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40화 (140/230)

제140화. 생명나무 제전 (2)

헐레벌떡 달려온 샤믹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헉, 헉. 죄송해요. 길을 잃는 바람에."

'약속이라면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괜찮습니다. 아직 황성 문이 닫히지 않았으니까요."

상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샤믹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샤믹의 어깨에서 낯선 마력이 느껴졌다.

평소의 바위 같은 마력이 아닌 부드러운 물결 같은 마력이었다.

상원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샤믹, 혹시 피뢰공 말고 다른 무공을 익혔습니까?”

샤믹이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대답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래요?"

'이상하다.'

상원은 샤믹의 마력을 보다 세심하게 느껴보았다.

방금 전 느꼈던 낯선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인가?'

피뢰공을 익힌 샤믹의 경우처럼, 낯선 무공을 익히면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한 마력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그래, 그냥 그런 거겠지.’

상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들어갑시다."

상원은 일행들을 이끌고 황성의 드높은 문지방을 넘었다.

문 너머엔 중국풍의 드넓은 황성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 * *

황성 정문을 지난 수험자들이 도착한 곳은 널따란 광장이었다.

수험자들로 바글거리는 광장 앞에는 으리으리한 누각이 있었다.

그 광장 가운데서, 최강의 길드 ‘발할라’의 마스터이자 세브로 랭킹 1위에 빛나는 수험자 천둥망치가 수험자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자 바위 같은 팔근육과 산같은 가슴근육이 꿈틀거렸다.

‘벼락을 두른 대전사’의 화신 ‘천둥망치’.

기관이 랭킹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후로 랭킹 1위에서 내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가 뭐래도 명실상부한 최강의 수험자이며, 그 강함은 ‘시공간의 세습자’ 정도를 제외하면 싸움이 성립하지조차 않는 정도였다.

그런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많은 것들이 무료해지게 마련이다.

천둥망치가 중얼거렸다.

“지루하군.”

그때 누각 위로 뒤뚱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대국의 황제 하상효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축제를 시작합시다.”

황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온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수험자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와중에도 천둥망치는 가볍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천둥망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황제 하상효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순식간에 주위의 풍경이 나무뿌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객석 한 편의 높다란 자리에선 하상효가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수험자들은 어느새 객석에 앉아 있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수험자들이 술렁거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쯧, 천둥망치가 혀를 찼다.

‘멍청하기는. 공간이동이잖아. 아무리 시험이라도... 이런 것도 간파 못 하는 멍청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천둥망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저기가 이번 시험의 무대군.’

가로 세로가 몇백 미터는 될 법한 사각형의 경기장을 천천히 살펴보던 천둥망치가 코웃음을 쳤다.

경기장의 모양새가 천둥망치가 익히 아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

수호신이 모양새를 상세하게 알려주긴 했지만 그게 실제로는 저런 모양일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들놈이 많이 하던 게임이 저렇게 생겼었는데.”

천둥망치가 중얼거리자 옆에 앉아 있던 마리야가 대답했다.

“저런 게임을 AOS라고 불렀죠.”

다섯 명의 경기자가 한 팀이 되어 상대 팀을 전멸시키는 게임 장르.

스물다섯 번째 시험인 ‘생명나무 제전’도 그런 형태로 펼쳐진다.

그때 천둥망치의 눈앞에 스크린이 뜨면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정장을 차려입은 쾌활한 여성, 바로 기관의 아나운서였다.

“수험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물다섯 번째 시험, ‘생명나무 제전’에 초대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힘찬 함성 부탁드립니다!”

아나운서가 노련하게 함성을 유도하자 흥분한 수험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

아나운서가 말했다.

“전 세계의 성역들로부터, 저희는 최고의 수험자 300명을 선발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여섯 명이 팀을 이루시게 될 겁니다. 제전의 룰은 간단합니다!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상대팀의 다섯 명과 싸워서, 30분 안에 더 많이 살아남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긴 팀의 수험자들은 대국의 황제께서 하사하시는 엄청난 보물을 받으시게 됩니다! 아, 물론 시험에서 살아남을 때 얘기겠죠.”

기관의 카메라가 하상효 뒤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상자를 비추었다.

천둥망치마저 작게 탄성을 지를 정도의 양이었다.

“오오.”

전투 한 번으로 저 정도의 상금과 명성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껏 없었다.

그러니 돈과 명성에 목마른 치들이 목숨을 걸고 이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아나운서가 말을 이었다.

“단 30분이 지나고 나서도 결판이 나지 않으면 승부는 여섯 번째 수험자 간의 대결인 대장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점 유의하시고, 즐겁게 싸워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스물다섯 번째 시험, ‘생명나무 제전’을 시작합니다.]

[여섯 명의 수험자들이 팀을 이루게 됩니다.]

[의견을 모아 대장 한 명을 지정하십시오.]

[대장이 아닌 다섯 수험자들이 대결하여, 30분 동안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은 팀이 승리합니다.]

[30분 안에 결판이 나지 않을 경우 양 팀의 대장이 대결합니다. 이 경우 대장 수험자들의 대결 결과에 따라 팀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천둥망치가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간단하군. 그냥 때려 부수면 된다 이거 아닌가.’

‘뇌신의 파괴자’의 자루를 쓰다듬자 그 안에 담긴 깊은 마력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 때려 부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 어떤 수험자라도, 그 어떤 마물이라도 그 앞을 막아서면 골통을 부숴버릴 것이다.

