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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42화 (142/230)

제142화. 생명나무 제전 (4)

경기에 돌입하기 전 작전 회의 시간이었다.

해설 겸 캐스터 자리에 앉은 아나운서가 커다란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스크린 왼쪽 아래 귀퉁이에 경기장 지도가 있는 모습이, 인간들이 즐기는 AOS 게임과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아나운서는 그 지도를 통해 경기장 곳곳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경기장은 정사각형이었는데, 왼쪽 아래 모서리가 성역 서울역, 오른쪽 위 모서리가 길드 발할라의 본진이었다.

아나운서는 우선 발할라의 본진을 들여다보았다.

기관의 드론이 발할라의 본진으로 날아간 덕에, 아나운서는 본진의 상황을 눈높이에서 볼 수 있었다.

발할라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천둥망치가 대장을 자처한 황제 하상효에게 인상을 잔뜩 쓰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 싸움에 끼어든 거요?"

황제가 끌끌 웃으며 대답했다.

"저쪽 대장 하는 친구한테 받아야 될 게 있어 그렇소. 대장전에서 이기면 받기로 했어."

"아니 그런...!"

외팔 검객이 천둥망치를 제치며 말했다.

"오로지 그 이유로 제전에 참가한 겁니까? 그래서 우리는, 폐하라는 위험을 안고 저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아나운서는 그 기세에 감탄했다.

'아무리 황제가 전투원이 아니라지만... 황제를 상대로 이런 기세로 얘기할 수 있다니. 역시 발할라는 발할라군.'

황제가 피식 웃으며 귀를 후볐다.

"시끄럽군."

그 말에 발할라 길드원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네?"

"이번 시합에서 이기면 말이야. 짐이 자네들에게 특별히 두 배의 보상을 약속하겠소. 아니, 세 배. 세 배는 어떤가?"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외팔 검객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세 배요. 좋습니다."

한편 아나운서는 그 대화를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명나무 제전’이 흑천교와 대국 황실이 주최하는 무투전이라지만, 엄연히 승천 시험의 줄기를 구성하는 25번 시험의 일부였다.

'황제가 기관과 어떠한 협의도 없이 저런 식으로 보상을 단독 조정할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한가?'

그런데, 분명히 이 대화를 들었을 기관 측에서는 어떠한 입장도 보내지 않았다.

‘뭐... 그렇다면야. 내가 심판도 아니고.’

아나운서는 이 시합의 해설 겸 캐스터일 뿐, 시합의 보상이 규정에 맞는지 아닌지를 물어야 할 이유까지는 없었다.

한편 발할라의 길드원들은 황제를 두고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고 있었다.

무지개 다리의 파수꾼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떨거지들 상대하고 세 배 보상이라니. 완전 횡재 했구만."

드높은 발키리가 말했다.

"윤진아만 제외하면 다 별 볼 일 없어. 빨리 끝내고 보상이나 가져가자."

하지만 외팔 검객의 표정은 심각했다.

"아니야."

발할라의 길드원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티켓 여섯 장을 구해 온 놈들이다. 무슨 수를 준비해놨을지 모르니까 방심하지 마."

아나운서는 그녀의 냉철한 판단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서울역은 티켓 여섯 장을 구했지.'

발할라도 올림포스도 고작 다섯 장이었던 티켓을, 어떻게 서울역은 여섯 장을 구했을까?

아나운서도 그게 너무 궁금했지만 알 방법은 없었다.

외팔 검객이 말했다.

"군나르, 탑을 혼자 맡아. 에반이랑 케이티는 바텀에 있다가 오브젝트 타이밍이 되면 탑으로 바로 합류하고. 나랑 미히코가 미드로 갈게."

무지개 다리의 파수꾼이 물었다.

"첫 번째 오브젝트 타이밍이 8분이잖아. 그때까지 게임이 갈까?"

외팔 검객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모르니까."

역시, 발할라의 실질적인 사령탑 외팔 검객은 방심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저 불쌍한 상대방들은 뭘 하나 볼까?'

