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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9화 (69/230)

제69화. 이세계의 부름 (3)

상원과 문혁은 성화 곁에 있는 혜경 부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혜경 씨, 창훈 씨."

문혁이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럼요. 여러모로 신경 써주셔서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힘없이 대답하는 창훈의 얼굴이 창백했다.

상원은 창훈의 얼굴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이 단지 혜경의 수호신 <검은 숲의 목자>가 심어둔 씨앗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창훈은 10번 시험을 마칠 때까지 이렇다 할 공헌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른 수험자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무임 승차자였다.

창훈은 그런 처지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상원이 말했다.

"어...?"

상원을 올려다보는 부부의 얼굴에 의문이 스쳤다.

부부는 상원의 바뀐 몸을 처음 보았다.

회복실에서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겪은 상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누구...?"

창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불신자...."

혜경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상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흰자위는 탁한 회색빛이었다.

혜경이 상원을 불신자라 부르는 것도, 흰자위의 색이 바뀐 것도 수호신인 <검은 숲의 목자>가 씌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조상원입니다."

상원의 말에 창훈의 표정이 바뀌었다.

"예...?"

상원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창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하하, 하하하!"

창훈이 웃을 때마다 깡마른 몸이 사시나무같이 떨렸다.

"알아보겠어요. 말투며 표정, 이목구비, 똑같네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다들 상원 씨를 어찌나 기다렸는지...."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왔습니다."

"하하, 그래요. 맞습니다."

창훈이 파리하게 웃었다.

"아... 어, 어? 상원 씨?"

멍해 있던 혜경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흰자위는 본래의 색을 되찾았고 눈동자엔 초점이 또렷하게 돌아와 있었다.

"상원 씨? 진짜 상원 씨에요?"

자리에서 일어난 혜경이 상원에게 다가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상원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와. 맞네. 조상원 씨 맞네."

혜경이 상원에게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얼굴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까 진아 씨도 그러시던데. 그게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상원이 피식 웃었다.

"그럼요. 좀 알려줘요. 나도 이런 미남이랑 살아보게."

"어? 여보, 언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며?"

"칠 년 전에는 그랬네요. 그때는 자기도 연예인 뺨 쳤지."

부부의 소소한 대화에 상원과 문혁이 하하 웃었다.

"두 분 모두 잘 버텨주고 계셨군요."

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원의 말대로 부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이제 11번째 시험이다.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은 대화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광인이 됐을 것이고 제물은 산송장이 됐을 것이지만, 송혜경도 한창훈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검은 숲의 목자>가 각성하지 않도록 상원이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부의 정신력이 보통이 아닌 덕도 있었다.

"이제 곧 끝난다고 하셨지요."

창훈의 얼굴에 피로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에게는 수호신도 초능력도 없다.

게다가 아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데다가 아내의 수호신이 심어놓은 독기가 시시각각으로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

한창훈은 말하자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시한부 환자 같은 신세였다.

"예 맞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상원이 창훈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저게... 원래 내가 당했을 일이지.'

부부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승천 시험을 준비하던 새하늘교가 상원 남매에게 맡긴 역할이 저것이었다.

누나 조상은을 화신으로 삼은 <검은 숲의 목자>를 제어해서 새하늘교 세력의 전투원으로 삼는 것.

새하늘교는 광인과 병자를 챙기면서 시험을 치러야 했겠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계획이었다.

검은 숲의 목자는 그 정도로 강하니까.

상원이 새하늘교를 탈출하면서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새하늘교도들은 차라리 죽어서라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택했다.

씁쓸했다.

그때 혜경이 상원의 대화를 끊었다.

"두 분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혜경이 상원을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그녀의 흰자위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얼굴 가득 걸린 미소가 섬뜩했다.

"우리 남편한테 수작 부리는 거면...."

그녀의 팔에 털이 부숭부숭했고, 옷 아래로 근육이 울룩불룩 솟았다.

"죽여 버릴 거야, 불신자."

그녀의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혜경이 날카로운 손톱이 돋은 손으로 상원을 가리켰다.

"씁!"

문혁이 재빠른 동작으로 별운검 자루를 쥐었다.

상원은 천천히 손을 들어 문혁을 제지했다.

"검은 숲의 목자."

상원이 혜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추방 주문을 외우기 위해 숨을 들이쉬는 찰나 혜경이 살짝 물러났다.

"흥."

혜경이 상원을 쏘아보았다.

"니 뜻대로는 안돼."

그 말과 함께 혜경이 털썩 주저앉았다.

검은 숲의 목자가 빠져나간 것이다.

그녀의 흰자위가 스르륵 흰 빛으로 돌아왔다.

성화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멍했다.

"헤헤."

헤벌쭉 웃는 그녀의 입가로 침 한 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아아."

창훈이 온 힘을 다해 아내를 끌어안았다.

"검은 숲의 목자... 도대체 이 자는 종잡을 수 없군요. 화신을 저딴 식으로 다루는 승천자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문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놈은 다른 승천자들이랑은 다릅니다. 화신은 철저히 재미를 위해 다뤄지는 인형일 뿐이죠."

자기 화신을 애지중지하는 승천자들과는 달리, 검은 숲의 목자는 화신의 안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처럼 자기 화신을 백치인 채로 내버려 두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모든 승천자들이 바라는 건 위업을 쌓는 것 아니었나요? 저래서 어떻게 위업을 쌓지요?"

"그놈은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그냥 깽판 치는 게 재밌을 뿐이죠."

