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0화 (20/230)

제20화. 성화 사수 (6)

만웅은 <주인의 불꽃>을 등지고 있었다.

삭-

보라색 검기가 실린 나이프가 썩어가는 다리를 베었다.

좀비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만웅의 동작은 기민했다.

주변의 화신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자칭 협객>이 그렇게 지위가 높은 승천자는 아니었지만, 만웅 자신이 원래 한가닥 하는 싸움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만웅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베도 베도 좀비는 끝이 없었다.

전 인류의 99%가 죽었고, 그들이 모조리 좀비가 돼서 일어났다.

"X발... 끝이 없네 이거!"

만웅이 쌍욕을 뱉으며 나이프를 쥔 오른손을 주물렀다.

오른팔이 점점 무거워졌다.

"끄악! 형님!"

부하의 비명이 들렸다.

좀비 서넛이 만웅의 부하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야이 썅! 멍청한 새끼, 이런 것도 제대로 하나 못 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하를 아끼는 마음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몇 번의 칼질에 부하를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이 토막났다.

"형님, 형님...."

부하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정신차려!"

"형님, 저는 더 이상 안될 것 같습니다."

"약한 소리 하지마라. 좀 누워있다 보면 나을 거다."

만웅은 부하를 불꽃 옆에 데려다 눕혔다.

물어 뜯긴 자국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전장에 <특수 좀비>가 등장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낯선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특수 좀비>? 아 그래, 그런 게 있다고 했었지. 쎈놈인가? 쎄니까 이런 메세지도 뜨겠지? 이 썅....'

만웅은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으악!"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수험자 하나가 공중을 날고 있었다.

마치 뭔가에 부딪혀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만웅은 그쪽을 자세히 보았다.

"...뭐야 저게?”

낯선 형체가 있었다.

시퍼런 피부색에 썩어가는 얼굴, 분명 좀비였다.

그렇지만 다른 것들과는 달랐다.

입은 옷부터가 중국풍의 검은 도복이었다.

게다가 다른 좀비들과 달리 동작이 굉장히 민첩했다.

수험자를 튕겨내는 어깨치기는 철산고, 배를 강타하는 손바닥은 발경, 분명 중국 무술이었다.

"좀비가... 무술을 한다고? 하 씨바 진짜 가지가지 하네."

잠시, 만웅은 좀비를 지켜보았다.

저런 놈한테 정면승부를 걸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괜히 특수 좀비가 아니라는 듯, 수험자들과 좀비의 격차는 현격했다.

그래봐야 좀비는 좀비, 수험자들이랑 투닥투닥 하다 보면 지치지 않겠는가.

힘이 빠지면 혼자 잡아서 보상을 독차지하면 되는 거고.

그 때, 시스템 메세지가 들렸다.

[수호신 <자칭 협객>이 <특수 좀비>와 자웅을 겨루기를 원합니다.]

만웅은 귀를 의심했다.

"...미쳤어? 저거랑 싸우라고?"

만웅의 수호신 <자칭 협객>, 이 놈은 드라마광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화신이 저런 놈과 싸우라는 주문을 할 리가 없었다.

[<자칭 협객>이 <야인의 결투장>을 쓰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수호신이 만웅에게 내려준 권능 스킬 <자칭 야인>.

만웅은 그 스킬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

지금껏 딱 한 번 썼는데,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으니까.

'지금도 그 괴물 새끼 생각을 하면 이가 갈리는데....'

만웅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기사 저 놈은 뭐 그 정도로 강해보이지는 않고. 주변에 구경꾼도 많겠다....'

그래, 못미덥지만 <자칭 협객>은 수호신.

'수호신과 화신은 서로의 이익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계약 조항이 있으니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의리라는 게 있지, 그래도 끝까지 가야 할 것 아닌가.

"몰라, 씨. 어디 당신 말 한 번 믿어 봅시다."

만웅이 젤로 고정시킨 짧은 머리를 세웠다.

그와 함께 만웅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보라색 장막이 뻗어 나갔다.

[권능 스킬 <야인의 결투장>을 발동합니다. 특수 좀비 <흑풍회 권법가>를 상대로 지정합니다.]

'흑풍회...? 뭐여 싸구려 무협지도 아니고.’

다른 수험자와 좀비들이 막 밖으로 밀려났다.

그들의 눈동자가 탁한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어 뭐야 뭐야? 저기 싸움 하나 봐.”

“으어? 으어어.”

수험자와 좀비들이 싸움을 멈추고 장막 안을 들여다보았다.

연이어 일렉기타 소리가 들렸다.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 헛바람을 잔뜩 품게 하기 좋은 소리였다.

딱 결투를 하기 좋은 BGM, 이것도 <야인의 결투장>의 효과였다.

<자칭 협객>, 이 놈은 드라마광임이 분명하다.

’진짜, 유치해 죽겠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만웅이었지만 수많은 구경꾼에 음악까지,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우웅

“들어와라, 이 시체 놈아.”

보라색 검강이 넘실거리는 나이프를 겨눈 채로, 만웅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흐어.”

흑풍회 권법가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는 준비 자세를 취했다.

오른손 정권을 겨누고 왼팔로 머리를 감싼 모양새가 썩 멋졌다.

팟!

흑풍회 권법가가 만웅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이런 썅."

만웅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며 다급하게 오른쪽으로 비켜섰다.

권법가의 정권이 허공을 갈랐다.

"큽."

무지막지한 위력에 만웅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래도, 예상한 모양새가 나왔다.

권법가의 왼쪽 몸체가 훤히 드러났다.

[수많은 구경꾼이 이 결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능력이 강화됩니다.]

보라색 검강이 짙어졌다.

