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13화 (113/230)

제113화. 콘크리트 마천루 (2)

그 시각 대림역 근방 마천루의 꼭대기.

삼면이 통유리로 된 집무실 안에서 상중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중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뱃갑 안에 남은 담배는 고작 세 까치뿐이었다.

쯧, 상중이 혀를 찼다.

'교도소에 있을 때도 담배를 이렇게 아껴 피우지는 않았는데.'

아포칼립스의 세계에서 담배는 금보다도 귀한 물건이었다.

이 세계의 금붙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담배는 그렇지 않으니까.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 성역만 열 개가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 한 까치 한 까치가 귀한 건 매한가지였다.

천하의 강상중이 담배 몇 까치에 아쉬워하리라고 누가 예상을 했을까?

'그래도 지금은 피자.'

담배 한 까치를 물고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를 타고 들어오면서 정신이 잠시 몽롱해졌다.

"푸우."

짙은 담배 연기가 잠시 상중의 시야를 가렸다.

담배 연기가 흩어지면서 한강의 모습이 보였다.

서울, 그의 젊음을 바친 도시.

무일푼으로 상경한 게 열다섯, 그 뒤로 이 도시의 음지를 구르며 이 자리까지 왔다.

그의 수완은 천부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가야 할 때를 알았고, 먹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알았으며, 데려갈 자와 버릴 자를 알았다.

그렇게 지하세계의 큰손이 되었고, 그렇게 손가락에 꼽히는 건설사를 세웠다.

그렇게 서울에서 구른 게 50년, 이제 세상은 그를 형님이 아니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좋았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의원님', 그게 그의 꿈이었다.

꿈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목전에 놓인 선거가 제대로 치러졌더라면 상중은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거인이 내려오리라고 그 누가 예상을 했으랴.

상중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굽이치는 한강을 내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강 한쪽을 무단 점령한 거대한 식물에 닿았다.

몇 주 전 난데없이 자라나서 괴괴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나무, '피를 먹는 세계수'였다.

'아니, 저게 식물이라고?'

저 나무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상중은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꼈다.

저것은 필시 위험한 물건이다.

상중의 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상중을 이 자리까지 데려온 건 팔할은 그의 직감이었다.

특히나 위험한 건 저 빌어먹을 식물이 자라는 곳이 성역 <대림역>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여의도라는 점이었다.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상중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담배 연기를 뱉었을 때 이 더러운 꿈에서 깨길, 아니 적어도 저 괴물 같은 나무라도 사라져 있기를 바랐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그때였다.

뚜르르르르.

방 밖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의 성실한 비서는 벨소리가 두 번 울리기 전 전화를 받았다.

조금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길래 상중을 찾는단 말인가?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비서가 찾은 것은 상중이 아니었다.

"김전무님, 호출입니다."

김전무를 찾는다고?

상중은 고개를 돌려 문 옆에 대기하고 있던 남자를 보았다.

새까만 정장을 빼입은 험상궂은 얼굴의 거구, 김만웅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쓰고 버려온 상중이었지만, 만웅만큼은 오랫동안 곁에 두었다.

그만큼 상중이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영특했지만 너무 많이 알려고 들지 않았고, 용감했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았으며, 충직했지만 쓴소리를 할 줄도 알았다.

그랬기에 서른 살이 채 안 되는 나이에 전무 직함을 달고 상중의 곁에 있는 것이었다.

십 년 가까이 곁에 두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보니 정이 들기도 했고.

여튼, 상중이 아니라 만웅을 호출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는 했다.

만웅이 말했다.

"회장님, 아래가 좀 소란스러운가 봅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라."

만웅이 방을 나간 후 상중은 생각했다.

건물 아래는 아나르에서 얻어온 무구로 무장한 병력 수십 명이 대기 중이다.

그런데 김만웅을 부를 일이 무엇이 있는가?

강한 마물이라도 나타났는가?

1층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아, 상중은 직감했다.

'조상원, 그자가 왔군.'

