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1화 (61/230)

제61화. 후란 (4)

"그르르르릉."

성성이 우두머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으르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짓눌리는 느낌, 3급 상위 종의 존재감은 그런 것이었다.

"저걸 잡으라고?"

이태원의 수험자 중 하나가 말했다.

"역시... 쉽게는 못 깬다는 거구나. 갑시다 주군! 그냥 원숭이 한 마리에요!"

키가 껑충한 남자 하나가 박정수의 어깨를 쳤다.

강력한 수험자이지만 정신은 아직 중학생, 멘탈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박정수를 따라다니는 수험자들은 박정수의 그 습자지 같은 멘탈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어... 어! 응... 그래 사이클롭스! 고작 원숭이 하나야!"

"사이클롭스...?"

만웅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중얼거렸다.

순간, 상원은 회귀 전 박정수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박정수는 새까만 옷을 입은 수험자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드래곤, 피닉스, 타이탄 따위 칭호를 달고 있었다.

상원이 피식 웃었다.

"가자 흑혈기사단!"

"존명!"

박정수의 외침에 다른 수험자들이 복창했다.

"흑혈... 기사단...?"

"만웅아, 너 저거 그래도 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만웅이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지켜보자."

상원의 말에 만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에 뚫린 구멍 사이로 치미는 새하얀 달빛과 홀 뒤편에 늘어선 토템에 붙은 갈색 불꽃들이 홀을 비추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꺼르르르릉!"

성성이 우두머리가 괴성을 지르며 사람 상체만 한 돌덩이를 집어 던졌다.

"피해!"

"흡!"

보통 수험자들이라면 그대로 오징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흑혈기사단은 사방으로 몸을 날려 바윗덩어리를 피했다.

그 사이 선두에 선 박정수가 성성이에게 근접했다.

"반왕(反王)의 부월이다! 종말의 파멸을 맛보아라!"

<부월을 든 왕시해자>의 성현 <반왕의 부월>.

날카로운 기운이 흐르는 도끼날이 성성이 우두머리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1~2급 마물들은 도저히 버티지 못할 만큼 파괴력이 넘쳤다.

하지만 상대는 3급 상위 종.

우두머리가 살짝 물러나면서 도끼날을 피했고,

훙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날은 허공을 갈랐다.

워낙 큰 동작으로 도끼를 휘두른 탓에 박정수의 몸통이 무방비가 되었다.

퍽!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두머리가 주먹을 박았다.

"컥!"

코뿔소보다 덩치가 큰 맹수의 주먹질에 박정수가 신음을 토하며 나동그라졌다.

"주군!"

흑혈기사단이 박정수를 향해 달려가려는 찰나 우두머리가 다음 공격을 개시했다.

쾅!

우두머리가 돌덩이를 집어 던졌다.

날렵하게 돌덩이를 피했던 흑혈기사단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정수를 걱정하며 달려가던 터라 주의가 산만해졌는지 기사단원 하나가 돌덩이에 직격당한 것이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단원 하나가 피곤죽이 되어버렸다.

"서... 서펜트, 서펜트가...."

"안돼!"

흑혈기사단원들이 절규했다.

"크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 박정수가 미친 듯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퍽!

또 주먹을 맞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와... 저 꼬맹이가 맥을 못 추고 당하네."

만웅이 넋을 놓고 말했다.

"판단은 끝났다."

상원이 중얼거렸다.

상원이 우두머리와 박정수의 싸움을 지켜본 건 자신과 육마귀 사이의 전력 차를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서울의 수험자들 중 특별히 잔악하고 강력한 여섯 수험자인 <육마귀>는 일곱 별의 왕관을 얻는 데 있어 상원이 염두에 두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육마귀들 사이에도 전력 차가 있었다.

강한 셋과 약한 셋.

후자의 셋 중 하나인 박정수는 변수로 취급해야 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

나머지 둘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한 셋, 그들 중 <새하나의 증인> 유성희는 날개가 꺾여서 생사조차 불명이었고 <뱀주인> 오상형은 5번 시험에서 죽었다.

결국 변수라고 할만한 존재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육마귀 중 최강, <콘크리트 회장> 강상중.

만웅의 고용주이자, 상원이 만웅을 곁에 두고 챙기는 이유.

어쨌든, 전력 확인이 끝난 이상 더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어... 형님? 어쩌시게?"

"저놈 잡아야지."

상원이 만웅의 말에 짧게 대답했다.

"다들 물러서라."

상원이 그림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외쳤다.

그 우렁우렁한 외침이 홀 안에 가득 퍼지자 흑혈기사단과 박정수, 그리고 우두머리까지 상원을 쳐다보았다.

"뭐냐 너는? 오우거냐?"

박정수가 외쳤다.

"수험자다."

상원은 무심히 대답하며 샷건을 손에 쥐었다.

"터... 미네이터?"

기사단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연약한 인간이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짐이 상대할 터이니...!"

박정수의 의연한 외침이 끊어졌다.

상원이 스킬을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스킬 <결투장>을 사용합니다.]

[결투 대상을 지정합니다: 마물 <성성이 우두머리>]

[결투장이 설정되었습니다. 멋진 승리를 기원합니다.]

상원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녹색 막이 퍼져나가 수험자들과 마물을 감쌌다.

"어? 어어?"

"뭐야? 이 초록색 뭐지?"

"계속 밀려나요!"

막은 우두머리를 삼켰지만 만웅과 정수 그리고 흑혈기사단을 밀어냈다.

만웅의 수호신 <자칭 협객>의 성현 <야인의 결투장>, 그 열화판 스킬인 <결투장>이었다.

결투장은 지정된 상대 이외의 대상은 밀어낸다.

