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8화 (68/230)

제68화. 이세계의 부름 (2)

"이제부터 저희가 가게 될 곳은 <아나르>라고 하는 차원입니다. 이세계(異世界)이지요."

아홉 명의 수험자가 상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나르에서 진행될 시험들에 대한 정보는 주신들에게나 전달됐을 것이다.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차원 아나르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세계... 면, 뭐 오크 나오고 드래곤 나오고 그래요? 9써클 헬파이어 막 이런 거.“

"에이 형님 설마 그런 거겠어요?"

"성님 거 게임 너무 많이 하신 거 아니요?"

만웅의 말에 송형우와 박준배가 농을 걸었다.

"아니 야 임마. 농담도 못 하냐?"

동생들의 핀잔에 뻘쭘해진 만웅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시답잖은 대화에 다른 수험자들이 하하 웃었다.

"하하, 그러게요. 형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지요. 지금 우리 사는 차원도 이 꼴이 됐는데."

문혁이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만웅이 말이 맞습니다."

상원이 살짝 웃으며 말하자 수험자들이 동그란 눈을 하고 상원을 쳐다보았다.

"맞다고요? 진짜?"

"반은."

어안이 벙벙해져 묻는 만웅의 말에 상원이 간단히 대답했다.

"11번부터 15번까지, 다섯 시험이 진행되는 차원 아나르는 검과 마법이 지배하는 이세계입니다. 아니, 그랬죠."

"그랬다는 건, 지금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문혁의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곳을 지배하는 건 망자들입니다."

상원의 말에 수험자들의 얼굴이 굳었다.

"망자라면, 거기도 죽은 자들이 걸어 다닌다는 뜻인가요? 성역의 바깥처럼?"

진아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나르에 비하면 여기는 쉬운 편입니다. 아나르의 망자 군대는 양에서도 질에서도, 이 세계의 마물들과는 격이 다릅니다."

"아아."

그 말에 진아가 탄식을 뱉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문혁도, 태성도, 강수와 명희도 침통한 얼굴이었다.

망자 계열 마물들은 아무리 마물이라 해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자들이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쌓이는 우울감과 피로는 상당했다.

그런데 그들과 본격적으로 맞서야 한다니.

수험자들로서는 마음이 무거운 게 당연했다.

"마음이 무거우신 건 이해합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겨우 11번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험은 39개.

이것보다 더한 상황도 숱하게 겪게 될 것이다.

"살아남아서, 승천하셔야지요."

상원의 말에 수험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의에 찬 눈으로 상원을 바라보았다.

"작전을 알려주십시오."

상원은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성화 옆에 열릴 차원문으로 열 명이 들어가게 됩니다만 모두 한곳으로 이동하는 건 아닙니다. 두 명씩 떨어져서 이동하게 되지요."

그리고 상원의 말이 이어졌다.

두 명씩 떨어진 사람들이 각자 시험들을 마치고 성지(聖地) <다림델>에 모인다.

거기 모여서 망자들에게 점령된, 신성 국가 <카이네딘>의 제도(帝都)를 탈환한다.

그게 아나르에서 치러지는 시험의 얼개다.

"누가 누구와 함께할지는 전적으로 운에 맡겨야 하나요?"

문혁의 말에 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두 명씩 들어가면 그 두 사람이 같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 어떻게 조를 짤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수험자들이 긴장 어린 눈으로 상원을 바라보았다.

"먼저 진아 씨와 문혁 씨가 같이 갑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별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냥 가셔서 시험을 순서대로 깨시면 됩니다. 성지에서 만납시다."

진아와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은 그 둘을 걱정하지 않았다.

성령 <낙원의 수문장>의 화신 윤진아, 그리고 영웅 <해안선의 귀신>의 화신 백문혁.

시험을 못 깰 수 없는 조합이다.

"다음으로 강수 씨랑 명희 씨가 같이 갑니다."

"그래? 그러면 돼?"

"네."

강수의 반문에 상원이 조용히 대답했다.

"두 분은 좋은 콤비에요. 같이 있을 때 최고의 시너지가 날 겁니다. 두 분은 지켜주셔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건 이따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수와 명희가 서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만웅 씨와 준배 씨가 같이 갑니다."

만웅과 준배가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면, 저는? 제가 어르신과 같이 가면 됩니까?"

"아니오."

만웅의 동생인 형우의 물음에 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르신만 가십니다. 형우 씨는 남습니다."

"예? 남아요?"

"네. 남아서 지금까지 문혁 씨가 하시던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송형우는 김만웅의 옆에서 조직을 관리해온 자다.

백문혁이 해온 일, 성역의 지휘와 수험자 육성 관리를 맡을 자로는 서울역의 모든 수험자 중 송형우가 가장 적합했다.

"야. 그러면 형우가 부지휘관 대리가 되는 거야? 우리 총무님 승진하셨네."

"이야, 부럽다!"

긴장으로 얼굴이 굳은 형우에게 만웅과 준배가 유쾌하게 말했다.

윤진아, 백문혁, 원강수, 박명희, 김만웅, 박준배 그리고 송형우.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이들이 상원의 세력이다.

상원은 몇몇 얼굴들을 생각했다.

주신 <천정의 재판관>의 화신, 지치지 않는 법률가 <스칼렛 이베르손> 같은 주신 급들을.

승천 시험은 단체전이다.

<검은 숲의 목자> 같은 극히 일부의 사례를 제외하면 혈혈단신으로 승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정보를 많이 가진 주신 급의 화신들은 자기 세력을 착실하게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자, 이상입니다. 나가셔서 다들 짐을 챙기세요. 가시면 식량이 부족할 겁니다. 배낭에 식량 위주로 짐을 챙기시고, 이따 17시가 되면 성화 옆에서 만나겠습니다."