* * *

한편 상원은 강상중의 부하를 따라 마천루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마천루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원룸이며 상가, 아파트까지 크고 작은 건물들이 한데 뭉쳐서 몇십 층은 돼 보이는 마천루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시체로 제 몸을 치장하는 마물 같았다.

강상중을 아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저건 강상중의 아지트였다.

'여기에 있는 줄 알았으면 굳이 이놈들 족쳐서 안내받지 않아도 될 걸 그랬군.'

그만큼 마천루는 기괴하고 거대해서 근방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저런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게 강상중의 특기였다.

그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게 놈이 끌고 다니는 이동식 요새 '잠든 모노리스'였고.

마천루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서울역만큼 쾌활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처럼은 보였다.

개중에는 상원의 앞에서 안내를 하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도 있었는데, 남자가 무시하고 달려가 버리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마천루의 입구에 다다른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여기, 여기입니다. 꼭대기에 회장님이 계십니다."

그때 마천루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광택 없이 새까만, 프리바론의 드워프제 무구로 무장한 모습을 보니 강상중의 최측근들임이 확실해졌다.

개중에는 프리바론에서부터 강상중을 따라 서울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흑인과 백인도 있었다.

그들 중 가운데 있던 자가 소리를 질렀다.

"어, 한구! 너 지금 순찰 가 있을 시간 아니냐?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은 누구...."

한참 숨을 헐떡인 한구가 소리 지른 남자에게 다가가서 무어라고 말했다.

한구의 말을 듣는 남자의 표정이 의심에서 경악으로 시시각각 변하더니 일행 중 하나에게 외쳤다.

"기석아! 올라가서 만웅이 형님 모셔와라!"

그 말을 들은 기석이라는 남자가 건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김만웅, 반가운 이름이었다.

'그래, 여기 돌아와 있었군.'

현생에는 상원의 부하가 되어 있었지만 전생의 김만웅은 강상중의 오른팔이었다.

얼마 후 마천루로부터 익숙한 얼굴의 거한이 내려왔다.

김만웅이었다.

상원과 헤어진 이후 혹독한 수련을 했는지 얼굴 여기저기 상처가 늘어 있었고 꽤나 살집이 있던 몸은 단단한 근육질로 바뀌어 있었다.

먼저 나와 있던 사람들도, 마천루 주변이 있던 사람들도 만웅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을 찾아온 게 너냐?"

나직이 말하는 만웅의 칼자국 난 눈 주변으로 서늘한 독기가 흘렀다.

그래, 저게 원래 상원이 기억하던 만웅의 모습이었다.

물론 전생의 김만웅보다는 현생의 김만웅이 훨씬 강했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친근하게 이름을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해서 강상중과 김만웅의 권위에 흠집을 낼 생각은 없었다.

대림역 근방의 성역들을 움직여서 여의도 남서쪽 강변에 방어선을 치려면 그들의 절대적인 카리스마가 필요했으니까.

상원이 만웅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만웅도 어지간해서 꿀리는 키가 아니었지만 상원은 만웅보다 한 뼘은 더 큰 거구였다.

예상하지 못한 덩치 차이에 만웅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는 게 보였다.

상원이 나직이 말했다.

"오랜만이다 만웅아."

얼굴이 조금 바뀌었지만 이목구비의 테는 남아있었고 무엇보다도 말투가 그대로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만웅의 눈동자가 커졌다.

"사, 상원이 형님?"

그래, 못 알아볼 리가 없다.

형님으로 모시기로 한 생명의 은인인데.

"올라가자. 너네 회장님을 만나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상원의 말에 만웅이 고개를 끄덕이고 코를 슥 문질렀다.

"따라오시우."

돌아서는 만웅을 따라 상원은 수백 채의 건물을 합쳐 만든 거대한 마천루 안으로 들어섰다.

보기와는 다르게 마천루의 내부는 깔끔했고 석재와 금속을 적절하게 활용한 인테리어가 세련되었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만웅이 황금색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자 곧 엘레베이터가 열렸다.

