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52화 (52/230)

제52화. 요새의 수호자 (5)

쾅!

무시무시한 반동이었다.

총을 쥔 오른손이 하늘로 휙 쳐들렸다.

상원의 몸이 공중에 뜬 채로 몇 바퀴를 돌았다.

상원은 <요새의 수호자>의 머리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반동 때문에 방향이 바뀌어, 이대로라면 수호자 어깨 위의 성벽에 처박힐 것이었다.

상원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며 필사적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우드득

무리해서 몸을 비튼 탓에 뼈마디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원은 두 발로 성벽을 디딜 수 있었다.

드드득

두 다리에 강한 반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상원은 그 반동을 그대로 실어 머리를 향해 뛰었다.

"우우우우우우."

요새의 수호자가 길게 울었다.

수호자는 서울역 수험자들이 후퇴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 위에 있는 상원의 존재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신령 <기어다니는 거수>가 빙의한 오상형과 여의도 공원의 수험자들 수백 명.

수호자는 그들을 일격에 증발시킨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새 수호자의 시선은 상원이 꼭 배우고자 했던 스킬 중 하나였다.

마력을 한 점에 응집하여 광선 형태로 쏟아내는 이 기술의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요새의 수호자는 6급과도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 건 전적으로 이 스킬 덕분이었다.

급수의 장벽도 넘게 하는 것, 요새 수호자의 시선은 그런 스킬이다.

즈으으응

요새 수호자의 명치에서부터 비늘 틈을 따라 연녹색 불빛이 올라왔다.

불빛이 눈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서 저 스킬이 발동되면 상원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럴 순 없다!'

까드득

상원이 이빨을 갈았다.

입 속에 상처라도 난 것인지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상대는 5급 마물, 그것도 5급 중에서도 단단하기로 소문난 괴물이다.

2번 시험에서 만난 성성이나 3번 시험에서 만난 하늘악어도 상원을 꽤 고전시켰다.

그런데 이놈은 격 자체가 다르다.

상원이 능력치가 총합 170인 괴물이라지만 그 정도로 이놈을 상대할 순 없었다.

제아무리 주지사의 샷건이 상황에 따라서는 성물(聖物)급 공격력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놈의 비늘에는 상처하나 낼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상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5급 마물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었으니까.

"먹어라!"

목을 찢을 듯 고함을 지르며 상원은 방아쇠를 당겼다.

쾅!

다시 한 번 주지사의 샷건이 불을 뿜었다.

제아무리 단단한 괴물에게도 약점은 있다.

주지사의 샷건이 통할 정도로 약한 부분, 그건 놈의 눈이었다.

"으우우우우."

성공했다.

요새의 수호자가 긴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상원은 놈의 기둥같이 굵은 뿔 끝에 매달려 있었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수호자의 비늘 홈을 따라 흐르던 빛줄기가 부서져 흩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괴물의 가죽으로부터 수만 마리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요새의 수호자가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놈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걸로 <요새 수호자의 시선> 시전을 방해할 수 있으니까.

몇 분이면 된다.

이 공간의 마물이란 마물은 아까 오상형이 죄다 끌어다 왔었다.

그러므로 서울역 수험자들의 앞길을 막는 마물은 없다.

게다가 길잡이 원강수가 길을 찾고 해안선의 귀신이 후퇴를 지휘한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몇 분 뒤면 서울역의 수험자들은 무사히 이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우우우."

수호자가 길게 울었다.

브주우우웅

다음 스킬이 준비되고 있었다.

연녹색 마력 덩어리가 비늘 홈을 타고 눈에 모이고 있었다.

"너 그거 못 쓴다니까."

상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뿔에 난 균열 속에 손을 집어넣어 중심을 잡은 채로, 상원은 놈의 눈을 향해 샷건을 날렸다.

쾅!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리를 내며 날아간 산탄을 맞고 수호자가 고개를 돌렸다.

수호자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한 손으로 뿔을 잡은 상원의 몸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로데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상원은 놈의 뿔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때였다.

엄청난 풍압이 느껴졌다.

상원은 고개를 돌렸다.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손이 상원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뿔에 붙은 성가신 벌레를 손으로 떼어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흡."

상원은 심호흡을 들이쉬고 뛰어내렸다.

쿠구구구!

머리 위에서 마치 건물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호자의 손과 뿔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철퍽!

상원은 오래된 늪지의 미끄덩거리는 진흙 위로 뛰어내렸다.

착지할 때 몸을 굴려 충격을 분산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2미터를 훌쩍 넘는 근육질 육체가 작은 원숭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용력 60에 걸맞은 대단한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놈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상원은 알 수 있었다.

놈의 손바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후우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풍압 때문이었다.

"크윽!"

신음을 뱉으며 상원은 몸을 던졌다.

상원이 있던 자리로 거대한 손이 떨어졌다.

흙먼지와 풀을 머금은 돌풍이 휘몰아쳤다.

꿀꺽, 상원은 침을 삼키고 놈의 손이 떨어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손이 땅바닥에 박혀 있었다.

지면을 박살 낼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젠장... 이놈 무지 어려웠었지.'

