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6화 (66/230)

제66화. 하늘과 땅의 주술사 (4)

<일곱 별의 왕관>은 달성 불가능한 일곱 업적을 모두 이루었을 때 받는 칭호다.

기능은 소유자에게 '신격'을 주는 것 하나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기능이 상원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개성 때문에 수호신의 신격을 나누어 받을 수 없는 상원이 반드시 신격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는 50번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은 일곱 별의 왕관을 얻는 것 하나뿐이다.

소유한 것만으로 신격을 받는다는 건, 그 칭호를 얻는 것만으로 신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신에 가까워지는 그 일곱 업적, 그 중 첫 번째가 이것이었다.

'7번 시험 델타 루트에서 중앙섬을 벗어나지 않고 생존할 것.'

그러니까, 마신 <태초의 대족장>에게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다.

시험 최후반부에 다다른 최상급 수험자들, 예컨대 세브로 랭킹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들도 마신과 직면해서 생존하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상원은 지금 그 불가능한 업적에 다가가고 있었다.

능력치도 변변한 스킬도 없는 상원이 대족장에게 맞설 수 있는 건 의체의 기능 <강신회로>, 그리고 지식 덕분이었다.

승천 시험을 떠받치는 다섯 마신은 각각의 특징이 있다.

상원은 노트에서 봤던 문장을 떠올렸다.

[태초의 대족장은 하늘의 정령왕과 땅의 정령왕 그리고 두 정령왕을 담은 주술사, 셋의 일체다. 상극인 두 힘이 주술사라는 그릇 안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

대족장의 힘은 상극이다.

하늘의 힘에 땅의 힘으로 맞서고 땅의 힘에 하늘의 힘으로 맞서면 형편없는 마력량으로라도 찰나의 순간은 버틸 수 있다.

"으으으윽!"

상원이 이를 갈며 양손을 교차했다.

오른손의 열기와 왼손의 전류가 태초의 대족장이 내뿜는 기운과 만나 상쇄되기 시작했다.

두 힘이 맞부딪히는 곳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섬광과 온 몸을 부술 듯한 진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상원은 강신회로의 사기성을 절감했다.

대족장의 화신인 대주술사 뮈노 메드냅은 주술 실력으로는 적수를 찾을 수 없는 괴물이다.

상원이 3번 시험에서 만났던 대강령술사 오디나스, 그의 스승도 존재의 지평을 달리하는 천재였지만 대주술사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상원에게 있는 건 지식과 암기력 뿐, 그걸 활용할 재능이 특출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강신회로는 그 강대하고 복잡한 힘을 유려하게 다루고 있었다.

마치 천문학적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슈퍼컴퓨터처럼.

"크아아악!"

전류와 열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상원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회귀한 이후로는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고작 일개 수험자일 뿐인 상원이 그렇게 태초의 대족장과 맞서고 있었다.

키가 5미터를 넘어가는 거대한 금강족 주술사가 허공 1미터 정도 높이를 밟고 서 있었다.

상원은 무릎을 꿇은 채로 그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마신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대주술사의 코에서 흐른 찐득한 피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인간과 같은 빨간색 피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상원이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결국은 필멸자.

두 정령왕의 힘을 몸에 담고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땅에 떨어진 피는 대주술사의 몸에 무리가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사실 맞선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 마신의 격에 휩쓸려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악하는 것, 그게 상원이 하고있는 전부였다.

대족장에게 상원을 해할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상원은 단 1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대족장은 마음먹는다면 상원 같은 건 개미보다 쉽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 허허.

태초의 대족장이 상원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상원의 머릿속에 울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먼 곳을 지나가는 황량한 바람 소리처럼 느껴졌다.

- 그대는,

마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 신에 다가가려는가.

마신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중앙섬 바깥의 균열에서 끝도 없이 높은 용암 벽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하늘에서 눈부신 벼락 줄기들이 상원과 마신의 주변에 내리꽂혔다.

벼락 줄기가 워낙 촘촘해서 빛나는 장막처럼 보일 정도였다.

"커헉!"

상원이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경고: 강신회로의 출력량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더 진행할 경우 의체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경고: 의체의 손상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위험을 경고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 울려댔다.

"시끄러워!"

상원이 외쳤다.

"그래, 나는 신에 다가갈 거요! 저 하늘에 올라서, 나의 죄를 씻고, 그리고."

상원의 눈에서 붉고 푸른 안광이 폭사했다.

"수많은 세계를 이 꼴로 만든 이 시험판을 끝장낼 거요."

새하늘교에서의 10년과 시험에 들기까지의 10년, 회귀 전 겪었던 50개의 시험과 다시 걸어온 일곱 시험이 상원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죽지 못해 살았던 상원에게 시험이 시작되고 속죄라는 목표가 생겼고, 끝까지 갔던 시험을 다시 치르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저지른 죄를 씻는 것, 그걸 넘어서 수많은 삶을 나락에 빠뜨린 이 시험의 세계를 끝장낼 것이다.

쩍!

턱 아래에서 양손 끝까지, 피부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그 아래로 새까만 인조 근육이 드러났다.

왼팔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맹렬하게 튀었다.

오른팔에서 새빨간 쇳물이 뚝뚝 떨어졌다.

[강신회로의 출력량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강신회로의 출력량 유지를 유일 목표로 설정하여 충격을 분산합니다.]

[다른 기관으로부터 자원을 전환 및 분산하여 강신회로에 투입합니다.]

상원은 몸에서 급격히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상원의 몸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인조 근육들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 흐으.

바람 같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투둑 투둑

마신의 코피 몇 방울이 더 떨어졌다.

‘얼마 남지 않았다.’

[동력기관의 손상이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최소 동력 모드로 전환합니다.]