씨익 웃으며, 만웅은 급소를 향해 단검을 뻗었다.

오른쪽 오금에서부터 겨드랑이에 한 방씩.

정확히 겨눠진 단검이 힘줄을 끊었다.

푸슛 푸슛

살코기에 금속이 꽂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흐으으으."

순간 자세가 무너져, 권법가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 찰나, 빈 목을 향해 단검이 날아갔다.

스걱

데구르르, 권법가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흑풍회 권법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승리 보상으로 신력이 영구적으로 강화됩니다.]

'오호!'

만웅은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야인의 결투장>에서 상대를 이기면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강화된다.

'이런 식으로 능력치를 강화시켜나가다 보면 승천도 꿈만은 아니다!.

만웅은 가슴을 부풀렸다.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들렸다.

[특수 좀비 <흑풍회 권법가>를 해치웠습니다.]

[<흑풍회>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퉁, 퉁.

공간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서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검은 삿갓과 망토로 온 몸을 가린 자들이었다.

'뭐야...이거!'

감이 좋지 않았다.

등골을 타고 오싹한 느낌이 올라왔다.

그건 싸움꾼의 감 같은 것이었다.

일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저 멀리 있던 놈들이 어느 순간 만웅의 눈 앞에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만웅은 뒤로 몸을 던졌다.

볼썽사납게 엎어진 만웅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파랗게 빛나는 소검 두 자루를 보았다.

'뭐야! 축지법이라도 쓰나?'

"흐으으으."

삿갓을 쓴 자들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다시, 그들이 만웅에게 달려들었다.

사는 게 먼저지, 폼은 필요없었다.

민웅은 땅바닥을 구르고 기어대며 단검을 피했다.

그마저도 급소를 피하는 데 급급했을 뿐, 만웅의 사지 여기저기엔 베인 상처가 쌓여가고 있었다.

[<자칭 협객>이 힘을 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응원 따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느새 만웅은 모서리에 몰렸다.

그 위로 두 자루 소검이 빛나고 있었다.

"X발. 이렇게 끝인가?'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녹색 장막이 만웅을 밀쳐냈다.

* * *

각별히 살펴보기로 한 세 인물 중 세 번째, <서울 육마귀> 중 하나인 <콘크리트 회장> 강상중의 수하 김만웅.

'김만웅이 너는 여기서 죽으면 안되지. 니가 있어야 강상중이를 낚을 거 아니냐.'

두 번째 별을 얻기 위해선 강상중을 제거해야 했고, 용의주도한 강상중을 제거하려면 그의 오른팔 김만웅을 낚아야 했다.

[스킬 <결투장>을 발동합니다.]

[<흑풍회 암살자>를 상대로 지정합니다.]

상원을 중심으로 녹색 장막이 뻗어나갔다.

만웅의 권능 스킬 <야인의 결투장>을 베낀, 열화판 스킬 <결투장>.

김만웅을 구하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결투장>의 장막이 김만웅을 밀어냈다.

김만웅의 목을 겨누고 있던 <흑풍회 암살자>가 상원을 보고 있었다.

당혹스러울 것이다.

방금 전까지 자기 눈 앞에 있던 사냥감이 눈 깜짝할 새 없어져 버렸으니.

<흑풍회 암살자>는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흐어어어."

암살자가 상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통 수험자의 눈에는 축지법이나 순간이동으로 보일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상원에겐 아니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암살자의 동작이, 상원에겐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암살자를 헤치우는 덴 별다른 동작이 필요하지 않았다.

상원은 암살자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작용과 반작용.

빠각

바위같은 상원의 주먹에 부딪힌 암살자의 머리가 계란처럼 깨졌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저 멀리서 다른 암살자가 물러서는 게 보였다.

"너는 어디 가려고."

상원은 그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흐으으으!"

뒤로 물러나던 암살자가 녹색 장벽에 부딪혔다.

[스킬 <결투장>을 발동합니다.]

[<흑풍회 암살자>를 상대로 지정합니다.]

암살자는 철창에 몰린 짐승 마냥 주춤거리고 있었다.

상원의 거구가 총알마냥 날아갔다.

기둥처럼 굵은 팔뚝을 앞세워, 상원은 짓쳐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보디 태클을 먹였다.

장갑차에 부딪힌 고라니마냥 암살자가 피떡이 되어 으깨졌다.

[특수 좀비 <흑풍회 암살자>를 해치웠습니다.]

[<흑풍회>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이어지는 시스템 메세지.

특수 좀비들은 상대에 맞추어 전략을 짠다.

그래봐야 세번째 시험.

어떤 특수 좀비가 나오더라도 상원에겐 별다른 해가 되진 않는다.

그때였다.

"어... 저."

상원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몸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만웅이었다.

"왜... 저를 구해주신 겁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는 지금 죽으면 안되니까.’

굳이 그것까지 말해 줄 이유는 없다.

상원은 만웅을 무시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형님...!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상원이 뒤를 돌아보니, 만웅이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자칭 협객>이 당신에게 협객의 예를 갖춥니다.]

”허...? 이건 또 뭐야?”

김만웅의 형님이라니, 생각해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행패 부린 거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저도 형님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하겠습니다!”

당혹스럽지만,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김만웅을 써먹을 일은 있을 테니.

그렇게 김만웅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할 지 생각하는 찰나, 예상치 못했던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위업이 충분히 누적되었습니다.]

[의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의체가 수복됩니다.]

상원의 온 몸에서 녹색 광채가 뻗어 나왔다.

몸 여기저기 나 있던 생채기들이 사라지고, 강한 기운이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레벨업, 그 세 글자에 상원의 가슴이 벅차 올랐다.

스스로 강해지는 의체, <신화의 몸>의 효과를 볼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