그리고 구경꾼이 많을수록 시전자의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뭐냐 오우거! 짐을 밀어내다니! 이건 무슨...!"

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수를 비롯한 수험자들의 시선이 난데없이 전장에 난입한 상원에게 꽂혔다.

그 시선에 상원의 능력치가 증폭했다.

번거롭게 스킬을 쓴 이유, 그건 성성이 우두머리를 단번에 끝내기 위해서였다.

70의 용력, 상원의 단단한 두 다리가 지면을 박찼다.

수험자들이 눈으로 따라잡기도 어려운 속도였다.

거대한 은색 짐승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꺼르르르릉!"

성성이 우두머리도 괴성을 내질렀다.

입이 벌어진 그 틈을 상원은 놓치지 않았다.

총구가 성성이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다.

쾅!

천둥 같은 총성이 울렸다.

쩍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의 뒷통수가 터지며 끈적끈적한 뇌수와 살점이 결투장 장벽에 튀었다.

수험자들은 벙찐 얼굴로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씨... 오졌네. 대박."

그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정수였다.

"맙소사... 한방에."

"우와...."

흑혈기사단이 한마디씩 했다.

"이야, 꼬맹이가 대단하긴 하지만 진짜 괴물은 따로 있었네."

만웅이 중얼거렸다.

상원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엔 놀라움을 넘어선 경이로움이 담겨 있었다.

[3급 마물 <성성이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1천 코인을 얻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1천 코인, 엄청난 거금이었다.

하지만 상원은 수험자들의 시선과 다량의 코인, 그 어느 것에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만웅아."

"예, 형님."

"저기 왼쪽에서 네 번째, 그게 <서울역>이다."

상원이 왼손에 성성이 우두머리의 피를 잔뜩 묻히고는 만웅에게 걸어가 그의 손에 문질렀다.

"어 형님... 이게 뭔...."

만웅이 질겁하며 말했다.

"가서 불 꺼라."

상원의 말에 만웅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 형님? 이거 제가 끄라고요? 왜?"

"잔말 말고 빨리 가서 꺼."

토템의 불꽃을 끈 자에게는 추가 보상이 있다.

그건 상원에게 필요 없었다.

오히려 그걸 만웅에게 줘서 키워놓는 게 더 효율적이다.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있던 만웅은 고개를 젓고 냉큼 토템을 향해 달려갔다.

상원의 판단을 믿은 것이다.

"아저씨."

박정수의 부름에 상원이 박정수를 돌아보았다.

"대박... 진짜 쎄네요."

목소리의 톤이 높았다.

그의 눈은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귀 전 만났을 때의 오만과 독선으로 찌들어있는 눈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 박정수의 눈엔 상원도 한 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회귀 전 박정수를 만났던 게 10번 시험이 끝나고서였다.

그때와 달리 7번 시험의 박정수는 아직 아집으로 가득 찬 괴물이 아니었다.

"그래?"

상원이 피식 웃었다.

[성역 <서울역>은 후란을 견뎌냈습니다.]

만웅이 토템의 불을 끄자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너네도 꺼야지."

"네? 아... 네. 피닉스!"

상원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정수가 부하를 불렀다.

"존명!"

그러자 흑혈기사단원 중 하나가 우두머리의 피로 토템의 불을 껐다.

상원이 아는 박정수라면 토템의 불을 끈 보상까지 독식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걸 보니 상원의 행동을 의식하는 모양이었다.

박정수의 날카로운 눈매가 순해져 있었다.

안하무인인 중2병 소년을 순식간에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것, 그건 압도적인 힘이었다.

피식 웃은 상원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부서진 천상 사이로 드문드문 별빛이 보였다.

"이제 열릴 때가 됐는데."

"뭐가 말이에요?"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진동이 홀을 덮쳤다.

천장에서 돌덩이들이 쏟아졌고 땅바닥에서 상아색 불길이 치솟았다.

<태초의 대족장>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수험자들이 경계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상원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불길은 홀 바닥에 거대한 문양을 그렸다.

"마법진?"

"맞다."

박정수의 중얼거림에 상원이 대답했다.

중력이 역전되는지 돌덩어리들이 바닥에서 치솟았다.

그리고 일순간 바닥에서 치솟은 불길과 떠오른 돌덩이들이 2층 높이의 한 점에 모였다.

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돌풍이 불어닥쳤다.

"저게 뭐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불길과 돌덩이가 구 형태로 모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베타 루트."

상원이 중얼거렸다.

서울역은 7번 시험에서 살아남았지만, 시험 자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번 시험은 성역을 야수들로부터 지키는 알파 루트에서 베타와 감마 루트를 거쳐 델타 루트까지 이어진다.

델타 루트의 끝에 첫 번째 별이 있다.

그 델타 루트에 가기 위해 상원은 <흑마술 양초>와 <성성이의 털뭉치> 그리고 <어미 문어의 다리>를 모았다.

첫 번째 별을 얻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다음 관문이 상원의 눈앞에 있었다.

"형님."

만웅이 상원을 불렀다.

"이따가 뵙겠수."

만웅의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웅은 지금 당장 데려가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 만웅의 실력으로는 베타 루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상원은 허공에서 소용돌이치는 차원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강한 인력이 상원을 끌어당겼다.

상아색으로 빛나는 불길 너머에 다른 차원이 보였다.

끝없이 뻗은 새파란 하늘과 막힘없이 사방으로 트인 황무지.

저기가 바로 태초의 대족장의 영토, 부서진 광야다.

그때였다.

"나도... 나도 같이 가!"

누군가 상원의 손목을 잡았다.

박정수였다.

"좋을 대로."

상원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박정수 정도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아라."

상아색 불길이 상원과 정수를 덮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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