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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07화 (107/230)

제107화. 바위에 박힌 검 (3)

조금 헤엄치고 나서 상원은 물속에서도 호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호흡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호흡에 신경 쓰지 않고 팔다리를 열심히 휘저었다.

중간중간 방향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마침내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있는 곳, 바로 '사과의 섬'이었다.

새까만 호수 한가운데 불룩 튀어나온 새하얀 섬은 너른 평지 한가운데 해골의 정수리 같은 반구형 동산이 불룩 튀어나온 모양새라 마치 챙이 넓은 중절모를 보는 거 같았다.

조금 더 헤엄치자 뭍에 발이 닿았다.

물결을 헤치고 섬으로 올라오니 발밑에서 새하얀 모래가 부서졌다.

상원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동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백골같이 하얀 바위로 된 동산이 보기보다 높았던 탓에 상원은 한참을 올라야 했다.

이윽고 정상이 보였다.

동산의 정상에는 스톤헨지가 있었는데, 새까만 돌기둥 하나하나가 몇 층 건물만큼이나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상원은 스톤헨지 한가운데 말라붙은 고목에 앉아있는 노인을 보았다.

탁한 회색 고깔모자와 망토를 두르고 회색 수염을 산신령처럼 늘어뜨린 전형적인 마법사의 모습을 한 유령, 그가 바로 상원이 상대해야 할 '인큐버스의 아들'이었다.

상원이 다가가자 그가 몸을 일으켰는데, 키가 어찌나 큰지 멀리 있는 상원이 고개를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였다.

그가 상원을 슥 보고 말했다.

"나한테 볼일이 있나?"

쭈글쭈글한 노인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상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바위에 박힌 검'을 받으러 왔다."

상원의 대답에 그가 껄껄 웃었다.

"뭐? 무슨 맡겨 놓은 물건 찾아가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그 이름을 말하는 걸 보니 그걸 가져가려면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겠지?"

상원이 짧게 대답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인큐버스의 아들이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려대는 상원을 비웃으며 품 안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하! 가소롭다!"

온통 우중충한 회색 차림과는 비교되는 눈부신 은빛 장검, 저것이 바로 '인큐버스의 아들'이 가진 성물 '바위에 박힌 검'이었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검을 지면에 박자 우르릉 소리와 함께 섬 전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자신의 힘을 펼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어서 말발굽 소리와 함성 소리가 들렸다.

"이랴! 이랴!"

"하아아아!"

검은 물 저 멀리서 검은 안개에 휩싸인 유령 기사들이 시뻘건 눈빛을 형형하게 내뿜으며 말을 몰고 쇄도하고 있었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부른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방어구는 암흑의 힘을 머금어 새까맣게 빛났고 무기에서도 새까만 오라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들소만 한 해골마들이 수면을 박찰 때마다 강렬한 파문이 일었다.

하나하나가 5등급 마물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기사들이 수평선을 뒤덮으며 벌떼처럼 몰려오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전생에도 '바위에 박힌 검'을 찾기 위해 '행운의 섬'을 찾았던 자들은 저 기사단에 의해 가루가 되어버렸었다.

물론 상원은 아니었고.

달려가던 상원이 툭 내뱉었다.

"그래, 열심히 해봐라."

인큐버스의 아들이 긴 눈썹이 꿈틀거리며 말했다.

"뭐?"

인큐버스의 아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신력도 스킬도 없어 보이는 이 조그만 작자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저렇게 달려들고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저 강력한 원탁의 기사들이 섬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데.

거대한 준마들이 수면을 밟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쿠르르르릉!

호수를 건너온 기사들은 백사장을 지나 동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반면 상원과 인큐버스의 아들 사이 거리는 아직도 한참이었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흐... 흐흐흐! 네놈, 소환사를 치려는 생각인가 보다만 어림도 없다!"

웬만한 자동차보다 커다란 말 위에 앉은 거구의 기사들이 상원의 몸 위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새까만 빛을 잔뜩 머금은 오라 블레이드가 상원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전생에는 저 오라 블레이드에 신령급 수험자들의 목이 숱하게 날아갔었다.

하지만 상원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전생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왜냐하면 저 강력한 원탁의 기사들의 검은 불신자 조상원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오라 블레이드가 상원의 목에 닿는 순간, 그 칼을 쥐고 있던 원탁의 기사가 새까만 먼지가 되어 공중에 흩어졌다.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상원의 몸에 무기를 꽂은 기사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광경을 본 인큐버스의 아들이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소리를 질렀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원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불신자다. 니가 보여주는 꿈 같은 건 믿지 않지."

상원의 대답에 인큐버스의 아들이 입을 떡 벌렸다.

상원이 웬만한 주신급들도 꺼렸던 '행운의 섬' 공략에 주저 없이 참여한 이유, 그리고 연옥에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사과의 섬'으로 찾아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바로 인큐버스의 아들의 공격은 불신자 조상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인큐버스의 아들', 몽마의 힘을 가진 이 존재의 환영술 실력은 새하늘 시험 전체를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그 환영술이 어찌나 강력한지 환영만으로도 신령급 수험자들의 목을 뎅겅뎅겅 날려버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영술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불신자 조상원에게는 어떠한 환영술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상원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림자놀이는 여기까지다 꼬마야."

