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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49화 (49/230)

제49화. 요새의 수호자 (2)

상원은 오래된 늪지로 통하는 차원문으로 몸을 던졌다.

번쩍

에메랄드 빛깔 같은 연녹색 빛이 눈앞을 뒤덮었다.

이어서 전혀 다른 풍경이 상원 앞에 펼쳐졌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스읍

숨을 쉬자 비릿하고 끈적끈적한 습기가 폐에 가득 찼다.

'오래된 늪지, 오랜만이네.'

상원은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우우-

멀리서 늑대가 우는 소리가 났다.

오래된 늪지에 사는 1급 마물 늪지 늑대인간이 내는 소리였다.

[스킬 <동굴적 감각>을 발동합니다.]

[어둠 속이 대낮처럼 밝아집니다.]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안개 속이 분간되기 시작했다.

안개가 완전히 걷힌 것처럼 사방이 투명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멀리서 마물이 오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다.

상원이 동굴 개미들을 잡으면서 익혔던 <동굴적 감각>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다.

동굴적 감각은 원래 <지하의 수호자>의 영토인 <끝없는 지하>에 가득 찬 어둠 속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는데, 안개 속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스킬 덕에, 상원은 세 번째 시험의 첫 번째 낮 서울역 주변에 깔렸던 짙은 안개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까지 늪지 늑대인간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그 수가 상당했다.

상원이 회귀 전 부서진 황야에 들어갔을 때나 조금 전 끝없는 지하에 들어갔을 때 마주한 마물들보다 훨씬 많았다.

이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뱀주인 오상형이 마물들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백문혁이 지휘한다 그래도 쉽지 않겠다. 빨리 가야 되겠어.'

상원의 든든한 두 다리가 지면을 박찼다.

짙은 안개 속에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끄어어엉!"

아직 살아있는 늪지 늑대인간들이 상원에게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상원은 달리던 기세를 그대로 실어 늑대인간의 머리에 무릎을 박았다.

빡!

박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늑대인간이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

이런 잡졸들에게까지 샷건을 쓸 이유는 없었다.

'빠르게 끝내자.'

상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물들을 돌파하며 제단으로 향했다.

곧 저 멀리 높다란 성벽이 나타났다.

저것이 이 차원의 정수가 있는 제단이었다.

* * *

성역 <서울역>에 열린 오래된 늪지의 모방 던전.

수험자들이 그곳에서 마주한 상대는 성역 <여의도 광장>의 수험자들이었다.

상원은 5번 시험을 대비해 서울역의 수험자를 다섯으로 나누어 각 차원문에 집어넣었다.

성속성 수험자들과 만웅 패거리, 그리고 송혜경을 제외한 전투 가능한 수험자들은 모두 이 오래된 늪지의 모방 던전에 들어왔다.

그 수가 족히 수백은 되었다.

그 많은 수험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상원은 그 점을 걱정하지 않았다.

백문혁의 수호신 <해안선의 귀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안선의 귀신은 본인의 무력도 출중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진가는 지휘력에 있었다.

승천 시험의 수많은 승천자들 중 그만한 지휘력을 가진 자는 손에 꼽았다.

그게 해안선의 귀신이 영령급인데도 웬만한 성령에 비빌 수 있는 이유였다.

상원의 판단은 정확했다.

문혁은 대단한 카리스마로 서울역의 수험자들을 휘어잡았고,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내렸다.

전장과 전선의 판도와 판세가, 아군과 적군의 강점과 약점이 문혁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문혁의 지휘에 힘입어 서울역 수험자들은 단숨에 제단에 진입했다.

하지만 미처 상원이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크으... 젠장!"

문혁이 이를 악물고 욕을 내뱉었다.

전장의 판세가 너무 불리했다.

채채챙!

높은 곳에 선 문혁은 별운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바늘을 쳐냈다.

말이 바늘이지 거의 젓가락만 한 것들이 날아오는 기세가 대단했다.

2급 마물 <바늘 구렁이>가 날린 바늘이었다.

별운검을 땅에 박고, 문혁은 <무소 각궁>을 뽑아 바늘 구렁이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깽!"

날아간 화살이 늪지 늑대인간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늑대인간이 몸을 날려 구렁이를 지킨 것이다.

그 사이 바늘 구렁이는 그 거대한 몸을 군중 사이에 숨겼다.

분명히 모방 던전에 입장하면서 통보받은 상대는 여의도 공원의 수험자들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여의도 공원의 수험자들과 마물들이 협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백병전에 능한 수험자들이 늪지 늑대인간과 섞여 방진을 이루었고, 그 뒤에서 각종 스킬들과 바늘이 뒤섞여 날아왔다.

"끄아아악!"

또 비명이 들렸다.

최전방에서 싸우던 중년 남자의 어깨에 바늘이 살벌하게 박혀 있었다.

"진광씨, 빠지십시오! 종문씨가 엄호하시고 은화씨가 들어가십시오!"

문혁의 지휘에 서울역의 방진도 금세 메워졌다.

서울역의 수험자들이 많다고 해도 마물까지 뒤섞인 군대를 상대하기는 벅찼다.

서울역이 그나마 이 정도 버티는 것도 전적으로 백문혁의 지휘 덕분이었다.

"샤아아아아악!"

뱀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으으으으윽!"

