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하늘악어 레이드 (2)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늘악어가 광장에 착륙했다.
광장 돌바닥에 쩌적 금이 갔다.
"X발 무슨 공룡도 아니고."
만웅이 욕을 뱉었다.
키는 거의 좀비만 했고 몸길이는 20미터에 가까웠다.
온 몸을 뒤덮은 단단한 비늘엔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3급 마물 하늘악어, 그 위용이 대단했다.
'너무 이르긴 하다.'
상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난이도를 높일 거란 생각은 했지만 둘째날 밤에 하늘악어를 불러버릴 줄은 몰랐다.
분명 상원이 오디나스를 퇴치한 게 시험 진행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르르르릉!"
하늘악어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광장을 훑어보았다.
원래 3급 마물 하늘악어는 시험 진행 속도가 더딘 성역을 탈락시키기 위한 장치다.
원래대로라면 하늘악어는 두 번째 낮에서 세 번째 낮 사이에 나타나 성화를 천천히 끄기 시작한다.
하늘악어가 성화를 다 꺼버리기 전에 주술나무를 모두 없애는 것이 세 번째 시험을 깨는 보통의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하늘악어는 사냥을 위한 마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상원의 계획은 달랐다.
'저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여섯 번째 시험의 숨은 시험을 깨려면 <하늘악어의 가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험까지 깨야 첫 번째 별을 얻을 수 있다.
새벽 네 시까지만 버티면 록시가 물건을 보내줄 것이다.
그 물건이 있으면 하늘악어를 잡을 수 있다.
"그르르르릉!"
악어의 시뻘건 눈에 박힌 샛노란 눈동자가 광장을 훑었다.
"제... 젠장."
"X발...."
수험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크오오오오!"
하늘악어의 엄청난 포효에 수험자들이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악어가 으르렁거리며 성화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좀비들마저도 검불처럼 나가떨어졌다.
"저것도 막아야 됩니까?"
문혁의 물음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X발... 저걸 어떻게 막아요?"
만웅의 표정에 절망이 어려 있었다.
문혁이 굳은 얼굴로 활을 뽑아 들었다.
'당연한 반응이지. 세 번째 시험까지 오면서 저런 괴물은 본 적이 없을 테니.'
무려 3급 마물이다.
게다가 같은 3급이어도 망령 거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두 번째 시험에서 숭례문을 지키던 성성이가 저것과 비슷할까?
아니, 하늘악어는 심지어 힘싸움이라면 성성이보다도 강한 괴물이었다.
"쓰읍."
문혁이 잔뜩 인상을 쓰며 하늘악어에게 활을 겨누었다.
악어의 눈을 향해 화살이 핑 하고 날아갔다.
그의 수호신 <해안선의 귀신>이 하늘악어의 약점을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어가 눈을 감자 화살은 턱 하고 힘없이 튕겨져 나가버렸다.
"무슨... 눈 한번 감아서 화살을 막습니까?"
문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건 그런 놈입니다."
상원의 말에 문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구어어어억!"
하늘악어가 어기적거리며 불꽃을 향해 달려들었다.
“막아! 막아야 된다!”
“에이 썅…!”
수험자들이 욕을 내뱉으며 악어에게 달려들었다.
칼이며 도끼 같은 병장기들이 악어 가죽을 내리쳤다.
팡! 팡!
원거리 공격에 능한 수험자들의 스킬이 허공을 갈라 악어에게 박혔다.
악마 문을 막은 진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수험자들이 하늘악어에게 달라붙어 있는 셈이었다.
“그르릉!”
하지만 악어는 기세를 조금도 꺾지 않은 채로 기어왔다.
그러다 갑자기 악어가 우뚝 멈췄다.
“뭐… 뭐야? 데미지가 있나?”
악어가 멈추자 희망이 생겼는지 수험자들이 열심히 고개를 퍼부어댔다.
자기들의 공격이 먹히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쾅! 쾅!
불꽃과 번개, 냉기와 독기가 악어에게 휘몰아쳤다.
그때였다.
"그으으으윽!"
악어가 커다란 트림을 했다.
말이 트림이지 폭발을 방불케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푸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악어의 입에서 돌풍이 쏟아져나왔다.
"뭐야 이거 트림이야?"
"아 씨... 더럽게."
의외의 공격에 놀란 수험자들이 질겁하며 악어의 곁에서 떨어졌다.
그걸 보는 상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저런 공격이 먹힐 상대가 아니야!’
“피해!”
상원이 외쳤지만 늦었다.
악어가 내뿜은 숨결이 수험자들을 덮쳤다.
다음 순간, 악어의 입 곁에 있던 수험자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어... 어? 내 다리가 갑자기 왜 이래?"
"힘이 안 들어가요."
"아... 머리가...."
'젠장... 마비독!'
상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트림의 정체는 하늘악어의 스킬 <마비의 숨결>이었다.
'이 놈... 원래 마비의 숨결을 쓰지만, 세 번째 시험에 나오는 놈은 이거 안 쓰는데?'
상원이 으득 이를 갈았다.
콰직!
악어가 커다란 입을 벌려 마비된 수험자 몇 명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악어의 입에서 새빨간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 이런 X발….”
"미친... 무슨!"
수험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이거 이 정도면 반칙 아니야? 저딴 걸 도대체 어떻게 잡으라고.”
만웅이 온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수험자들이 물러나자 성화까지 가는 길이 훤하게 뚫렸다.
악어가 쿵쿵거리며 성화를 향해 기어갔다.
내딛는 걸음마다 땅이 부서졌다.
그리고 불꽃 바로 앞까지 다가간 악어가 불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악어의 거대한 콧구멍으로 성화가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상원은 보았다.