상원의 말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새하얀 동산도 거대한 스톤헨지도, 그리고 회색 고깔모자와 로브를 걸친 노인도 원탁의 기사들처럼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대신 나타난 건 너른 모래밭에 홀로 서서 뜨악한 얼굴로 상원을 쳐다보고 있는 꼬마였다.

이마에 조그만 뿔 두 개가 돋은 저 반인반마 꼬마가 바로 '인큐버스의 아들'의 본모습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눈부신 장검이 아닌 30센티미터 남짓 되어 보이는 새하얀 나뭇가지였다.

반인반마 꼬마가 칼처럼 가지고 놀았던 나뭇가지, 그게 바로 성물급 아이템 '바위에 박힌 검'의 정체였다.

마침내 꼬마 앞까지 달려간 상원이 손을 높이 쳐들었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잠깐만요!"

손을 내린 상원이 말없이 인큐버스의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반마 꼬마가 손에 쥔 가지를 내밀었다.

"자요. 이거 가지러 왔다 그랬죠?"

고개를 끄덕인 상원이 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인큐버스의 아들이 손을 도로 가져갔다.

"이거...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주면 안 되는 건데."

그 말에 상원이 피식 웃었다.

"부르심은 없을 거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부르심은 없을 거라고. 그러니 그건 내게 주면 돼."

인큐버스이 아들이 입술을 비죽 내밀고 가지를 넘겼다.

가지를 건네받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성물급 아이템 <바위에 박힌 검>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지를 움켜쥔 손의 느낌이 익숙했다.

전생에서 스물두 개의 시험을 함께 했던 물건이니 당연했다.

그러니 이 아이템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상원이 허공에 대고 가지를 툭 휘두르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성물 '바위에 박힌 검'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기사단의 물건을 불러옵니다.]

이어서 허공에 검은 먼지 돌풍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해골마의 형상으로 변했다.

해골마의 두 눈구멍 아래 시뻘건 안광이 이글거렸고 딛는 걸음마다 작은 불씨가 남았다.

상원은 아주 익숙한 손짓으로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이네."

그러자 해골마가 콧구멍에서 뜨거운 불길을 내뿜었다.

불신자 조상원, 그는 어떤 승천자와도 수호 계약을 맺지 못했고 어떤 스킬도 쓸 수 없었지만 아이템은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승천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불신자라는 개성을 최대한 살려서 좋은 아이템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바위에 박힌 검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아이템을 지키는 '인큐버스의 아들'은 시험 최강의 환영술사지만 환영술이 통하지 않는 상원에겐 그냥 꼬마에 불과했으니까.

인큐버스의 아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그거 어떻게 그렇게 잘 쓰는 거예요?"

스물두 개의 시험 동안 썼던 물건인데 못 쓸 리가 있나.

"다 방법이 있단다."

꼬마의 말에 대답한 상원이 등자를 밟고 안장에 올라탔다.

해골마가 늘어진 황금빛 모래를 따라 저벅저벅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상원의 뒤에 대고 말했다.

"아... 저기요. 혹시 나중에 아저씨 만나면요. 그거 제가 꼭꼭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거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상원이 뒤를 돌아보고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걱정 마라."

꼬마가 말하는 아저씨란 '바위에 박힌 검'의 진짜 주인을 뜻했다.

가지로 흉내를 낸 검 말고 제왕의 상징인 진짜 검의 주인을.

이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를 만나게 될 거란 걸 저 꼬마도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네 번째 별을 얻으려면 그를 만나야 하니까.

상원은 작별 인사를 남기고 고삐를 당겼다.

"잘있어라 꼬마야. 인연이 닿거든 또 만나자."

그러자 해골마가 모래 줄기를 따라 바람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인큐버스의 아들이 남긴 잘 가라는 작별 인사가 귓등을 스쳤다.

해골마는 모래사장과 호수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와 유령 무리를 바람처럼 가로질렀다.

몇 날 며칠 동안 걷고 헤엄쳤던 그 길이 순식간이었다.

해골마는 연옥의 경계를 흐르는 삼도천마저도 사뿐히 가로질러 갔다.

삼도천을 건널 때 뒤를 돌아보니 등롱을 든 사공이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고 해골마가 밟았던 수면 위로 잔불이 남아 있었다.

이윽고 모래 줄기의 끝이 가까워졌다.

황금시대의 모래시계로부터 뻗어 나온 황금색 모래 줄기는 안개 속을 따라 이어졌고 그 끝에는 허공에 떠 있는 새까만 검은 원이 있었다.

오디나스의 핵을 깼을 때 나왔던 그 원이었다.

상원은 장애물을 넘는 승마 선수처럼 허공의 원을 향해 뛰어들었다.

새까만 어둠이 상원의 눈코입을 틀어막았다.

구멍의 출구에 성지 다림델이 있었다.

다림델의 전경과 거기 서 있는 창훈과 샤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린 신화의 몸까지도.

말을 몰던 여세 그대로, 상원은 의체를 향해 뛰어들었다.

유체가 의체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황금시대의 모래시계를 작동하시겠습니까?]

"작동한다.“

[황금시대의 모래시계를 작동합니다. 회귀 시간: 1분 13초.]

'1분 13초면... 오디나스의 핵을 깨부수기 전... 딱 그 정도군.'

상원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변의 풍경이 황금빛 모래로 부서져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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