문혁의 물음에 대답하는 상원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정말...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내를 끌어안은 창훈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창훈씨."

창훈이 상원을 올려다보았다.

"아시지요? 이제 열한 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훈씨는 이계로 가시게 될 겁니다."

"...네?"

창훈이 두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가... 그, 차원문에 들어가라고요?"

"예."

상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제가... 제가, 무슨 도움이 될까요?"

"됩니다. 창훈씨는 반드시 아나르에 가셔야 합니다."

상원이 창훈의 눈을 보았다.

상원은 그의 눈에서 자기도 무언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을 읽었다.

"창훈씨, 지금까지 수호신 없어서 좀 섭섭하셨지요?"

"하하, 그렇죠.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런데 우리 아내... 의 수호신 때문에, 계약을 맺지 못했죠."

창훈이 겸연쩍게 웃었다.

"기대하세요 창훈씨, 제가 좋은 계약 하나 알선해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창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검은 숲의 목자가 지금 관심을 완전히 꺼버린 게 아닙니다. 그놈이 들을 수 있으니...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어쨌든 그 계약 맺을 때까지 반드시 버티셔야 됩니다."

"네."

창훈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저 둘 중에...?"

"창훈씨가 저랑 같이 갑니다."

상원이 문혁의 말에 대답했다.

"창훈씨. 아나르에선 정말 정말 힘들 겁니다. 그래도 창훈 씨가 정말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혜경 씨랑은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아내는 여기 남는 건가요?"

"아니오."

창훈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 아가씨가 나랑 같이 가는 건가?"

그때 누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태성이었다.

"네, 어르신."

상원의 대답을 들은 태성이 상원을 지나쳐 부부에게 갔다.

"어허... 또 이런 몹쓸 꼴을 당했군. 검은 숲의 목자인지 뭔지 참 고얀 놈이야."

"배고파아. 밥 줘."

태성이 히죽대는 혜경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자, 금방 고쳐줌세."

"잠시만요 어르신. 잠깐만 이대로 두십시오."

“응?”

다른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로 상원을 보았다.

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성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어르신, 손 좀 줘보시겠습니까?"

"어? 그, 그래."

태성과 상원이 손을 맞잡자 두 남자의 손등에 박힌 시험의 표식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상원은 태성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중이었다.

상원이 태성에게 전수하는 건 바로 <검은 숲의 목자>를 제어하는 방법들이었다.

주문과 도구 제작, 그리고 약을 이용한 방법들.

상원은 그 방법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이용하는 데는 영 재능이 없었다.

반면 이 지식을 전수 받는 오태성은 <청낭의 의선>이라는 불세출의 위인을 수호신으로 둔 천재적인 치료사였다.

상원보다 주문도 도구도 훨씬 잘 다룰 것이다.

"오... 오오."

태성의 눈이 점점 커졌다.

상상치도 못한 조합식과 술식을 접한 충격이었다.

지식 전수가 이뤄지는 몇 분 동안 창훈과 문혁은 손을 맞잡은 두 남자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 허어... 이런."

지식 전수가 끝나고 태성이 깊은 탄식을 뱉었다.

"굉장하군... 이런 게 있다니."

"어르신, 지금 바로 <심지혈탕>과 <반부환>을 준비해주십시오. 약제실에 잠시 가 계시면 재료는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재료는 록시에게 부탁해두었다.

록시가 준비한 물품들은 브라이싱크론 지갑을 통해 이어지는 아공간에 보관되어 상원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 알겠네."

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르신도 이따가 17시에 뵙겠습니다."

"알았어. 이따 보지. 물건은 맡겨둬. 틀림없이 만들 테니까."

뒷짐을 진 태성이 홀홀 웃으며 멀어졌다.

"그럼 저희도 이따가 뵙지요."

"네."

상원은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 * *

해 지는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성역 서울역의 수험자 수백 명이 성화 곁에 모였다.

이계로 가는 차원문을 보기 위해서였다.

[남은 시간: 1:01]

상원은 11번째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된 시스템 메세지를 보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1시간이 되는 순간 하늘에서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나무의 자식들아."

익숙한 목소리였다.

일곱 쌍의 날개로 온몸을 감싼 산맥과도 같이 거대한 여인이 하늘에서 수험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승천 시험 전체를 관리하는 자, 기관의 정점인 집행자 <사마에트>였다.

"어... 어어?"

"저 여자가 왜...?"

수없는 시험을 거치면서 단련된 수험자들이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사마에트가 수험자들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건 두 번째 시험 이후로 처음이었다.

수험자들은 그녀의 압도적인 위용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녀가 자기 키만큼이나 거대한 두루마리를 펼쳤다.

"열 개의 환난이 지났다. 이제 아나르 땅으로 가는 문을 여나니 그 땅에 합당한 열은 이 문을 지나라."

그녀가 말을 마치자 거센 진동이 서울역을 덮쳤다.

그와 함께 땅바닥을 뚫고 거대한 형체가 솟아올랐다.

성화만큼이나 거대한 해골이었다.

"이... 이런!"

"갑자기?"

수험자들이 병장기를 뽑고 스킬을 준비했다.

"잠시, 멈추십시오."

상원의 외침에 수험자들이 무기를 거두었다.

으오오오오오

땅바닥에서 솟아오른 새하얀 해골이 입을 열자 낮은 굉음과 함께 입속에서 새파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나르로 가는 문이었다.

"자, 준비한 대로 갑시다."

상원이 불꽃을 향해 나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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