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00화 (100/230)

제100화. 성지 수호전 (7)

[<카이네딘 기사단>이 이 땅에 강림합니다.]

퉁! 퉁!

시스템 메시지에 이어 멀리서 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 시험에서도 보았던 특수 좀비들이 이 땅에 강림하는 소리였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대강령술사 오디나스가 특수 좀비들을 불러오고 있었다.

"크르르릉!"

해골 병사들 뒤쪽에 귀가 쫑긋 솟아오른 거대한 덩치들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는 잿빛 늑대인간의 형상이었는데 호랑이와 같은 줄무늬가 있었고 뱀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카이네딘 제국이 자랑했던 <키메라 병단>이었다.

"저것들 3번 시험 때 봤던 그것들 맞죠? 서울역에서 봤던."

진아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3번 시험 때 죽음의 문턱을 두드리고 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조금 이따 <검은 뱀 기사단>까지 등장하면 졸도를 할지도 모른다.

"맞는데... 그때보다 훨씬 강해 보입니다. 덩치도 훨씬 크고 발톱도 날카롭네요."

문혁이 대답했다.

'역시 대단한 눈썰미군.'

드론을 통해 대화를 듣던 상원은 겉보기만으로 이들의 힘을 알아본 문혁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특수 좀비들은 세 번째 시험에 등장했을 때보다 몇 배 이상 강했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오디나스가 3번 시험 때와는 달리 특수 좀비들을 자기가 있는 차원으로 불러들였기에 차원 이동 패널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이들도 <언데드 강화 마법진>의 효과를 받는 것이었다.

"크아아악!"

키메라 병단이 괴성을 지르며 도약했는데, 다리 힘이 어찌나 좋은지 한 번에 해골 병사 무리를 뛰어넘어 곧장 빛의 기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쾅!

키메라 병단과 빛의 기사들이 부딪혔다.

"하아아아!"

빛의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맞섰지만 호기로운 함성과는 달리 진열은 눈에 띄게 출렁거렸다.

"흐아아아악!"

키메라의 손톱에 심장을 꿰뚫린 빛의 기사의 눈 코 입에서 눈 부신 빛이 흘러나오더니 빛줄기가 되어 하늘을 향해 올라갔고, 남겨진 육신은 노인의 몸으로 돌아와 힘없이 늘어졌다.

강신이 해제되어 전장을 이탈한 것이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이 시험 그냥 구경하면 끝나는 거 아니었어?"

첫 번째 이탈에 수험자들이 불안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성속성 정령들은 언데드에 상성 상 우위를 가진다.

그렇기에 키메라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빛의 기사들이 우세했다.

하지만 빛의 기사들이 전장을 이탈하면서 내는 빛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르자 수험자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빛의 기사들... 분명 하나하나는 언데드들보다 강하지만 수가 한정돼 있어요. 지금은 분명 우세합니다만... 시간 문제입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빛의 기사들이 전멸할 거예요."

문혁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떡하나? 빛의 기사들이 전멸하면 우리도 다 죽는 거 아니야?"

태성의 말에 문혁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요. 이대로 두 손 놓고 구경만 하다가 탈락하라고? 그럴 순 없어요."

결연하게 말한 진아가 두 손에 힘을 모았지만 스킬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아."

진아가 비통에 찬 한숨을 뱉었다.

그때였다.

[<승천자 추방> 마법진이 약화됩니다. 다른 세계의 승천자들이 이 세계를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서프라이즈."

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어... 어어?"

"힘이... 돌아오고 있어요."

예상치 못한 시스템 메시지와 힘의 복원에 수험자들이 술렁거렸다.

"별자리가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들께서... 우리를 비춰주고 계십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문혁의 말마따나 흉흉한 <마신의 달>이 드리우는 달무리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던 별들이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 세계의 별들보다는 어둡지만 흔들리지 않고 빛을 보내주는 별들, 지구의 승천자들이었다.

"그리로부터 낙원을 지킬 성스러운 불꽃을 내려주심을 믿나이다."

기도를 마친 진아가 두 손을 좌우로 뻗자 그녀의 손에서 눈부신 분홍색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은은한 분홍색 오라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저 정도면 종합 능력치 1백은 넘겠군. 요이르오름 구릉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언데드를 정말 닥치는 대로 잡았구나.'

윤진아가 생각대로 착실하게 강해진 게 뿌듯해서 상원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사악한 것들은 사라질지어다."

진아의 목소리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느낀 수험자들이 물러섰다.

"하아!"

홍해가 갈라지듯 수험자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전장으로 걸어간 진아가 기합과 함께 언데드들이 뭉친 곳에 분홍색 불덩이를 던졌다.

콰앙!

"으어어어억...."

마치 폭탄이 터지듯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덩이가 터지며 언데드 수십 마리가 한 번에 잿더미가 되었다.

전장의 모두가 그 압도적인 기세에 놀라 진아를 돌아보았다.

"크르르르륵!"

짐승의 이성을 지닌 키메라 병단도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는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우리도 싸웁시다!"

"와아아아아!"

문혁이 <해안선의 귀신>의 권능을 담아 외친 함성에 수험자들이 일제히 화답하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수험자들의 참전에 이번에는 언데드들의 진영이 흔들렸다.

그 중심에 <낙원의 성화> 윤진아가 있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기도문을 읊는 진아의 두 눈에서 분홍색 안광이 피어올랐다.

