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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3화 (23/230)

제23화. 안개 속으로 (3)

상원의 주먹질에 절명한 마물은 1급 마물 <늪지 늑대인간>이다.

세 번째 시험의 낮은 <늪지 늑대인간>을 상대하면서 <주술 나무>를 없애는 일이었다.

늪지 늑대인간은 안개 속에서 주술 나무를 지킨다.

이름은 늑대인간이지만, 생김새는 거의 두 발로 걷는 하이에나에 가까웠다.

덩치는 보통 성인 남성 정도지만, 온 몸이 근육질인지라 덩치에 비해 힘이 셌다.

1급 마물로, 강하기로 치면 좀비나 새타니보단 강해서 두 번째 시험에 등장했던 잔나비들과 비슷한 정도였다.

1급 마물 잔나비.

두 번째 시험 당시 수험자들은 그들을 피해 도망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호계약을 맺지 않은 수험자들은 말 그대로 일반인들이었으니까.

잔나비도 어엿한 맹수, 일반인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부분의 수험자들이 수호계약을 맺은 지금, 수험자들은 <늪지 늑대인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안개 속을 나아가는 상원 일행은 하나같이 한 가닥 하는 이들이었다.

상원은 능력치 총합이 150인 괴물.

거기에 <해안선의 귀신>의 가호를 받는 특수부대원 백문혁,

<자칭 협객>의 가호를 받는 길거리 싸움꾼 김만웅,

그리고 <검은 숲의 목자>의 짐승 송혜경까지.

늪지 늑대인간을 상대하기가 어렵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상원은 주먹을 닦으며 일행들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깨갱!"

"끄르르륵!"

늪지 늑대인간들이 곤죽이 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만웅의 보라색 검기가 그리는 궤적은 안개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팟!

문혁이 쏜 화살이 상원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깽!"

쏜살은 상원에게 달려들던 늑대인간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그리고 안개를 뚫고 커다란 그림자가 날듯이 달려왔다.

침을 흘리며 짐승마냥 달려오는 혜경, 그녀의 눈이 온통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원을 스쳐간 혜경이 다른 늑대인간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륵!"

혜경이 지나간 자리로 그녀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남았다.

늑대인간이 미처 방비할 새도 없었다.

뿌지직!

혜경의 거친 손아귀에 늑대인간의 두 팔이 그대로 뽑혀 나갔다.

"깨갱!"

늑대인간이 피거품을 쏟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혜경이 늑대인간의 목덜미에 얼굴을 처박고서 살점을 우적우적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짐승이 따로 없었다.

누가 수험자고 누가 마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뒤늦게 그녀를 따라온 문혁과 만웅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았다.

"우욱!"

문혁이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수없는 사선을 넘나든 그의 눈에도 이런 광경은 예상 밖일 것이다.

"세... 세상에."

만웅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젠장, 내가 그뭔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만웅은 그녀를 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지, 이제 와서 후회가 몰려드는 듯 싶었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그녀가 뜯어먹고 있는 게 늑대인간이 아니라 자기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걸.

"으으으."

혜경이 일행들을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입 주변에 피와 털이 잔뜩 붙어있었다.

그녀가 소매로 입 주변을 슥 닦았다.

그녀의 눈을 물들이고 있던 검은 기운이 스르르 빠졌다.

정신을 차린 건지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짐승의 얼굴에서 사람의 얼굴로, 표정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분위기는 천지 차이였다.

"어... 어? 하하, 죄송해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혜경이 겸연쩍게 웃었다.

"좀 같이 드실래요?"

선지피가 뚝뚝 흐르는 늑대인간의 머리를 내미는 혜경의 태도가, 과일 바구니라도 내미는 듯 했다.

그녀는 아직도 늑대인간의 살점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창백한 얼굴로 문혁이 손사래를 쳤다.

"으... 젠장."

만웅이 울상이 되어 그녀 앞으로 달려갔다.

용서를 빌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 늦으면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 죽을 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정신이 나가서 그만."

만웅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바닥에 쿵쿵 찍었다.

그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

혜경이 만웅의 목깃을 쥐고는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녀의 얼굴에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커다란 만웅의 몸이 혜경의 손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양새가 됐다.

"끄... 끄윽."

옷깃에 목이 졸린 만웅이 신음을 뱉었다.

혜경이 만웅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 아하. 당신 기억나. 그 때 나랑 재미 좀 보려고 했었지?"

혜경이 풋 하고 살짝 웃었다.

"나 당신한테는 전혀 관심 없으니까 앞으로 조심해요.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공포에 질린 만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벌은 받아야겠지?"

혜경이 다른 손을 만웅의 목덜미로 뻗었다.

"흐이이이익!"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웅이 괴성을 질렀다.

"그만둬."

상원의 단단한 목소리에 혜경의 손이 우뚝 멈췄다.

혜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너."

혜경이 상원을 쏘아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만웅을 솜인형 던지듯 간단히 던져버리고는, 혜경이 상원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젠장!"

문혁이 금방이라도 별운검을 뽑아낼 듯한 자세를 취했다.

손잡이를 쥔 손에 핏줄이 툭툭 솟았다.

상원이 손을 뻗어 그를 말렸다.

그리고 혜경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남편을 구해야 되지 않나요?"

그 한 마디에 혜경이 우뚝 굳었다.

"어... 어?"

놀란 문혁이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녀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편... 아... 오빠."

혜경의 눈에서 검은 기운이 빠졌다.

제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상원... 상원씨.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저, 저는 오빠 없으면 못 살거에요. 제발...."

