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79화 (79/230)

제79화. 용제의 왕홀 (5)

"그으으으윽!"

"그으으으...."

관리실로 향하는 문이 위치한 넓은 광장으로 <살덩이 골렘>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키가 4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비만체들이었는데 몸 전체에 꿰맨 자국이 가득했고 입과 상처로 시뻘건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바로 중앙마나기관을 설계한 용제(龍帝) <비젤 카스파>가 제13구역에 배치한 경비병들이었다.

"씨발...!"

마크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등에 멘 활을 뽑아 <바람살>을 날렸다.

핑 하고 날아간 화살이 가장 앞서 다가오던 골렘의 머리통에 퍽 하고 꽂혔다.

골렘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깨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살덩이가 꾸물꾸물 자라나 머리통이 재생되었다.

"젠장!"

양손검을 뽑아든 존이 쏜살같은 속도로 살덩이 골렘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서걱

커다란 양손검에 다리를 베인 골렘이 기우뚱 쓰러지자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쓰읍!"

존이 가쁜 숨을 뱉었다.

그는 골렘을 제압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광경에 존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절단된 단면에서 자라난 혈관들이 이어져 다리가 다시 붙은 것이었다.

다리가 붙는 데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몸속의 마력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살덩이 골렘은 끝없이 재생한다.

"이런... 제길...!"

뒤로 몸을 날리려던 존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서였다.

살덩이 골렘이 흘리는 피고름 속에 든 독기 때문이었다.

뒤로 돌아선 존이 허우적거리듯 움직였다.

그제야 존과 마크는 상원을 따라온 것을 후회했다.

"그으으으윽...."

그의 뒤로 살덩이 골렘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존! 빠져요!"

샤믹이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핑!

마크가 날린 바람살이 살덩이 골렘의 머리를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렘들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으... 안돼...."

자포자기한 존이 주저앉았다.

골렘이 든 커다란 클레버가 보라색 불빛을 받아 흉흉한 빛을 내뿜었다.

클레버가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쩍!

이어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수험자 존 에드워드는 그렇게 탈락했다.

"그으으윽...."

골렘들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씨발... 씨바알!"

제정신을 잃은 마크가 <바람살>을 마구 날려댔다.

퍽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연신 피보라가 일어났다.

그러나 마크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골렘들이 다가오는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크의 활시위가 힘없는 소리를 냈다.

마침내 마력이 바닥나버린 것이다.

그때 마크의 눈에 자기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클레버의 보라색 불꽃이 비쳤다.

"아...."

망연자실한 마크가 힘없이 입을 벌렸다.

쩍!

클레버가 떨어지고 수험자 마크 리델도 탈락했다.

그렇게 수험자들이 절명했지만, 62번의 시험을 거치고 나면 사람 몇 죽고 사는 일에는 무감해지는 법이다.

분명히 따라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저런 식으로 명을 재촉하는 자들에게 줄 동정심 같은 건 없었다.

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라문>의 해를 읊었다.

"3683 148 15 14"

상원이 숫자를 말할 때마다 에론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흐으으으! 다음 열 개요!"

에론이 외쳤다.

그녀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잠시만.”

상원이 품에서 골리야스의 상인에게 샀던 <땅의 내단>과 <자라나는 바윗돌>을 꺼냈다.

상원이 새하늘교에 있을 때 보았던 198권의 노트에는 <용제의 왕홀>을 얻는 방법도 쓰여 있었다.

그걸 봤을 때 상원은 용제의 왕홀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황금문과 보라문을 잠근 마나 수식의 해를 외우는 건 암기 천재인 상원에겐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두 문 사이를 지키는 살덩이 골렘들이었다.

고작 열두 번째 시험에서, 추정 등급이 3급에서 4급 사이인 괴물 수백 마리를 상대해야 한다.

그건 주신급이 아니라 주신 할애비를 데려다 놔도 못 할 일이었다.

2회차에서 상원이 가장 고심했던 문제도 이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살덩이 골렘 수백 마리를 상대하면서 에론을 지키고 보라문을 열 수 있을까.

처음 세운 계획은 살덩이 골렘을 모조리 잡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원이 하려는 일은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효율적이었다.

