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8화 (8/230)

제8화. 성화를 향하여 (4)

"시험 아직 안 끝났어요."

상원이 말했다.

두 번째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하철에 탔다고 안도할 게 아니란 얘기였다.

‘아직 너무 많이 살아있어.’

벌컥 문이 열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와서 객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악! 살려줘!"

"끄아악!"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 해서 서로를 제쳤다.

“아....”

창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리창 너머로 뒷쪽 객실의 풍경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벽면과 천장에 수십 개의 검은 구멍이 열렸고, 구멍에서 튀어나온 갈고리가 희생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서걱-

“으억....”

몸을 꿰뚫린 사람들은 입을 두어 번 뻐끔대다가 구멍 너머로 끌려갔다.

사람들이 끌려간 경로대로 핏자국이 남았다.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튄 피가 뒤쪽 객실로 통하는 유리를 뒤덮었다.

첫 객실로 건너온 사람들은 객실 앞부분으로 뛰어와 하얀 벽을 미친 듯 두들기기 시작했다.

기관실로 통하는 문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그건 열리는 문이 아니었다..

"어떡해, 어떡해요."

좌절과 공포, 그리고 흐느낌이 객실을 가득 메웠다.

"주여, 저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고통에 찬 절규 속에서 기도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윤진아였다.

채여 넘어지고 밟히면서도 그녀는 기도하고 있었다.

저 기도를 듣는 승천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험을 무사히 마치면 승천자가 그녀에게 다가가겠지.

'어떻게 저런 신앙을 가질 수가 있나.'

상원이 진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사냥하는 독수리의 울음소리같이 크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오는군.'

상원만이 침착하게 서서 객실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객실 여기저기 검은 구멍이 나타나고 갈고리들이 나왔다.

이어서 갈고리가 붙어 있는 날개, 날개가 붙어 있는 몸통, 몸통에 붙어있는 얼굴이 차례로 나타났다.

얼굴과 몸통은 벌거벗은 여성이었지만, 팔 대신 붙어 있는 박쥐 날개엔 사람들을 잡아가던 갈고리발톱이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구멍에서 튀어나온 갈고리가 사실은 짐승의 엄지발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끄르르륵."

괴물이 입술을 말아올리고 이를 드러낸 채 울었다.

“끄르르륵.”

"악마, 악마다."

"오, 주여."

운명을 직감한 듯, 사람들이 장탄식을 쏟아냈다.

새하늘교의 경전 <승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

[봉인을 떼자 끝없는 지하로 가는 문이 열리매 그로부터 새들이 지상에 나오사 저희가 하늘의 사자와도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지금 지하철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이 생물들이, <끝없는 지하>에 사는 2급 마물 <지하 괴조>들이었다.

상원이 교리 강사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이것의 어떤 구석이 새와 같냐고.

교리 강사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자이고, 이것들은 <끝없는 지하>와 땅을 잇는 사자입니다. 그러니 괴조라는 이름은 아주 적절하지요.'

그럴싸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굴이 어땠더라. 얼굴이 생각이 안 나네.'

그가 했던 말은 똑똑히 기억이 나는데, 얼굴도 목소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남자이긴 했던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두 번째 시험에서 얻어야 할 마지막 것이 눈앞에 있다.

"끄르르르륵"

그 사이 괴조가 점점 늘어 다섯이 되었다.

몰이사냥을 하듯 그들은 서서히 다가왔다.

벽에 부딪힌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떨기만 했다.

괴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윤진아가 주저앉아 있었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한 손에 묵주를 꼭 쥔 채로 그녀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끼야야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괴조들이 윤진아에게 달려들었다.

지금은 그저 가냘픈 여성일 뿐, 랭킹 4위 <낙원의 성화>라고 해봐야 미래의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두 눈을 질끈 감는 것밖엔 없는 것이다.

그 때 상원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괴조들에게 달려들었다.

육중한 거구가 노도처럼 달려드는 기세에 사람들이 튕겨져 나갔다.

빠각

관성을 그대로 실은 무릎차기에 괴조의 허리가 꺾였다.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상원과 괴조가 엉켜 객실 문까지 굴러갔다.

상원의 무릎에 맞은 괴조는 말그대로 피곤죽이 되어 절명했다.

괴조가 새타니나 잔나비와 달리 2급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끝없는 지하>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재주 때문이었다.

육탄전 그 자체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상원은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둥그런 눈으로 상원을 보고 있었다.

"끄르르륵!"

"끄아아악!"

괴조들은 상원을 보며 인상을 썼다.

먼저 움직인 건 괴조들이었다.

네 마리 괴조들이 먹이를 덮치는 표범과도 같은 기세로 상원에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상원은 커다란 바위처럼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네.’

이빨과 갈고리 발톱이 상원의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정말로 긴장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번째 별을 얻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 그걸 얻기 위해선 직접 <끝없는 지하>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상원은 괴조들에게 잡히는 방법을 택했다.

'이제 시작이군!'

후우, 상원이 큰 숨을 들이쉬었다.

배가 빵빵하게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꺄아아아악!"

상원에게 달라붙은 괴조들이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등 뒤에서 온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오한이 느껴졌다.