그때 하상효가 말했다.

“귀공들을 위해 경기장 지하에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해 두었으니, 마음껏들 즐겨주시기를 바라겠소!”

이어서 스크린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산해진미가 끝없이 늘어선 식당이 나타났다.

어디서 저런 미인을 또 만나겠나 싶은 헐벗은 선남선녀들이 시중을 들 대기를 하고 있었다.

천둥망치가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저기가 바로 천국일지도 모르겠군. 가서 한 끼 해야겠는데.”

마리야가 이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천둥망치를 올려다보았다.

“예? 아니, 경기 안 보고요? 보고 작전 분석도 해야….”

“떨거지들 싸움 봐서 뭐하겠어. 그리고 작전?”

천둥망치가 거대한 망치를 뽑아 올리며 말했다.

“이 앞에 작전이 필요한가?”

‘뇌신의 파괴자’가 강렬한 마력을 뿜어내자 그 기세에 놀란 수험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천둥망치를 보았다.

‘떨거지들이. 이 정도 가지고 놀라기는.’

마리야가 두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요. 최강의 수험자가 함께하는데 무슨 작전이 필요하겠어요. 배 터지게 맘껏 드시고 오세요."

"그래 그래. 열심히 구경하고 있어. 다시는 안 올지도 몰라."

천둥망치가 껄껄 웃으며 관중석 밖 복도로 향했다.

돌아서는 천둥망치의 등에 대고 마리야가 외쳤다.

"알죠? 우리 차례 되기 전에는 돌아와야 돼요."

천둥망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돌아섰다.

"그래? 올림포스랑 붙을 거 아니면 꼭 나까지 있어야 되는 건 아닌 거 아냐?"

"여섯 명이 있어야 팀이 된다잖아요."

"우리 팀이 다섯인데 여섯 명이 팀이면 혼자 온 수험자 아무나 한 명 찍어서 우리 편으로 만든다는 거잖아. 나 없이 넷에다 둘 더 끼워서 해 그냥."

"됐어요. 무슨 떨거지가 들어올 줄 알고요."

뾰로통하게 말하는 마리야의 얼굴을 보며 천둥망치가 껄껄 웃었다.

"까다롭기는. 하기사 마리야는 이렇게 까탈스런 게 또 매력이지."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많이 드시기나 하세요."

별다른 대꾸 없이 손을 흔들고, 천둥망치는 지하의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작전은 무슨 작전이야.

떨거지들 골통 빠개는데, 15분은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 * *

연회장에 들어선 천둥망치가 탄성을 질렀다.

"맙소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테이블 위에 각종 산해진미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음식에서 풍겨 오는 향기가 천둥망치의 식욕을 자극했다.

천둥망치는 커다란 접시에 허겁지겁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음식 하나하나가 최고급 식당의 메인디쉬를 넘어서는 수준인데, 그걸 뷔페식으로 먹다니! 천국이 있다면... 이게 진정 천국이겠군!'

이런 걸 두고 굳이 승천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음식을 고르고 있는데 야한 옷을 입은 미녀 둘이 술병을 들고 천둥망치에게 다가왔다.

"용사님, 술이 필요하실까요?"

천둥망치가 그녀들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술은 필요한데, 그거보다 너희들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 말에 미녀들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이런 융숭한 대접이라니.

천둥망치는 황제 하상효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때였다.

"신났구나, 군나르 인그로소."

군나르 인그로소가 자신의 본명이라는 걸 천둥망치는 순간 깨닫지 못했다.

본명을 들은 게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어떤 간 큰 놈이 랭킹 1위 천둥망치를 이딴 식으로 부른다는 말인가?

미간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보니, 하얀 머리에 검은 코트 차림의 멸치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천둥망치, 군나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군나르가 음식 접시를 던지듯 내려놓고 놈을 향해 쿵쿵 걸어갔다.

"너 뭐냐?"

군나르가 금방이라도 놈의 머리를 부숴버릴 것처럼 기둥 같은 팔을 들어 올렸다.

놈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씹어뱉듯 말했다.

"왜, 치게? 절대자가 뒤를 봐주니 이런 식으로 막 나가도 되나 보지?"

보통 수험자라면 여기서 정신줄을 놓아버릴 텐데, 이놈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인가?

'그나저나 내가 절대자의 비호를 받는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런 걸 아는 놈이라면 여기서 없애버리는 게 낫다.

어차피 게임으로 치면 NPC에 불과한 중원 놈들 말고는 이 일을 본 자도 없다.

이 정도 사고는 절대자의 까마귀가 와서 수습하겠지.

군나르가 주신의 번개를 오른손에 가득가득 그러모았다.

그를 말리러 달려오는 중원인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너 이 새끼.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인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아니, 후회할 정신도 없겠지.

어차피 여기서 탈락해서 연옥을 떠돌다가 좀비가 될 테니까.

[스킬 '번개 주먹'을 사용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말 그대로 망치 같은 주먹이 놈의 머리통을 향해 쇄도했다.

쩍 하는 소리가 났다.

당연히 놈은 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놈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입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재주가 참으로 하찮구나. 간지럽지도 않은데?"

'뭐지? 분명히 주먹이 박혔는데?'

군나르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 이게...!"

"쓸데없이 여기서 힘 빼지 말라고. 벼락은 이따가 제전에서 마음껏 쓰고."

놈이 피식 웃으며 천둥망치의 팔을 밀어내고는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천둥망치는 얼빠진 모습으로 놈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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