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7화 (67/230)

제67화. 이세계의 부름 (1)

상원을 감싸고 있던 알이 갈라지면서 키이익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 맙소사...."

진아가 중얼거렸다.

"진아 씨, 빨리 가서 태성 어르신이랑 명희 씨 불러오세요."

문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앙지휘본부를 뛰쳐나갔다.

알의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커다란 세로 선이 생겼다.

그리고 마치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듯 세로 선을 따라 껍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껍질의 안쪽 벽에는 하얀 조명에 복잡한 패널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어서 마치 SF 영화에나 나오는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아직 상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원 씨?"

문혁이 조심스럽게 상원을 불러보았다.

그때 알 속에서 사람 하나가 비틀거리며 등장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문혁이 기억하는 상원의 모습은 말 그대로 거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알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비록 키는 크긴 했지만 그 정도의 거인은 아니었다.

길게 뻗은 몸에 크지 않은 근육들이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 늘씬한 체형이었다.

덥수룩한 장발이 어깨 아래까지 자라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문신이었다.

피부는 새하얀데 우반신에는 지진 문신이, 좌반신에는 번개 문신이 빼곡히 그려져 있어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 같았다.

"상원 씨? 상원 씨 맞아요?"

문혁이 주춤주춤 다가가며 물었다.

그때 알에서 나온 남자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헙."

얼굴을 본 문혁이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문혁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문혁이 예전에 연예인을 실물로 잠깐 보았을 때 느꼈던 아우라.

남자에게선 그와 비슷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아아, 오랜만이에요 문혁 씨."

남자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문혁이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여린 얼굴선, 새하얀 피부, 붉은 기가 약간 도는 입술.

상원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특징이었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니 이목구비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조상원이었다.

"아아, 상원 씨."

순간 무릎이 풀렸는지 문혁이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하하하."

문혁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문혁에게 다가간 상원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내일이 11번 시험입니다."

문혁이 상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말에 상원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인상은 바뀌었지만 미간을 찡그리는 버릇은 문혁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두 달 정도 지났군요."

상원의 말에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일이 있었겠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요."

문혁이 방 한편에 서 있는 철제 옷장에서 옷 몇 벌을 꺼내 상원에게 건넸다.

"일단 이것부터 입으시죠. 사이즈가 얼추 맞을 것 같습니다. 예전 같아선 상원 씨한테 제 옷은 턱도 없었을 텐데."

문혁이 피식 웃었다.

"좀 있으면 태성 어르신이 오실 테니 몸 한 번 보시고요. 그 뒤에 말씀을 좀 들어보죠.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혁이 준 옷을 입었다.

기장이 짧고 어깨가 많이 끼었지만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상원이 옷을 입고 방 가운데 테이블에 앉는 동안 문혁은 커피를 준비했다.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 먹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누가 군인 아니랄까 봐.'

상원이 피식 웃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혁 씨, 어떻게, 어떻게 됐어요?"

진아의 목소리였다.

상원은 문을 열고 나타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조막만 한 얼굴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걸친 윤진아의 모습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머리를 짧게 깎은 오태성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두 사람이 상원을 보았다.

"어? 이분은 누구...?"

진아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태성이 상원의 얼굴과 한쪽이 열린 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네... 상원이...?"

"예? 아니, 이 사람이 어딜 봐서 상원 씨에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진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조상원."

상원이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맞네. 이목구비가 그대로잖아. 자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몸은 이상 없어?"

태성이 상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어르신."

상원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정말로? 진짜 상원 씨에요?"

진아가 상원 앞에 얼굴을 쑥 들이댔다.

"그럴 리가. 너무 잘생겼는데?"

진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런 걸로 의심받으니까 기분이 좀 그렇네요."

상원의 씁쓸한 말에 다른 사람들이 하하 웃었다.

* * *

개성이 불신자인 상원이 승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곱 업적으로 이루어진 일곱 별의 왕관을 얻는 것이다.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한 업적들, 상원이 그걸 이룰 꿈을 꾸게 된 건 회귀하면서 <기계장치의 신>이 준 의체 <신화의 몸> 덕분이었다.

남들의 능력치 총합이 10 안팎일 때 상원은 130으로 시작했다.

거기다 스킬 복사, 레벨업 시 스탯 20과 스킬포인트 제공, 회귀 능력까지, 의체에는 반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능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심지어 승천자들의 힘을 카피해서 쓸 수 있는 <강신회로>까지.

상원은 그 모든 걸 걸고 다섯 마신 중 하나 <태초의 대족장>과 맞섰고, 결국 살아남았다.

상원은 그렇게 첫 번째 업적 <네 번째 문의 봉인자>를 달성했다.

그 대가로 의체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운동능력의 영구적 저하, 스킬 메모리의 손실, 모래시계 충전율 하락

나아가 죽음이 눈앞에 왔다.

그렇게 정말로 탈락의 위기에 갔을 때, 의체가 '긴급 수복 절차'에 돌입했다.

의체는 마지막 남은 자원을 짜내 회복실을 만들었다.

만웅이 가져온 알이 그 회복실이었다.