계획 수정은 샤믹 프란시스코를 만나서 가능했다.

"그으으윽."

"그으으으윽."

골렘 수백 마리가 샤믹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으으으으...."

정신이 무너져버린 샤믹이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샤믹 프란시스코!”

상원의 일갈에 정신을 차린 샤믹이 뒤를 돌아보았다.

상원이 골리야스의 상인에게서 샀던 두 개의 물건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내단은 복용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기를 빨아들이고, 바윗돌은 몸속에서 불어난다.

한 마디로 먹으면 죽는 극약이라는 걸 샤믹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도 골리야스 상인에게서 설명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정신이 무너진 그녀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상원의 말이라면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극약도 삼킬 수 있었다. 상원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드시죠."

고개를 끄덕인 샤믹이 순순히 물건을 삼켰다.

"으으으윽...!"

직후 샤믹이 신음을 뱉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지금 낯선 감각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뱃속에 닿은 내단이 마력을 집어삼키는 게 느낌, 그리고 돌조각이 몸속에서 불어나는 느낌.

몸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무거워질 것이다.

"사... 상원씨... 이거 도대체...."

"조금만 참아요.“

덤덤하게 말한 상원이 오른팔에서 <열지의 말뚝>을 뽑아냈다.

”정신 차려보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원은 대지의 힘을 끌어오는 말뚝을 샤믹의 심장에 박았다.

콱!

"커허억!"

샤믹이 입에서 먼지를 한 웅큼 뱉어냈다.

벌써 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키이이잉

말뚝 대가리에 달린 구슬에서 굉음과 함께 붉은 빛이 폭사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해일처럼 들이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상원이 살짝 물러났다.

어느새 살덩이 골렘들이 지근거리에 다가와 있었다.

"그으으으윽!"

존과 마크를 한 번에 쪼개버렸던 클레버가 샤믹을 향해 떨어졌다.

"꺄악!"

샤믹이 새된 소리를 내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쩍!

"그으으윽?"

이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인체 따위는 우습게 쪼개버리는 클레버가 마치 아름드리 나무에 찍은 손도끼마냥 샤믹의 등짝에 박힌 것이다.

초록색 츄리닝이 찢어지면서 드러난 샤믹의 맨살은 돌덩이마냥 금이 가 있었다.

"성공했군."

상원이 씩 웃었다.

샤믹 프란시스코의 수호신, <가라앉은 거인>.

끝없는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을 쓰는 데는 인색한 자.

그 힘을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강제로 힘을 쓰게 하면 되는 것이다.

상원이 샤믹의 몸에 박은 <열지의 말뚝>은 무려 땅의 정령왕의 권능이다.

그 어떤 땅의 힘이라도 뽑아낼 수 있다.

가라앉은 거인의 힘까지도.

그렇다면 수험자 샤믹 프란시스코는 그 턱없는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있다.

샤믹은 <땅의 내단>을 먹었으니까.

그게 끝이 아니다.

<땅의 내단>은 마력을 빨아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빨아들인 마력을 증폭해서 뱉어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마력은 어디에 쓰이는가?

샤믹이 먹은 또 다른 극약, <자라나는 바윗돌>과 샤믹의 신체를 융합시키는 데 쓰인다.

턱없는 양의 마력을 증폭시켜서 온몸을 끝없이 재생하는 바윗돌로 바꾼다.

지금 승천 시험 어디에도 이보다 단단한 탱커는 없다.

아니, 탱킹만이 아니었다.

"흐으으으윽...!"

샤믹이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날숨에는 흙먼지가 섞여 있었다.

몸이 단단한 돌로 변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찌지직!

샤믹의 몸이 자라나면서 옷이 찢어졌다.

피부가 회색으로 바뀐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커다란 석상이었다.

샤믹의 수호신이 <가라앉은 거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원이 세운 계획이 이것이었다.

땅의 내단과 자라나는 바윗돌을 먹이고 가라앉은 거인의 마력을 퍼부어서 그녀를 살아있는 석상으로 만드는 것.

그러면 관리실로 향하는 문을 여는 데 최대의 걸림돌인 살덩이 골렘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가 있었다.

"그어어억!"