아나운서는 카메라를 서울역 본진으로 옮겼다.

이쪽의 분위기는 달랐다.

발할라 본진보다 조금 더 긴장한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수험자들의 사이는 발할라보다 훨씬 끈끈해 보였다.

"말씀드린 무공들은 모두 익히셨지요?"

대장 조상원의 말에 나머지 수험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습니다. 특히 묵영도는 익히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순간 아나운서는 두 귀를 의심했다.

"묵영도? 그걸 배웠다고?"

아나운서는 스크린에 무공 데이터베이스를 띄워 '묵영도'를 검색했다.

그러자 '광기를 칼날로 변환하는 무공'이라는 설명과 함께 간단한 세부 설명이 떴다.

강하기는 하지만 익히기는 극히 어려워서 그 무공에 도전했던 자들은 모조리 미쳐서 죽었다.

개발자인 전대 흑천교주 구두망마저도 나중에는 무공을 버렸을 정도였다.

아나운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발할라를 상대로 마냥 밀리지만은 않겠군. 재밌겠다. 이 경기 재밌겠어."

그러자 송혜경이 한창훈의 팔을 살포시 잡으며 대답했다.

"정말 무지무지 힘들긴 했는데, 이이가 도와줘서 무사히 끝났죠."

한창훈이 부드럽게 웃었다.

조상원이 말했다.

"작전대로입니다. 혜경 씨와 창훈 씨가 미드로, 문혁 씨와 진아 씨가 바텀으로 갑니다. 샤믹이 단독으로 탑으로 갑니다. 미드와 바텀의 역할은 이들이 탑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특히 바텀에 올 '무지개 다리의 파수꾼'이 무지개 다리를 펼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진아와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대화를 지켜보는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상대방에 대해 가진 정보는 서울역이 발할라보다 많구나.'

그도 그럴법한 게 발할라는 시험판에서 가장 유명한 길드인 반면, 성역 서울역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마치 일부러 자신들의 정보를 숨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화신의 명성이 시험 결과로 직결되는 시험의 구조상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 방식이었다.

"뭐, 어쨌든."

그때 인이어 마이크를 통해 기관의 지시가 내려왔다.

- 시험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시작이군!'

아나운서가 외쳤다.

"영광스런 승천에 도전하는 수험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생명나무 제전의 하이라이트, 길드 발할라와 성역 서울역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승천 시험 최강의 길드 발할라! 그리고 여섯 개의 티켓을 준비한 수수께끼의 성역 서울역! 과연 어떤 흥미진진한 대결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어떤 대결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나운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목이 터져라 카운트다운을 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각 진영의 수험자들이 전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 *

카메라가 먼저 향한 곳은 미드였다.

"자, 미드 상황 살펴보겠습니다! 발할라 측은 부길드장, 세브로 랭킹 5위 외팔 검객과 빛나는 카나리아가 왔습니다! 그리고 서울역 측은...."

'응?'

수험자 정보를 읽다가 순간 당황한 아나운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프로다운 자세로 멘트를 이었다.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 송혜경과 '화산정의 혐오체'의 화신 한창훈입니다!"

아나운서는 잘못 봤나 싶어 수험자 정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호신이... 하나는 외신이고 하나는 타락신이라고?'

시험을 통틀어서 하나를 볼까 말까 한 존재가 둘씩이나, 그것도 같은 팀에 있다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희귀하다는 게 강하다는 뜻은 아니지.'

상대는 시험 최강의 검사인 외팔 검객과 손가락에 꼽히는 힐러인 빛나는 카나리아다.

그때 송혜경이 소리를 질렀다.

"야 너! 그때 우리 완전 무시했지!"

외팔 검객이 차갑게 웃었다.

"무시할 만하니 무시한 것 아닌가?"

외팔 검객이 코트를 벗어 던지고 양손 검을 뽑아 들자, 그 살벌한 살기에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마치 먹이를 향해 뛰어들 타이밍을 재는 호랑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송혜경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외쳤다.

