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황혼 (2)
성화를 보고 앉은 원강수의 몰골은 처참했다.
상의를 벗어 드러난 몸 여기저기 큰 상처들이 나 있었다.
척추를 따라 길다란 발톱 자국이, 그리고 왼쪽 어깨에 구렁이의 바늘이 박힌 자국이 있었다.
별도의 처치가 없었다면 강수는 서울역에 돌아올 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명희가 아니었으면 귀신이 됐겠군.'
원강수가 지금껏 살아있는 건 전적으로 박명희의 치료 덕이었다.
"입이 방정이지, 입이 방정이야."
강수가 요놈의 주둥이 하면서 자기 입을 때렸다.
상원은 그들과는 상당히 멀리 있었지만, 귀를 기울이자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거 참... 성능 죽인단 말이야.'
신화의 몸은 감각기관도 민감했다.
상원은 그 성능에 또 한번 놀라면서, 두 하나교도들의 대화에 주의를 집중했다.
"아이구 참 자기는 생각도 없고. 목소리만 커서는 참. 그러게 거기서 총재님 얘기를 왜 해 하기를."
박명희가 강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녀는 강수의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붕대를 감는 솜씨가 꽤 괜찮았다.
"근데 이 성화가 참 신통하긴 신통하네 그려. 우리 명희씨같은 명의도 못 고치는 걸 아주 뚝딱뚝딱 고쳐."
"어휴 그럼 성화가 괜히 성화겠수? 우리 총재님도 그랬잖아요. 하늘이 열리면 햇살같이 따스한 빛이 우리 성도들을 비춰주실 거라고."
"그래 그랬지. 햇살같이 따스한 빛."
서쪽 하늘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창백한 겨울 하늘의 가장자리가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강수와 명희의 얼굴에 성화가 비추는 분홍빛이 너울거렸다.
"우리 총재님, 잘 계시겠죠?"
"그럼! 우리 총재님 같은 분이면 이깟 좀비들은 아주 그냥 한주먹거리도 아니지."
"참말로... 아이고 우리 총재님 보고 싶다. 우리 총재님 말마따나 개천(開天)은 했는데... 했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네."
명희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 명희씨. 우리 기도 합시다 기도. 마음이 흔들릴 땐 기도만 한 게 없어."
강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맞네요. 우리 기도합시다."
강수와 명희가 서로 마주 보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상대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열리나니, 새하나의 품속에서 우리는 드높아지나이다."
"하늘이 열리나니, 새하나의 품속에서 우리는 드높아지나이다."
두 사람의 기도가 화음을 이뤘다.
어조부터 속도까지 똑같아서 마치 한 목소리 같았다.
하나교, 사람들이 하나가 될 거라는 종교.
신도들의 기도에서부터 하나교의 정체성이 묻어나왔다.
'예언이 완벽하게 실현된 느낌이겠지, 당신들에게는.'
예언이란 게 그렇다.
예언은 성긴 정보들이다.
큰 사건 사고엔 그 정보가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는 구석들이 있기 마련, 인간은 가진 정보를 거기에 끼워 맞춘다.
‘그게 예언의 본질.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는 없다. 사마에트의 강림 같은 거대한 사건이라면, 어떤 예언이라도 거기에 들어맞는 부분이 있겠지.’
강림 이후 자기들의 예언이 실현됐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는 상원이 아는 것만 해도 수십 개는 됐다.
‘하나교’는 그런 종교들 중 굉장히 특별한 사레였다.
교주 유성희의 성현, 성년의 징표가 하나교의 핵심 교리인 ‘개천 이후 신도들이 하나가 됨’을 그럴싸한 모양새로 실현해버렸기 때문이다.
승천 시험에 임한 수험자들이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라는 걸 스킬만큼 잘 보여주는 건 없다.
일반인이 초능력자가 되는 것이니까.
유성희로부터 성년의 징표를 받은 이들은 서로 스킬을 공유한다.
일반인을 초월해서 서로가 하나 되었다는 느낌을 그만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게 또 있을까.
그래서 승천 시험에 든 하나교도들의 신앙심은 굳다.
교주 유성희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하기사 하나교도라는 사람들... 하나같이 재산이고 가족이고 유성희한테 갖다 바친 사람들이란 말이지.'
하나교, 말만 그럴싸하지 사실은 사기성 다단계 업체에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교리를 합친 착취성 사이비다.
'강림 전의 하나교는 그냥 흔해 빠진 사이비종교 중 하나였지. 강림 이후에 이런 집단이 돼버릴 줄은... 글쎄, 유성희라고 알았을까 그걸.'
사이비 종교의 세력은 대부분 교주의 카리스마에 의해 유지된다.
유성희는 그런 측면에선 남다른 인물이었고.
상원 앞에 있는 원강수와 박명희도 유성희의 혀에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교주 유성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상원은 그 마음을 이용할 것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남녀의 곁에서 상원은 조용히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기를 몇 분, 마침내 그들의 기도가 끝났다.
“아이고 깜짝아!”
눈을 뜬 강수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아까 그 총각이네! 하하.”
일어선 박명희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이런 데서 아이들을 만날 줄이야.”
‘아이들’은 하나교 신도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다.
개인으로 흩어져 있는 '아이'들은 '하나교'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하나 된 '어른'이 된다.
"어쩐지, 우리 총각... 총각 이름이 뭐였지?"
"조상원입니다."
대답을 하며 상원은 부드럽게 웃었다.
"아 그래, 상원씨도 아이였구만. 반가워요."
씩 웃으며 강수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박명희가 쳐냈다.
"잠깐만."
박명희의 눈이 날카로웠다.
