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5화 (65/230)

제65화. 하늘과 땅의 주술사 (3)

상원은 감마 루트로 가는 차원문으로 들어갔다.

온몸을 부숴버릴 것 같은 중압감이 상원을 짓눌렀다.

"으... 으으윽!"

상원은 이를 갈며 고통을 참았다.

분명히 한번 겪어본 중압감인데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강신회로에 입력된 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체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2%]

[의체에 무리한 충격을 주지 마십시오.]

의체를 만든 승천자 기계장치의 신이 새로 심어준 기능인 강신회로는 사용하기 여간 까다로운 기능이 아니었다.

힘을 입력하기 위해 신을 직접 대면해야 했다.

나아가 그 힘을 쓰기 위해선 의체를 업데이트해야 했는데, 업데이트를 하는 동안에는 고통에 취약해졌다.

이것 말고도 패널티가 있을지도 모른다.

"젠장...!"

꽉 쥔 주먹에서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강신회로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업데이트를 취소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버텨야 했다.

지금 여기서 이 힘을 다루지 못하면 <일곱 별의 왕관>을 이루는 첫 번째 별은 얻지 못한다.

개성인 <불신자> 때문에 수호 계약을 맺지 못하는 상원이 승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일곱 별의 왕관>을 완성해서 신격을 받는 것뿐이다.

첫 번째 별을 얻지 못하면 승천도 없다.

상원 때문에 죽은 누나와 아버지, 그리고 새하늘교도들에게 속죄할 길도 없어진다.

'버티자! 버터야 된다!'

상원은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곧 주변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상원이 눈을 떴다.

하늘 위에는 거대한 태풍이 회오리쳤고 눈앞에는 광대한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내 감마 루트에 넘어온 것이다.

2회차에 겪었던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2회차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여기가 감마 루트로군요."

남색 정장 차림의 백인 여성, <별들의 지휘관> 스칼렛 이베르손이 굳을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도 차원문의 압력을 이겨내느라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상원은 그녀가 정신을 잃지 않은 데 감탄했다.

그녀보다 능력치가 높은 황선우도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스칼렛은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압력을 버텨낸 것이다.

절벽 가까이 다가간 스칼렛이 계곡 아래를 바라보았다.

"어떤 곳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 스케일이 대단한데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용돌이치는 모래 먼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중앙섬으로 가는 바람길."

그녀가 바람길을 향해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상원을 보았다.

"가야죠?"

스칼렛의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윽...!"

그때 황선우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젠장... 죽는 줄 알았네. 으... 머리야."

황선우가 지끈거리는 옆머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어? 너도 왔네 고릴라? 어라, 그리고... 이쁜이?"

황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빨리 가요. 저 치랑은 단 1초도 더 같이 있고 싶지 않으니까."

나직이 말한 스칼렛이 바람길 안으로 걸어갔다.

스칼렛의 발밑에 모인 바람이 한순간 폭발하며 하늘 높이 그녀를 쏘았다.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로켓처럼 그녀의 모습이 멀어졌다.

"뭐... 뭐, 뭐야 저거? 날아간 거야?"

황선우가 스칼렛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상원은 그런 선우를 보며 피식 웃고는 스칼렛을 따라 바람길 안으로 들어갔다.

쾅!

상원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부서진 광야의 대주술사 <뮈노 메드냅>이 중앙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 환영하오 인간.

대주술사의 전음이 들렸다.

- 그런데 우리... 구면이던가?

대주술사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의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스칼렛이 얼굴을 구겼다.

"부서진 광야의 대주술사."

스칼렛이 소름이 돋은 양팔을 문질렀다.

그녀는 알고 있다.

감마 루트의 목표, 지금 저 앞에 있는 깡마른 금강족 노인이 7번 시험의 끝이 아니라는 걸.

사실 감마 루트는 클리어할 수 없다는 걸.

그 사실을 모르는 영웅들이 중앙섬에 도착하고 있었다.

"와 이거 죽이네!"

선우가 경박한 외침과 함께 중앙섬에 착지했다.

뒤이어 수많은 영웅들이 자신의 도래를 선포했다.

부서진 광야의 대주술사를 물리치고 감마 루트를 클리어한 대영웅이라는 명성, 그걸 얻으려는 사람들이.

"<바다에 둘러싸인 방패> 파스칼 셰플러! 내 방패는 뚫리지 않는다!"

"나는 <빛나는 땅의 수호자> 루이즈 생 피에르! 누구도 기적의 군대를 막지 못하리라!"

"<칠천 섬의 정벌자> 납시오!"

스칼렛 이베르손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공명심에 눈먼 멍청이들."

말은 거칠었지만, 상원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일말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여자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1회차에서 만났던 스칼렛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때의 그녀였다면 저 영웅들은 그녀에게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을 것이다.

"저놈은 내꺼다."

비명에 가까운 황선우의 외침이 상원의 생각을 끊었다.

장강을 태운 불꽃이 대주술사에게 작렬했다.

그 뒤로 영웅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스칼렛이 말없이 상원을 보았다.

이제 어떡할 거냐는 눈빛이었다.

"이제 보여드리지. 어떻게 할지."

상원이 스킬을 준비했다.

1회차에서 대주술사를 단매에 빈사 상태로 만들었던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하지만 다음에 뜬 메시지는 상원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강신회로 사용을 위한 의체 업데이트에 따라 현재는 의체 변형이 필요한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허?"

상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헛웃음을 뱉었다.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사용할 수 없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죠?"

"예상 못 한 변수가 생겼네요."

덤덤한 상원의 대답에 스칼렛이 피식 웃었다.

"아까 나한테 보여준다던 거, 확실히 보여줄 수 있죠?"

상원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델타 루트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써야 하는 건 아니었다.

