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90화 (90/230)

제90화. 타락신 (5)

쩍!

<검은 양>을 어린애로 보이게 할 만큼 커다란 손바닥이 등짝을 후려치자, 빙판 위에 거대한 손자국이 생겼다.

불어 닥친 거센 후폭풍에 상원의 긴 머리칼이 날렸다.

<화산정의 혐오체>의 화신이 된 한창훈의 기술은 모양새는 우스웠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끄아아아악!"

그 강대한 검은 양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을 정도였으니까.

검은 양의 입과 콧구멍, 그리고 귓구멍에서까지 새까만 진액이 찐득찐득 흘러나왔다.

"으... 그... 그극...!"

검은 양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꼬리와 촉수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오호."

상원은 감탄했다.

검은 양을 후려친 손바닥은 말 그대로 운명의 무게, 그걸 딛고 일어선 검은 양에 대한 찬사였다.

'하지만 그 정도론 운명을 이길 수 없어.'

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눔 시끼, 처먹기는 많이도 처먹었구나. 아주 튼튼해졌네?"

창훈이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말했다.

철썩!

손바닥이 다시 한번 검은 양을 내리쳤다.

"커허억!"

검은 양의 비명이 인간의 비명처럼 들렸다.

빙의가 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와 함께 검은 양은 석유 같은 검은 덩어리를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덩어리가 새까만 슬라임처럼 꾸물거렸고, 투둑 투둑 떨어진 촉수들이 토막 난 산낙지마냥 꿈틀거렸다.

"우욱."

샤믹이 헛구역질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어떻게... 어떻게 네놈을 몰아냈는데."

검은 양의 눈에서 새까맣게 덩어리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 몰아내기는. 갖은 더러운 짓은 다 해서 몰아냈지. 명색이 주신급이라는 놈이 중급 신령 하나 쫓아낸다고 그 많은 신도와 화신을 잡아다 잡수셨어? 그 짓을 하는데도 외신(外神)이라고 묵인하는 걸 보니 기관 놈을 하는 꼬라지도 참...."

창훈이 경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승천자가 힘을 기르기 위해 자기 신도와 화신을 잡아먹는 건 승천 시험의 세계에서 가장 지탄받는 행위였기 때문에, 창훈의 수호신인 화산정의 혐오체가 검은 숲의 목자를 경멸하는 건 당연했다.

심지어 화산정의 혐오체는 그렇게 기른 힘에 당해 새하늘에서 쫓겨났으니 오죽하겠는가.

"으... 으으...."

검은 양은 촉수가 떨어져 나가면서 덩치가 점점 작아졌고, 점점 혜경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 안돼...."

"돼 이놈아."

창훈의 눈에서 보라색 안광이 폭사했다.

그러자 검은 양의 주변에서 보라색 손 수십 개가 쑥 튀어나와 검은 양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검은 양의 살점이 곰 인형이 찢어지듯 떨어져 나가면서 먹물처럼 새까만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쩌적 쩌적

살점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얼어붙은 분지에 메아리쳤다.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우악스런 손짓이 멈췄다.

검은 양의 주변에 찢겨 흩어진 살점과 체액이 격렬하게 꿈틀거리다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중심에 혜경의 나신이 드러났다.

"으... 아아...."

혜경이 신음을 흘리며 털썩 쓰러졌다.

그 직후 별빛과 북극광을 받아 생긴 어렴풋한 그녀의 그림자가 스멀거리며 솟아오르더니 혜경의 모습을 띠었다.

혜경의 모습에 머리엔 산양의 뿔이 달린 희미한 그림자, 저 초라한 존재가 바로 화신의 몸속에 들어간 <검은 숲의 목자>였다.

화산정의 혐오체가 혜경의 빙의를 풀고 검은 숲의 목자를 혜경에게서 뜯어낸 것이었다.

- 억울... 하다.

그림자가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육시럴, 사람 잡아먹고 살찐 놈이 억울은 무슨."

창훈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검은 숲의 목자."

상원이 그림자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적막만이 감도는 공터에 뽀드득하고 눈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림자가 눈을 치켜뜨고 상원을 쏘아보았다.

"화신도 신물도 없이 이승에 머무르고 있다니,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상원의 목소리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승에 존재할 수 없는 승천자가, 화신도 신물도 거치지 않고 저런 초라한 형체로나마 이승에 강림할 수 있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승천자였다면 그 즉시 새하늘로 사출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이승에 남은 건 검은 숲의 목자가 워낙 강한 괴물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상원의 눈앞에 있는 목자는 초라한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네놈이 이 꼴이 되는 순간을 보려고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

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새하늘교에 들어가서 <검은 숲의 목자>를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시험 전의 10년과 오십 하고 열세 개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상원은 목자의 먹이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화신이 된 누나를 제어하면서 그녀가 <검은 양>으로 각성하는 걸 막는 것, 그게 새하늘교가 상원에게 준 역할이었다.

그래서 상원은 노트를 읽으며 검은 숲의 목자가 숙주를 완전히 잠식하지 못 하게 하는 방법을 외우고 또 외웠다.

예컨대 이마에 표식을 새긴 주술나무를 태우는 방법 같은 것들을.

그리고 목자의 먹이가 되면, 창훈이 그랬던 것처럼 목자가 심은 씨앗이 온몸을 갉아먹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네놈을 이 꼴로 만들 수 있을지...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지. 그래서 봤더니 <화산정의 혐오체>가 여기 계시더라고."