그 어떤 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아포칼립스의 현실이었음에도, 엘레베이터는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곧 두 남자가 탄 엘레베이터가 꼭대기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 침묵하던 만웅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두 동강이 난 전음 소라기였다

이걸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던 건가.

"형님, 이거 고장 났지 뭐요."

"그래, 이 꼴이 됐으니 작동하지 않았겠구나."

상원의 대답에 만웅이 쓴웃음을 지었다.

"왜 이리로 왔냐고 물어볼 줄 알았소."

"물어서 무엇하나. 원래 니가 모시던 사람은 회장님이 아니냐."

만웅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너무 오래 잠들어 계셨소 형님. 서울역은 말이오... 형님이 없으니까 이상하게 정이 붙질 않더라고. 문혁이 동생이랑, 진아 씨랑, 창훈이 형님이랑... 그렇게 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말이오."

만웅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래서 회장님을 만나러 강을 건너왔겠구나. 고생이 많았다.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 않았지. 형우는... 강을 건너다 죽었소."

송형우, 어쩐지 보이지 않더라니.

서울역의 수험자 열 명이 이차원 아나르에 가 있는 동안 문혁이 도맡았던 서울역의 각종 관리 일을 대신했던 송형우는 꽤나 아까운 인재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엘레베이터 안을 감돌았다.

그 후 띵 소리와 함께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대리석으로 된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엘레베이터 맞은편으로는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런 원목으로 된 거대한 문이 있었고, 그 옆으로 놓인 대리석 테이블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일어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판국에 그럴싸한 비서실까지 차려놓았군.'

역시 강상중이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비서를 뒤로하고 김만웅이 문을 밀어젖혔다.

끼익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세 벽면이 통유리로 된 방이 나타났다.

유리 밖으로 서울 시내의 전경 그리고 여의도에서 솟아올라 풍경의 한쪽을 무단점령한 세계수가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새하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머리는 완전한 백발에 몸은 쪼그라들었지만 자세는 꼿꼿했다.

"회장님."

만웅의 말에 강상중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내리고서는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상중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상원 선생. 올 줄 알고 있었소. 앉으시지요. 먼 길 오느라 피로하실 텐데."

상중은 상석이 아닌 상석 바로 오른쪽 의자에 앉아 상원에게 맞은편 의자를 권했다.

상원은 강상중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강상중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강상중은 사람 좋은 듯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호랑이처럼 형형했다.

강상중과 독대라.

전생에는 강상중과 독대할 날이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말없이 앉아있는 동안 비서가 차를 두 잔 타 왔다.

이 판국에 어디서 구했는지 차에서는 낯설고도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

상중이 상원의 눈을 보고 말했다.

"긴히 할 말이 있으시겠지. 만웅아, 잠깐만 나가 있어라."

문 곁에 조용히 서 있던 만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두 남자의 독대.

방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상중이었다.

"카라온의 방벽. 당신이지요?"

아나르의 열세 번째 시험, 카라온의 방벽 앞에서 유성희를 미치게 해 강상중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요?"

"굳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해가면서까지 나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사람. 나한테 관심이 있으면서 그만한 힘을 가진 존재가... 이렇게 내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난 당신 말고 달리 있겠소?"

상중의 말에 상원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러면 이 세상은 비약이 아니고?"

허, 상원이 헛웃음을 뱉었다.

맞는 말이다.

이 세상 자체가 비약 덩어리 아닌가.

상중이 물었다.

"그래, 그래서 굳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요?"

긴말은 필요 없겠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다.

상원은 손을 뻗어 한강 한가운데 솟은 거대한 세계수를 가리켰다.

"앞으로 72시간 안에 샛강변에 방어선을 쳐야 합니다."

"여의도의 남서쪽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군. 알겠소."

강상중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왜냐고 물어보지 않는군."

"선택지가 하나뿐일 텐데 굳이 이유는 물어서 무엇 하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소."

정말로 강상중다운 대답이었다.

그때 강상중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오, 조건이 있소."

조건?

"거래입니까?"