살덩이 골렘들이 클레버를 내리찍었다.

틱, 티딕

4등급에 가까운 괴물들의 클레버가 힘없이 빗나갔다.

"좋아."

상원이 씩 웃으며 돌아섰다.

이제 살덩이 골렘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외워둔 숫자 몇천 개만 읊으면서, 에론의 현란한 손놀림을 구경만 하면 된다.

팝콘 씹으면서 영화 보는 기분으로.

* * *

"162."

상원이 5644번째 숫자를 풀었다.

"허억... 허억...."

에론이 가쁜 숨을 내뱉으며 3차원 지도의 어딘가를 손으로 눌렀다.

나비를 닮은 에키나르타 대륙의 왼쪽 날개 윗부분이었다.

대륙의 최북단,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빙하뿐인 동토였다.

날개를 누르자 지도가 어느새 어여쁜 나비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다음 순간, 관리실을 감싸고 있던 보라색 막이 사라지면서 철컥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세상에... 드디어...."

에론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총관리자로 살아온 시간 내내 바라왔던 제13구역의 관리실, 그 공간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들어가시죠."

상원의 말에 에론이 고개를 끄덕이고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상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마력을 있는 대로 빨아먹은 샤믹의 몸은 껑충하게 자라나서 4미터에 달하는 살덩이 골렘들이 주저앉은 그녀의 가슴께에밖에 오지 않을 정도였다.

"고생했습니다.“

덤덤하게 말한 상원이 샤믹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오른팔을 감싼 지진 문신이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샤믹의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저 단단한 바윗덩어리 아래는 엄청난 양의 마력이 폭주하고 있다.

그러면 그 마력을 폭주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건 폭탄이다.

이 방을 모조리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

그러기를 몇 초, 한순간 상원은 재빨리 철문 뒤로 몸을 날렸다.

쾅!

철문 밖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그 진동에 온 방이 울릴 정도였다.

”으... 으어어!“

에론이 머리를 감싸고 책상 밑으로 숨었다.

잠시 후 철문 밖으로 나간 상원의 눈앞에 기대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살덩이 골렘들이 모조리 핏덩이와 살점으로 분해돼 있었다.

강렬한 폭발이 마력 핵까지 날려버려서 골렘들은 재생조차 하지 못했다.

그 아수라장의 한가운데 샤믹이 쓰러져 있었다.

돌로 된 겉껍질이 폭발하고 본체가 남은 것이었다.

”흘륭하군.“

샤믹 프란시스코, 지금 승천 시험 어디에도 이만한 딜탱은 없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거듭난 건 전적으로 상원의 의지였지만.

"으... 으으윽...!"

샤믹이 겨우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어떻게... 이런...."

샤믹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13구역이 열렸습니다. 들어가시죠."

상원이 샤믹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네, 잠깐, 잠깐만!"

샤믹이 상원의 손을 놓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녀의 몸이 나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 쳐다봐요!"

"일단 이거 입으세요. 옷은 위에 올라가서 삽시다."

상원이 샤믹에게 펑퍼짐한 윗옷을 벗어 던져주었다.

파이에벨에 와서 새로 산 옷이었다.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상원은 돌아서서 관리실로 향했다.

"저... 엉덩이가 안 들어가는데...."

"옆선을 찢으시면 몸을 가릴 만큼은 될 겁니다."

덤덤하게 대답한 상원이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에론이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구체 안에서 보라색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이토록 막대한 마력을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하는 시설이라니. 용제는 정말로 천재군요."

에론이 원통형 방의 벽에 달린 패널들을 살펴보았다.

"이... 맙소사. 이 구역 하나만 작동시켜도 중앙마나기관의 출력을 열 배는 높일 수 있어요. 2번 동력 장치 같은 거 없어도... 충분해요."

에론이 중얼거렸다.

상원은 그녀의 기분을 이해했다.

그녀는 중앙마나기관의 기관원으로 살아온 세월 동안 제13구역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제13구역은 상원의 승천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론의 감탄을 계속 들을 생각까진 없었다.

"자, 총관리자님. 어서 이 장치를 작동시킵시다. 저는 이제 용제의 왕홀을 받아야겠어요."

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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