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3화 (63/230)

제63화. 하늘과 땅의 주술사 (1)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눈앞에서 상아색 불꽃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베타 루트와는 차원이 다른 무지막지한 중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크으으윽!"

상원은 그 중압감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상원이 이 정도라면 웬만한 수험자들은 이 차원문을 통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역시 감마 루트.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군.'

으드득!

상원은 이를 갈며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기를 얼마간, 마침내 상원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허어."

상원이 한숨을 쉬었다.

베타 루트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 위로는 거대한 태풍이 소용돌이쳤다.

격렬하게 회전하는 태풍의 눈 가운데 짙은 먹구름이 꿈틀거렸다.

상원의 눈앞에는 거대한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계곡 건너편까지는 족히 수십 미터는 될 것 같았다.

여기가 수험자들을 맞이할 7번 시험의 <감마 루트>였다.

절벽 가까이 다가간 상원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수백 미터는 될 것 같은 절벽 밑에서 파도가 미친 듯 너울거리고 있었다.

"으으윽...!"

상원보다 먼저 건너왔던 황선우가 신음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감마 루트로 넘어오다가 실신한 것 같았다.

감마 루트의 중압감은 능력치 총합 70에 달하는 수험자들도 멀쩡하지 못할 정도였다.

"젠장... 죽는 줄 알았네. 으... 머리야."

황선우가 지끈거리는 옆머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어? 너도 왔네 고릴라?"

상원의 곁에 다가온 황선우가 절벽 밑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저기 빠지면 백 퍼센트 사망이잖아. 이거 어떻게 <중앙섬>으로 건너가라는 거야?"

감마 루트 공략은 '중앙섬'에서 이루어진다.

적벽의 대도독이 아는 건 그 정도인 듯했다.

상원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새끼가 대답도 없이 건방지게."

황선우가 이죽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상원이 가리킨 곳에서 모래 먼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소용돌이의 지름은 1미터 남짓 돼 보였다.

"저게 뭐?"

상원은 황선우를 뒤로 하고 모래 먼지를 향해 다가갔다.

"이렇게 가는 거다."

황선우를 향해 씩 웃고 나서 상원은 모래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후우웅 소리와 함께 상원의 발밑으로 바람이 모였다.

쾅!

모인 바람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그 반발력으로 상원은 굉장한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하늘 높이 솟구친 상원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태초의 대족장이 지배하는 땅을 왜 부서진 광야라 부르는지, 이곳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발밑에 있는 건 말 그대로 부서진 광야였다.

거대한 대륙이 산산이 찢어졌다.

앞서 보았던 계곡은 땅이 찢어진 자국이었다.

어떤 존재도 피해갈 수 없는 재해, 그 끝없는 힘이 느껴졌다.

'저기군.'

저 멀리에 유독 거대하고 둥근 땅덩이가 보였다.

땅이 찢어진 자국은 그 둥근 땅덩이를 중심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상원을 태운 바람이 이끄는 곳, 저 둥근 땅덩이가 감마 루트의 무대인 중앙 섬이었다.

후우우웅

상원의 귓가로 파공음이 들렸다.

중앙 섬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가까워져 왔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능력치 총합 210인 상원이라도 피떡이 되어버릴 것이다.

"흡!"

상원이 숨을 들이쉬어 배를 단단하게 채웠다.

상원의 몸이 지면에 부딪히려는 찰나 발밑에서 격렬한 바람이 몰아쳤다.

스르륵

상원은 바람 덕택에 중앙 섬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섬의 표면은 평평했다.

그래서인지 섬이 상당히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가운데 있는 인물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구의 유인원, 금강족이었다.

그런데 베타 루트에서 보았던 4급 마물 금강역사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근육 덩어리인 금강역사와는 달리 깡마른 몸에 배만 튀어나온 데다 온몸에 주름이 쭈글쭈글했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전신을 뒤덮은 문신이었다.

우반신에 벼락 문신이, 좌반신에 지진 문신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 환영하오, 인간.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저 금강족 노인의 전음이었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자를 고작 7번 시험에 데려다 놓다니.'

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회귀 이후로 이렇게 긴장되는 건 처음이었다.

7번 시험의 감마 루트를 지키는 존재, 저자가 <부서진 광야>의 대주술사 <뮈노 메드냅>이었다.

* * *

"와 이거 죽이네!"

상원의 뒤를 따라온 선우가 경박한 외침과 함께 중앙섬에 착지했다.

선우뿐만이 아니었다.

베타 루트는 백 개가 넘지만 감마 루트는 하나다.

수많은 베타 루트로부터 영웅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쾅!

둔중한 소리와 함께 덩치가 상원만큼이나 커 보이는 흑인 남자가 착지했다.

그는 자기 몸을 다 덮을 정도로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었다.

"<바다에 둘러싸인 방패> 파스칼 셰플러! 내 방패는 뚫리지 않는다!"

그 옆으로 착지한 건 백인 소녀였다.

그녀의 흑단같은 단발머리가 흩날렸다.

"나는 <빛나는 땅의 수호자> 루이즈 생 피에르! 누구도 기적의 군대를 막지 못하리라!"

그 뒤로 수많은 영웅들이 중앙섬에 도래했다.

"<칠천 섬의 정벌자> 납시오!"

"여기 <죽지 않는 용살해자>가 왔다!"

바다에 둘러싸인 방패, 빛나는 땅의 수호자, 칠천 섬의 정벌자, 하나같이 엄청난 힘을 가진 영령들이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영웅들이 자신의 도래를 선포했다.

하나하나가 <적벽의 대도독>에 못지않거나 그 이상으로 강한 화신들이었다.

