지를 뱉어내고 말했다.
"근데 너는 멀쩡하지 못할 거야."
"이년이 끝까지...."
그때 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군나르는 자기도 모르게 울음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았다.
상대편의 탑 안쪽에서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에 새까만 코트, 분명히 식당에서 봤던 그놈이었다.
"저놈... 저놈이!"
군나르가 놈을 향해 새하얀 뇌전을 담은 망치를 던졌다.
[성현 '파괴의 벼락'을 사용합니다.]
파괴의 벼락은 군나르의 절기로, 최강의 원거리 스킬이라 해도 무방했다.
시공간의 세습자의 '검은 번개'도, 태양매의 '태양 폭발'도 파괴의 벼락에는 미치지 못했다.
굉음과 함께 새하얀 번개 줄기가 탄내를 남기며 놈에게 날아갔다.
잠시 후 탑 너머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튀었다.
땅을 통째로 뒤집어 엎어버리는 위력, 그걸 맞고 살아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수호신의 일갈이 머릿속에 울렸다.
- 피해 멍청아!
"뭐...?"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흙먼지 속에서 날아온 새하얀 창이 군나르의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생각지도 못한 통증에 군나르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아프냐?"
놈이 흙먼지 속에서 말을 몰고 나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