확실히 언데드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윤진아의 위용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더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음 순서가 이어질 테니까.

퉁! 퉁!

특수 좀비들이 소환되는 소리와 함께 전장 저 멀리서 탁한 빛이 지상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성속성 수험자들의 천적 <검은 뱀 기사단>이 이 땅에 강림하는 소리였다.

"왔군."

상원이 중얼거렸다.

이들이 이 땅에 왔다는 건 14번 시험이 본래의 진행을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검은 뱀 기사단은 원래 15번 시험인 <제도(帝都) 탈환>에서 황성을 지키기 위해 소환되는 병력이기 때문이었다.

기관에서 본다면 시험에 개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본래의 진행에서 어긋난 상황이었지만 이 시험은 지구가 아닌 차원 아나르에서 진행되는 덕에 기관의 통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철컥철컥

검은 뱀 기사단의 갑옷이 부딪히는 쇳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이루며 가까워졌다.

"서... 설마...."

그 소리에 진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해골 병사들 사이에서 새까만 타워 실드와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한 검은 뱀 기사단원들이 나타났을 때 진아는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세 번째 시험에서 검은 뱀 기사단을 상대하면서 죽을 뻔했던 트라우마가 그녀를 덮친 것 같았다.

"진아 씨, 괜찮아요?"

후다닥 달려온 문혁이 진아를 부축했다.

"심기를 다스리는 침을 놓겠네. 조금 괜찮을 거야."

태성이 진아의 목덜미에 침 몇 개를 꽂았다.

그 덕에 두려움을 다스린 진아가 겨우 일어서긴 했지만 그녀의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트라우마는 아니지."

상원이 말했다.

트라우마는 힘이 아득하게 강해진 것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법이다.

상원도 아빠와 누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긴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어쨌든, 검은 뱀 기사단의 합류로 전장의 분위기는 또다시 바뀌고 있었다.

수험자들도 언데드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것들 왜 움직이지 않지?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문혁이 검은 뱀 기사단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지시를 기다리는 걸 간파하다니, 역시 백문혁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하다.

검은 뱀 기사단이 이 땅에 왔다면, 이제 다음은 그들의 지휘관이 본 모습을 드러낼 차례였다.

"흐으... 오디나스. 다림델에 검은 뱀 기사단을 부르다니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만... 일단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지."

쾅!

검의 수호자 툴리오가 땅바닥에 대검을 박아 넣고 돌아서자 하늘에서 시꺼먼 빛줄기가 내려와 툴리오의 몸에 꽂혔다.

그러자 툴리오의 갑옷이 새까맣게 물들면서 투구 사이에서 새빨간 안광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검은 뱀 기사단의 창시자, 최초의 암흑 기사...! 그게 검의 수호자 툴리오였다고?"

미스미엘교의 전승에 해박한 문혁이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양 기사들도 당황한 얼굴로 한두 걸음 물러났다.

"뭐라고? 농담이지?"

수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한편에서 싸우던 미스미엘교단의 수호자가 어떤 단서도 없이 한순간에 적으로 변했으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법도 하지."

상원이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툴리오가 본색을 드러내는 건 15번 시험에 가서였다.

마신의 달이 떠 있는 동안 성지를 지켜내고 나면 다음 시험이 선포되고, 수험자들은 세 수호자를 비롯한 빛의 군대와 함께 <죽은 자의 주인>이 강림한 황성으로 몰려간다.

그러면 본색을 드러낸 대제사장 오디나스가 검은 뱀 기사단을 소환해 빛의 군대를 쓸어버리고, 수험자들이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오디나스와 맞서는 게 15번 시험의 내용이었다.

툴리오가 검은 뱀 기사단의 지휘관임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도 15번 시험 직전에 제공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개가 달라서, 검은 뱀 기사단의 강림도 툴리오의 변신도 모두 14번 시험이 끝나기 전에 일어났다.

상원이 오디나스를 도발해서 시험 전개를 완전히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툴리오의 도륙이 시작될 것이다.

"죽은 자의 주인께 죽음을."

툴리오가 대검을 가로로 휘두르자 새까만 불길이 일어나 빛의 군대를 덮쳤다.

"으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빛의 기사 수십이 한꺼번에 전장을 이탈했다.

하나하나가 상급 수험자에 맞먹는 힘을 내는 빛의 기사들이 무참히 쓸려나가자 수험자들도 패닉에 빠졌다.

"으으... 이럴 수가... 우린 여기서 모두 죽을 거야."

"안돼. 이럴 줄 알았으면 이세계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겁에 질린 수험자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모두 물러서지 마세요!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문혁이 지휘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었다.

암흑 기사 툴리오는 15번 시험의 최종 보스로, 주신급을 포함한 수험자들에 다른 두 수호자들까지 모조리 달려들어야 겨우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수험자들이 네 문으로 흩어진 지금, 고작 북문에 있는 수험자들만으로 툴리오를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툴리오가 암흑 기사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이상 다림델이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상원은 걱정하지 않았다.

툴리오를 상대할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까.

[<하늘불꽃 드론>과의 감각 연결을 해제합니다.]

드론과의 연결을 해제하자 상원이 서 있는 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로 저 멀리, 밤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성벽 사이에 태고의 거인이라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란 성문이 보였다.

북문이었다.

"내가 뭘 준비했는지 보면 놀라 뒤집어질 거다 툴리오."

상원은 씩 웃으며 북문을 향해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