상원은 검은 숲의 목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오랫동안 연구했고, 몇 가지 방법을 도출할 수 있었다.

1회차에는 검은 숲의 목자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방법들을 쓸 일이 없었지만, 2회차는 달랐다.

검은 숲의 목자가 나타난 것이다.

승천을 위해서 <일곱 별의 왕관>을 얻기에 검은 숲의 목자는 너무 큰 변수였다.

그래서 상원은 <두 번째 별>을 얻는 과정에서 검은 숲의 목자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바로 그의 대적자인 <화산정의 혐오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 모두... 의도된 거였군. 내가 군도로 간 것도... 먹이가 여기에 있는 것도....

"이해가 빠르네."

상원이 대답했다.

으드득

검은 숲의 목자가 이를 갈았다.

- 너... 도대체 어디부터 설계한 거냐? 언제부터... 네놈 손에 놀아난 거야?

"니가 이번 시험에 참여한 그 순간부터다."

상원이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 불신자...! 네놈만 아니었어도!

촤악!

그림자가 펜싱칼을 찔러 넣듯 상원을 향해 뾰족한 촉수를 찔렀다.

"아이고, 발악은."

혀를 끌끌 차는 창훈이 보라색 불꽃을 뿜어내자 상원에게 쇄도하던 촉수가 까만 잿더미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지금까지 그 수많은 신도와 잡아먹고 화신들을 가지고 놀면서, 하찮은 인간 따위한테 이용당하는 신세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 그으으으윽...!

검은 숲의 목자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초라한 신음을 흘렸다.

"다 네놈의 업보다, 검은 숲의 목자."

- 불신자....

목자의 형체가 흐물흐물해지더니 녹은 푸딩처럼 흩어졌다.

그리고는 혜경의 몸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갔다.

"찌꺼기가 남았군요."

상원이 말했다.

"저것까진 못 없애요. 꼴에 주신급은 주신급이라 완전히 없애는 건 할머님 능력 밖입니다."

창훈이 대답하며 혜경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온몸에 새까만 핏발이 돋아 있었다.

목자의 찌꺼기가 그녀의 몸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창훈이 그녀의 몸에 손가락을 대자 그녀의 피부에서 시꺼먼 촉수가 돋았다가 사라졌다.

"혜경이는 여전히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입니다. 목자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어요. 다만 목자가 혜경이를 예전처럼 맘대로 주무르진 못하겠죠."

창훈이 혜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창훈이 얘기한 대로 목자가 찌꺼기나마 남아있기 때문에 계약은 그대로 유지된 상태로서, 혜경은 목자의 힘을 쓸 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목자가 혜경의 광기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혜경은 평소엔 제정신을 유지할 것이었다.

"으응...."

혜경이 얕은 신음 소리를 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상원은 지금 혜경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화산정의 혐오체가 검은 숲의 목자를 찌꺼기로 만들고 나면 목자의 화신은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오랫동안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상원이 새하늘교를 탈출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새하늘교가 계획한 대로 시험을 치렀다면, 상원은 누나를 저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용제가... 부활한 거요?"

"저 하늘을 떠돌고 계시지요."

발라딘의 물음에 대답하며 창훈이 먼 하늘을 가리켰다.

밤하늘에 너울거리는 오로라 사이로 보라색 유성이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그래, 아직 천당에 자리를 잡지 못했나 보군."

발라딘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편 샤믹은 쓰러진 혜경을 살피고 있었다.

"이게 들으면 좋겠네요."

샤믹이 입고 있던 트롤 타이즈를 부욱 찢어서 혜경에게 대자, 혜경의 피부에서 까만 촉수들이 스멀거리고 올라와 타이즈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타이즈가 까만색으로 물들더니 혜경의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덮었다.

트롤 가죽 타이즈가 목자의 마력을 먹고 변형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옷을 좀 준비해둘 걸 그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됐네요."

창훈이 웃으며 샤믹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뭘요. 이 정도 가지고."

샤믹이 사람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용의 무덤에서의 전투가 정리되어 갔다.

"좋아. 얻을 건 다 얻었다."

상원이 뱉은 입김이 흩어졌다.

계획했던 대로 한창훈은 화산정의 혐오체의 화신이 되었고, 검은 숲의 목자는 찌꺼기만 남았다.

두 번째 별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산정의 혐오체의 힘을 빌려야 한다.

상원이 혐오체에게 화신을 찾아 주었으니 혐오체도 상원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상원의 여정에 걸림돌이 될 검은 숲의 목자도 처리했다.

이제 다음 할 일은 화산정의 혐오체를 데리고 다림델로 가는 것이었다.

그때, 한동안 보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위업이 충분히 누적되었습니다.]

[의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의체가 수복됩니다.]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상원의 몸에서 녹색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아이템 세 개를 얻어서 화산정의 혐오체를 부활시켰고 검은 숲의 목자까지 잡았으면 레벨이 오를 때도 됐지.'

상원은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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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만 표시됩니다.

레벨 9 (11%)

성능: 괴력 40, 용력 40, 술력 75

- 레벨업 효과로 능력이 올랐습니다.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3), 하늘의 불씨(2), 지하의 문(2), 동굴적 감각, 마나 삼키기 (복구 중)

- 레벨업 효과로 스킬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원하는 스킬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모래시계 충전 시간: 1분 12초

강신회로: 태초의 대족장

달성 업적: 네번째 문의 봉인자

일곱 별의 왕관 진척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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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레벨이 올랐다.

다음 시험을 고려해서, 상원은 올려야 할 다음 스킬을 선택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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