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2화 (22/230)

제22화. 안개 속으로 (2)

동쪽 하늘 끝에서부터 햇살이 치밀어왔다.

그와 함께 서울역 주변으로 희뿌연 안개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안개는 빠른 속도로 짙어졌다.

그 속도가, 안개가 자연 현상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울역을 둘러싼 고가도로며 고층건물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게 실시간으로 체감될 정도였다.

온통 희뿌연 세상, 그 속에서 서울역 광장에서 타오르는 성화가 거대한 불기둥을 하늘로 쏘아내고 있었다.

수많은 수험자들, 특히나 상원의 눈부신 활약 덕에 불꽃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많은 수험자들처럼, 상원과 문혁도 주인의 불꽃 곁에 앉아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안개는 처음입니다."

문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새타니며 좀비들은 처음이 아니었나요?"

"농담도 할 줄 아셨습니까?"

짐짓 심각하게 말하는 상원에게 문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저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하셨습니까?"

문혁의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왭니까?"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상원이 말을 마치자, 수험자들의 표식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음 지령이 내려온 것이다.

수호신들이 수험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수호신이 없는 상원에게는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낮이 되었습니다. 안개 속에는 좀비들을 만들어내는 <주술 나무>가 있습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서 주술 나무를 베십시오.]

"주술 나무?"

문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좀비를 만드는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설마 저 가로수들 얘기하는 건 아닐 거 아닙니까?"

"저희가 좀비를 때려잡는 동안 생겼습니다. 저 바깥에요."

문혁의 말에 대답하며, 상원이 손을 뻗어 서울역 바깥을 가리켰다.

불꽃이 닿지 않는 곳, 짙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곳을.

세 번째 시험 <성화 사수>의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다.

세 번째 시험의 주요 목표물은 <주술 나무>다.

주술 나무는 밤에는 좀비들을 만들지만, 낮에는 활동을 멈춘다.

밤에는 성화를 향해 달려드는 좀비들을 막는다.

낮에는 성지 밖으로 나가 주술 나무들을 벤다.

그렇게 주인의 불꽃을 지키면서 모든 주술 나무를 베면 시험이 끝난다.

"엥? 뭐야, 나무 하나 베면 끝난다고?"

어느새 곁에 다가온 만웅이 말했다.

"아니, 당신."

만웅을 본 문혁이 몸을 일으켰다.

문혁이 만웅을 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아, 군인 아저씨! 내가 당신한테 진 빚이 있었지!"

만웅도 질 세라 이를 갈며 나이프를 뽑았다.

"만웅이, 그만 둬라."

앉은 채로, 상원이 만웅에게 말했다.

"쳇!"

만웅이 혀를 차며 나이프를 거뒀다.

설명을 요하는 눈으로 문혁이 상원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됐습니다.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혁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리고 만웅아, 한 그루가 아니야. 수백 그루는 될 거다."

만웅의 말에 대답하면서, 상원은 회귀 전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안개 속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거대한 고목(枯木)들을.

"그래요? 형님은 그걸 다 어떻게 알아요?"

만웅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러게요.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 상원 씨가 이야기하는 걸 보면 뭔가 다가올 일을 아신다는 듯,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문혁이 말을 보탰다.

'이 양반들 이상한 데서 죽이 잘 맞네.'

그들의 말에 상원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글쎄, 이런 상황에선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회귀자라는 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있다.

승천 시험을 치르면서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다.

본인이 회귀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그러므로 회귀자임을 밝히기만 한다면, 동료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수월하게 포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몇몇 시험들은 손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원은 문혁과 만웅을 보았다.

정확히는 그들을 후견하는 <해안선의 귀신>과 <자칭 협객>을.

회귀자는 존재 자체가 반칙이다.

승천자들이란, 조금이라도 납득이 안 되면 수험자 정보 열람까지 신청해서라도 시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회귀자를 그냥 둘 리 없다.

상원이 회귀자라는 걸 승천자들이 알게 되면 집중 견제를 당할 게 뻔하다.

더군다나상원이 회귀자라는 걸 알면 사마에트가 시험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할 지 모른다.

상원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시험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큰 변수다.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관리한다 해도 <일곱 별의 왕관>을 얻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회귀자인 걸 밝히면 안되겠다.’

상원은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사실 저는, 미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일종의 예지능력 같은 겁니다."

문혁과 만웅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와 씨 완전 사기네! 형님 나랑 싸울 때도 내가 뭐 어떻게 움직일 지 다 알았겠네요? 막 씨 이놈 이거 다음엔 갈비뼈 찌르겠네 팍!"

"그정도로 세세한 것까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니 동작이 너무 느린 것 뿐이야.’

"아 그래요? 에잉."

상원의 건조한 대답에 신나서 떠들던 만웅은 풀이 죽어버렸다.

"그렇게까지 강한 게 어느 정도 납득은 되네요.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으신 겁니까?"

문혁이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시험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그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문혁이 자기 오른손을 살짝 내민 입술에 갖다댔다.

"어쨌든 주술 나무란 게 수백 그루는 될 거란 건 틀림없는 겁니까."

