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50화 (50/230)

제50화. 요새의 수호자 (3)

왈칵

오상형이 거무죽죽한 피를 토했다.

상원의 주먹에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벌써 신체 변이가 상당히 진행됐는지 피 색깔이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끄아아악!"

오상형이 비명을 질렀다.

찢어진 입 속 두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이성을 잃었는지 오상형의 두 눈이 뒤집혔다.

상형이 품에서 커다란 철퇴를 꺼냈다.

곧은 자루 끝에 달린 무게추의 크기가 거의 오상형의 머리통만 했다.

검은 무쇠로 된 철퇴의 표면에 검붉은 기운이 흘렀다.

유물급 보구 <선혈을 먹은 가다>였다.

'이놈, 극 초반에는 저걸 썼구나.'

회귀 전 상원이 오상형을 만난 건 십 번 대 중반에서였다.

그때는 오상형이 귀물급을 들고 있던지라, 유물급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너 이 새끼!"

후웅!

오상형이 철퇴를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5번 시험에서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굉장한 괴력이었다.

'도대체 뭘 얼마나 잡아먹은 거야.'

승천자들 중에는 자기 화신에게 마물이나 수험자를 먹여서 성장시키는 부류가 있었다.

기어다니는 거수도 그런 부류였다.

벌써부터 이 정도 괴력이라면, 여의도 공원에서 황금과 신앙을 독식한 하나교도들을 모조리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휘익!

상원은 고개를 살짝 숙여 날아오는 철퇴를 피했다.

철퇴가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허공을 갈랐다.

"캬아아악!"

오상형이 뱀처럼 포효했다.

그의 입 속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새까만 혓바닥이 낼름거렸다.

'이거 이제 인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네. <기어다니는 거수>... 신났구나.'

오상형이 철퇴를 미친 듯 휘둘렀다.

사람의 몸 따위는 순식간에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철퇴는 상원에게 닿지 않았다.

살짝 살짝 움직이며 상원은 종이 한 장 차로 철퇴를 피했다.

헐크를 연상케 하는 그 거대한 몸이 마치 경량급 격투기 선수마냥 움직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오상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잔뜩 약이 오른 표정이었다.

오상형이 철퇴를 더 세게 휘둘렀다.

훙! 훙!

파공음은 무시무시했지만 소용없었다.

'둔하네.'

철퇴가 닿지 않는 곳으로 살짝 물러난 상원이 그 반발력을 그대로 실어 주먹을 날렸다.

쾅!

굉장한 소리와 함께 상원의 주먹이 오상형의 코에 박혔다.

"끄어어어억!"

2미터는 훌쩍 넘는 꺽다리가 털썩 쓰러졌다.

"이... 이런...."

상원을 올려다보는 오상형의 눈에 불신이 서려 있었다.

이런 괴물이 있을 수가 있나, 그런 불신이 서린 눈빛이었다.

'맷집은 상당하네. 그걸 맞고 실신하지 않다니.'

상원은 살짝 놀란 눈으로 오상형을 내려다보았다.

오상형은 뭉개진 얼굴을 감싸고 꿈틀거리며 물러났다.

"정수는 우리가 가져간다."

상원이 말했다.

"와... 와아아아!"

"상원씨! 대단해요!"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서울역 수험자들이 기쁨에 가득 찬 소리를 질렀다.

상원이 서울역 수험자들을 돌아보았다.

환호성을 지르는 수험자들 가운데, 만면에 만족스런 미소를 띤 문혁의 얼굴이 보였다.

"맙소사."

"오상형이... 한 방에?"

여의도공원 수험자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상원은 여의도 공원 쪽의 진영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수는 백여 명 남짓.

서울역의 반도 훨씬 안되는 숫자였지만 그 정도면 그래도 많은 편이었다.

'아마 오상형이 하나를 강제로 희생시켰겠지.'