그 위세에 상원마저도 무릎이 저릿할 정도였다.

여기 모인 이들이 현시점 승천 시험의 최강자들이었다.

그리고 상원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회귀 전에, 왜 그 수많은 영웅들 중 누구도 만나볼 수 없었는지.

"허어, 이런 거였군."

"뭐 하는 거냐 고릴라, 멍청하게."

상원에게 핀잔을 준 황선우가 담배 연기를 후 내뿜었다.

그의 두 손에서 장강을 집어삼킨 불길이 이글거렸다.

"저놈은 내꺼다."

나직하게 씹어뱉은 황선우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대주술사를 향해 불꽃을 쏟아부었다.

쾅!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이 메드냅을 집어삼켰다.

매캐한 연기가 중앙섬을 뒤덮었다.

- 오, 대단하군.

덤덤한 전음이 들린 후 연기가 걷혔다.

대주술사 근처에 거대한 바위가 솟아 올라와 있었다.

불꽃을 막은 탓에 바위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주술사는 1급 마물 몇십은 순식간에 녹여버릴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일반적인 수험자들이라면 그 아득한 힘의 격차에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

"과연 감마 루트! 좋다, 여기서 내 힘을 시험해보겠어!"

곧이어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의 영웅들이 일제히 대주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 오오! 오시게!

대주술사의 전음이 모두의 머릿속에 울렸다.

쩡!

<바다에 둘러싸인 방패>가 대주술사가 내뿜은 강렬한 벼락을 받아냈다.

<빛나는 땅의 수호자>가 소환한 거대한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엄청난 성현과 스킬들이 휘몰아쳤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승천 시험의 영웅들,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명성.

부서진 광야의 대주술사를 물리치고 감마 루트를 클리어한 대영웅이라는 명성.

세계를 침략한 강대한 마물을 물리친 서사시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욕망.

대주술사는 조금씩 상처 입고 있었다.

뮈노 메드냅의 힘은 고작해야 4급 상위종.

보통 수험자들이 지금까지 겪어 왔던 그 어떤 마물보다도 강했지만, 여기 모인 수백 영웅들의 공격을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첫 번째 별이 있는 델타 루트로 넘어가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대주술사 뮈노 메드냅을 빈사 상태로 만드는 것.

상원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저 강대한 대주술사를 한 번에 빈사 상태로 만들 무기가 있으니까.

[스킬 <결투장>을 사용합니다.]

[결투 대상을 지정합니다: 마물 <뮈노 메드냅>]

[결투장이 설정되었습니다. 멋진 승리를 기원합니다.]

상원에게서 뻗어나간 녹색 막이 대주술사를 삼키고 다른 영웅들을 밀어냈다.

"어 뭐야?"

"이거 뭐지 갑자기?"

순간 영웅들의 시선이 상원에게 쏠렸다.

결투장의 효과 중 하나는 구경꾼이 많을수록 스탯이 상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펌핑된 스탯을 바탕으로 상원은 다음 스킬을 준비했다.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사용합니다.]

[의체가 스킬 사용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의체를 변형합니다.]

다음 메시지는 상원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게 뭐지?'

생각하는 찰나 상원의 몸이 바뀌기 시작했다.

양 종아리 뒤쪽이 갈라지면서 튀어나온 지지대가 쾅 소리를 내며 지면에 박혔다.

뒤통수에서부터 척추를 따라 피부를 뚫고 솟아오른 배기관들이 뜨거운 김을 내뿜었다.

쩌적 소리를 내면서 입이 좌우로 목까지 찢어지고 목구멍에서 투명한 구슬이 올라와 입에 들어찼다.

"야... 고릴라? 그거 뭐냐?"

황선우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영웅들의 반응도 같았다.

웅... 웅...

입 속의 구슬이 강렬한 녹색 빛을 내뿜으며 진동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단 한 명의 반응은 달랐다.

대주술사 뮈노 메드냅.

- 명을 재촉하는군, 수험자.

그의 전음이 울리는 찰나,

콰아아아아아!!!!

이제까지와는 격이 다른 굉음을 내뿜으며, 눈부신 빛줄기가 대주술사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5급 마물 <요새 수호자>의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

상원이 요새 수호자보다는 훨씬 약하기에 스킬의 위력은 원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지만, 애초에 원판 자체가 6급에게도 비벼볼 수 있는 스킬이었다.

고작 4급이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쩌어어어억!

몇십 초, 굵은 빛줄기가 대주술사에게 작렬했다.

황선우의 불꽃이 작렬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돌풍과 연기가 중앙섬을 집어삼켰다.

"세... 세상에...."

<바다에 둘러싸인 방패>가 입을 떡 벌리며 방패를 떨어뜨렸다.

<빛나는 땅의 수호자>가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황선우가 넋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수백의 영웅들이 넋을 놓을 정도의, 그야말로 압도적인 공격력.

그 격차에 압도된 시선이 상원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상원은 그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다.

스킬 직후에 뜬 시스템 메세지 때문에.

[7번 시험 후란의 <델타 루트>를 시작합니다.]

"뭐... 델타...? 그런 게 있었어?"

"잠깐만. 감마? 감마는?"

영웅들이 술렁술렁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있는 승천자들은 델타 루트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을 테니까.

상원은 다시 한번 영웅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오로지 영령들 뿐이었다.

주신급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유, 그건 영령들은 모르지만 주신들은 아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감마 루트는 애초부터 깨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상원에게만 뜬 시스템 메시지.

[대주술사 <뮈노 메드냅>이 위상을 변경하였습니다. 결투 상대를 변경합니다.]

[결투 상대: 마신 <태초의 대족장>]

"흐으."

상원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중앙섬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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