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1화 (21/230)

제21화. 안개 속으로 (1)

손등의 표식이 녹색으로 빛났다.

[의체 관리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상원의 눈 앞에 의체 관리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펼쳐졌다.

검은 바탕에 녹색 글자들이 쓰여 있었다.

----------

[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들만 표시됩니다.

레벨 2 (00%)

성능: 괴력 55, 용력 55, 술력 40

- 레벨업 효과로 능력이 올랐습니다.

스킬: 마나 삼키기, 동굴적 감각, 지하의 문, 결투장, 하늘의 불씨

- 레벨업 효과로 스킬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원하는 스킬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

'이건... 사기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업 한 번 했다고 괴력 5에 용력 5, 술력이 10 올랐다.

평범한 수험자들은 괴력과 용력을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모아 나간다.

'이 때쯤 괴력 4에 용력이 3이었던가. 정말 어마어마한 격차네.'

괴력이 쌓이면 산을 뽑고 용력이 쌓이면 번개처럼 움직이는데, 흔히들 두 수치를 합쳐서 '물리력'이라고 부른다.

지금 서울역 수험자들 중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백문혁이나 김만웅의 물리력 10 언저리였다.

물리력 10과 110은 말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술력은 또 어떠한가.

술력 40이면, 세 번째 시험이 진행되는 지금은 새하늘 시험장의 그 어디에도 상원보다 강한 주술사는 없다.

'처음 시작할 때 능력치가 130이었는데, 레벨업 한 번에 20이 올랐다고?'

처음부터 강할 뿐만 아니라, 강해지는 속도마저도 다른 수험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에, 강해도 너무 강한데. 사마에트가 이걸 허락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새하늘 시험은 불공정하다.

누구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떤 수험자는 최하급 영령과 계약해 바닥부터 시작하는 반면, 어떤 수험자는 주신과 계약해 빵빵한 지원을 받고 시작한다.

이들의 차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그 불공정이란 게 납득은 되는 수준이지. 이건 너무 나갔는데.’

주신들중에서도 꼭대기에 있는 자들, <시공간의 세습자>나 <가장 높은 태양>도 세 번째 시험에서 자기 화신에게 능력치 150을 선물해주지는 못한다.

‘이래서 <청소부>가 당신 뒤에 붙어있구만.’

<청소부>는 규칙을 어긴 승천자들을 단죄한다.

연옥에 갈 수험자를 잡아다가 다른 몸에 넣었다는 것부터가 중죄였다.

<신화의 몸>, 이걸 만들었다는 건 단순한 징계를 넘어 승천자의 존재 자체를 삭제해야 할 정도로 무거운 죄인 것이다.

'난이도를 좀 높일 수도 있겠네.'

사마에트의 역할 중 하나가 밸런스 조절이었다.

그런 사마에트가, <신화의 몸> 같은 게 새하늘 시험장을 활개치고 다니는 걸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터였다.

새하늘 시험의 총괄관리자인 사마에트 자신이 직접 상원을 제거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이도를 올려서 시험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 별의 왕관>을 얻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상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레벨업을 하려면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업적을 쌓으면 쌓을수록 다른 승천자들, 나아가 시험의 총관리자 사마에트가 상원을 견제하려고 들 것이다.

도대체 어떤 수준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상원은 가만히 상태창을 들여다보았다.

'아 그래, 그렇지.'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능력치 그 자체가 답이었다.

새하늘 시험을 치르는 건 상원 혼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마에트로서도 무턱대고 난이도를 높일 수는 없다.

<신화의 몸>이 강해지는 정도는, 난이도가 높아지는 정도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그러니까, 난이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군. 이 정도면 이번에는 정말로 승천할 수 있겠다.’

상원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상원의 탈출로 일어난 새하늘교의 집단자살, 오로지 죄를 씻기 위해 멀고 먼 승천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 보자, 스킬포인트라.'

- 레벨업 효과로 스킬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원하는 스킬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승천 시험은 직관적이다.

스킬포인트를 투자하면 스킬이 강해진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리 없다.

'좋다. 무슨 스킬에 투자할까? 어디 보자.'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시스템 메세지가 들렸다.

[전장에 <특수 좀비>가 출현합니다.]

둥! 둥!

그와 함께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또 다른 특수 좀비들이 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꽤 많은 것 같았다.

'뭐야, 몇십 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

회귀 전 세 번째 시험에선 특수 좀비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쏟아지는 이벤트 같은 건 없었다.

‘난이도 조절에 들어갔구나!’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엉켜 있는 서울역 광장, 그 위로 탁한 회색 빛줄기 몇십 개가 쏟아졌다.

마치 별빛이 땅으로 그대로 쏟아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그그극...!"

"흐으으으으으...."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이를 가는 듯한 소리,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

수십 마리 특수 좀비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빛줄기가 사라진 자리, 수십 개의 거대한 그림자들이 광장에 늘어서 있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갑옷을 입은 사이보그 좀비들.

귀가 뾰족하고 손톱이 날카로운 커다란 반인반수(半人半獸)들.

구석구석 근육으로 가득 찬 상반신을 그대로 내놓은 좀비들.

[<감마 리전>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카이네딘 기사단>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흑풍회>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상원에게 당했던 특수 좀비들이 맞춤 패를 꺼내 들었다.