그리고 그들은 이 오래된 늪지에 올인한 것 같았다.

그 말인즉슨, 상원이 이 차원의 정수를 가져가면 저들은 만신전을 건설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5번 시험에서 만신전을 건설하지 못한다고 탈락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성역 여의도 공원의 성화가 지속적으로 약해질 것이다.

그러다 성화가 꺼지면 성역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러면 수험자들은 멸망한 세계의 어둠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들은 시험에서 탈락할 것이고, 좀비나 마인이 되어서 수험자들을 덮칠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승천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어떤 승천자와도 계약할 수 없는 불신자 상원이 승천할 수 있는 방법은 일곱 별의 왕관을 얻는 것 뿐이다.

그리고 5번 시험에서 하나의 정수라도 얻지 못하면 일곱 별의 왕관은 물 건너간다.

상원은 정수를 양보할 수 없었다.

"행운을 빕니다."

상원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때였다.

"퉷!"

구부정하게 몸을 세운 오상형이 새까만 선지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집어쳐!"

오상형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아악!"

"오오오오오오!"

오상형이 포효하자 그에 화답하듯 늪지 늑대인간들이 소리를 질렀다.

"샤아아아아악!"

오상형의 외침에 맞추어 늪지 늑대인간들이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상원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원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상원의 능력치 총합은 160.

상원에게 늪지 늑대인간들은 말 그대로 잡졸에 불과했다.

'이런 데 장단을 맞춰줄 이유가 없다.'

상원은 브라이싱크론 지갑에서 주지사의 샷건을 뽑아들었다.

단단하고 묵직한 무쇠 산탄총이 상원의 손끝에 들렸다.

쾅!

천둥 같은 총성과 함께 샷건이 산탄을 내뿜었다.

쩍!

상원에게 달려들던 늑대인간 몇 마리가 그대로 피떡이 되어 사라졌다.

휘릭릭

쾅! 쾅!

상원은 샷건을 회전시킴으로써 반동을 상쇄하고 두 발을 더 쏘았다.

늑대인간 또 한 무리가 산화했다.

"와아...."

"압도적이다. 압도적이에요."

상원을 바라보던 수험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늑대인간이 1급에 불과하다지만 그런 마물들을 한 번에 몇 마리씩 해치운다는 건 상원이 궤가 다르게 강하다는 뜻이었다.

"나도 저 총 써볼까?"

"척 봐도 모르겠어? 당신은 저거 들지도 못해."

누군가의 물음에 눈썰미 좋은 수험자가 대답했다.

주지사의 샷건은 유물급인 주제에 요구 능력치가 괴력 40이나 되는 물건이다.

지금 이 타이밍에 주지사의 샷건을 쓸 수 있는 화신은 승천 시험 전체를 통틀어 상원뿐일 것이다.

"크으으으으윽!"

오상형이 힘을 더 쓰는지 그의 눈에서 눈동자가 사라졌다.

샛노란 기운이 오상형의 눈을 뒤덮었고, 그의 피부 위로는 검은 격자가 생겨 마치 뱀 비늘같이 되었다.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

그의 수호신인 기어다니는 거수가 그의 몸에 강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상형이 강한 화신들을 잡아먹고 아무리 성장했다 해도 저 정도의 강림을 견딜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기어다니는 거수. 급하긴 급하구나.'

주륵

오상형의 코에서 검은 코피가 흘렀다.

오상형의 이명이 <뱀주인>인 이유는 그가 뱀을 다루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능력이 발동하자, 2급 마물 <바늘 구렁이>가 여기저기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상형이 모방 던전에 있는 구렁이들을 모두 끌어오고 있었다.

"샤아아아악!"

8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뱀들이 구불거리며 다가왔다.

비늘이 바늘처럼 곤두섰다.

"상원씨! 엄호를...."

"괜찮습니다!"

상원이 큰 소리를 질러 문혁의 말을 끊었다.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다들 몸을 지키세요!"