혜경이 상원의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방금 전의 광기와 살기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뭐... 이게 뭔?"

절뚝거리며 다가온 만웅이 중얼거렸다.

"정말 오락가락하는구먼."

만웅이 검지를 뻗어 자기 귀 주변으로 돌렸다.

"자, 갑시다. 시간이 없어요. 서둘러야 됩니다."

상원이 혜경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상원은 창훈의 얼굴에 서 있던 검은 핏발을 떠올렸다.

<검은 숲의 목자>가 창훈을 잠식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정말 서둘러야 했다.

상원은 안개 속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고, 흐느끼는 혜경이 상원을 따랐다.

그 뒤를 따라붙는 문혁과 만웅은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 *

나아가는 길은 수월했다.

늪지 늑대인간들은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만웅도 문혁도 혜경도 모두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상원의 시야와 판단은 정확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그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얼마간, 상원의 발걸음이 멈췄다.

"왔습니다."

일행들이 상원의 옆으로 늘어섰다.

그들은 안개 속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나무라고요?"

"그렇습니다."

"뭐... 뱀? 코브라같은데?"

만웅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묻어나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술나무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만웅의 말마따나 그건 나무라기보단 똬리를 튼 코브라 같은 모습이었다.

가지 하나 나 있지 않은 거대한 줄기가 땅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똬리의 끝,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곳에 해골 모양의 장식물이 달려 있었다.

해골 머리를 한 코브라, 주술 나무는 그런 모습이었다.

"형님, 이걸 베면 된다는 말이죠?"

만웅이 나이프를 뽑아들고 나무에 다가갔다.

그 뒤를 별운검을 뽑아든 문혁이 따랐다.

"아니, 잠깐만."

상원이 그들을 말렸다.

"주술 나무를 베라는 게, 꼭 물리적으로 베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원래 이 주술나무는 <시험의 표식>에 반응해서 사라집니다. 그러니 고생해가면서 그 거대한 나무를 벨 필요는 없어요."

상원이 나무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지만 당장 이 나무를 없앨 건 아니고."

상원이 나무를 향해 다가가서 줄기가 솟아오른 부분을 향해 정강이를 날렸다.

빠각!

어른 몸통만큼 굵직한 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상원이 부러진 나무줄기를 주워들었다.

사람 키만 한 줄기가 지푸라기만큼이나 쉽게 들렸다.

"만웅아, 잠깐만 나이프좀 빌리자."

만웅에게서 넘겨받은 나이프로, 상원이 줄기 한 구석에 그림을 그렸다.

세 개의 직선과 3/4의 원으로 이루어진 그림문자로, 모양새는 간단했다.

"혜경씨, 잘 보세요. 이 줄기를 가지고 서울역으로 돌아가세요. 돌아가면 혜경씨 피로 여기 그려져 있는 문양을 똑같이 그리면 됩니다. 이 해골 이마에, 여기 여기 여기에 그리세요.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면 됩니다."

상원이 주술 나무 이마의 세 지점을 짚었다.

"그리고 성화를 여기에 옮겨 붙이세요. 불이 금방 붙어버리니까, 아주 살짝만 붙여야 됩니다. 아주 살짝만. 그 다음에 이 기둥을, 창훈씨 옆에 세워두면 됩니다. 할 수 있죠?"

혜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이 씩 웃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상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안개의 저 편에 성화가 쏘아 올리는 불기둥이 희미하게 보였다.

"자, 가세요. 서두르셔야 됩니다. 일단 가서 이거부터 태우시고. 그 다음엔 이걸 세 개 더 구해서 태우면 됩니다."

혜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줄기를 들고 안개 속으로 몸을 날렸다.

여기서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

주인의 불꽃이 있는 방향으로 직선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세 번째 시험의 첫 번째 낮, 아직 혜경을 가로막을만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정도면 됐다. 한창훈은 잡아먹히지 않겠지. 당분간은.‘

매 시험마다 <검은 숲의 목자>가 제물을 잡아먹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그대로만 하면 검은 숲의 목자라는 변수를 어렵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

그 방법이 상원의 머릿속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져 있었다.

"방금 그건 뭡니까?"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 있어요. 그걸 막은 겁니다."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요? 무슨 일인데요?"

만웅이 나이프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지까진 알 것 없다만.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면, 만웅아 너는 변사체가 된다. 아까 늑대인간 뜯어 먹히는 거 봤지?"

오싹해진 얼굴로 만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형님."

"왜?"

"저 여자랑 형님이랑 붙으면 누가 이겨요? 저 여자도 장난 아니더만."

"그러게.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정말 둘이 이상한 데서 죽이 잘 맞아.'

상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은 내가 이긴다."

"지금은... 말씀이십니까?"

"네. 두 분이 저랑 혜경씨를 잘 도와주시는 한에서는 그렇습니다."

상원의 말에 문혁이 생각에 잠겼다.

"그거... 말이 좀 이상합니다? 저랑 김만웅씨가 상원씨랑 혜경씨를 잘 도와주면... 상원씨가 혜경씨보다 강하다는 겁니까?"

"그러게. 그거 좀 이상하네?"

"말해놓고 보니 그렇네요. 여러분 듣기엔 이상하실 수도 있는데. 여튼 그렇습니다.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상원이 어깨와 허리를 풀었다.

"갑시다. 우리도 우리 일을 해야죠."

헤경을 돌려보내고, 세 남자는 더 깊은 안개 속으로 향했다.

세 번째 시험에서 반드시 얻어야할 두 가지 아이템 중 하나, <의령수의 심장>을 얻기 위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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