위력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상원에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스킬들이 얼마든지 있다.

상원은 브라이싱크론 지갑에서 주지사의 샷건을 꺼내 들었다.

묵직한 장총이 상원의 손 위에서 휘릭 휘릭 회전했다.

"정말 다시 봐도 무식한 물건이네요."

스칼렛은 베타 루트에서 상원이 장총을 다루는 걸 보았다.

"그런데, 그걸로 되겠어요?"

그 말을 하고 스칼렛이 하늘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연한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하늘에 별들이 하나둘씩 뜨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하늘을 잔뜩 뒤덮은 먹구름 속에서도 별들은 총총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아."

"오오... 이건 대체?"

영웅들이 하늘을 보며 탄성을 뱉었다.

새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시험을 지켜보는 고고한 주신 중 하나, <천정의 재판관>이 화신에게 권능을 내려주고 있었다.

"대단한데."

상원도 상원대로 놀라고 있었다.

천정의 재판관은 분명히 알고 있다.

7번 시험의 감마 루트는 영웅들의 무덤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고한 재판관이, 제 발로 사지에 들어선 화신을 위해 별들의 군대를 기꺼이 내려주고 있었다.

끝끝내 자기 수호신마저 설득하는 지치지 않는 법률가, 스칼렛 이베르손은 그런 사람이다.

퉁- 퉁-

하늘에서 내리꽂힌 별빛이 군대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별들의 지휘관> 스칼렛 이베르손이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가 전방을 향해 뻗었다.

"진군!"

"오오오오오."

빛나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별의 군대가 대주술사를 향해 돌격했다.

스칼렛의 능력치는 여기 있는 영웅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뒤를 받쳐주는 수호신이 주신급이다.

그 격의 차이를 상원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 이... 이 정도였어?"

황선우는 그녀의 진정한 힘을 몰랐을 것이다.

당연하다.

스칼렛 같이 조심스러운 사람이 황선우 같은 망나니 앞에서 함부로 자기 힘을 드러냈을 리 없다.

그 말인즉, 스칼렛이 힘을 펼쳐 보였다는 건 황선우가 죽을 거란 사실을 예측했다는 뜻이다.

황선우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 다.

"끝내주네."

피식 웃은 상원이 샷건을 뽑아 들고 대주술사를 향해 돌격했다.

* * *

[7번 시험 후란의 <델타 루트>를 시작합니다.]

그 메시지가 떴을 때 상원은 스칼렛 옆에 돌아와 있었다.

스칼렛 옆에 바로 붙어있지 않고서는 그녀를 살릴 수 없으니까.

"뭐... 델타...? 그런 게 있었어?"

"잠깐만. 감마? 감마는?"

영웅들이 술렁술렁댔다.

하늘에서 번개가 미친 듯 춤추기 시작했다.

초고층 빌딩만 한 용암 기둥들이 바닷물을 증발시키며 솟아올랐다.

1회차에서 보았던, 대족장의 강림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 이런 씨발...."

적벽의 대도독에게 버림받은 황선우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제 보여줄 걸 보여줘야죠?"

제법 호기롭게 말하는 스칼렛이었지만 목소리가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쉼 없이 하늘을 유린하는 섬광 속에서도 총총한 별들이 보였다.

그녀의 수호신, <천정의 재판관>이 아직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신의 강림에 지레 겁을 먹고 꼬리를 말아버린 영령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후우."

상원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앞을 보았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대주술사, 태초의 대족장이 눈을 떴다.

- 그대로군.

대족장이 서서히 상원에게 다가왔다

"커어어어억!"

황선우를 비롯하여, 대족장의 격을 이겨내지 못한 수험자들이 피를 토하며 절명했다.

"끄으으으윽!"

털썩 무릎을 꿇은 스칼렛의 입가에 침이 주르륵 흘렀다.

"빠... 빨리...."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의체 업데이트가 끝났습니다. 강신회로를 사용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상원은 양팔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왼팔엔 번개 문신이 오른손엔 지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양 손끝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상원이 지금껏 사용해왔던 그 어떠한 힘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힘이었다.

상원이 스칼렛을 내려다보았다.

눈이 완전히 풀린 채 주저앉은 그녀의 바지 아래로 배설물이 흘렀다.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렸군.'

이래서야 상원에게 도움을 받은 걸 기억할 리 없다.

상원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가 하는 일을 기억할 자가, 거기에 있었다.

"<천정의 재판관>! 오늘 이 일은 반드시 기억하리라 믿소!"

별들이 천천히 일렁였다.

[신의 힘을 불러옵니다. 대상: 태초의 대족장]

[불러올 힘이 너무 강합니다. 의체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그럼!"

돌이킬 수 없게 손상되더라도 어쩔 것인가.

상원이 승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것인데.

[사용 승인. 강신회로에 태초의 대족장을 담습니다.]

왼손에서 올라온 전류와 오른손에서 올라온 열기가 상원의 몸을 관통했다.

이것이 승천 시험을 떠받치는 다섯 마신 중 하나, 첫 시간의 정령왕, 태초의 대족장의 힘이었다.

이제 상원의 눈에 하늘을 오가는 바람길이 보였다.

"하앗!"

상원이 왼손을 지면에 박았다.

그러자 무지막지한 돌풍이 솟구쳐 스칼렛 이베르손을 멀리 날려 보냈다.

과연 엄청난 힘이었다.

바람 계열의 어떤 수호신들도 이 정도 권능은 줄 수 없다.

하늘로 솟아오른 스칼렛이 바람길에 휩쓸려 먼 곳으로 날아갔다.

장담한 대로 스칼렛은 살렸다.

이제 눈앞에 있는 이 자가 문제였다.

- 허허.

저 까마득한 곳에서 태초의 대족장이 상원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