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대강령술사 공략전 (2)
[스킬 <하늘의 불씨>가 활성화됩니다.]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상원의 손끝에 분홍 불꽃이 맺혔다.
손끝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하늘의 불씨는 승천자 <낙원의 수문장>의 성현 <치천사의 불씨>의 열화판 스킬.
원래대로라면 그 격차는 횃불과 향불 정도로 까마득한 게 맞다.
하지만 상원의 스킬은 비록 원판보다는 초라할지라도 꽤나 그럴싸한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술법의 위력을 뒷받침하는 술력이 몹시 높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원의 술력은 40.
세 번째 시험에서 이 정도면 승천 게임판 어디에도 상원보다 강한 주술사는 없다.
“가볼까.”
낮게 읊조리고, 상원은 좀비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수험자들에게는 한없이 따스한 성스러운 불꽃.
하지만 좀비들에게는 따스한 온기가 아닐 것이다.
<하늘의 불씨>는 성(聖)속성 스킬, 언데드인 좀비와는 상극이다.
조그만 불씨로도 좀비들을 먼지덩어리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좀비 무리 한가운데 뛰어든 상원이 춤추듯 팔을 휘둘렀다.
그 커다란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손끝에 맺힌 하늘의 불씨가 유려한 분홍빛 궤적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쾅쾅거리는 폭발음과 함께 좀비가 몇십 마리씩 산화했다.
그 모습은 마치 닭장 속에 뛰어든 호랑이와 같았다.
그야말로 무쌍.
"그으으으."
산 사람의 살을 물어뜯고 싶다는 본능만 있는 좀비들은 꾸역꾸역 상원에게 달려들었다.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다.
사냥감을 추격하기 위해 쓸데없이 힘을 뺄 필요가 없었으니까.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좀비들이 상원에게 달려들었고 그대로 산화했다.
[5 코인을 얻었습니다.]
좀비를 해치울 때마다 코인이 쌓여갔다.
3천 개가 넘는 코인을 록시에게 투자한 게 불과 하루 전이었다.
하지만 상원은 하루 새 그만큼의 코인을 다시 모았다.
초반에 상인에게 몇천 코인씩 투자하는 게 상원에겐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마물을 때려잡아서 몇백 코인씩을 벌 수가 있으니까.
한동안 상원의 좀비 학살이 계속되었다.
‘그러고 보니 박명희는 잘 따라오고 있나.’
상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상원과 명희가 출발했던 서울역 서부 광장에서부터 지금 상원이 서 있는 곳까지, 마치 갈라진 홍해처럼 길이 나 있었다.
좀비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서 생긴 길, 그 길 중간쯤에서 박명희가 얼빠진 얼굴로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 괴물...."
상원을 보는 명희의 눈동자도, 그녀의 어깨도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승천 게임이 시작된 지 이제 사흘, 고작 세 번째 시험이다.
수험자들은 이제 막 수호신을 만나서 스킬을 배우고 능력치를 찍기 시작했다.
투자를 잘 받은 수험자들의 능력치가 20 언저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능력치 합계 150짜리가 있다면, 보통 수험자 입장에선 괴물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님."
상원의 외침에, 명희가 헛 하고 정신을 차렸다.
"네, 네."
"잘 따라오세요."
짧게 말하고, 상원은 다시 길을 뚫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좀비를 해치웠을까, 저 멀리 의령수의 흉측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상원과 명희는 의령수 앞에 서 있었다.
해골의 형상을 한 달의 새파란 달빛이 의령수에 와 부딪혔다.
"밤에 여길 올 줄은."
명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새파란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의령수의 모습은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낮에도 흉측했던 의령수였는데, 파란 달빛을 받자 이제 아예 외피가 금속질인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그으으으."
웬일인지 좀비들은 의령수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저 주변을 빙빙 돌며 신음소리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지성 없는 좀비들마저도 의령수를 꺼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너무 무섭습니다."
명희가 말했다.
"그냥 나무입니다."
상원이 명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정말...."
명희가 침을 꿀떡 삼켰다.
"정말, 이걸 밤에 해결하면 좋은 스킬을 얻을 수 있지요?"
명희가 상원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공포를 덜기 위해 해 본 말일까?
단순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박명희의 눈빛엔 아직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상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과 의문은 친하지 않은데... 특이한 사람이군.'
상원이 만났던 하나교도들은 한번 믿기 시작한 사람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니 유성희에게 재산도 가족도 갖다 바치고서도 유성희 곁에 남아있는 것일테고.
'아니, 하나교도들 뿐만이 아니다.'
승천 게임에 참가한 수험자들 대부분이 그렇다.
두 번째 시험에서 길을 알려주기 위해 나타나는 붉은 돼지
그 돼지를 따라가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신비한 것을 믿는 자세가 돼 있다.
그러니까 돼지를 따라 동굴같이 깜깜한 지하철역으로 겁도 없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승천자들과 기본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박명희는 특이한 사례였다.
"아이님."
상원이 일부러 목소리를 깔았다.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지요?"
명희가 허리춤에서 자기 두 손을 포개 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포개 잡은 두 손이 하앴다.
창백해진 그 손에서 명희의 불안과 긴장이 그대로 읽혔다.
"지금부터 있을 시험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아이님께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원이 웃으며 말했다.
"다만."
