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45화 (45/230)

제45화. 만신전 (3)

시간은 흘러 깊은 밤이 되었다.

지금쯤이면 다른 성역들의 4번 시험이 끝났을 것이다.

3번 시험에서 성화가 꺼진 성역들도 많을 것이고, 4번 시험에서 수험자들이 내분된 성역들도 많을 것이다.

성역 <서울역>은 그 위기를 무사히 건넜다.

"아이님."

상원이 타오르는 성화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상원에게 말을 걸었다.

원강수가 퀭한 눈으로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아이님."

상원이 강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서울 육마귀' 중 한 명인 유성희가 창시한 사이비 종교인 <하나교>.

'아이'는 하나교도들이 서로를 부르는 칭호다.

개인으로 흩어져 있는 '아이'들은 '하나교'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하나 된 '어른'이 된다.

"하늘이 열리나니, 새하나의 품속에서 우리는 드높아지나이다."

"하늘이 열리나니, 새하나의 품속에서 우리는 드높아지나이다."

상원과 강수가 서로 고개를 숙이고 기도문을 외웠다.

3번 시험의 숨은 시험인 대강령술사 공략전을 치르면서 상원이 염두에 두었던 목표 중 하나가 유성희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유성희의 능력은 신도들의 스킬을 끌어다가 강화해서 쓰는 것이다.

그녀를 견제하지 않고 두면 열두 번째 시험에서 수백 가지 스킬을, 그것도 강화판으로 써대는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곱 별의 왕관을 이루는 일곱 별들 중 두 번째 별을 얻는 데 큰 애로사항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유성희를 견제하기로 했다.

그녀의 특성인 <성년의 징표>의 약점인, '연결된 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스킬은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면 됐다.

상원은 원강수의 동료인 하나교도 박명희를 유인해서 강력한 저주 스킬 <원혼 군주의 절규>를 듣게 했다.

그걸 들은 박명희는 사지가 뒤틀린 채 마비됐다.

상원의 시선이 성화 곁에 누워있는 박명희에게 갔다.

태성의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굳은 사지는 풀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죽은 듯 누워만 있었다.

"나도 그렇고 명희도 그렇고 침술사 영감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많이 나았어. 그 영감님 침술은 기똥차더라고."

침술사라면 오태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원은 원혼 군주의 절규를 들었던 강수의 몰골을 떠올렸다.

눈은 퀭하게 풀려 있었고 사지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정도면 5번 시험 끝날 때까지는 일어나지도 못할 줄 알았는데. 역시 청낭의 의선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만. 그나저나.'

"몸은 많이 나으셨습니까?"

상원이 짐짓 걱정하는 듯 물었다.

"아니... 아니야. 우리 아이님은 <별의 사도>시니까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스킬 공유가 되지 않고 있어. 하... 이거 왜 이런지 모르겠네."

별의 사도란 하나교주 유성희가 성현 <성년의 징표>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만든 칭호다.

승천자의 격은 영령에서 신령, 주신 순으로 올라가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격 사이의 차이는 메워지지 않는다.

수호신 <드높은 정신>의 격은 신령 중에서도 중급인데, 그 성현 <성년의 징표>는 그보다 격이 높거나 강한 수호신을 둔 수험자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하나교도 중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았고, 유성희는 그런 자들을 별의 사도라고 칭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감췄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아이님. 총재님께서 다 뜻이 있으실 겁니다. 저희는 그저 총재님을 믿고 기다리면서 새로이 하나가 될 그 날을 준비하면 됩니다."

상원이 두 손으로 강수의 두 손을 포개 잡았다.

웬만한 전공책보다 크고 두꺼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감싸 쥐었다.

거기서 온기를 느꼈는지, 부들부들 떨리는 강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겠지... 그러겠지요? 참."

강수가 한 손을 빼 눈물을 닦았다.

"우리 아이님은 참 든든하네. 아주 아주 믿음직해요. 그래, 그럼! 우리 총재님 믿고 기다려야지. 총재님께서 다 뜻이 있으실 거야."

강수가 씩씩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는 상원은 고개를 돌렸다.

말려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아저씨가 그렇게 믿는 유성희는 지금 산송장이 돼 있을 겁니다.'

고개를 돌려 성화를 바라보는 상원의 얼굴에 스산한 웃음이 스쳐 갔다.

유성희의 개성은 <그물 금자탑의 정점>으로, 징표를 통해 공유한 스킬을 강화시켜준다.

하지만 그 기술은 양날의 검인데, <원혼 군주의 절규>같이 연결된 자들까지 공격하는 기술의 영향도 증폭해서 받는다.

'그걸 맞고 멀쩡할 리가 없지. 역시 유성희가 뻗어버리니 스킬 공유도 안되네.'

원혼 군주의 절규는 십번대 중반에 도달한 수험자들에게도 치명적인 저주 스킬이다.

세 번째 시험에서 그런 스킬을 얻어맞았다면 말 그대로 산송장이 되어서 누워 있을 것이다.

유성희 견제 작전이 성공했음을, 상원은 강수의 말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네. 명희는 이 꼴이고... 스킬도 원래 있던 것밖에 쓸 수 없고."

"음."

상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님. 개성이 <길잡이>이시고 <멀리 보기> 스킬이 있다고 하셨죠?"

