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41화 (141/230)

제141화. 생명나무 제전 (3)

또 하나의 시합이 끝났다.

흥분한 아나운서가 외쳤다.

"대... 대단한 무용입니다! '시공간의 세습자' 카일 핸드레이크, 놀라운 속도입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경기장 가득 울려 퍼졌다.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일! 카일!"

'외팔 검객' 마리야 율리야노바는 날카로운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안에는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올림포스의 길드장, '시공간의 세습자' 카일 핸드레이크였다.

방금 전의 시합은 올림포스 길드와 다른 수험자들의 5:5 대결이었지만, 실상은 카일 핸드레이크의 원맨쇼에 가까웠다.

카일이 수험자 다섯을 해치우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분 남짓이었다.

마리야가 마른 침을 삼켰다.

'위험한 자다.'

카일 핸드레이크, 세브로 랭킹 2위의 초강자.

물론 정면 승부라면 발할라의 길드장 '천둥망치' 군나르 인그로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카일 핸드레이크는 천둥망치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공간이동.

카일은 그 능력을 바탕으로 넓은 경기장에 퍼진 수험자 다섯을 4분 만에 도륙했다.

카일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랭킹 5위의 마리야마저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괴물 같은 놈."

그때였다.

군나르 인그로소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씩씩대며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젠장...! 망할!"

마리야는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군나르가 화내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간 거 아니었나? 식당에 가서 저렇게 열 받아서 올 일이 있나?'

마리야가 물었다.

"왜 그래 군나르?"

군나르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리에 그 거구를 구겨 넣었다.

분노한 군나르의 곁으로 살벌한 뇌전이 감도는 탓에 주변의 수험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군나르?"

"젠장, 닥쳐!"

마리야를 쏘아보는 군나르의 눈이 마치 성난 늑대 같았다.

마리야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이 사람이 화를 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다.

군나르 인그로소는 화를 내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개망나니가 된다는 걸.

이럴 땐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어야 한다.

마리야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으드득 이를 간 군나르가 씩씩대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러다가 성질이 좀 가라앉았는지, 군나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마리야.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어서."

"무슨 일인데?"

"식당에서 웬 놈이랑 시비가 붙었거든."

"그래서?"

마리야의 머릿속에 어떤 상황이 펼쳐졌는지가 저절로 그려졌다.

군나르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그 멍청이는 아마 그대로 전기구이 통닭이 돼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과 기억의 까마귀가 와서 사태를 수습했겠지.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이 양반이 이렇게 열이 받았다고?

도대체 어느 누가 압도적인 랭킹 1위, 최강의 수험자 군나르 인그로소를 이렇게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내 스킬이 통하지 않았어."

"에?"

"내 스킬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럴 리가 없었다.

세상에 어떤 수험자가, 천둥망치 군나르 이느로소의 스킬을 무시한단 말인가?

발할라 최강의 방어력을 가진 '무지개 다리의 수문장' 마저도, 설령 장난으로라도 천둥망치의 스킬을 맞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게 누군데?"

"처음 보는 놈이었어."

"응?"

"정말로 처음 보는 놈이었어. 세브로 랭킹에 없는 놈이야."

세브로 랭킹은 수험자들의 활동을 토대로 기관에서 산정하는 랭킹이었다.

세브로 랭킹은 20위가 끝이었다.

그러니까 승천 시험의 모든 수험자들을 통틀어, 단 20명만이 '세브로 랭커'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얻는다는 뜻이었다.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수험자들의 강함을 서열로 표시한 수치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런데 그 세브로 랭킹에 들어있지 않은 자가, 군나르의 스킬을 무시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심상치가 않은데... 무슨 일이지?'

그때였다.

화면이 바뀌며, 링 아나운서가 말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오늘 시합의 하이라이트, 길드 발할라와 성역 서울역의 시합이 펼쳐지겠습니다!"

관중들이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성역 '서울역'이라.'

세브로 랭커인 윤진아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전력이 있나?

이렇든 저렇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어차피 모두 천둥망치의 제물이 되겠지.

그때 마리야가 앉은 자리에서 환한 빛이 솟아올랐다.

자리에 설치된 공간이동 장치가 작동한 것이었다.

* * *

다음 순간, 마리야는 지름이 10미터 남짓한 원형의 공간에 서 있었다.

선수 대기실이었다.

그녀의 주변으로는 천둥망치 군나르와 발할라의 다른 팀원들이 함께 있었다.

링 아나운서가 말했다.

"먼저 승천 시험 최강의 길드, 발할라입니다! 세브로 랭킹 1위 천둥망치와 5위 외팔 검객, 12위 무지개 다리의 수문장, 19위 드높은 발키리, 그리고 빛나는 카나리아가 제전에 참여합니다."

발할라의 길드원들이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자, 열화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이거지.'

명예와 업적을 쫓는 승천 시험의 수험자들에게, 구경꾼의 함성만큼 신나고 설레는 것이 또 있겠는가?

군나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가 귀까지 걸려 있었고, 다른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발할라의 최정예 수험자 다섯, 그중에서 넷이 세브로 랭커였다.

그에 비해 상대편의 세브로 랭커 수는 고작 하나였다.