상원이 긍정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혁이 잠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강하신 데다가 정보까지 많으시다니,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상원씨랑 계속 같이 다녀도 되겠습니까?"

"예, 저도 환영입니다."

상원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웃음이라, 이게 얼마만에 웃는 거지?'

언제부터 웃지 않았더라.

회귀 전 첫 번째 시험부터인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이다.

탈주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예배당을 찾아갔던 그 날인가.

아니다, 새하늘교에 들어간 날?

누나가 미쳐버린 날?

상원은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언제부터 웃지 않았던 걸까?

"상원씨."

누군가 상원의 회상을 끊었다.

뒤를 돌아보니, 혜경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상원을 보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오빠가 아파요."

고개를 끄덕이고, 상원은 혜경을 따라 걸었다.

창훈이 성화 곁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상원은 창훈 옆에 앉아 그의 상태를 보았다.

그의 온 얼굴에 검은 핏발이 돋아 있었다.

"상원씨. 어떡해요? 우리 오빠 왜 이러는 거에요?"

혜경이 안절부절했다.

'이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창훈의 얼굴에 가득 솟은 검은 핏발, 그건 혜경의 수호신 <검은 숲의 목자>의 짓이었다.

<검은 숲의 목자>가 화신을 성장시키는 방법 중엔 특이한 게 있었다.

그건 화신의 '소중한 사람'을 화신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것이었다.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되기 전, 창훈이 수호계약을 맺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상원은 알 수 있었다.

<검은 숲의 목자>가 창훈과 은수를 혜경에게 먹이려고 한다는 걸.

<검은 숲의 목자>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창훈을 혜경에게 먹일 최적의 타이밍을.

창훈이 검은 기운에 완전히 잠식되는 때, 그 때가 송혜경이 한창훈을 잡아먹는 때다.

<검은 숲의 목자>의 화신이 제물을 먹고 강해지면, 승천 게임에서 그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괴물이 나온다.

능력치 총합 150인 상원으로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그런 변수가 만들어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일곱 별의 왕관>을 얻기 위해 변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상원은 기억을 더듬었다.

세 번째 시험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창훈이 침식되는 걸 막을 방법이 분명 있었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아, 그렇지.'

생각났다.

상원이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상원에게 집중되었다.

"혜경씨, 따라 오세요. 창훈 씨를 고칠 방법은 저 안개 속에 있습니다. 갑시다.“

[<검은 숲의 목자>가 으르렁댑니다.]

먹잇감을 지키려는 것일까, <검은 숲의 목자>가 경계심을 내비쳤다.

"으윽?"

"끄으으윽!"

순간 문혁과 만웅이 무릎을 꿇었다.

"어? 아니, 갑자기 왜?"

혜경이 당황하며 말했다.

<검은 숲의 목자>는 같은 승천자들마저도 두려워하는 존재.

그 격에 <자칭 협객>과 <해안선의 귀신>마저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원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니 뜻대로는 안 돼."

상원이 혜경을, 그녀의 뒤에 있는 <검은 숲의 목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

"아니오, 아닙니다."

상원이 문혁과 만웅을 일으켜 세웠다.

"윽, 방금 무슨...."

문혁이 머리를 움켜쥐고 말했다.

만웅은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상원이 만웅을 부축했다.

"문혁씨 같이 갑시다. 만웅이 너도 천천히 같이 가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은 안개 속을 보았다.

성질 급한 수험자들은 벌써 안개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들이 베어내는 주술 나무 하나 하나가 곧 그 수호신의 위업과 치적이 되기 때문에.

승천 게임판의 수험자들이란, 자기들 수호신의 공적을 위해서라면 불꽃 속이라도 뛰어들 불나방들이다.

"그냥 나무만 베면 끝나는 거유? 거 참 별 것도 아니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만웅이 나이프에서 보라색 검기를 뽑아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상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끄아아악!"

곧 안개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순간 일행들의 얼굴이 굳었다.

"갑시다."

덤덤한 얼굴로 상원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는 짙었다.

으오오오오!

어디선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씨. 열라 무섭네."

만웅이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적이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만큼 무서운 상황도 드물다.

문혁도 여차하면 활을 쏠 기세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크르르륵!

일행을 둘러싼 안개 속에서 무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으으."

혜경이 손톱을 세웠다.

안개 속에서 불안해하는 일행들, 그 선두에 상원이 있었다.

<주술 나무>를 지키는 안개 속에서, 수험자들의 시야는 거의 차단된다.

하지만 상원은 그렇지 않았다.

<동굴적 감각>으로 날카로워진 감각 덕에, 상원은 안개 속을 어느 정도 꿰뚫어볼 수 있었다.

"안심하세요, 아직은 아닙니다."

늪지 괴물들이 일행 주변을 떠도는 게 보였다.

주술 나무 숲으로 다가갈 때마다 괴물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한 순간.

"옵니다."

상원의 거구가 탄환처럼 쏘아져나갔다.

안개 속으로 짓쳐들어간 상원이 쇳덩이같은 주먹을 내질렀다.

"깨갱!"

상원의 손끝에서 살점이 뭉개졌다.

세 번째 시험의 첫 번째 낮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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