[운동기관의 손상이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운동 조율 기능을 강제 종료합니다.]

"컥!"

상원이 고개를 툭 떨궜다.

기능이 정지되다시피 한 몸에서 대족장의 힘을 담은 강신회로만이 맹렬하게 폭주하고 있었다.

몰아치는 폭풍과 울부짖는 화산 가운데서 마신이 무릎 꿇은 불신자를 내려다보았다.

[의체의 손상이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스킬 메모리가 손상되었습니다. 스킬 손실률: 3%]

[손상에 따라 모래시계의 충전율이 저하됩니다.]

경고 메시지가 폭주했다.

의체가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그... 으으으윽...!"

비명을 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발성기관의 작동마저 정지된 탓이었다.

의체의 각종 기능들이 정지되고 손상됐는데도 세포 하나하나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은 그대로 느껴졌다.

고통으로 가득 찬 순간순간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갑자기 고통이 멎었다.

상원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점점 멀어가는 시야에 마신의 몸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장면이 들어왔다.

정령왕들이 주술사의 몸을 떠나고 있었다.

- 수고했네.

마신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아아."

상원은 무릎을 꿇은 채로 양손을 짚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몰아치는 폭풍도 들끓던 마그마도 한순간 사라졌다.

중앙섬에는 지나칠 정도의 정적과 고요가 감돌았다.

"까아아악!"

먼 하늘에서 새가 울었다.

'드디어... 끝났군.'

7번 시험의 델타 루트가 드디어 끝났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영원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상원은 신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한 일곱 개의 업적, 그 중 첫 번째를 이루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50개의 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메시지였다.

[중앙섬에서 마신 <태초의 대족장>을 몰아냈습니다. 업적 <네 번째 문의 봉인자>를 달성하였습니다.]

순간 대낮의 쾌청한 하늘이 밤하늘로 바뀌었다.

형형색색의 별들이 알알이 박힌 밤하늘 가운데로 은하가 거대한 몸을 드리우고 있었다.

커다란 빛덩어리 하나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차원을 건너오는 특수 좀비들과도, <천정의 재판관>이 보내는 별의 군대와도 달랐다.

빛덩어리는 그것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고 영롱했다.

[일곱 별의 왕관을 이루는 일곱 별들 중 첫 번째 별을 획득하였습니다.]

"허어."

시스템 메시지를 듣고 상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의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의체가 수복됩니다.]

[의체의 손상이 심각합니다. 의체 긴급 수복 절차에 돌입합니다. 레벨업 효과의 수복 자원을 긴급 수복에 투입합니다. 이 과정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됩니다.]

레벨업 한 번으로 부서진 의체가 깨끗이 회복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상원은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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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만 표시됩니다.

의체 긴급 수복 절차에 돌입하여 자원 분배를 조정 중에 있습니다.

표시 가능한 확정 정보만 표시됩니다.

레벨 8 (84%)

강신회로: 태초의 대족장

달성 업적: 네번째 문의 봉인자

일곱 별의 왕관 진척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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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잉 하고 귓전이 울렸다.

그 귓가에 상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형님!"

만웅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상원은 정신을 놓았다.

* * *

서울역의 중앙지휘본부.

문혁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하아."

한숨을 쉰 문혁이 안경을 벗고 얼굴을 쓸었다.

문혁의 뒤에 걸린 전술지도는 전보다 훨씬 넓어져서, 용산구와 중구에 거의 전체에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부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촌과 이태원, 명동대성당 같은 주요 성역들이 커다란 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다들 5번 시험에서 차원의 정수 두 개 이상은 먹은 성지들이었다.

서울역을 포함하여 현재 도합 일곱 개의 성역이 백문혁의 지휘 하에 있었다.

널따란 지휘 본부의 반대쪽에는 강철로 만든 것 같은 커다란 알이 있었다.

금속 질의 표면으로 반사광이 흘렀다.

저 알 속에 상원이 들어있었다.

일곱 번째 시험이 끝나고, 델타 루트로 상원을 데리러 간 만웅은 상원 대신 저 알을 가져왔다.

그리고 말했다.

저 속에 상원이 들어있다고.

그게 두 달 전이었다.

두 달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상원이 평소에 주문한 것 두 가지가 있었다.

단련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 것.

그리고 만신전의 '신앙 분배' 기능을 이용하여 특별히 뒤처지는 수험자가 없도록 할 것.

'어떤 수험자의 특기가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릅니다.'

그게 상원의 말이었다.

그렇게 성역 서울역은 세 개의 시험을 이겨내고, 여섯 개의 성역을 동맹으로 삼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11번째 시험 공지가 떴다.

[열한 번째 시험 <이세계의 부름>을 시작합니다.]

[48시간 뒤, 이세계로 가는 차원문이 성역에 열립니다.]

[각 성역은 48시간 안에 이세계로 갈 10명을 선발해야 합니다.]

[실패할 경우 성역의 불꽃이 한 단계 약해집니다.]

그게 다였다.

수험자들은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로 열 명을 보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열 명을 골라야 한다는 말인가.

똑똑

문혁이 골머리를 잡고 있을 때 누군가 책상을 두드렸다.

"고민이 많아 보여요."

윤진아였다.

그녀가 캔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대부분의 수험자들이 마물의 살코기로 연명하는 처지였지만 서울역은 처음부터 대형 마트를 끼고 있던 덕에 캔커피같은 멸망 전의 물건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내일 시험 때문이죠?"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상원 씨가 있으면 척척 결정해줄 텐데요."

"그러게요. 도대체 저 알은 언제... 어?"

문혁의 말이 끊겼다.

진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두 달 동안 미동도 없던 알의 표면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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