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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34화 (134/230)

제134화. 만공당 (1)

사람 몸통만큼이나 굵은 가지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거대한 방.

천장의 틈새로 들어오는 별빛이 방안을 비추었다.

텅 빈 방 가운데 앉은 여인이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흑천교주 해원향이었다.

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던 해원향이 순간 두 눈을 부릅뜨고 신음을 흘렸다.

"크... 으으윽!"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미칠 듯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해원향은 손등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손등에 살갗이 살짝 벗겨져 새까만 비늘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굵은 꼬리가 말을 듣지 않고 움직였다.

인간의 껍질을 유지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아니야, 아직은 안된다.'

해원향은 두 눈을 감고 온 정신을 집중해 끓어오르는 기의 흐름을 억눌렀다.

그러지 않으면 이대로 마선(魔仙)이 돼버릴 것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기의 흐름에 집중하니 끓어오르던 기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해원향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후우."

흑천교주 해원향, 그녀는 지금 등선(登仙)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수많은 무림인들은 그녀가 아직 등선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틀렸다.

그녀는 진작 등선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단지 등선을 미루고 있을 뿐.

해원향이 나직이 말했다.

"흑천이시여, 당신의 종이 끝을 기다리나이다."

그녀가 등선을 미루는 건 때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끝이 올 때까지, 그녀는 마선이 되지 않고 남아 있어야 했다.

그게 흑천의 가르침이었다.

진작 등선의 경지에 다다른 그녀가 하루하루 들끓는 기를 죽여 가며 등선을 미루는 건 고역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그녀는 흑천을 생각하며 버텼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오래된 늪지에서, 용이 되어 승천하지 않고 이무기로 남아 세계의 끝을 기다리는 흑천을 생각하면서.

흑천께서 기다리라 하신다면, 그녀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때 뱃속에서 또다시 기운이 끓어올랐다.

이번에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해원향이 이를 악물고 신음을 흘렸다.

"으... 으윽!"

이를 하도 세게 물어 뒷골이 얼얼했고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뿜는 강렬한 기운에 주변의 바닥에 쩌적 금이 갔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해원향은 목구멍을 통해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기운을 조금씩 조금씩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사탕을 굴리듯 입속에서 기의 덩어리를 조금씩 조금씩 뭉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입속의 기가 돌멩이처럼 단단한 결정으로 뭉쳤을 때,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입안에 든 물건을 뱉었다.

"퉤."

그녀의 손에 있는 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새까만 덩어리였다.

매끈한 표면에 광택이 흐르는 게 마치 흑진주 같은 물건, 그것이 바로 그녀의 마기가 담긴 내단이었다.

방금 전처럼 더 이상 등선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겠다는 순간이 올 때마다, 그녀는 지금처럼 마기를 조금씩 모아 구슬의 형태로 뱉어냈다.

이 내단을 받은 자들은 그 지독한 마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같이 신체가 뒤틀린 괴물이 되었다.

내단을 받고도 멀쩡했던 건 단 하나, 대국의 황제 하상효 뿐이었다.

그런데 이 내단은 지금까지 그녀가 뱉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내단에 담긴 마기의 양이 턱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해원향이 내단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매끈한 표면에 그녀의 눈이 비쳤고, 그 속으로 마치 돌 속에 폭풍을 가둬둔 것처럼 무시무시한 힘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 내단을 먹은 자는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지가 갈가리 찢겨 죽어버리고 말 것이었다.

황제 하상효도, 심지어 그녀의 스승 구두망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 이런 걸 어디에 쓰겠어.'

해원향은 내단을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시무시한 물건이 어딘가 쓸 데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계시를 전해주는 뱀들이 모두 죽어버린 지금, 흑천께서 이런 식으로라도 계시를 주시는 것일까?

그녀는 내단을 옷소매 속에 품었다.

마기를 한껏 뱉어내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았다.

그녀는 입가를 슥 닦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흑천께서 말씀하셨다.

끝이 왔다고.

이 괴로움도 곧 끝날 것이다.

가지 사이로 비치는 푸른 밤하늘에, 은빛 은하수가 거대한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 * *

그 시각 서울역, 수많은 수험자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상원은 그들 가운데 앉아 스크린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스크린에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등장했다.

황제의 포고꾼이었다.

포고꾼이 비단 두루마리를 쫙 펴고는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만물 중의 지존이신 황제의 탄신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황제께서는 탄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준비한 너희들의 성의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리라 말씀하시었다. 그리하여 황제께서는 황성의 문을 너희들 오랑캐들에게도 활짝 여노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황성에 와 황제를 알현토록 하라."

남자가 두루마리를 접었다.

스물다섯 번째 시험, '생명나무의 제전'이라는 큰 줄기의 시작이었다.

* * *

잠시 후, 서울역의 중앙지휘본부.

여섯 명의 수험자가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백문혁, 윤진아, 한창훈, 송혜경, 샤믹 프란시스코.

명실상부한 서울역의 최강 전력들이었다.