<감마 리전 터미네이터>, <키메라 병단> 그리고 <흑풍회 역사(力士)>.

힘싸움이라면 어디 내놓아도 꿇리지 않는, 각 집단의 최정예들이었다.

다른 특수 좀비들과는 달리, 외형부터가 압도적이었다.

"세상에... 이건, 갑자기...?"

"많다. 너무 많아...."

광장에 있던 수험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좀비 따위가!"

수험자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중년 남자가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감마 리전 터미네이터>가 휘두른 거대한 망치가 중년 남자에게 작렬했다.

콱!

"끄악!"

중년 남자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토해낸 피가 궤적을 그렸다.

"세상에! 장씨!"

"죽었어...?"

그의 상태를 살피러 갔던 수험자들의 얼굴이 굳었다.

'저 사람... 아까 주먹질 한 번에 좀비를 죽였던 그 사람 아닌가?'

한 방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무투계 수호신을 받은 것 같았는데도, 한 방에 죽어 버린 것이다.

광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망치의 무지막지한 위력과 장씨의 허망한 죽음에 질겁한 수험자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뭐여 저것들은.”

만웅이 코를 슥 문지르며 보라색 검기를 뽑아냈다.

“가만있어라."

상원이 손을 뻗어 만웅을 제지했다.

"형님?"

"내가 상대한다. 어차피 저놈들 목표는 나야."

상원이 앞으로 나서며 어깨를 풀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기분 좋게 긴장되어 팽팽하게 당겨진 게 느껴졌다.

'스킬포인트? 지금은 여기 찍어야지.'

좀비들을 잡는 데는 최적의 스킬.

상원은 <하늘의 불씨>에 스킬포인트를 투자했다.

[<하늘의 불씨>의 레벨이 2로 올랐습니다. 스킬 효과가 강화됩니다.]

[스킬 <하늘의 불씨>를 발동합니다.]

곧 상원의 두 손끝에서 분홍 불씨가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까 썼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뜨겁다! 윤진아가 쓰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비록 <낙원의 수문장> 같은 특급 수호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상원에겐 40이라는 어마어마한 술력이 있었다.

단전에서부터 솟구쳐오르는 마력이 심장과 정수리를 거쳐 손끝으로 맹렬하게 뻗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 형님? 그런 것도 할 줄 아십니까?"

만웅이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이 정도야 뭐."

상원이 던지듯 대답하고 특수 좀비들을 향해 나아갔다.

한 걸음씩, 상원과 좀비들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긴장감은 높아졌다.

단단한 침묵 속에서 규칙적인 발소리만에 광장에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그그그극!"

"흐어어어어!"

특수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상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2m는 족히 넘을 듯한 커다란 덩치들이 성난 소 떼처럼 돌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상원은 그냥 물리 깡패가 아니었으니까.

“하압!”

기합을 지르며, 상원이 야구공을 던지듯 오른손의 불덩이를 던졌다.

쐐액!

부정한 것들은 가차 없이 태워버리는 분홍 불덩이가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쾅!

상원이 던진 불덩이가 무리의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흑풍회 역사에게 작렬했다.

“흐어어어억!”

화르르륵!

강철같은 근육으로 똘똘 뭉친 역사는, 그 겉보기가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재가 되어 파스스 사라져버렸다.

"그극?"

"그르르르륵!"

특수 좀비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입력된 정보와는 다르니까.

<감마 리전 첨병>도 <검은 뱀 기사단>도 <흑풍회 살수>들도, 모두 물리력에 무너졌다.

그랬기에 물리 계열을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병종을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목표로 삼은 상대방이 성(聖)속성을 쓰고 있으니.

"당황스럽겠지."

낮게 읊조리며, 상원이 불덩이 두 개를 더 던졌다.

쾅! 쾅!

무투 계열 수험자들도 단매에 절명시키는 특수 좀비들이, 스킬 한 번에 사라지고 있었다.

"와... X발...."

저 멀리서 김만웅이 털썩 주저앉았다.

“완전 괴물이잖아.”

그의 목소리엔 감탄과 경악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래 끌 것 없잖아. 빨리 끝내자고."

양손에 성스러운 불꽃을 쥔 채로, 상원은 특수 좀비들을 향해 범처럼 달려들었다.

그 뒤로는 그저 학살의 시간이었다.

세 번째 시험에 던져진, 능력치 150짜리 수험자.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는 그 아득한 격차를, 상원은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세 번째 시험, <성화 사수>의 첫 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멀리서 햇살이 치밀어왔다.

"그으으으으."

햇살을 받은 좀비들이 사그라들었다.

성화를 등지고, 상원은 광장을 바라보았다.

"으으으윽...."

광장엔 부상자들과 시체들이 한데 엉켜 뒹굴고 있었다.

"후우. 어떻게, 첫번째 밤이 지나갔네요."

불꽃 곁에 주저앉은 문혁이 말했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예?"

상원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제 첫 번째 밤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시험은 아직 끝난 게 아니고, 낮에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과연, 구름같은 안개가 서울역 근처를 감싸고 있었다.

"준비하시죠."

상원이 어깨를 풀며 말했다.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의아한 눈의 문혁에게 답하며, 상원은 안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