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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8화 (18/230)

제18화. 성화 사수 (4)

진아의 명치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불길이 차오르고 있었다.

두근대는 심장이 사지 끝까지 열기를 보냈고, 거센 맥박이 고동칠 때마다 손끝의 불꽃도 커졌다.

형용할 수 없는 고양감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라 정수리를 뚫고 있었다.

손짓 한 번에 좀비 하나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진아는 거의 무아지경이었다.

그녀의 의식은 <낙원의 수문장>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 심판은 지엄할 지어다.

"심판은 지엄할 지어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성스러운 음성은 그녀의 입을 통해 발화되었다.

그 목소리의 떨림이, 그 발음과 어조 하나 하나가 좀비들에게 타격을 입혔다.

세 번째 시험의 밤은 낙원의 수문장에겐 완벽한 무대였다.

코인과 신앙이 쌓이는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쌓이는 신앙으로, 낙원의 수문장은 전투력을 올려주는 패시브 스킬인 <기도하는 의지>를 비롯한 여러 성(聖) 속성 스킬들을 윤진아에게 내려주었다.

윤진아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활약은 다른 화신들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승천자 낙원의 수문장, 그 격은 신령 중에서도 최상급.

다른 승천자들과는 격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승천 계약 직후의 무대인 세 번째 시험은 주 내용이 좀비 사냥이다.

성령(聖靈) 계열인 <낙원의 수문장>에게는 더없이 좋은 무대.

승천자들 중에서도 최고급인 자가, 상성마저도 최상인 시험부터 시작한다.

세 번째 시험이 끝나면, 화신 윤진아는 다른 잡스러운 화신들과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수많은 승천자들이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

승천 시험 자체가 이렇게 생긴 걸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윤진아에게 빙의한 낙원의 수문장이 근엄한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수호계약을 맺은 모든 승천자의 숙원은 자기 화신을 승천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더 높은 격을 주어서.

수험자들은 승천할 때 격을 부여받으며, 시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수록 더 높은 격을 받는다.

그리고 화신이 좋은 결과를 얻으면 그 수호신의 격도 달라진다.

이 추세라면 윤진아가 최상급 신령으로 승천하는 것도 노려볼만 하다.

그렇다면 낙원의 수문장, 자신의 위격도 신령을 넘어 주신 급으로 오를 것이다.

윤진아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피었고, 불꽃도 강해졌다.

그때였다.

저 먼 곳에서 검은 빛줄기가 하늘로 솟았다.

퉁 퉁-

차원문이 열릴 때 나는, 커다란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무언가가 차원을 넘어, 별 저 편에서부터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특수 좀비>라고 했다.

섭리의 집행자 사마에트가 또 무슨 마물들을 준비해 두었을까.

"그래봐야, 한낱 잡귀."

최상급 신령 <낙원의 수호신>, 세 번째 시험에 그가 잡지 못하는 마물이 있을 리 없다.

윤진아의 몸에 깃든 <낙원의 수문장>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딛는 발걸음마다 작은 불길이 남았다.

하찮은 수험자들과 더러운 좀비들로 가득 찬 전장 저 편에 낯선 그림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전신에 새까만 풀 플레이트 메일을 두른 기사들이었다.

빛마저 반사되지 않는 타위 쉴드가 빈틈없는 방진을 이루고 있었다.

“아!”

방진 너머에서, 뿔 달린 투구를 쓴 기사가 우렁우렁한 고함을 질렀다.

“할리!”

“하!”

뿔 달린 기사가 다시 한 번 고함을 지르자, 타워 쉴드를 든 기사들이 후창했다.

척!

방진 사이에서 날카로운 창들이 튀어나왔다.

수많은 기사들의 동작이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했다.

철컥 철컥

고슴도치같은 방진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

쇠붙이가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살벌했다.

‘저 놈이 지휘관인가?’

낙원의 수문장이 뿔 달린 기사를 보며 생각했다.

대개의 싸움은 지휘관을 제거하면 수월해진다.

쉬운 일이다.

앞에 있는 방패 든 놈들을 태워버리고, 곧장 지휘관을 잡으면 된다.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낙원의 수문장은 두 손에 불꽃을 모았다.

“하찮은 것들.”

낙원의 수문장이 거세게 발을 구르며 불덩이를 던졌다.

쾅!

불덩어리가 방진에 작렬했다.

성 속성의 불꽃은 언데드와는 상극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방진은 잿더미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기타줄을 튕기는 것 같은 맑은 소리를 내며 불덩이가 새파란 정육면체가 되어 흩어졌다.

방진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에아, 쓰!”

“하!”

날카로운 선창과 단단한 후창.

"무슨...!"

수문장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쾅! 쾅!

양 손에 하나씩, 두 개의 불덩이가 방진에 작렬했다.

역시나, 모든 부정한 것을 태우는 불덩어리는 검은 타워쉴드에 막혀 부서져버렸다.

"이럴 리가 없다!"

드높은 자존심에, 이런 상황은 용납되지 않았다.

낙원의 수문장이 순식간에 몇십 개의 불덩이를 쏟아냈다.

하지만 역시나, 방진은 그대로였다.

철컥 철컥

단단한 발소리가 울렸다.

"아라, 아이!"

"하!"

선창과 후창.

그리고 방진에서 튀어나온 창들의 끝에 회색 기운이 뭉쳤다.

"이놈들!"

낙원의 수문장이 천둥 같은 고함을 질렀다.

윤진아의 주변에 분홍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성현 <온기의 오라>가 활성화됩니다.]

