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25화 (125/230)

제125화. 흑풍회장 구두망 (4)

검은 늑대가 구두망의 살을 물어뜯고 늘어지자, 질기기 그지없는 구두망의 가죽이 마른 오징어마냥 찢겨 나갔다.

상처를 따라 시퍼런 체액이 철철 흘러내렸다.

몸부림치던 구두망이 공력을 실어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아악!"

인간으로서 쌓은 공력 세 갑자에 마신의 힘까지 담은 사자후였다.

그 외침에 상원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게 다였다.

'불신자'인 상원에게는 어떤 스킬도 통하지 않는다.

세 갑자의 공력을 실은 사자후 또한 마찬가지다.

"안타깝구나. 그토록 바라던 영생을 얻었다고 믿었을 텐데 여기서 끝이라니."

구두망이 게거품을 물고 상원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륵!"

구두망은 늑대 떼에 뒤덮인 와중에도 형형한 눈으로 상원을 쏘아보고 있었다.

한때는 중원을 호령했던 폭군의 자존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 이래도 끝날 성 싶으냐!

쿠드드득!

구두망의 거체가 꿈틀거리며 상원을 향해 다가왔다.

온몸에서 쏟아진 시퍼런 체액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상원과 구두망의 사이가 좁혀졌다.

'과연, 대단한 생명력이로군.'

하지만 상원은 구두망의 몸부림에 장단을 맞출 생각이 없었다.

필요한 건 구두망의 공력이 담긴 내단뿐.

그걸 얻으면 그만이지, 구두망의 몸부림 같은 건 볼 필요가 없었다.

상원이 가면에 추가적인 마력을 싣자, 그의 뒤에서 어둠의 늑대들 한 무리가 더 나타나 구두망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르릉!"

어둠의 마력이 잔뜩 담긴 이빨과 발톱이 뱀의 단단한 껍질을 파고들었다.

'밤의 가면'은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었다.

구두망의 가운데 머리를 이런 식으로 공략할 수 있는 아이템은 승천 시험 전체를 통틀어 '밤의 가면'이 유일했다.

물론 밤의 가면이 구두망에게 먹히는 것도 구두망이 아직 마선의 경지에 완전히 오르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구두망이 탈피를 완성해 마선이 되었다면 트라우마마저도 극복했을 테니, 밤의 가면을 이용해 트라우마를 공략하는 방법은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40번대에 다다른 '올림포스'의 주신급 수험자들도 구두망의 가운데 머리는 시공간의 틈새에 봉인하는 걸로 족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구두망의 가운데 머리를 해치웠을 때의 보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별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것이 있어야 했다.

어쨌든.

- 이런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자못 비장하게 말하는 구두망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현격히 느려져 있었다.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움직임에서 느껴졌다.

그때였다.

순간적인 현기증에 상원은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큭!"

코로는 찐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건 분명 신기를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승천 시험의 아이템 체계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신기'는, 하나같이 위력은 엄청나지만 그만큼 사용의 대가도 큰 물건들이었다.

'밤의 가면' 또한 마찬가지였다.

밤의 가면은 상원의 힘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비축해둔 마력이 점점 고갈됨에 따라 뱃속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가면 구두망보다 상원이 먼저 탈진해서 쓰러질 판이었다.

이제는 끝내야 했다.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마력이 빠져나간 무릎 관절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상원은 고개를 들어 새까만 늑대 무리에 뒤덮인 커다란 뱀을 쳐다보았다.

죽음이 다가온 걸 직감한 것일까, 구두망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 버러지 같은 놈이.

구두망이 시퍼런 피거품을 물고 상원을 노려보았다.

그 샛노란 두 눈의 사이, 구두망의 미간에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다.

'네 발 달린 밤'이 직접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 넣은 상처였다.

"잘가라 구두망."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힘을 받은 검이 즐겁다는 듯 웅 하고 울었다.

정령왕의 마력을 담은 칼날이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빛났다.

상원이 바닥을 박차고 구두망의 머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마침내 구두망의 머리 앞에 다다랐을 때, 상원은 거꾸로 쥔 마검을 높이 치켜들고 전신을 활처럼 튕겨 뛰어올랐다.

구두망이 하늘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힘을 그대로 실어, 상원은 마검의 칼날을 구두망의 미간에 꽂아 넣었다.

마치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듯, 긴 마검이 쑥 하고 비늘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박혔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구두망이 하늘을 향해 세 갈래로 갈라진 새까만 혀를 날름거렸다.

금자탑의 수험자들을 집어삼켰던 커다란 턱이 상원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허사였다.

상원은 이미 구두망의 콧잔등 위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후였으니까.

구두망이 연신 내뿜어대는 시퍼런 독액도 상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구두망의 미간에 자리 잡은 구멍을 찌르면 된다.]

노트에 쓰여 있던 그 말 그대로, 상원은 미간에 마검을 박아넣고 있었다.

커다란 몸을 몸부림치기를 얼마간, 마침내 구두망이 동작을 멈추었다.

귓전에 구두망의 전음이 들렸다.

- 이렇게... 끝나다니.

상원은 마검의 손잡이를 놓고 구두망의 가운데 머리 앞에 뛰어내렸다.

구두망의 체액이 흘러 바닥은 온통 끈적끈적했다.

- 허무하다.

그 말을 끝으로, 구두망은 눈을 감았다.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흑풍회장 구두망>을 물리쳤습니다.]

[보상 정산을 시작합니다.]

상원은 가면을 벗었다.

순식간에 방 안을 채우고 있던 어둠이 물러났다.

등에서 튀어나왔던 제어봉이 팅 팅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현기증이 들어 상원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신기를 쓴 후유증이었다.

