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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34화 (34/230)

제34화. 하늘악어 레이드 (1)

"그으으으윽."

상원의 품에 안긴 명희가 거품을 물고 경련했다.

두 눈은 하얗게 까뒤집혔고, 몸은 뒤틀린 채 굳어 있었다.

상원은 명희의 얼굴에서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열두 번째 시험, 유성희의 곁에서 수험자들을 학살하던 하나교도들 중 하나가 박명희였다.

그때 그녀는 피를 뒤집어쓴 채로 미친 듯 웃고 있었다.

'이게 그때 그 악귀 같던 박명희라니. 도대체 그때는 열두 번째 시험을 칠 때까지 무슨 일을 겪은 거야.’

회귀 후 겪은 박명희는 의지력이 특출날 뿐 그 외엔 보통 수험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겠지. 그랬으니까 서울역에 같이 있었는데도 눈에 띄지 않은 거 아니겠어.’

명희를 안은 채로, 상원은 좀비들로 가득찬 밤거리를 훌쩍훌쩍 달렸다.

‘하기사. 시험 아홉 개면 인간성을 바닥부터 갈아 엎어버리기 충분하지.’

어느새 서울역 서부 광장이 보였다.

광장부터 건물 안까지 좀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상원은 명희를 어깨에 들쳐 안았다.

그리고 남은 팔에 <하늘의 불꽃>을 실었다.

특수 좀비도 아닌 그냥 좀비들을 해치우는 데는 한 손이면 충분했다.

좀비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리며, 상원은 성화를 향해 나아갔다.

건물 안에 가득 찬 좀비들을 뚫고 상원은 반대편 입구에 도달했다.

성화가 거대한 분홍색 불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서울역의 수험자들이 필사적으로 불꽃을 지키고 있었다.

불꽃이 튀고 번개가 내리치고 바람이 불었다.

수호 계약을 맺은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수험자들은 어느새 그럴싸한 초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 중 몇몇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해안선의 귀신>의 화신 백문혁과 <자칭 협객>의 화신 김만웅이 칼날을 휘두를 때마다 좀비들의 사지가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은 상원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상원이 오른팔을 휘두르자 좀비 몇 마리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쾅 하는 폭발음은 다른 수험자들이 내는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소리에 놀란 수험자들이 뜨악한 얼굴로 상원을 보았다.

그리고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와... 왔다! 그 사람이 왔어."

"아, 다행이에요."

몇몇 수험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구원자를 보는 것 같은 태도였다.

'32년... 그동안 누구도 저런 얼굴로 나를 보지 않았는데.'

상원은 지금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멸시에 찬 얼굴들을 생각했다.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마치 자신을 추앙하는 것 같은 얼굴은 너무 낯설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기도 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차는 느낌이 들었다.

살짝 웃으며, 상원은 성화 곁으로 다가갔다.

"다녀오셨습니까, 형님."

나이프를 휘두르던 문혁이 동작을 멈추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칼을 휘두르는 문혁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일었다.

성화 곁에는 부상자들이 누워 있었다.

"어, 일찍 왔네요?"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 혜경이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히고서 베시시 웃었다.

그녀는 불꽃 곁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곁에는 거구의 좀비가 찢어 발겨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자기 머리통만큼이나 굵직한 좀비의 다리통을 뜯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저거... <흑풍회 역사>군. 저걸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다니, 역시 <검은 숲의 목자>다.'

"저는 안 주셔도 되니까 많이 드세요."

상원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혜경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에 열중했다.

옆에는 그녀의 남편 창훈이 앉아 있었고, 주위엔 주술 나무로 만든 주술 기둥 네 개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상원씨."

창훈의 얼굴이 파리했다.

'그래도 컨디션을 회복하긴 했구나. 앉아있을 수 있다니.'

창훈이 측은한 얼굴로 아내를 보고 있었다.

"저도 좀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버텨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창훈씨가 없었다면 혜경씨는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에요."

'사실이지. 당신이 죽어버렸다면 송혜경은 검은 숲의 목자한테 완전히 잡아먹혀서 괴물이 되어버렸을 테니까.'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상원이 창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내를 위해서 버티는 것,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이고 최선입니다. 창훈씨."

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훈은 지금 자기를 잠식하는 목자의 기운과 싸우고 있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지, 상원은 경전과 노트를 읽으면서 상상했었다.

목자의 기운을 버티면서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을 이끄는 것, 그게 원래 새하늘교가 상원에게 안배한 역할이었다.

"다른 것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버티는 데만 집중하세요."

검은 숲의 목자가 먹잇감으로 점찍은 이상 한창훈을 노릴 간 큰 마물은 없었다.

그러므로 창훈이 버텨주기만 한다면, 열 네번째 시험까지 송혜경이 먹히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아이님? 와... 왔네? X팔...."

그때, 누군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상원을 불렀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원강수가 불꽃 곁에 누워 있었다.

다른 부상자들과는 달리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예, 아이님. 돌아왔습니다."

상원은 어깨에 들쳐맸던 명희를 강수 옆에 눕혔다.

"아니, 이게 뭐야? 명희, 명희! 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슨 꼴이야? 명희!"

강수가 고개만 돌린 채로 명희를 보며 외쳤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명희의 꼴은 처참했다.

까뒤집은 눈, 입에 가득찬 거품, 잔뜩 뒤틀린 사지와 배설물로 범벅이 된 옷.