'감이 좋네.'
박명희는 원강수만큼 허술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께서는... 하나된 게 맞나요? 우리에게 어떤 스킬을 주고 계시죠?"
'하나교의 용어들을 알고있다는 것만으론 넘어가지 않네. 하나교에도 의심쟁이가 있었구만.'
하나교 신도라면 성년의 징표를 통해 자기 스킬을 공유한다.
유성희는 그걸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진짜 하나교 신도가 맞느냐고.
하지만 상원은 그에 대한 대답도 준비해두고 있었다.
"저는 <별의 사도>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박명희와 원강수의 눈이 커졌다.
박명희의 눈은 원래 왕방울만 했지만, 쭉 찢어진 원강수의 눈이 그렇게까지 커질 수 있는 줄은 상원도 몰랐다.
'이름은 참 거창하다. 별의 사도.'
그 거창한 이름 뒤에 가려진 진실은 초라했다.
그 이름은, 사실 유성희가 스킬을 공유할 수 없는 신도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걸 그런 이름으로 숨기다니... 역시 고단수야.'
서울 육마귀의 일원, 새하나의 증인 유성희.
그 힘의 핵심은 그녀의 성현, 성년의 징표다.
징표를 받은 자들의 스킬을 공유하게 해주는 성현, 상원은 그 약점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새하늘 시험에서 마주하게 될 것들의 정보가 속속들이 쓰여 있는, 새하늘교의 노트 <승천계시록 강해>를, 정말 수천 번도 더 읽었으니까.
유성희의 수호신인 <드높은 정신>, 그 격은 <신령> 중 중급이다.
증표를 받은 사람들의 스킬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중급 신령의 성현치고는 말도 안되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수호신이 중급 신령, 한계는 분명하다.'
첫 번째 한계.
성현을 제공하는 수호신보다 격이 높은 수호신이 화신으로 삼은 자와는 스킬을 공유할 수 없다.
그러니까 성년의 징표를 받은 하나교도라 할지라도, 그 수호신이 상급 신령이라면 하나교도들이 그 스킬을 공유할 수 없단 얘기다.
상원은 회귀 전 <별의 사도>를 만났고,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신도의 수호신이 교주의 수호신보다 격이 높다... 그걸 알았을 때 유성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독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존재에게, 유성희는 오히려 별의 사도라는 거창한 직함을 주었다.
그가 교주인 <새하나의 증인>과 거의 대등한 존재로 여겨지도록.
그렇게 유성희는, 사실은 자기 수호신이 격이 낮아 그들의 스킬은 공유할 수 없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아... 사도, 사도이셨군요."
별의 사도, 그 네 글자의 힘은 강했다.
박명희의 눈에서 냉기가 빠졌다.
그녀는 무장이 순식간에 해제되었다.
똑,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우리... 우리 총재님, 우리 총재님은 잘 계실까요."
그녀가 상원의 두 손을 잡았다.
그 옆 원강수의 눈도 촉촉해졌다.
"저도 총재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괜찮으실 겁니다."
상원이 살짝 웃자, 그들도 상원을 따라 웃었다.
성년의 징표, 그 두 번째 한계.
징표를 통해 생각까지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나교도들은 서로의 스킬을 공유하면서 여기저기서 암약하고 있을 테지만,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은 유성희가 아주 가끔 신도들에게 메세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고작이다.
실제로 그들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되는 건 수험자들이 성역을 벗어나게 되는 다섯 번째 시험부터다.
하나교에 대한 이 모든 정보가 있기 때문에, 상원은 지금은 만날 수조차 없는 유성희를 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상원이 짐짓 조심스러운 얘기를 꺼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아무래도 이런 처지... 다 보니까, 제가 우리 총재님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말을 하는 동안 상원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두 사람은 거의 빠져들 것 같은 태도로 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따가 밤이 되면, 제가 성역을 벗어날 겁니다. 갈 데가 있어요. 거기서 스킬을 배울 건데... 저와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두 사람의 눈에 불안이 스쳤다.
한밤중에, 성역을 벗어나서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늪으로 들어가라고?
"아까... 그 의령수로 가실 거죠?"
명희의 물음에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밤에 거길 간다고?"
이번엔 강수가 물었다.
"네. 밤에 거길 가야 배울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 스킬, 여러분들이 배우시게 되면... 총재님께는 정말로 정말로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의령수>가 평범한 주술 나무가 아니라는 걸.
사실 의령수는 세 번째 시험의 히든 미션이다.
의령수를 없애면 소정의 보상을, 그것도 꽤 넉넉하게 받는다.
수많은 수호신들이 자기 화신에게 얘기했을 것이고, 그래서 불나방처럼 의령수를 향해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조리 비명횡사했겠지.'
상원은 사거리에 즐비했던 시체들을 떠올렸다.
박명희와 원강수도 그 무리들 중 하나였을 거고.
'어떤 수호신들은 밤에 의령수를 없애면 상상 못할 보상이 있다고 알려줬을 수도 있지만, 글쎄... 안다 해도 밤에 거길 들어갈 담까진 없겠지.'
상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보았다.
"제 자신보다야 우리 아이들의 하나됨이 중요하지요. 여러분들도 저와 같으시잖아요?"
상원은 목소리에 최대한의 진정성을 담았다.
그게 먹힌 걸까, 아니면 '총재님'을 판 효과일까.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역시... 그럽시다. 하나된 영광이."
원강수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나된 영광이...."
박명희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먹혔다!'
계획대로라면, 유성희는 적어도 시험 두 개는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열두 번째 시험에서 괴물이 된 유성희와 하나교도들을 만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상원은 하늘을 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미소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