상원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명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하나교 교주, 훗날 서울 육마귀 중 하나가 될 유성희를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숨은 시험을 클리어하는 걸, 반드시 지켜봐 주셔야 됩니다. 끝까지요."
상원이 고개를 숙여 명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명희의 눈동자에 상원의 얼굴이 가득 찼다.
"아시겠지요?"
명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사람은 잘 해낼 거다.'
상원은 생각했다.
회귀 전 명희를 마주쳤던 곳은 열두 번째 시험이었다.
열두 번째 시험까지 살아서 갔다는 건, 박명희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의 강단과 의지는 있다는 뜻.
이제 상원이 그 강단을 이용할 차례였다.
몸을 돌려 상원이 거대한 의령수를 보았다.
의령수의 수많은 머리, 그 빈 눈구멍에 그득그득 어둠이 들어차 있었다.
저벅저벅, 상원은 의령수를 향해 다가갔다.
왠지, 움직일 리 없는 나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숨은 시험, 이제 시작하지.'
의령수 앞에 선 상원이 손을 뻗었다.
첫 번째 낮에 의령수를 없앨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원은 의령수를 그냥 두었다.
밤에만 깰 수 있는 이 시험을 해결하고, 두 번째 별을 얻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의령수의 심장>을 얻기 위해서.
웬만한 건물만 한 의령수의 줄기에, 상원이 손을 얹었다.
그러자 상원 손등의 표식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숨은 시험>이 시작됩니다.]
[<대강령술사 오디나스>가 이 세계에 소환됩니다.]
[시험 성공 시 <세 번째 시험: 성화 사수>의 보상이 커집니다.]
박명희도 같은 메세지를 들었을 것이다.
아마, 그녀의 수호신은 그녀를 다그치고 있을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 시험에 도전했냐고.
간단하다.
'정체도 제대로 모르는 수호신보다야 같은 하나교도를 믿겠다는 거지.'
그와 함께 하늘에서 검푸른 빛줄기가 의령수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마치 빛나는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몇십 초 빛줄기가 내리꽂히다 그쳤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아악!"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사차선 도로를 완전히 막은 의령수, 그 거대한 나무가 미친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의령수의 수많은 머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왔군!'
숨을 들이쉬고, 상원은 꿈틀거리는 의령수를 마주 보았다.
"세... 세상에...."
뒤를 돌아보니, 박명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승천 게임이 시작된 이후 수많은 사선을 넘어오며 별별 꼴은 다 본 명희에게도, 저 징그러운 나무가 미친 듯 꿈틀거리는 건 견디기 어려운 광경일 것이다.
"으... 으으."
조율되는 악기의 소리가 조정되는 것처럼, 비명소리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으... 으악!"
수많은 머리들이 하늘을 향해 단말마를 내뱉었다.
그리고 우뚝, 의령수의 움직임이 멎었다.
숨막힐 듯한 정적이 땅을 덮쳤다.
그 뒤, 하늘을 보고 있던 의령수의 머리들이 차례차례 굽기 시작했다.
어둠만 들어차 있던 눈구멍에 파란 불꽃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귀기를 잔뜩 머금은 도깨비불이었다.
"나... 는."
의령수의 머리 하나하나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카이네딘의 멸망... 대강령술사... 오디나스."
'김만웅이 그랬었지. 무슨 히드라냐고.'
설마 저게 움직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만웅의 비유는 꽤 정확했다.
의령수는 수십 개 머리가 달린 거대한 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머리들이 고개를 굽혀 상원을 내려다보았다.
"산... 자가... 여기에."
이어서 의령수가, 아니 의령수에 빙의한 오디나스가 수많은 머리를 들어 먼 곳을 보았다.
그 곳에는 서울역의 성화가 뿜어내는 분홍색 빛줄기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성... 화."
대강령술사 오디나스, 산 자들에 대한 증오를 뼛속 깊이 새기고 스스로 산 자들의 재앙이 된 자.
"으아아아악!"
그 비명에 증오가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어어어!"
오디나스의 외침에 장단을 맞추어, 그 주변에 있던 좀비들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더 이상 비척대며 움직이지 않았다.
좀비들이 훅훅 소리를 내뱉었고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제 어엿하게 군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상원이 오디나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디나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오디나스가 고개를 숙여 상원을 보았다.
"널 위해 준비했다 오디나스."
상원이 브라이싱크론 지갑에서 <20층의 흑마술 양초>를 꺼냈다.
파란 달빛 아래 흑마술 양초가 소름끼치는 귀기를 내뿜었다.
"으... 으으."
오디나스로서는 결코 모를 수가 없는 물건.
오디나스의 열등감과 분노가 집약되어 있는 물건.
"끄아아아악!"
오디나스가 수십 개의 입으로 비명을 질렀다.
씩 웃으며, 상원이 양초에 손을 댔다.
곧 상원의 손등에서 파란빛이 났다.
흑마술 양초의 표면을 따라 그려진 문양이 새빨간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르륵
흑마술 양초에 불이 붙었다.
소름끼치는 귀기를 담은 보라색 불꽃이었다.
“너... 그거! 끄아아아악!”
오디나스가 비명을 질렀다.
‘반응을 보니까, 이거 될 것 같군.’
이제 오디나스를 추방하면, 오디나스가 깃들었던 의령수에 박힌 의령수의 심장을 얻을 수 있다.
상원이 씩 웃었다.
그렇게 숨은 시험 <대강령술사 공략전> 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