회복실 안에서 상원은 두 달을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상원은 꿈을 꾸었다.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죽은 새하늘교도들이 연옥의 감옥 속에서 멍하게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원은 슬프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새하늘 주인>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에서 들불처럼 타올랐다.

그리고 <기계장치의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의 능력치와 스킬을 잃어버렸는데, 그건 의체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그렇지만 강신회로에 마신의 힘을 담았으니 전투력 자체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을 거라고.

이제 가서 나머지 별들을 먹고 자신에게 권좌를 안겨달라고.

'알겠소. 그깟 권좌, 얼마든지 안겨드리지.'

상원은 생각했다.

'그리고 승천자가 되어서 언젠가 내가 권좌에 오를 때가 오면, 그땐 이 모든 시험을 끝내버릴 거요.'

상원은 눈을 떴다.

[긴급 수복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회복실을 개방합니다.]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회복실의 문이 열렸다.

* * *

상원은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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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만 표시됩니다.

레벨 8 (84%)

성능: 괴력 35, 용력 35, 술력 70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3), 하늘의 불씨(2), 지하의 문(2), 동굴적 감각 (복구 중)

모래시계 충전 시간: 1분 2초

강신회로: 태초의 대족장

달성 업적: 네 번째 문의 봉인자

일곱 별의 왕관 진척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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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장치의 신은 대부분의 능력치와 스킬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상원은 그게 어느 정도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물리력은 말 그대로 반 토막이 났다.

강신회로를 지탱할 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리력을 희생한 탓이었다.

이 정도면 주신을 등에 업은 최상급 전사들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정도였다.

결투장과 살기가 들린 연장을 비롯해서 많은 스킬들이 소실되었다.

'복구 중'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잃어버린 다른 스킬들도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모래시계 충전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동안 1분이면 하루당 1초라는 얘기였는데, 수복 전의 1/20도 채 되지 않았다.

아까웠다.

하지만 상원은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다.

기계장치의 신은 강신회로에 <태초의 대족장>의 힘을 담은 지금, 전투력은 이전보다 올라갔을 거라고 했다.

상원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대족장의 힘이라.'

상원은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회복실 안에서 변형된 몸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왜소했지만 그래도 일반인을 기준으로는 거인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었다.

문혁이 준 옷의 팔 길이는 상원에겐 턱없이 짧아서 전완이 반 넘게 드러났다.

드러난 새하얀 팔뚝 위로 문신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른팔은 지진 모양, 왼팔은 번개 모양.

태초의 대족장과 같은 문신이 좌우 반대로 새겨져 있었다.

강신회로에 대족장의 힘을 담은 흔적이었다.

상원은 왼팔에 살짝 힘을 주어 보았다.

지지직

문양이 파랗게 빛나면서 시퍼런 스파크가 번쩍였다.

이 정도면 번개 계열의 상위 신들도 주지 못하는 힘이었다.

주신급인 <시공간의 세습자>나 <천둥을 부리는 대전사>에게도 비벼볼 수 있다.

더 놀라운 건 이게 단지 힘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오른손을 통해 발휘되는 대지의 힘도 주신급에 필적할 정도였다.

"대단한데."

상원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금 승천 게임판에서 상원을 넘볼 주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원은 죽음의 위기를 넘어 단단한 전사에서 강력한 주술사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뭐가 대단해요?"

진아가 물었다.

널따란 테이블 건너편에서 진아가 두 손을 얼굴을 받친 채로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상원이 상태창을 닫았다.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하면 사람 얼굴이 그렇게 변해요? 저 기계 사실 무슨 전신 성형 기계 같은 거...."

"진아 씨 지금 능력치가 어떻게 되시죠?"

상원이 진아의 말을 싹둑 잘랐다.

"에이 참.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사람 말 자를 만큼?"

"중요한 겁니다."

뾰로통한 진아의 말에 상원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 참 영혼은 똑같네. 지금 능력치가 괴력 19에 용력 19, 술력 38이네요."

능력치 총합 76.

11번 시험에 들어갈 때 이 정도 능력치면 누가 뭐래도 최상위인 수준이었다.

"준수하네요."

"그럼요. 제가 바로 <낙원의 성화>라구요."

진아가 씩 웃었다.

상원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낙원의 수문장>의 화신 윤진아와 <해안선의 귀신>의 화신 백문혁.

상원과 송혜경을 제외하면 이 둘이 성역 서울역의 톱들이었다.

그 옆으로 <자칭 협객>의 화신 김만웅과 <청낭의 의선>의 화신 오태성, <길잡이> 원강수와 <신실한 간호사> 박명희, 그리고 만웅의 동생 박준배와 송형우가 둘러앉아 있었다.

서울역의 최상위 전력들이었다.

"여러분이 여기 모인 이유, 짐작하시죠?"

그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11번 시험에 따라 이세계로 갈 10명을 추린 것일 거다.

"그런데... 아홉 명입니다?"

문혁이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예."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 한 명은 가지 않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잘 들으십시오. 11번 시험부터 이어지는 이세계 <네아>의 시험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그 작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원이 두 손을 깍지 끼고 말을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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