상원이 품에서 새까만 비단에 싸인 나무패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사신에게 받았던 초대장이었다.

상원이 말했다.

"탄신제의 초청장입니다. 황성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출입증을 하나씩 가져갔다.

백문혁이 말했다.

"초청장이 있어야 생일파티에 들어갈 수 있다니, 역시 VIP 행사라 그런지 삼엄하군요."

과연, 군인다운 발상이었다.

송혜경이 초청장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 그런 높으신 분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그런데 꼴랑 여섯 개가 다에요?"

그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덧붙였다.

"초청장을 여섯 개나 받은 성역은...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할 겁니다."

그러면서 상원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세계 최고의 길드인 '발할라'와 '올림포스'가 얻은 초대장도 각각 다섯 장이었다.

이번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수험자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상원을 쳐다보았다.

한창훈이 초청장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여섯 개나라면, 여섯 개가 최고라는 뜻이지요? 야... 정말, 대국의 황제라는 분이 쪼잔해도 너무 쪼잔한데요."

"맞아 맞아."

그 말에 혜경과 샤믹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진아는 그들과는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상원 씨... 참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걸 여섯 개나 얻으신 거에요?"

상원이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원하는 걸 줬거든요."

백문혁이 물었다.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황제가 원하는 거야 뻔하지요. 자기 권력을 굳힐 물건입니다."

그렇다면, 황제가 권력을 굳히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제국을 뒤에서 움직이는 흑천교주 해원향을 제거해야 했다.

해원향을 제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게 '박피 단검'이었다.

하상효는 박피 단검이 있으면 해원향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원이 손뼉을 치고 말했다.

"자 여러분, 이제 중원으로 건너가실 겁니다. 중원으로 가시면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코인을 털어 중원에서만 살 수 있는 아이템을 사는 겁니다."

수험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탄신제에서 이어지는 스물다섯 번째 시험은 다른 수험자들을 상대하는 겁니다. 아마 우리 상대는 발할라 길드가 될 겁니다."

상원의 말에 수험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윤진아가 말했다.

"발할라 길드라면... 세브로 랭킹 1위 천둥망치가 있는 그 길드가 맞지요?"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훈이 말했다.

"야... 천둥망치 그 아저씨 완전 괴물이던데."

"에이, 그래도 우리 상원 씨보다는 덜하지. 안 그래요 상원 씨?"

혜경의 물음에 상원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스물다섯 번째 시험을 치르는 동안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발할라 길드는 온전히 여러분들끼리 상대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수험자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백문혁이 말했다.

"발할라의 주전이라면... 천둥망치 말고도 '외팔 검신'이며 '무지개의 수문장' 같은 괴물들이 나올 겁니다만."

샤믹이 탁자를 탕 치며 말했다.

"에이, 뭐가 그리 걱정이에요? 대장이 다 계획이 있을 건데요. 그렇죠 대장?"

샤믹이 씩 웃으며 맑고 큰 두 눈으로 상원을 바라보았다.

상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만 한다면 발할라를 상대하는 건 충분할 겁니다. 자 우선은...."

상원은 수험자들에게 반드시 사야 할 아이템과 발할라를 상대할 작전을 설명했다.

반신반의했던 수험자들의 표정은 상원의 말을 들으며 바뀌었다.

상원의 지시가 끝났을 때, 수험자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이대로라면 상원이 없어도 발할라를 상대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읽혔다.

그래, 이 자신감이 필요했다.

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발할라를 끝까지 몰아붙여야, 상원도 해원향을 죽이고 세 번째 별을 얻을 수 있으니까.

* * *

그날 저녁, 상원을 비롯한 여섯 명의 수험자들은 다른 수험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중원으로 향하는 차원문을 건넜다.

차원문을 건넜을 때 그들이 처음 본 광경은 시끌벅적한 밤거리였다.

밤거리는 등불을 피운 상점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고,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표정엔 활기가 넘쳐 흘렀다.

멸망해버린 지구에서는 더 이상 찾기 힘든 활력이 여기엔 있었다.

한창훈이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완전 의외네요? 사이비 마교가 지배하는 나라라 신민들이 완전히 고혈을 빨리는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문혁이 대답했다.

"사이비가 나라를 지배해도, 경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대국이라는 곳이 워낙 경제 규모가 크기도 할 거고."

수험자들이 거리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상원은 앞장서서 걸었다.

상원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뭔가 특이한 걸 알아채지 못하셨나요?"

그 말에 수험자들이 연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진아가 말했다.

"글... 쎄요. 원가 그렇게 특이한 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다른 수험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은 모를 수 있겠군.

상원이 손을 뻗어 눈앞의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원이 가리키는 곳을 본 수험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늘이 있어야 할 곳에 하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여의도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가 있었다.

저걸 도대체 나무라고 할 수가 있기는 한 건가?

상원이 말했다.

"저것이 바로, 마신 '오랜 땅의 이무기'가 이 땅에 심은 나무, 피를 먹는 세계수의 원본인 '생명의 나무'입니다."

수험자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중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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