"아...! 이대로 달려들면 일도양단 될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흥."

외팔 검객이 콧방귀를 뀌며 검을 가로로 그었다.

잔잔한 물결처럼 부드러운 칼짓이었지만 그 안엔 공간마저 반으로 갈라버릴 법한 힘이 담겨 있다는 걸 아나운서는 알고 있었다.

'6등급 마물도 단매에 절명할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때 송혜경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악!"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새까맣게 물들며, 그녀의 그림자에서 커다란 짐승의 발톱이 솟아올랐다.

발톱과 양손 검이 부딪히자 쨍하는 쇳소리와 함께 새빨간 불똥이 튀었다.

외팔 검객의 얼굴을 구기며 물러났다.

"막혔어...?"

아나운서가 흥분해서 외쳤다.

"아...! 시험에서 가장 날카로운, 외팔 검객의 가로 베기가 막혔습니다! 송혜경 수험자의 그림자에서 발톱 같은 게 나왔는데요... 이건, 묵영도! 묵영도군요!"

그녀는 손에 땀을 쥐었다.

'맙소사, 정말로 묵영도를 소화했군!'

관중석의 반응은 아나운서와는 달랐다.

외팔 검객의 가로 베기가 막혔다는 당혹감뿐, 묵영도에 대한 놀라움은 없었다.

묵영도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마공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어떻게 그 마공을 알고 배운 거지?’

그 사이, 송혜경이 피 냄새를 맡은 짐승처럼 외팔 검객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송혜경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무수한 발톱이 외팔 검객을 향해 쏟아졌다.

외팔 검객의 유려한 검술마저도 그 발톱들을 모조리 막아내지는 못해서, 검막 사이를 파고든 발톱들이 그녀의 몸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외팔 검객의 얼굴이 구겨졌다.

“크윽…!”

아나운서의 머리에 의문이 스쳤다.

‘고작 25번 시험이야. 묵영도를 이 정도로 운용하면 진작 정신줄을 놓아버렸어야 되는데, 어떻게…?’

스크린을 자세히 들여다본 아나운서는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역 측 방어탑 근처에서 한창훈이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나운서는 그가 송혜경의 마기를 통제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딱 맞는 서포터를 붙여놨군.’

“걱정하지 마요 마리야!”

그때 빛나는 카나리야의 외침과 함께 외팔 검객의 피부에 난 생채기들이 사라졌다.

아나운서가 외쳤다.

“네, 여러분 보십시오! 두 팀 모두 미드에 근접 딜러와 서포터를 배치했습니다! 서울역은 외팔 검객과 빛나는 카나리아를 상대로 분전하고 있습니다! 이거 승부가 재밌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미드의 승부는 팽팽했다.

특히나 재밌는 건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외팔 검객의 표정이었다.

‘그래, 이쯤 해두고. 바텀이야 상황이 비슷하겠고.’

“자 이제 여러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탑의 상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탑에 있는 건 세브로 랭킹 1위의 폭군, 천둥망치입니다! 과연 수험자 샤믹 프란세스코는 천둥망치를 상대로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아마 1분도 채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아나운서는 불쌍한 수험자 샤믹이 ‘뇌신의 파괴자’를 맞고 재가 되어 있을 상상을 하며 카메라를 탑으로 옮겼다.

* * *

그리고 탑으로 카메라를 옮긴 아나운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이런… 이럴 수가?”

천둥망치의 전용 보구인 뇌신의 파괴자.

샤믹 프란세스코라는 이름 없는 수험자가, 시험 최강의 보구인 뇌신의 파괴자를 정통으로 맞고도 무사했던 것이다.

샤믹이 땅에 발을 박으며 소리쳤다.

“어디, 더 해봐 이 무식한 고릴라 같은 자식아!”

“으아아아악!”

천둥망치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네까짓 게! 네까짓 게!”

뇌신의 파괴자에서 뿜어져 나온 무시무시한 벼락이 스크린을 하얗게 메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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