몇몇 수험자들이 신음을 흘렸다.

오금이 절로 저릴 정도로 기분 나쁜 소리였다.

그 소리를 낸 자가 여의도 공원 진영의 뒤편에 있었다.

수많은 수험자들과 마물들의 틈 속에 있었지만, 문혁은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굉장한 거구였기 때문이다.

'상원씨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하네.'

다른 수험자들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껑충한 키에 깡마른 몸, 그리고 민머리.

도드라진 광대 위의 찢어진 눈은 샛노랬고 세로로 쭉 찢어진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뱀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이 낼름거렸다.

'저게... 수험자라고?'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외형에 공포감과 혐오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그가 바로 기어다니는 거수의 화신, 나중에 <육마귀>로 성장하게 되는 뱀주인 오상형이었다.

"뭐해 쓰레기들아! 왜 아직도 정리가 안 되는 거야!"

오상형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가 쿵쿵거리며 최전선을 향해 다가오는 모양새가 마치 단단한 전차 같았다.

"비켜! 이 쓸모없는 것들!"

"으아아악!"

오상형이 그 앞을 가로막은 아군들을 검불처럼 집어던졌다.

'저자에게는 피아의 구분도 없는 건가!'

문혁이 오상형의 미간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퍽!

"끄아아악!"

화살은 오상형에게 닿지 않았다.

오상형이 근처에 있던 자기 편 수험자 하나를 집어 들어 화살을 막은 것이다.

화살이 그 수험자의 어깻죽지에 박혔다.

"상형님... 제발... 제발! 으아아악!"

그다음에 벌어진 광경은 서울역 수험자들을 경악에 물들게 하기 충분했다.

오상형이 그 남자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의 침묵 속에서 벌컥 벌컥 피를 마시는 소리만이 들렸다.

피를 빤 상형이 절명한 수험자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오상형의 눈이 더 샛노래졌다.

아군을 잡아먹고 힘을 키운 것이다.

'미친...!'

간담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다.

여의도 광장의 수험자들이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는지, 공포에 질려 있는지 문혁은 알 것 같았다.

"이 벌레 같은 것들. 너희 같은 것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어!"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 오상형이 서울역 수험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빡!

"크어어억!"

수험자가 방패를 들어 주먹을 막았지만, 방패는 으스러져 버렸고 수험자는 방패와 함께 피를 토하며 날아가 버렸다.

"빠져! 모두 빠지세요!"

문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상원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 수험자들의 목숨이다.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 문혁은 알 수 없었다.

'젠장... 이건 도대체 어떡해야...! 장군님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문혁의 귓가에 해안선의 귀신이 흘리는 침음성이 들렸다.

'상원씨...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혁은 빌었다.

그때였다.

쾅!

전장의 저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 * *

오상형은 더없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더... 더!'

그의 수호신 <기어다니는 거수>가 피를 갈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형은 앞을 가로막는 같은 편 수험자를 가차 없이 잡아먹어 버렸다.

그러자 키가 커졌고 힘이 세졌다.

더없는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 찼다.

상형이 처음부터 크고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키 작고 볼품없던 오상형은 어떻게 어떻게 1, 2번 시험을 거쳐 성역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기쁨도 잠시였다.

자기들을 하나교도라고 칭한, 수십 개의 스킬을 한 번에 쓰는 자들이 성역에 군림했다.

코인도 신앙도 그들이 독식했고, 상형은 조용히 찌그러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세 번째 시험이 끝나갈 무렵, 그들이 갑자기 쓰러졌다.

상형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코인과 신앙을 독식한 그들을 잡아먹고 상형은 무럭무럭 자랐다.

게다가 5번 시험에 들어오니, 모방 던전의 마물들이 그의 지배 아래 있었다.

더없이 훌륭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형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의도 공원 수험자들에 마물들까지 가세했는데도 상대방이 잘 버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형은 직접 나서기로 했다.

"비켜 쓰레기들아!"

거칠게 울부짖은 상형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주먹에 맞은 수험자가 방패째로 날아갔다.

"물러나세요!"

적장의 지휘에 상대방 수험자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역시! 이깟 벌레 같은 놈들이 날 막을 순 없지!'

상형이 입 끝이 귀까지 찢어졌다.

"샤아아아악!"

상형은 그들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저들 하나 하나가 상형의 밥이었다.

만면에 만족스런 웃음을 띠며 상형이 적들을 향해 다가갔다.

공포에 물든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가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피해라!'

기어다니는 거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상형은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늦었다.

무시무시한 통증이 상형을 덮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명치가 뭉개질 듯한 통증이었다.

승천 시험에 든 이후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상형의 괴력은 21, 비할 데 없는 괴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통증이 느껴질 리 없었다.

상형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형체가 있었다.

키는 상형보다 더 컸고 단단한 근육이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그 남자는 커다란 바윗덩어리 같은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저 주먹이 자기 배에 박힌 모양이었다.

'주먹이 이렇게 아프다고? 그럴 리가.'

의혹에 물든 눈으로 상형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오상형이."

상형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이 형형했다.

"많이 컸네."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와아아아!"

서울역의 수험자들이 지르는 함성이 귓전에 울렸다.

끝없는 지하의 정수를 얻고 한걸음에 달려온 남자, 조상원이 오상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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