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23화 (123/230)

제123화. 흑풍회장 구두망 (2)

꿀꺽, 초승달 따오기가 마른침을 삼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온몸의 세포들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껏 수많은 시험들을 헤쳐오면서 이런 긴장감을 겪어본 적은 없었는데.

다른 길드원들이 술렁거렸다.

"뭐죠 갑자기? 이게 무슨...."

"뭐야, 뭐야?"

초승달 따오기가 지시를 내렸다.

"모두 침착해라!"

침착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정작 초승달 따오기 자신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뭐지, 함정인가? 이 방에 함정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초승달 따오기는 던전에 들어오기 전 금자탑의 참모 '전갈 군신'이 말해주었던 공략법을 꼼꼼히 되새겨보았다.

하지만 전갈 군신의 공략은 '보물전에 들어가서 비싼 것들을 최대한 챙겨서 귀환한다'에서 끝났을 뿐이었다.

보물전에 함정이 있다느니 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때였다.

커다란 주전자에서 김이 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쉬이이이잇."

초승달 따오기가 중얼거렸다.

"이건...?"

소리 자체는 많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신의 힘을 과식하고 변이한 흑풍회원들이 내는 특유의 뱀 소리였다.

그렇다면 변이한 흑풍회원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일개 흑풍회원이 낸 소리라고 하기엔, 그 소리가 지나치게 컸으니까.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초승달 따오기는 직감했다.

저 소리의 주인은 지금껏 상대해 온 마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이제 보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다들! 보물은 포기한다! 모두 여기를 벗어나! 지금 당장!"

항상 침착하기만 했던 초승달 따오기가 그토록 흥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어서일까.

금자탑 길드원들은 잠시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그다음 순간, 길드원들이 들고 있던 보물을 모조리 버리고 입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길드원들의 맨 뒤에서 달리면서, 초승달 따오기는 침통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바빌론을 따돌리고 보물전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완벽한 성공인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줄이야.

'일단은 보물전을 벗어나는 게 먼저다.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본부에 가서 생각하자.'

하지만, 초승달 따오기의 생각은 속절없이 부정당했다.

대오의 앞쪽에서 들려온 외침 때문이었다.

"대장! 이거 어떡해요! 문이... 문이 열리지를 않아요!"

"뭐...?"

초승달 따오기가 길드원들을 이리저리 밀치며 문을 향해 달려갔다.

들어올 때 그토록 쉽게 열렸던 황금문은 어찌 된 일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젠장!"

초승달 따오기가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불꽃을 쏟아부었지만, 황금문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비켜요 대장!"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 죽음의 개가 온몸을 부딪쳤지만 그것조차 허사였다.

초승달 따오기의 술력으로도 죽음의 개의 괴력으로도 열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이 문을 열 방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초승달 따오기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모두, 침착해라. 그냥 문이 잠긴 것뿐이다. 나갈 방법은 반드시 있을 거야."

그러나 이번에도, 초승달 따오기의 바람은 꺾어버렸다.

길드원들을 모조리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 때문이었다.

순간 꼬리뼈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오한이 솟아올랐다.

정말로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초승달 따오기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초승달 따오기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독사의 두 눈을 보았다.

인간 따위는 한 번에 집어삼켜 버릴 것 같은 거대한 독사, 그것도 그런 머리를 하나도 아닌 아홉 개나 단 독사가 널따란 보물전의 한가운데 똬리를 틀고 새까만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초승달 따오기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씨발...."

- 도망쳐라! 당장!

머릿속에서 수호신의 육성이 들려왔다.

수호신들은 어지간해선 이런 식으로 직접 육성을 사용하지는 않는데, 이건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출구가 없는 이 상황에서 어쩌라는 말인가?

'나도 그러고 싶다고요 아저씨.'

누군가 신음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으으으...."

도대체 저런 놈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아니, '전갈 군신'의 정보력으로도 저런 놈이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때 수호신 '지식과 기록의 새'가 말했다.

- 저건... 흑풍회장 구두망! 아니, 지금 저놈이 깨어날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흑풍회장이라고?'

성채 안에 흑풍회장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흑풍회는 분명한 실체가 있는 집단이었으며, 여기 성채는 흑풍회의 본거지였다.

그러니 흑풍회의 성채에 흑풍회장이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분명히, '전갈 군신'의 공략에는 흑풍회장이란 존재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무언가 알 수 없는 변수가 이 공략에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지식이라면 전갈 군신의 주신급 수호신에도 뒤지지 않는 '지식과 기록의 새'가, 흑풍회장은 지금 나타날 존재가 아니었다고 하지 않는가.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이 꼬인 건 확실하군.'

그 사이 똬리를 틀고 있던 흑풍회장 구두망이 천천히 길드원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초승달 따오기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마물보다도 거대한 거구가 꿈틀거리며 움직이자 바위 수천 개가 한 번에 구르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심약한 수험자들은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성채 공략전에 참여한 길드원은 금자탑 길드에서 나름 추린 정예들이었는데도 그 모양이었다.