"당신한테 거래를 제안할 정도로 담이 크지는 않소. 부탁이라고 합시다. 뭐, 거래라고 생각해도 좋고."

상중이 빙글 웃었다.

이 영감, 무슨 꿍꿍이지.

아니다, 들어서 나쁠 것은 없다.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면 안 들으면 그만.

그 때문에 강상중이 협조하지 않는다 해도 플랜 B는 있다.

"그래, 들어나 봅시다."

강상중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본인의 존경하는 수호신 <마천루 건설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생체금속 크리스탈'이라는 게 있다던데. 그걸 좀 구해줄 수 있소?"

그 말을 들은 상원이 피식 웃었다.

생체금속 크리스탈, 저 강상중이 저렇게 심각하게 부탁한 게 고작 그거였나.

순간 강상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렵소...?"

"아니, 아니. 그 정도야. 엄청난 걸 말씀하실 줄 알았더니 그 정도여서."

상원의 대답에 강상중이 끌끌 대고 웃었다.

"좋아, 좋소. 걱정 마시오. 여의도 남서쪽은 확실하게 막아드리지."

그래, 강상중에게 대답을 받았으니 일은 해결됐다.

이제 남은 일은 최대한 빨리 서울역으로 복귀해서 동선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래,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회장님."

일어서려는 찰나 강상중이 말했다.

"아 그런데 말이오, 궁금한 게 있소."

궁금한 것?

상원은 강상중을 보았다.

"왜 그러는 거요? 다림델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왜 그렇게 길을 빙빙 돌아가는 거요?"

아아, 당신이 알 리가 없지.

그 어떤 수호신과도 수호 계약을 맺을 수 없는 불신자는 '일곱 별의 왕관'이라는 어마어마한 걸 이뤄야 한다는 걸.

그걸 요약하면 단 하나다.

"위업 때문이오."

"위업? 허, 허허허."

상중이 차를 홀짝이고 말했다.

"나도 말이오, 소싯적엔 TV 인터뷰도 많이 해보고 자서전도 내보고 했소만은... 위업이란 게 말이오, 그게 이루고 싶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디다."

상중의 말에 상원이 씩 웃었다.

"목표한 위업을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지요."

"목표한 대로 이룬다면 그게 위업이오?"

"이 세계가 그걸 위업이라 부른다면 위업이 되지요."

상중이 고개를 갸웃하며 허 하는 소리를 냈다.

더 나눌 이야기는 없었다.

"아무튼, 갑니다. 72시간 내로 샛강을 아우르는 방어선을 구축하면 됩니다."

"허허, 알겠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상중의 방을 나섰다.

문밖에 서 있던 만웅이 물었다.

"형님, 가십니까."

"그래 만웅아. 아 참, 아까 그 전음 소라기 줘봐라."

상원은 만웅이 내민 두 동강 난 전음 소라기를 받아들었다.

"곧 고쳐서 주마."

"알겠소."

그렇게 만웅과의 짧은 재회도 끝났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또 만나겠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만남은 만남이고, 앞으로의 촉박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빨리 가서 에론 클라드를 만나 차원문을 건너야 한다.

마천루를 빠져나온 상원은 해골마를 불러온 길을 바람처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 *

한강 한가운데 불쑥 솟아난 세계수를 바라보던 상중이 말했다.

"만웅이 있냐."

"예 회장님."

만웅이 들어와서 상중 뒤에 대기했다.

"주변 좀 돌아서, 솜씨 좋은 친구들로 이백 명쯤 차출해라."

"이백 명씩이나요?"

"그 정도는 충분히 협조할 거다."

상중이 샛강변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뭐가 말씀이십니까?"

"샛강 방어선."

창밖을 바라보는 상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정도'라. 조상원 그 사람... 괴물이더구만. 너도 조심해라 만웅아. 저 사람,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웅이 허둥지둥 대답했다.

"예, 예. 회장님."

강상중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기사...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인두껍을 쓴 괴물들이지."

쯧, 상중이 혀를 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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