"응? 그럼 그럼. 내가 길 하나는 아주 그냥 끝내주게 찾지. 그런데 지금 이런 거 있어봤자 어디다가 쓰겠어? 스킬을 같이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강수의 말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강수의 <멀리 보기> 스킬을 공유해서 쓸 수 있다면 시험을 풀기 아주 수월해진다.

특히 3시험 같이 길 찾기가 어려운 곳에서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하나교도들이 서로 능력을 공유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강수의 능력은 마물을 사냥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닙니다 아이님."

상원이 고개를 저으며 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아이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꼭 해주셔야 합니다."

"응... 뭔데 그게?"

강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따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상원은 하늘을 보았다.

한겨울의 아침 해가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제 다섯 번째 시험이 선포될 시간이었다.

"만웅아."

상원이 큰 소리로 광장 한 편에 있던 만웅을 불렀다.

만웅은 험상궂은 동생들과 함께 컵라면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예, 형님."

만웅이 라면을 내려놓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능력치를 많이 찍었는지, 설렁설렁 달렸는데도 만웅은 순식간에 상원 곁에 다가왔다.

"좀 있으면 다섯 번째 시험이 시작될 거다. 그 전에 사람들에게 전달할 말이 있다. 일단 동생들이랑 같이 서울역 수험자들을 광장에 모아라. 최대한 많이."

"예, 알겠습니다 형님."

꾸벅 인사하고 달려간 만웅이 동생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그의 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져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 * *

"무슨 일일까요?"

"그러게 말이야."

광장에 모인 수험자들이 웅성웅성했다.

상원이 높은 계단 위에서 수험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수험자들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수백은 되어 보였다.

서울역의 수험자들은 거의 모두 모인 것 같았다.

만웅과 그의 동생들이 지금까지 수험자들을 도우면서 신뢰를 잘 쌓았는지, 수험자들이 만웅 일행의 말을 잘 들은 모양이었다.

회귀 전과는 달리, 서울역 수험자 수는 3번과 4번 시험을 거치면서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상원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슥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낯선 얼굴도 있었다.

전직 특수부대원, <해안선의 귀신>의 화신 백문혁.

'서울 육마귀' 중 하나인 강상중의 부하, <자칭 협객>의 화신 김만웅.

상원의 전 회차에는 랭킹 4위까지 올랐었던, <낙원의 수문장>의 화신 윤진아.

같은 승천자들도 꺼리는 괴물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 송혜경과 그의 남편 한창훈.

50년 경력의 침술사이자 <청낭의 의선>의 화신인 오태성.

그리고 <길잡이> 원강수.

하나하나가 이번 시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었다.

"여러분."

상원의 외침에 수험자들이 고개를 들어 상원을 보았다.

치밀어오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우뚝 선 거한, 사람들은 그에게서 어떤 아우라라도 느끼는 것인지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멋있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이제 곧 다섯 번째 시험이 시작될 겁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 그걸 어떻게 알지?"

"우리 형님은 미래를 볼 줄 안다니까."

"아 그래요?"

"와 대박...."

상원의 날카로운 청각은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원이 미래를 볼 줄 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다.

상원은 그 소문을 굳이 부인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신뢰를 얻어야먄 서울역의 수험자들을 단단하게 규합해서 다가올 시험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시험은 우리가 단합해야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상원이 군중들을 내려다보았다.

상원의 날카로운 눈빛이 수험자 한 명 한 명의 눈을 꿰뚫어 보았다.

그럴 때마다 수험자들은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험자들이 상원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다섯 번째 시험 <만신전 건설>을 시작합니다.]

시스템 메세지가 뜸과 함께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구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고 또 누구는 두 눈을 감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신들이 자기 화신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수호신이 없는 상원에게는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성화 주변에 다섯 개의 차원문이 열립니다. 수험자들은 다섯 차원문에 들어가서 <차원의 정수>를 모아야 합니다. 차원문마다 하나의 정수가 있습니다.]

[<차원의 정수>를 모아서 <만신전>을 건설해야 합니다. 정수를 많이 모을 수록 더 웅장한 <만신전>이 건설될 것입니다.]

만신전, 말 그대로 수많은 승천자들에게 한 번에 제의(祭儀)를 올리는 시설이다.

성역에 만신전을 지으면 성역에 속한 승천자들이 등록된다.

이 만신전을 통해서 다른 승천자들의 스킬을 배우거나 특별한 아이템을 살 수도 있고, 나중에는 승천자들이 내리는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힘을 받을 수도 있다.

다섯 번째 시험에서 상원의 목표는 다섯 개의 정수를 모두 모아서 최대한 웅장한 만신전을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수 다섯 개를 모두 모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승천 전에 서울역의 만신전은 겨우 정수 두 개로 건설되었다.

그 정도로는 시험을 헤쳐나가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곱 별의 왕관을 목표로 하는 상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무조건 정수 다섯 개를 모두 모아야 한다.

"여러분. 시험 내용은 모두 들으셨지요?"

상원의 외침에 수험자들이 다시 고개를 들어 상원을 바라보았다.

"자, 여러분. 이번 시험에서 저희 목표는 정수 다섯 개를 모두 모으는 겁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제 말씀을 잘 따라주신다면 반드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끝나는 네 번째 시험을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끝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지킨 사람이다.

그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눈빛, 상원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자, 지금부터 제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정수 다섯 개를 모두 모으기 위한 방법입니다."

꿀꺽, 상원이 침을 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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