머릿속에 천둥 같은 전음이 들렸다.

- 내 보물전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버러지가 네놈들이구나! 목숨이 여기까지인 건 알겠지?

보물전의 주인, 흑풍회장 구두망이 길드원들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빈집 터는 도둑을 본 집주인이 열이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X됐군.'

꿀꺽, 따오기가 침을 삼켰다.

구두망이 아홉 개의 입을 일제히 벌려 쇳소리를 지르며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샤아아아악!"

그 거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길드원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죽음의 개였다.

죽음의 개가 힘찬 함성과 함께 구두망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아아앗!"

죽음의 개가 든 두 자루 단검에서 독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안돼!"

초승달 따오기가 말릴 새도 없었다.

집채만 한 괴물을 향해 달려드는 용맹함은 비할 데가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 어딜!

구두망의 아홉 머리가 취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시퍼런 유황불을 뿜어냈다.

열기와 독기가 뒤섞인 지독한 숨결이 죽음의 개를 감쌌다.

"끄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죽음의 개는 한순간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튼튼하기로는 비할 데가 없는 신령급 무투파 수험자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다니,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이 정도면 추정 등급이 7등급이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누구는 오열하기 시작했고 누구는 소변을 지리며 주저앉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길드 '금자탑'이 아닌가?

이대로 뱀 밥이 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초승달 따오기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소리쳤다.

"모두 정신 차려라! 우리는 금자탑의 최정예 대원들이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초승달 따오기의 지휘에 마음을 가다듬은 수험자들이 그의 곁에 와서 섰다.

신령급 수험자인 '폭풍매'가 든 두 자루 도끼에 강렬한 돌풍이 깃들었고 '초록 왕'의 지팡이에 성스러운 뇌전이 흘렀다.

그 뒤로도 수많은 정예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렇다.

길드 금자탑의 최정예,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 크하하하하! 버러지 놈들이 가상하구나!

아가리를 쩍 벌린 구두망이 수험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상원은 먼 곳에서 금자탑 길드와 구두망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렌이 말했다.

"흥, 말 한마디 없이 뒷통수를 때리더니 꼴좋게 됐군요."

그녀의 말에 상원이 피식 웃었다.

전생에서 구두망을 토벌한 건 40번대에 다다른 올림포스의 최정예 길드원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올림포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상급 길드인 금자탑이 구두망을 상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원은 그 답을 보고 있었다.

아직 24번 시험이었는데도, 주신급인 '태양매'와 '전갈 군신' 그리고 '무화과의 여주인'이 없는데도, 금자탑은 본모습을 드러낸 구두망을 상대로 나름 잘 싸우고 있었다.

폭풍매가 강렬한 돌풍으로 독기를 흘려 내면, 그 틈으로 초록 왕과 초승달 따오기가 강력한 뇌전과 불꽃으로 구두망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스칼렛이 말했다.

"저거... 비늘에 흠집 하나도 못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하네요? 저 정도에 머리가 날아가 버릴 줄이야."

"그게 다가 아닙니다. 계속 보시죠."

상원의 대답에 스칼렛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칼렛의 말마따나 초승달 따오기를 비롯한 강력한 주술사들의 공격에 구두망의 머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금자탑 길드원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건 구두망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구두망의 무기는 맷집이 아닌 회복력이었으니까.

- 흐흐흐흐. 머리 하나 날렸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금자탑 길드원들이 갖은 애를 써서 날려버렸던 머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되살아났다.

그 모습을 보며 금자탑 길드원들은 한없는 절망에 빠졌다.

카렌이 말했다.

"와... 이런 식이면 끝이 없겠는데요? 저 괴물 우리가 상대할 수는 있는 건가요?"

상원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럼요."

저놈을 동면 중에 깨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놈이 재생 능력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저놈이 동면을 온전히 끝내고 나왔다면 40번대에 다다른 최상급 수험자들이 겨우 상대할 괴물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잔뜩 흥분한 상태라 본인이 느끼지도 못하겠지만, 저놈이 머리를 마음껏 재생할 수 있는 횟수는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금자탑 길드원들은 구두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금자탑 길드원들을 모두 해치운 구두망에게는 재생 능력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 것이었다.

상원은 바빌론의 길드원들과 함께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원이 스칼렛과 카렌에게 말했다.

"저놈이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두십시오. 곧 우리가 저놈을 상대해야 합니다."

스칼렛과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금자탑의 마지막 수험자가 쓰러졌다.

마력을 바닥까지 끌어다 쓴 초승달 따오기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크으으윽."

- 크크크큭. 고생했다.

구두망의 거대한 아가리가 초승달 따오기를 집어삼켰다.

금자탑 길드의 성채 공략전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 상원과 바빌론의 시간이었다.

상원이 바위에 박힌 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갑시다."

그러면서 상원은 품속에서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둔 신기 '밤의 가면'을 꺼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