그 순간 후열에 있던 바늘 구렁이들이 일제히 비늘을 쏘았다.

평범한 수험자들이라면 그대로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상원은 재빨리 샷건을 내려놓고, 주변에 있던 늑대인간 두 마리를 들어 앞을 막았다.

파바바박!

"깨개개갱!"

살점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늑대인간들은 온몸에 바늘이 빼곡하게 꽂혀 고슴도치 같은 꼴이 되어 있었다.

바늘 구렁이들은 비늘 장전에 시간이 걸린다.

상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늑대인간들을 던져버리고 샷건을 들어 구렁이 틈새에 뛰어드는 데는 단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2미터를 훌쩍 넘는 거구가 날 듯이 움직였다.

쾅! 쾅!

구렁이들 틈에 뛰어든 상원이 샷건을 난사했다.

샷건 한 방에 피떡이 되는 건 2급 마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끄으으으윽!"

온 힘을 다해 끌어모은 바늘 구렁이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오상형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끄아아아악!"

최후의 발악인 양 오상형이 하늘을 바라보고 긴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모을 마물이 없을 텐데.'

순식간에 구렁이들을 정리한 상원이 딱하다는 눈으로 오상형을 보았다.

그때였다.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 * *

또각 또각

적막 속에서 구두 소리만이 울렸다.

정지한 사람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상원이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엘가?"

새하얀 피부의 미녀, 승천 시험의 집행사 <엘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수험자 조상원."

집행사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너같은 이례(異例)는 존재하면 안 된다."

으득, 상원이 이를 갈았다.

"무슨 소리지?"

"진행이 안배를 벗어나고 있다. 뱀주인이 과다성장하는 것도 예상 밖의 일이다."

"그래서, 높으신 분들이 많이 불편해하시나?"

상원이 엘가의 두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승천 시험은 불공정하다.

그것도 아주 섬세하게.

시험의 설계, 마물의 배치 그리고 수호 계약 장소와 시기 같은 것들 모두가, 사실은 위격 높은 승천자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험이 똑바로 진행됐다면 끽해봐야 신령급인 뱀주인이 지금 같이 성장해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집행사가 이렇게까지 개입한다는 건, 아주 높은 자들이 이 상황을 불편해한다는 뜻이다.

"알 것 없다."

"위원회의 판단인가?"

상원의 코앞까지 걸어온 집행사가 상원을 쏘아보았다.

"네놈 따위가 알 바가 아니다."

딱!

엘가가 손가락을 부딪쳤다.

그러자 엘가의 뒤쪽, 여의도 공원의 수험자들이 모여 있는 곳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다.

제단보다도 넓은 마법진이.

"차원 기록 보고. 기어다니는 거수의 폭주에 따른 외곽 형해로 인해 규격 외 마물이 차원 10032568097에 소환되었음."

뱀주인의 폭주를 빌어 규격 외 마물을 소환한다.

물론 이 소환은 뱀주인이 아니라 집행사가 한 것이다.

"생각해낸 방법이 그거냐?"

고작 그 정도 명분으로 수백 명의 수험자가 있는 차원에 규격 외 마물을 부른다는 건, 집행사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무리다.

그 정도면 집행위원회가 암묵적으로 이 결정에 동조했다는 뜻이었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집행사는 마법진 속으로 향했다.

"그 잘난 주둥이, 더 이상 놀리지 못할 것이다. 이 차원과 함께 소멸할 테니까."

엘가가 말을 마치자 그녀 앞에 공간이 갈라지며 차원문이 생겼다.

그녀가 차원문 속으로 사라지자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오상형이 비명을 질렀다.

그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온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두 도망쳐요! 당장!"

상원이 악을 썼다.

"맙소사."

"저게 뭐야...?"

공포에 물든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오오

듣는 것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묵직한 포효가 울려퍼 졌다.

엘가가 그린 마법진으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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