상원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밤의 가면'을 브라이싱크론 지갑에 집어넣고, 상원은 커다란 보물전의 바닥을 가득 채운 구두망의 거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중원을 호령했던 폭군, 그리고 입선의 문턱에 다다랐던 자, 흑풍회장 구두망의 시신이 시퍼런 불꽃에 서서히 휩싸이고 있었다.

머리 아홉 달린 커다란 뱀의 몸뚱이가 지독한 비린내와 함께 서서히 까만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무릎을 꿇고 있던 상원의 곁에 '바빌론'의 길드마스터 스칼렛 이베르손이 다가왔다.

"역시, 상원 씨의 계획은 대단하군요. 물 샐 틈도 없었습니다."

스칼렛의 말에 상원이 피식 웃었다.

"계획을 세우는 건 쉽습니다."

스칼렛과 함께 다가온 카렌이 물었다.

"하지만 그 계획대로 실행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죠. 우리가 구두망을 물리칠 계획을 세우고 싸움에 임했지만... 그 싸움은 정말로 지독했던 것처럼요."

그 말에 상원은 바빌론의 길드원들을 보았다.

바빌론 길드는 상원이 가운데 머리를 상대하는 동안 다른 머리들을 상대하느라 상당히 애를 썼다.

많은 길드원들이 부상을 당했고 몇몇 길드원들은 탈락한 길드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래, 이들이라면 이걸 어려운 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은 아니었다.

상원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어렵다기보다는... 지난한 일이었죠."

그 말대로다.

상원이 해나가는 작업은 정답을 알고 있는 시험을 푸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런 일을 계속해나가다 보면 성취감 같은 건 남아있지 않기 마련이다.

단지 고통스런 작업을 반복해나가면서 피로감이 쌓여갈 뿐.

상원의 말에 두 여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이 남자는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 온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상원이 무릎을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쨌든, 고생했습니다 스칼렛, 카렌. 구두망 공략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약속했던 대로 보물전의 전리품을 분배합시다."

그 말에 스칼렛이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죠. 상원 씨, 당신이 먼저 고르세요. 저희가 남은 걸 가져갈 테니."

카렌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아, 길드 내에서는 상원에게 선택권을 먼저 주기로 합의가 된 것 같았다.

상원이 가운데 머리를 상대한다는 큰일을 해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여기 있는 건 여러분들이 모두 가져가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상원의 대답에 바빌론 길드원들이 술렁였다.

스칼렛이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고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상원이 쓰러진 구두망의 가운데 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통째로 재가 되어 사라진 구두망의 다른 머리들과는 달리, 가운데 머리와 목에는 백골이 남아있었다.

백골의 목 가운데 상원이 찾는 물건이 있었다.

상원의 주먹만 한 크기의, 초록색으로 빛나는 영롱한 구슬이었다.

그게 바로 상원이 구두망을 공략해야 했던 이유, 구두망이 생전 쌓아온 모든 공력과 마신 '오랜 땅의 이무기'의 힘이 집결된 물건 '구두망의 내단'이었다.

상원이 내단을 집어 들었다.

"이거 하나면 됩니다."

내단에는 스킬이 통하지 않는 상원조차도 저릿함을 느낄 정도의 강렬한 독기가 흐르고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신기 <구두망의 내단>을 획득했습니다.]

구두망의 내단, 이것의 가치는 승천 시험 전체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보아도 될 정도였다.

상원이 당초 스칼렛에게 7:3의 분배를 제시한 것도 이 내단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건 구두망의 보물전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합쳐도 이 내단이 가지는 가치의 반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강대한 올림포스 길드도 이 내단을 얻지는 못했다.

그들에게는 마선의 경지에 오른 구두망의 가운데 머리를 죽일 능력이 없었으니까.

상원은 구슬을 브라이싱크론 지갑에 집어넣었다.

* * *

지구로 통하는 차원문은 끝도 없이 자라난 이계의 식물들이 빽빽한 정글 한가운데 있었다.

뱀 모양의 식물 뿌리가 커다란 고리 모양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서 차원문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 차원문은 수험자들이 속한 성역에 연결되므로, 상원은 이 차원문을 건너면 성역 서울역에 도착할 것이다.

에론이 열었던 차원문 속에서 '생각과 기억의 까마귀'를 만난 탓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아마 현실에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있을 것이었다.

전리품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길드원들을 대신해 스칼렛과 카렌이 상원을 배웅했다.

카렌이 말했다.

"금자탑 놈들, 아주 꼴좋게 됐어요. 정예들이 한 번에 쓸려나갔으니 한동안은 기를 못 펴겠죠."

스칼렛이 말했다.

"당신은 항상 기상천외한 해법을 들고 오는군요. 다음번에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칼렛이 웃으며 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생에 스칼렛에게서 느꼈던 담대한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졌다.

상원은 스칼렛의 손을 잡았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스칼렛이 대답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말이니 근거가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다시 만나면 그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스칼렛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 얼굴에선, 전생의 스칼렛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상냥함이 느껴졌다.

전생의 스칼렛 뿐만이 아니라, 불신자 조상원으로서는 누구에게서도 쉽사리 느낄 수 없었던 호의였다.

아, 그렇다.

이 차원문 너머에, 그에게 호의를 품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백문혁, 윤진아, 한창훈, 송혜경....

상원은 떠오르는 이름들을 곱씹어 보았다.

오십 개의 시험을 치르고 돌아와서 다시 스물 몇 개의 시험을 치르면서, 상원은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생과는 달랐다.

지금은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상원은 차원문을 향해 발을 디뎠다.

곧 익숙한 냄새가 상원의 코끝을 자극했다.

이계의 정글과는 확연하게 다른, 태어난 차원의 여름밤의 냄새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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