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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7화 (17/230)

제17화. 성화 사수 (3)

세 번째 시험에서 작업해야 할 사람이 셋, 그 중의 한명이 백문혁이었다.

<해안선의 귀신>이라는, 괴물을 수호신으로 두고서도 서울역에서 탈락한 수험자.

영령급임에도 웬만한 신령은 찍어누를 수 있는 수호신을 두고서도 초반에 탈락했다는 건 승천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 태도를 바꾸기만 유능한 승천자로 거듭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의미였다.

‘그 태도, 내가 고쳐주지.’

시험이 시작되고 상원은 문혁을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문혁은 대책 없는 희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해안선의 귀신>이 당신을 선택한 거겠지만.‘

[해안선의 귀신이 당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상원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잠깐 고개를 들어보니, 남쪽 먼 하늘에서 작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가 남쪽의 바다와 하늘을 지키는 승천자, <해안선의 귀신>의 자리다.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빚지는 상황. <해안선의 귀신>이 또 이런 거에 약하지.'

해안선의 귀신을 사로잡으려면, 그의 화신이 계속 목숨을 빚지게 만들면 된다.

‘백문혁, 당신을 꼭 내 칼로 삼아주지.’

해안선의 귀신은 그럴만 한 가치가 있는 수호신이다.

"그르르륵!"

왼팔을 붙잡힌 사이보그 좀비가 괴성을 내며 썩어 문드러진 얼굴로 상원을 보았다.

사이보그의 왼쪽 눈에서 나오는 붉은 광선이 상원을 아래위로 훑고 있었다.

상원을 스캔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르르륵... 그르르륵."

연산이 잘 되지 않는지, 사이보그의 입에서 기계가 헛도는 듯한 소리가 났다.

당연한 일이다.

사이보그를 가볍게 제압하는 힘, 세 번째 시험에서 그런 규격 외의 존재를 만날 거라는 계산은 없었을 테니까.

상원에 대한 정보는 사이보그의 동료들인 <감마 리전>에 공유될 것이다.

그러면 <감마 리전>은 그 정보를 토대로 상원에 대한 맞춤 전략을 준비해 올 것이고.

그렇다고 사이보그들이 상원에게 유의미하게 위험해지는 건 아니지만, 정보를 공유하게 둬서 좋을 건 없다.

상원이 다른 손으로 사이보그의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빡!

사이보그의 머리가 깨지고, 단단한 육신이 축 늘어졌다.

[특수 좀비 <감마 리전 첨병>을 해치웠습니다.]

[코인 50을 얻었습니다.]

[<감마 리전>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상원의 머릿속에 시스템 메세지가 울렸다.

단 한 방.

특수 좀비를 해치우는 데 단 한 방이면 충분했다.

문혁이 놀란 눈으로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문혁의 목소리엔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아까 깡패들이랑 싸울 때부터 궁금했는데, 상원씨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 겁니까?“

상원이 문혁을 돌아보았다.

"살아남았으니까요."

문혁의 물음에 상원이 대답했다.

"명심하세요 문혁씨. 이 세계에선, 살아남는 게 첫번쨉니다. 정의보다, 의무보다, 생존이 먼접니다. 무조건 본인 목숨 챙기는 게 우선입니다."

상원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상원이 소녀를 가리켰다.

소녀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닙니까?"

상원을 바라보는 문혁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어쩔 수 없습니다.”

상원은 목소리에 어떤 감정도 싣지 않고 대답했다.

단지 오래된 피로감만이 묻어나왔을 뿐.

"그러는 상원씨는, 왜 저를 구했지요? 아까 깡패들한테서도 그렇고 방금도."

"강하니까요."

상원이 툭 뱉듯 말했다.

"네?"

"아까 김만웅이네 패거리를 제압하는 것도, 방금 <감마 리전 첨병>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니까요. 목숨을 걸 일이 아니니까요."

문혁의 입이 벌어졌다.

"말씀드렸죠? 살아남는 게 먼저입니다. 누군가를 지킬 만큼 강해지는 건, 살아남았을 때 가능합니다. 앞으로 잘 판단하시길.“

[<해안선의 귀신>이 침음성을 흘립니다.]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백문혁이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화신으로 그를 골랐겠지만, 당신도 알지요? 새하늘 시험의 우선순위는 생존이 첫번째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며 상원은 남쪽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보았다.

만웅 패거리에게서, 그리고 <감마 리전 첨병>에게서 문혁을 구한 건 계산된 행동이었다.

<콘크리트 회장> 강상중을 치고 <해안선의 귀신>을 동료로 삼기 위해서.

‘그런 걸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지.’

해안선의 귀신은 화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잠깐의 침묵, 그 후 문혁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납득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방금 그 사이보그는 뭡니까? 좀비들 사이에 왜 저런 게 있는 겁니까?"

문혁이 물었다.

"특수 좀비라고 하지요. 그 중의 하나 <감마 리전>입니다."

상원의 말에 문혁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명을 요하는 얼굴이었다.

"이 시험의 끝에 있는 <새하늘 주인>, 그 자가 잡아먹은 세계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카이네딘 제국>도 <무림>도, 그리고 <감마 리전>의 고향인 <타우 은하>도 새하늘 주인에게 잡아먹혔죠."

"아...."

문혁이 근심에 잠겨 신음했다.

"그거 설마, 저희도 죽으면 나중에 저 꼴이 될 다는 말씀입니까?"

문혁의 말에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빠르시군요 언젠가 저희도 다른 세계를 침략할 때 재료로 쓰일지 모릅니다. 그 땐 우리도 특수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겠죠."

"허."