"아이께서는... 총재님을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아이께서 총재님께 전달드린 스킬은, 아마 총재님께서 소화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총재님이시니까요."

상원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강수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원강수까지 저 꼴이 된 걸 보면, <원혼 군주의 절규>가 제대로 발휘되긴 했구나.'

상원의 목표는 연결된 모두에게 효과를 미치는 강력한 저주 <원혼 군주의 절규>를 하나교도가 듣게 하는 것이었다.

명희가 절규를 들었고, 하나교 교주 유성희의 성현 <성년의 징표>를 통해 연결된 하나교도들 모두가 저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직접 들은 게 아니니 다들 박명희보다는 상태가 낫겠지. 딱 한 명 빼고.'

바로 교주 유성희.

성현 <성년의 징표>를 통해 공유받은 스킬은 그녀의 개성 <그물 금자탑의 정점>을 통해 강화된다.

그 개성 때문에, 원혼 군주의 절규 같은 저주도 증폭해서 받는다.

'박명희가 이 꼴이라면, 유성희는 거의 산송장이 됐겠군. 적어도 시험 두 개는 그냥 건너뛰어야 되겠구나.'

상원의 계획은 오차 없이 성공했다.

두 번째 별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을 확보했고, 장애물도 하나 치웠다.

일석이조였다.

"아... 다행이에요, 다행이야. 우리 아이님께서 힘써주신 덕에... 우리 하나교가 하나됨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을거에요."

강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어요 아저씨. 유성희가 산송장이 됐을 테니, 글쎄 앞으로 여러분들 스킬 공유는 제대로 받을 수 있으려나?'

"다행입니다. 하나된 영광이 함께."

본심을 최대한 숨기면서, 상원은 돌아서며 툭 내뱉었다.

상원의 의도가 뭐였는지, 하나교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남았네.'

상원은 계단 위로 몸을 날렸다.

<낙원의 수문장>의 화신 윤진아가 분홍 불꽃을 쏘아내며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는 새타니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부정한 것들은 사라질지어다."

그녀의 양손에서 타는 분홍색 불꽃, 낙원의 수문장의 성현 <지천사의 불꽃>은 상원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선명하고 강렬했다.

낙원의 수문장은 섣부르게 시도한 강림이 실패해 침묵하고 있을 것이고, 윤진아 자신도 첫 번째 밤에 입은 상처 때문에 만신창이일 것이다.

더군다나 새타니들 사이에 낀 상위종 그슨대들이 진아의 마력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진아는 기세등등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 정도 위력이라니. 이게 낙원의 성화의 클래스구나! 역시 대단하다.'

"크윽!"

진아의 코에서 찐득한 피가 흘렀다.

아무리 막강한 낙원의 성화라도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윤진아, 나한텐 지금 당장 당신에게 필요한 게 있지.’

몸을 날린 상원이 진아 뒤에 섰다.

“역시, 잘해주고 계셨군요.”

“상원씨!”

뒤를 살짝 돌아본 진아의 얼굴에 반가움이 스쳤다.

“코인이랑 신앙은 무지무지 쌓이는데… 지금 당장 죽겠어요!”

다급한 진아의 말에 상원이 피식 웃고는 품에서 브라이싱크론 지갑을 꺼냈다.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상원이 지갑에서 파랗게 빛나는 조약돌을 꺼내 진아의 등에 댔다.

조약돌이 부서져 파란 모래바람이 되어 진아를 감싸고 휘돌다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자 지천사의 불꽃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

"이건...!"

"<마력의 돌>이라고 록시가 팔던 물건 중에 하납니다. 마력을 채워주죠."

상원이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아가 잠깐 입을 벌리고 멍하게 있던 윤진아가 말했다.

"여기는 저한테 맡기세요! 실수 없이 해낼게요!"

진아가 다시 악마들을 보며 불길을 뽑아냈다.

낙원의 수호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고위 신령 <낙원의 수호자>.

진아의 작은 몸에서, 그 수호신과 같은 권위와 위엄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진아의 등에 대고 말한 후, 상원이 고개를 돌렸다.

"으오오오!"

다시 긴 포효가 들렸다.

의령수 공략전을 마쳤을 때, 난이도가 조정된다는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들렸던 그 포효였다.

"으윽! 무슨 소리지!"

"끄아아악!"

몇몇 수험자들은 그 포효에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세... 세상에, 저게 뭐야?"

"맙소사."

수험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새파란 달빛 아래로 거대한 형체가 꾸물거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거대한 물고기 같았다.

한동안 수험자들은 하늘을 날아오는 거대한 물체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알게 됐다.

기왓장 같은 비늘이 금속질의 빛을 내뿜으며 빛나고 있었고, 널따란 아가리 안에는 칼날같은 이빨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 악어?"

"악어? X발... 저 정도면 공룡인데."

누군가 넋을 잃고 한 말을 만웅이 받아쳤다.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달아나리라...."

윤진아가 중얼거렸다.

'욥기 41장 25절. 레비아탄에 대한 구절이지. 윤진아라면 저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네.'

온 몸으로 새파란 달빛을 반사하며, 거대한 악어가 하늘을 유유히 헤엄쳤다.

"하늘악어. 이 정도로 빨리 올 줄이야."

세 번째 시험 <성화 사수>의 하이라이트, 성역 <서울역>에 대해 선포된 종말의 카운트다운, 그리고 세 번째 시험에서 얻어야 하는 재료를 주는 마물.

3급 마물 하늘악어가 성역 서울역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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