악어의 등 위에 서 있는 여인을.
새까만 흑발과 대비되는 흰 옷을 입은 여인,
그녀는 사마에트 휘하의 <집행사> 중 하나였다.
'집행사가 직접 왔어? 하 나 참.'
섭리의 집행자 사마에트는 시험을 관리하는 집행 천사들의 정점이다.
그런 그녀가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낸 건 시험에 들 인간들에게 시험의 엄중함을 각인시키기 위한 상징이었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관리는 지금 하늘악어의 등 위에 서 있는 여인과 같은 집행사들이 맡는다.
대강령술사 오디나스가 패퇴하는 일이 일어났으니, 구역을 담당하는 집행사로서는 난이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지만 상원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도 잘 알았다.
'어디 이것도 막아봐, 그런 거겠지. 그런데 둘째날 밤에 악어를 부른데다가 스킬 금제까지 풀었다. 이 정도로 난이도를 바꾸면 승천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상원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나, 몇몇 별들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승천자들이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그건 당신들이 감당할 일이고. 지금 내가 신경쓸 건 그게 아니다.'
"상원씨... 이건 어떻게...?"
문혁이 절망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안심하세요."
상원이 손을 들어 보였다.
"수험자가 아직 한 명 남았습니다."
상원이 씩 웃었다.
"하늘악어를 예상보다 빨리 보내긴 했지만, 우리 집행사가 저것까지 계산하진 못한 것 같지요."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악어가 버둥거렸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집행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으르르릉!"
몸부림치는 악어의 주둥이를 혜경이 두 손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두 발은 돌바닥에 박혀 있었고, 손톱은 수험자들의 병장기에 흠집조차 나지 않던 악어의 가죽을 파고들고 있었다.
검은 숲의 목자가 힘을 제대로 주고 있는지, 옷 아래로는 인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크와아아아악!"
악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발광했지만, 혜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서 좀 그대로 있어라!"
여유롭게 몸을 풀며 상원이 혜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검은 숲의 목자가 아무리 제멋대로에 통제불능인 망나니라 해도 그대로 있다간 시험에 떨어지게 생겼는데 그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너!"
동공이 새까맣게 물든 혜경이 상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혜경이 악어를 막는 동안 상원은 록시를 기다리며 된다.
오로지 하늘악어를 잡기 위해 준비한 물건이 도착할 것이다.
'나는 슬슬 몸을 풀어볼까.'
상원이 악어의 옆구리로 저벅 저벅 걸어갔다.
'이놈의 약점은 여기다, 옆구리. 약점이라고 해봐야 가죽이 좀 덜 단단하다 뿐이지만.'
상원의 주먹이 악어의 옆구리에 박혔다.
빡!
여느 수험자의 병장기가 내는 소리들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르르르륵!"
상원의 주먹은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는지, 악어의 움직임이 더 격렬해졌다.
"그으으으으윽!"
악어가 <마비의 숨결>을 내뿜었다.
"으으윽!"
악어의 숨결을 정면으로 들이킨 혜경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녀는 악어의 주둥이를 굳건히 잡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우우우우!
난데없는 비둘기 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수험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을 가르고 커다란 비둘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저거... 록시의 전서구 아니야?"
"근데 엄청 큰데요?"
수험자들의 말마따나 그건 록시의 전서구였다.
다만 낮에 봤던 것과는 달리 독수리만 했다.
상원이 준 투자금으로 비둘기의 덩치를 키운 것이다.
"구르르르륵!"
수험자들 위를 날아온 전서구가 상원의 곁에 앉았다.
전서구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상자를 다리에 달고 있었다.
겉에는 휘갈겨 쓴 필체로 '수신인: 조상원 투자자님'이라고 쓰여 있었다.
상원이 상자를 좌우로 찢어버리자, 안에 들어있던 물건이 툭 하고 땅에 떨어졌다.
검푸른 비늘로 겉을 덮은 커다란 장갑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박힌 거대한 발톱이 예리한 빛을 내뿜었다.
장갑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 투자자님의 흔쾌한 투자 덕에 제작이 주문하신 시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유용하게 쓰시길 바랍니다. 록시.
"예상보다 빠르네."
상원이 장갑을 집어들자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귀물급 보구 <악어잡이 갈퀴발톱>을 얻었습니다.]
악어잡이 갈퀴발톱, 웬만한 날붙이들보다 튼튼하고 날카로울 뿐더러 이름 그대로 하늘악어를 잡는 덴 특화된 물건이었다.
재료를 주는 늪지 광견과 화살촉 구렁이 모두 하늘악어의 사냥감으로서, 하늘악어에게는 치명적인 독을 품게 진화했기 때문이었다.
이 발톱엔 그 독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고맙습니다 록시!"
"구르르르륵!"
상원의 감사 인사는 전서구를 통해 록시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전서구가 긴 울음을 남기고 광장 저 편으로 사라졌다.
상원이 악어잡이 갈퀴발톱을 끼었다.
발톱을 따라 흐르는 무시무시한 독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크아아악!"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하늘악어가 몸부림을 쳤다.
"어디."
상원이 오른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빠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을 덮은 비늘이 정렬했고 손가락 사이에 돋은 발톱이 각을 세웠다.
'누가 이기나 봅시다, 사마에트!'
"으아아아악!"
단전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고함을 지르며, 상원이 악어의 옆구리를 향해 발톱을 그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악어의 옆구리에서 분수처럼 쏟아진 피가 상원을 덮쳤다.
'역시, 먹힌다!'
씨익, 상원이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
상원을 바라보는 집행사가 두 눈을 부릅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