[부정한 것들은 오라를 뚫을 수 없습니다.]

성속성 방어 스킬, <온기의 오라>.

세 번째 시험에 나오는 좀비들이라면 이 오라만으로도 불타버려야 마땅하다.

"그어어억!“

화르르륵

방어 스킬이지만, 그 기운만으로도 주변의 좀비들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검은 기사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발론!"

뿔 달린 기사의 외침과 함께

팟!

창끝에 맺힌 회색 기운이 레이저처럼 날아들었다.

둥! 둥!

수십 줄기 레이저가 오라에 작렬했다.

"큭!"

낙원의 수문장이 빙의한 윤진아가, 왈칵 피를 쏟았다.

"이럴... 이럴 리가 없다!"

그 목소리에 절망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 * *

'과연, <낙원의 수문장>.'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상원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수험자의 실력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승천자의 격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화신과 수호신 서로 간의 적합도가 더해지면 밑도 끝도 없이 강해진다.

그 사례가 랭킹 4위, <낙원의 성화> 윤진아였다.

수호계약을 맺은 지 이제 불과 몇 시간, 그 사이 윤진아는 더할 나위 없는 그릇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튀는 분홍 불꽃,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낙원의 수문장>의 음성.

모두 윤진아가 낙원의 수문장과 거의 합일했다는 의미였다.

<낙원의 수문장>과 윤진아 서로 간의 적합도가 아주 높다는 뜻.

저 상태의 윤진아는, 도저히 세 번째 시험을 치르는 수험자라고는 여길 수 없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윤진아와 낙원의 수호신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상성이 너무 안좋다.'

그렇게 생각하며 상원은 검은 갑옷과 타워실드로 무장한 기사들을 보았다.

'<검은 뱀 기사단>'

<카이네딘 제국>이 성직자들의 반란을 겪었을 때, 오로지 성직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키워낸 집단이다.

그들 역시도 승천 시험이 집어삼킨 이들 중 하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뱀 기사단>이 걸친 장비 하나 하나가 정밀한 마도공학의 산물이었다.

거기에 일사불란한 조직력까지.

단순한 언데드가 아니다.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성속성을 상대하는 데는 최적화된 집단.

지금의 윤진아로서는 저들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낙원의 수문장>이 아무리 최상급 신령이라 해도 그 화신 윤진아의 술력은 한자릿수였다.

수호신이 화신에게 억지로 권능을 부여해도, 오히려 어느 수준을 넘으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

'최상급 신령씩이나 되면서 그걸 모를 리 없지만, 당신의 그 오만이 눈을 가린 게지.'

윤진아가 왈칵 피를 토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회귀 전 윤진아는, <검은 뱀 기사단>과 맞서다 죽기 직전 다른 수험자들에게 구조됐었다.

낙원의 수문장이 너무 많은 권능을 쏟아 부은 탓에 윤진아의 몸은 엉망이 됐고, 그래서 그 뒤의 시험에선 생존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형편없이 뒤쳐졌던 윤진아가 다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열 번째 시험을 넘어서부터였다.

그 사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윤진아는 인간성이 거의 마모된 채로 나타났었다.

아마도 <낙원의 수문장>이 그녀의 인성을 갉아먹어가면서까지 그녀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이번엔 상원이 개입할 것이다.

랭킹 4위까지 오를 잠재력이 있는 자를 동료로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그래야 <일곱 별의 왕관>에 조금 더 가까워지니까.

"후."

상원은 심호흡을 하며, 뿔 달린 투구를 쓴 기사를 주시했다.

빈틈없는 방진 너머에 뿔 두 개가 불쑥 솟아 있었다.

저 자가 <검은 뱀 기사단>의 지휘관, <흑사 백인대장>이다.

지휘관을 쓰러뜨리면 <검은 뱀 기사단>의 공략 난이도는 급락한다.

그리고, 공략에 들어가기 전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상원은 의체 관리 시스템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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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 관리 시스템]

접근이 허가된 정보들만 표시됩니다.

레벨 1 (94%)

성능: 괴력 50, 용력 50, 마력 30

스킬: 마나 삼키기, 동굴적 감각, 지하의 문, 결투장, 하늘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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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성현 <지천사의 불씨>가 조정되어, 스킬 <하늘의 불씨>가 되어 있었다.

<신화의 몸>에 담긴 스킬 복사 기능은 해당 스킬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동했다.

보는 것만으로는 숙련도가 크게 오르진 않았다.

하지만 <낙원의 수문장>은 <치천사의 불씨>를 술력이 바닥나도록 써댔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시작해볼까.'

상원이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하늘의 불씨>를 발동합니다. 사악한 것들을 태웁니다.]

상원의 양 손에 분홍 불꽃이 맺혔다.

윤진아의 스킬만큼 강렬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모양새만큼은 그럴싸했다.

상원은 <검은 뱀 기사단>을 향해 불덩어리를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불덩어리가 작렬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불덩어리는 그 기세가 무색하게 파란 정육면체로 흩어져버렸다.

"그르르르륵."

이빨을 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검은 뱀 기사단>의 방패병들이 상원을 돌아보았다.

상원의 스킬은 <검은 뱀 기사단>에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타격을 주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원이 성(聖) 계열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다.

<낙원의 수문장>같이 성령(聖靈) 계열 말고는 오물 취급하는 놈들에게는 더욱 더.

‘역시.;

상원을 바라보는 진아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잘 봐라, 낙원의 수문장.'

상원이 씩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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