상원의 말에 수험자들이 자리를 떴다.

"상원이. 그러면 나는... 누구와 가나?"

오태성이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잠시 성화 곁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나머지 내용은 제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성이 잠깐 눈을 찡그렸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잠깐만. 만웅이랑 준배는 잠깐 남아라."

준배가 막 문을 나서려는 찰나 상원이 준배를 붙잡았다.

"어 형님, 형님! 큰형님이 잠깐 들어오시랍니다."

준배가 복도로 나간 만웅을 불렀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만웅과 준배가 상원 건너편에 앉았다.

험상궂은 얼굴에 어깨가 떡 벌어진 거한들이었다.

상원은 김만웅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상원은 송혜경을 건드리려 했던 만웅을 막아섰다.

육마귀 중 하나인 <콘크리트 회장> 강상중을 낚을 미끼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만웅의 목숨을 구했고 계속 곁에 두었다.

이제 그 미끼를 쓸 때였다.

"만웅아."

상원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만웅과 준배도 긴장한 표정으로 상원을 보았다.

"너... 거기 가면 너네 회장님 만날 수도 있다."

그 말에 만웅과 준배가 눈을 크게 떴다.

준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젠장...."

만웅도 마찬가지였다.

육마귀 중 최강자 강상중, 그 이름을 말한 것만으로도 이 거한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강상중은 그런 위압감을 지닌 자였다.

'우리 회장님은... 괴물이요.'

그 말을 상원은 기억하고 있었다.

"여전히 무서울 거다. 지금 강상중은... 니가 기억하는 걸 넘어서는 괴물이 돼 있을 거야."

상원의 말에 만웅과 준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상원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강상중에게 가지고 있는 충성심은 두려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언젠가 상원은 만웅에게 넌지시 물었던 적이 있다.

왜 강상중같이 잔인한 자에게 충성하느냐고.

만웅은 대답했다.

밑바닥 인생이었던 자기를 이 자리까지 올려준 게 강상중이라고.

그건 애정이었다.

"만나면, 그래. 너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상원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형님."

만웅이 목소리가 무거웠다.

"언젠가... 형님이랑 회장님이 싸울 수도 있소?"

준배가 눈을 감고 푹 한숨을 쉬었다.

"글쎄. 나도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다."

상원이 피식 웃고 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소라 껍데기였다.

"받아라."

"이게 뭐유?"

만웅이 소라를 받았다.

"그거 <전음 소라기>라고, 무전기 같은 거다."

상원이 똑같이 생긴 소라를 꺼내며 말했다.

"되게 귀한 물건이야. 한 쌍밖에 못 구했는데, 그거 너한테 주는 거다."

"왜요?"

"너네 팀이 제일 걱정되니까."

상원의 말에 두 남자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윤진아와 백문혁은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원강수와 박명희는 일심동체 같은 호흡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만큼 너네 팀이 중요하니까. 지금 서울역에 너네만 한 행동파들은 없어. 잃으면 엄청난 손실이다."

그 말에 두 남자의 얼굴이 풀어졌다.

"그래, 그렇지요 형님? 우리만 한 사람이 없지?"

"맞어요. 우리 식구들 어디서 안 꿀리지."

만웅과 준배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거 마력 엄청 잡아먹는 물건이야.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이거 한 번 쓰면 니 마력은 한 번에 고갈될 거야."

그리고 <소라기>는 김만웅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줄 것이다.

그러면 강상중의 움직임도 알게 된다.

그 말은 만웅과 준배에게 하지 않았다.

"자, 가자."

자리에서 일어서는 상원을 두 남자가 따랐다.

* * *

서울역 광장에는 거대한 성화가 분홍빛 불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었다.

상원은 광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서서 가만히 성화를 바라보았다.

5번 시험에서 다섯 차원의 정수를 먹이고 6번 시험에서 잿불까지 집어넣은, 그리고 8~10번 시험을 거치면서 강해질 대로 강해진 성화였다.

나중에 아나르에서 진행되는 시험의 후반에 가게 되면 이 성화가 서울역 수험자들의 힘이 될 것이다.

"이 근처에 이만한 성화는 없었습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문혁의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건 거의 없을 겁니다. 다 문혁 씨가 잘 도와주셔서 그렇습니다. 수험자 수백 명을 지휘하면서 다른 성역들까지 관리하는 건 보통 수험자한테는 어림도 없죠."

문혁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문질렀다.

"형우 씨가 잘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문혁 씨만큼 하지는 못할 겁니다. 대신 저희가 가서 잘해야지요. 거기서 최대한 성장해서 성역에 기여해야 합니다."

상원의 말에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상원 씨. 지금까지 보니까 여덟이던데요. 나머지 둘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어르신은 상원 씨랑 가는 게 아닌가 보죠?"

문혁을 내려다보던 상원이 고개를 돌려 성화 쪽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두 분을 보러 가시죠."

상원과 문혁이 계단을 지나 성화로 다가갔다.

성화 곁에는 쉬고 있는 부상자들과 분주하게 그들을 돌보는 치료사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성화를 등지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가 있었다.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 송혜경, 그리고 목자가 자기 먹이로 점찍은 한창훈.

창훈은 검은 숲의 목자에게 나날이 잠식된 탓에 이제 거의 파리한 병자가 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태성과 혜경이 상원에게 배운 방법을 바탕으로 헌신적으로 간호한 결과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창훈은 진작 목자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설마...?"

문혁이 의아한 얼굴로 상원을 보았다.

"맞습니다. 저 부부입니다."

상원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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