'어 그런데 서울역 말고 호명되는 데가 없네? 그렇다는 건, 서울역에서 입장권 다섯 개를 확보했다는 얘긴데? 어떻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마리야의 고민을 끊었다.

"다음으로, 성역 서울역의 참가자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세브로 랭킹 8위의 윤진아, 이어서 한창훈, 송혜경, 백문혁 그리고 샤믹 프란세스코입니다!"

선수 대기실 한 면에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고, 거기로 서울역 수험자들이 모습이 보였다.

가장 왼쪽에 있는, 커다란 안경을 쓴 앳된 수험자가 윤진아, 그 옆에 있는 사람이 한창훈, 송혜경....

"어?"

마리야가 놀란 소리를 내자 '빛나는 카나리아'가 물었다.

"왜 그래요, 마리야?"

"저 사람들... 봤어. 군나르, 당신도 기억나지? 만공당에서 만났던."

"오, 그렇군."

군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만공당에서 봤던 사람들이었다.

"어때? 강했어?"

드높은 발키리의 물음에 천둥망치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별로."

그때 아나운서가 말했다.

"아, 어...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아, 여기는 벌써 대장을 선정했군요."

일순간 발할라 수험자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무지개 다리의 수문장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했다.

"여섯... 명이라고?"

놀란 건 마리야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공물을 바친 발할라도 올림포스도 티켓 다섯 개가 다였는데, 여섯 개라고?

도대체 무슨 재주로?'

객석의 수험자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선수 대기실까지 들려왔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네, 성역 서울역의 여섯 번째 선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울역의 대장, 조상원입니다."

서울역 수험자들 사이로 흰 머리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이었다.

그때 쾅 하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군나르가 주먹으로 벽을 부순 것이었다.

"저놈... 저놈이야. 식당에서 만난 놈."

아, 군나르의 스킬을 무시했다는 게 저놈인가?'

마리야의 표정이 굳었다.

군나르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말했다.

"저놈이 대장은 한다는 말이지? 좋아 그렇다면 나도 대장을 하겠어."

빛나는 카나리아가 물었다.

"왜요 군나르? 무조건 시합을 일찍 끝낼 거라더니...."

"아니야, 저놈과는 대장전을 치러야 해! 모두 잘 들어! 저놈들 적당히 상대하고 대장전에 들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놈을 가루로 만들어 버려야겠어!"

군나르가 주먹을 쥐자 살벌한 뼛소리가 났다.

마리야가 한숨을 쉬었다.

발할라마저도 손에 넣지 못한 여섯 번째 티켓을 가진 성역, 그리고 군나르의 스킬이 통하지 않는 수수께끼의 수험자.

변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발할라 측에는 또 다른 변수가 남아 있었다.

바로 발할라와 한 팀이 될 여섯 번째 수험자.

아나운서가 말했다.

"자, 그렇다면 발할라와 함께할 여섯 번째 선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섯 번째 선수는 바로... 바로, 어,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나운서가 귀에 손을 갖다 대고 기관으로부터 내려오는 지령을 들었다.

무슨 지령을 듣는 건지 아나운서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심각해졌다.

아나운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관중석에 그대로 들렸다.

"아, 대장을... 아, 아, 네. 아 그런데 그게 그런 적이... 그걸 그렇게 해도... 되나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지령을 모두 받은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고치고 말했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점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긴급하게 변경된 사항입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아나운서가 목소리에 힘을 잔뜩 주었다.

발할라의 길드원들이 중얼거렸다.

"뭐야 도대체?"

"발할라와 함께할 여섯 번째 선수이자 대장은, 대국의 황제 하상효입니다."

길드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무슨 소리야 이게 지금? 하상효가 우리 대장이라고?"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크린에 황제의 얼굴이 떴다.

남산만 한 배에 돼지 같은 얼굴, 스스로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이는 저자가, 우리 팀의 대장이라고?

아니, 애당초에 수험자가 아닌 자가 제전에 참여할 수 있나?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으아아악! 장난해?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지금!"

천둥망치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주변으로 무시무시한 뇌전이 흘렀다.

마리야가 외쳤다.

"침착해 군나르! 기관에서 밸런스를 맞추려고 한 일일 거야! 지금까지 이런 상황 많이 겪었잖아?"

천둥망치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이럴 땐 마리야가 길드를 이끌어야 했다.

마리야가 말했다.

"모두 잘 들어. 저쪽 대장이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황제가 저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절대로, 절대로 대장전에 넘어가면 안 돼. 알겠지?"

마리야의 말에 다른 길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 놈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째서 시험 진행을 이따위로....'

그때 아나운서가 외쳤다.

"이로써 6:6의 매칭이 끝났습니다! 1팀은 발할라의 길드원 다섯, 그리고 대장은 황제 하상효. 그리고 2팀은 서울역의 수험자 여섯, 그중 대장은 수험자 조상원입니다! 자, 이제 선수들을 경기장으로 모셔보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눈 부신 빛이 발할라의 길드원들을 감쌌다.

눈을 뜨니 길드원들은 굵은 나무뿌리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구조물의 가운데 있었다.

아나운서가 외쳤다.

"자! 생명나무 제전의 하이라이트 경기를 시작합니다!"

"와아아아!"

뜨거운 함성이 경기장을 덮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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