5급 마물 요새의 수호자를 1:1로 상대하는 건 시험 후반이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능력치 총합 170 정도로는 파리채를 피하는 파리처럼 목숨을 걸고 도망 다녀야 하는 게 고작이었다.

상원은 서울역 수험자들이 사라져간 지평선 쪽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점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꽤 멀리 갔군. 조금만 버티면 되겠다.'

흐읍, 상원이 큰 숨을 들이쉬었다.

다시 한 번 수호자의 손이 떨어졌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수험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저 멀리서 수백 줄기 빛줄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수험자들이 차원문을 건넜다는 뜻이었다.

"후우우우."

상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험자들이 탈출하는 동안 상원은 수호자의 주의를 끌었다.

요새 수호자의 손을 피해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몇 분이 상원에겐 몇 시간 며칠처럼 느껴졌다.

'괜찮다 이 정도는. 회귀 전에는 이것보다 더 한 상황 수도 없이 겪었어.'

상원의 눈이 광채를 내었다.

상원은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방금 전까지 상원이 있던 자리로 수호자의 손이 떨어졌다.

수호자의 주변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지면엔 폭격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깊은 구덩이가 빽빽하게 나 있었다.

모두 요새의 수호자가 낸 것들이었다.

수호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상원은 일부러 수호자의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요새 수호자가 그 무시무시한 시선을 발사한다 해도 서울역 수험자들은 이 차원을 떠나버렸으니까.

잔뜩 약 오른 요새 수호자를 뒤로 하고 상원은 제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견고한 돌바닥 위로 상원의 발소리가 울렸다.

"우우우우우."

상원의 뒤로 요새 수호자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브주우우우웅

그때였다.

요새 수호자가 마력을 모으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자가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험자 몇백 명 따위는 순식간에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스킬을.

하지만 상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곧 연녹색 빛줄기가 등 뒤에서 몰아쳤다.

빛줄기는 상원을 덮치고 그대로 지평선을 향해서 나아갔다.

곧 빛줄기가 그쳤다.

빛줄기가 뚫고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창에 꿰뚫린 것처럼 동그란 자국이 남았다.

그리고 그 자국 한가운데 상원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우우우우우?"

요새의 수호자가 의아하다는 듯 울었다.

다시 한 번 빛줄기가 지나갔다.

이번 빛줄기는 아까보다 훨씬 굵고 선명했다.

하지만 빛줄기에 정통으로 맞은 상원은 여전히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귀찮다는 듯 상원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상원의 발걸음이 제단 중앙에 닿았다.

쩌저저적!

굉음과 함께 제단 중앙으로부터 커다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끝없는 지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단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중앙에 차원의 정수가 나타났다.

크기가 세숫대야만 한 새빨간 연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던전의 정수, <피를 먹은 연꽃>이다.

[성역 <서울역>의 수험자 <조상원>이 차원의 정수를 획득하였습니다.]

브라이싱크론 지갑에 연꽃을 넣고 나서 상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깨 위에 성벽을 얹어 마치 언덕처럼 보이는 강대한 마물이 무언가 황망한 듯한 태도로 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요새의 수호자>는 상원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요새의 수호자, 그 치명적인 단점은 자리 잡은 곳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은 불신자인 조상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어떤 스킬도 어떤 성현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스킬도 쓸 수 없고 어떤 수호신과도 계약하지 못한다.

그게 상원의 개성 <불신자>였다.

하지만 그가 탑승한 의체(儀體) 신화의 몸은 다르다.

신화의 몸에 탑재된, 상원이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수많은 기능들 중 하나는 스킬을 복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그 스킬을 몇 번이나 직접 맞는다면 효과는 확실하다.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익혔습니다.]

머릿속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아... 드디어 배웠군.'

상원은 가슴 한 곳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승천 시험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기 스킬을 드디어 배운 것이다.

상원은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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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들만 표시됩니다.

레벨 3 (91%)

성능: 괴력 60, 용력 60, 술력 50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 지하의 문(2), 하늘의 불씨(2), 마력 삼키기 [더보기]

모래시계 충전 시간: 2분 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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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활약이 반영되어서인지 경험치가 꽤 올랐다.

조금 있으면 레벨업이었다.

더군다나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배우다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이 정도면 첫 번째 별을 얻을 가능성이 올라갔다.

이제 막막하지 않았다.

처음 <일곱 별의 왕관>에 도전할 때만 해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이 무모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가능성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좋아.'

상원은 멍청하게 있는 요새의 수호자를 올려다보았다.

"간다."

상원은 손을 흔들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딪혀 몸이 튕겨져 나왔다.

'설마.'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무언가가 이 차원을 감싸고 있었다.

상원은 엘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 이 차원을 폐쇄한다고 했었지.'

집행사가 이 차원을 봉쇄했다.

차원의 정수를 얻으면 봉쇄되도록 설계해두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이 정도 수를 쓰다니... 집행사, 나를 정말로 싫어하는구나.’

상원은 피식 웃었다.

그는 방법이 있었다.

상원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쉬고, 지갑에서 <지하 마녀의 눈가리개>를 꺼냈다.

'다시는 안쓰려고 했는데.'

상원은 눈을 가렸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빛나는 차원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여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한기가 상원의 몸을 감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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