문혁이 한숨을 뱉었다.

"죽으면 안 될 이유가 하나 늘었습니다. 죽어서 저 꼴이 될 순 없습니다."

문혁이 말했다.

"네. 일단은 시험에 집중하시죠. 저는 또 가봐야 될 데가 있어서."

상원이 문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문혁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칼을 뽑아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상원은 멀어지는 문혁을 바라보았다.

이제 셋 중 두 번째를 보러 갈 차례였다.

'<낙원의 성화>, 잘 하고 있나?'

* *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사오니...."

진아는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고 있었다.

세계에 끝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있었고, 그 형태가 좀비 아포칼립스일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진짜 현실이야?'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윤진아는 그 의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끄어어어억!"

그녀에게 달려드는 좀비는 너무나도 명확한 실체였고

"아얏!"

좀비의 손톱에 긁힌 팔뚝의 통증은 너무나도 생생했으며

- 기도에 응답하노라, 어린 양이여. 나는, <낙원의 수문장>.

그녀의 기도에 응하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에.

- 낙원에는 사악하고 부정한 것들이 범접할 수 없다. 낙원을 지키는 게 우리의 일. 어린 양아, 낙원을 지킬 불꽃을 내리노라.

"알겠습니다.“

[수호신 <낙원의 수문장>이 권능을 하사합니다.]

[권능 스킬 <지천사의 불씨>를 익혔습니다.]

[권능 스킬 <지천사의 불씨>를 발동합니다. 사악하고 부정한 것들은 모두 타오를 것입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으로 떴다.

그녀의 두 손끝에서 분홍색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안경에 분홍 불꽃이 반사됐다.

불꽃은 전혀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그 불꽃은, 사악하고 부정한 것들에겐 지옥 한가운데의 유황불보다도 뜨겁다는 걸.

진아가 타오르는 손으로 좀비를 후려쳤다.

쾅!

커다란 폭발음이 울리고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진아에게 달려들던 좀비는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으어억!"

"으어어어어!"

좀비 몇 구가 진아에게 달려들었다.

- 부정한 것들을 심판할지어다.

"부정한 것들을 심판하실지어다."

진아가 <낙원의 수문장>을 따라 말했다.

평소 같지 않은 단호한 목소리.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자신감과 고양감이 뱃속에서 차올랐다.

쾅! 쾅!

느리지만 차분한 동작으로, 진아는 심판을 내리고 있었다.

달려드는 좀비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는 인간이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코인 4를 얻었습니다.]

[신앙 4를 얻었습니다.]

코인과 신앙을 얻었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낙원의 수호신>과 수호계약을 맺을 때, 신앙을 쌓으면 그걸로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그그그그극."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좀비들이 울부짖는 것과는 다른 소리.

끼익 끼익

쇳조각이 서로 긁히는 소리도 들렸다.

진아가 고개를 돌렸다.

한데 엉겨 붙어 싸우고 있는 좀비와 수험자들.

그 사이에 괴이한 형체가 있었다.

유럽 중세풍 풀플레이트메일을 걸친 기사였다.

은빛 갑옷은 여기저기 녹슬어 있었고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다.

"그그그극."

이빨을 가는 것 같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기사가 천천히 진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날이 다 나간 롱소드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분명히 보통 좀비는 아니었다.

진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상대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후우."

진아가 심호흡을 하자, 손끝의 푸른 불꽃이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기사의 동작이 빨라졌다.

몸놀림부터가 달랐다.

어기적거리는 다른 좀비들과는 달리, 기사는 그럴싸한 동작으로 진아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날이 나간 롱소드에 반투명한 검은 기운이 맺혀 있었다.

우웅-

칼날은 무언가가 진동하는 소리를 냈다.

'저건 뭐야.'

저 검은 기운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였다.

기사가 진아를 향해 롱소드를 쭉 내밀고 허공에 찌르기를 했다.

기사가 뭘 하는지, 진아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 피해라!

진아가 급하게 몸을 틀었다.

핏!

오른쪽 가슴 부분, 셔츠가 찢어지며 피가 솟았다.

"아야!"

기사를 바라보는 진아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새하늘 시험의 들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주저앉아 울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 부정한 존재를 태워버려야 되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진아를 휩싸고 있었다.

- 지옥의 불길이 부정한 것들을 태울지어다.

"지옥의 불길이 너를 태울지어다."

<낙원의 수문장>의 목소리가 진아의 입을 통해 울렸다.

야구공을 던지듯, 진아가 기사를 향해 불꽃 덩어리를 던졌다.

주먹 만한 불덩이 두 개가 쏜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화르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파란 불꽃이 기사를 삼켰다.

"그르르륵!"

기사의 단말마를 토했다.

[특수 좀비 <왕국 기사>를 해치웠습니다.]

[<카이네딘 기사단>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낙원의 수문장>은 좀비에게 최악의 상성.

특수 좀비도 진아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었다.

"후우!"

진아는 더없는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여기가, 신령급 승천자 <낙원의 수문장>의 힘을 뽐내기엔 최고의 무대가 아닌가.

진아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공중으로 떠올랐다.

전장 한가운데서 타오르는 분홍 불꽃은 한 송이 성스러운 꽃처럼 보였다.

* * *

멀리서, 상원은 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원 자신이 회귀하기 전 세 번째 시험, 윤진아는 여기서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그 순간이 랭킹 4위에 빛났던 윤진아를 동료로 삼을 타이밍이었다.

'이제 곧이다.'

상원은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과연, 멀리서 검은 빛줄기들이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회귀 전 서울역에서 진아를 죽음의 위기에 빠트렸던 자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강림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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