상원은 커다란 손이 자기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강한 압력이 상원을 구멍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느낌 더럽네.'

상원이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꽉 깨물었다.

쑤욱!

갑자기 지하철 객실의 풍경이 빛나는 구멍이 되어 작아졌다.

상원이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소리를 지르는 윤진아의 얼굴도, 구멍을 향해 달려오는 한창훈의 모습도 작아졌다.

곧 구멍이 사라지고 어둠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잠깐 몸을 맡겨볼까.'

상원은 눈을 감았다.

괴조들이 다리로 상원을 감싼 채 날았다.

그렇게 상원은 괴조들의 고향, <끝없는 지하>로 끌려들어갔다.

* * *

눈을 뜨기도 전에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스킬 <지하의 문>을 익혔습니다.]

지하의 문은 지하 괴조의 스킬로, <끝없는 지하>로 통하는 차원문을 연다.

상원의 육체가 지하의 문 스킬로 열린 차원문에 들어오면서 스킬을 베낀 것이다.

‘문제는 그 차원문이 사람 눈에는 안보인다는 거지.’

상원은 눈을 떴다.

온통 어둠 속이었다.

여기저기 불빛들은 밤의 둥지를 비추기엔 턱없이 작았다.

사방에서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압력과 오한이었다.

"으아아악!"

어디선가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괴조 몇 마리가 사람을 산 채로 뜯어먹고 있었다.

괴조가 창자를 질겅질겅 씹어먹고 있는데도, 사람은 고개를 미약하게 저으며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여기가 인간들에게 끝없는 어둠을 선사하는 공간, 밤의 둥지였다.

보통 사람들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지만, <동굴적 감각>을 익힌 상원은 달랐다.

[스킬 <동굴적 감각>을 활성화합니다.]

[동굴 속을 대낮처럼 밝게 볼 수 있습니다.]

밤의 둥지가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누런 하늘이 막힘없이 뻗어 있었다.

고개를 한껏 옆으로 꺾어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지상이 있어야 할 곳에도 그저 똑같은 상공이 펼쳐질 뿐이었다.

하늘에는 상원의 머리통만 한 것부터 산 하나만 한 것까지 크고 작은 바위가 떠 있었다.

어떤 바윗덩어리에는 거인들이나 쓸 법한 거대한 성당이 서 있었고, 어떤 바위에는 수십 채의 공장들이 거꾸로 붙어 연기를 뿜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상원을 납치한 괴조들이 비명을 질렀다.

상원은 작은 건물 한 채 크기의 바윗덩어리에 던져졌다.

가볍게 착지한 상원에게 수십 마리 괴조들이 날아들었다.

"후우."

상원은 몸을 풀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날아드는 괴조들을 사냥했다.

사실 그건 사냥이라기보다는 동사무소 공무원의 등본 발급과 비슷했다.

시험을 오십 번쯤 본 사람이라면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많이 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많이 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쯤 되면 마물이 사람 두엇 뜯어먹는 것이나, 십수명 몰살시키는 것쯤에는 분노는 물론이거니와 일말의 씁쓸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 마물의 목을 잘라버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저 업무를 수행하듯, 찍고, 자르고, 베고, 자기 상황을 체크할 뿐이다.

'이 압력... 이 몸으로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네.'

오한과 압력이 상원을 짓눌렀다.

팔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밤의 둥지는 이 마물들의 고향이다.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이며, 그들이 가장 강하고도 용맹한 곳.

그 안에 기어 들어와서 밤의 괴조를 사냥하겠다는 건 사실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원하는 걸 제 때 얻을 방법이 이것뿐이니.

그렇게 수십 마리의 괴조를 죽였을 때,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왔다!'

저 멀리서 다른 괴조들보다 훨씬 거대한 마물이 날아왔다.

2급 마물 지하 괴조의 상위종, <지하 마녀>였다.

커다란 몸을 뒤덮은 털은 새까맸고, 눈을 가린 검은 천엔 푸른빛이 감돌았다..

원래대로라면 <지하 마녀>가 등장하는 건 열 번째 시험이 지난 후이기 때문에, 첫번째 별을 얻기 전엔 만날 일이 없다.

그런데 첫번째 별을 얻기 위해선 지하 마녀의 스킬과 아이템을 얻어야만 했다.

그래서 상원은 <지하 마녀>가 있는 끝없는 지하에 직접 찾아왔다.

마녀가 착지하자 바닥이 울렸다.

"끄르르르륵!"

상원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던 마녀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상원은 범과 같은 기세로 달려드는 마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찰나의 타이밍에, 상원이 오른쪽 무릎을 내밀며 뛰어올랐다.

빠각

상원의 무릎이 마녀의 이마에 박혔다.

"끄르륵...."

골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마녀가 쓰러졌다.

공중에서 회전한 상원이 마녀의 등 위에 떨어졌다.

상원은 재빨리 마녀의 등 위에 엎드려 오른팔로 마녀의 목을 감쌌다.

단단한 팔이 뱀처럼 마녀의 목을 조였다.

"켁켁, 케에엑!"

어느새 기력을 회복한 마녀가 성난 황소처럼 날뛰었다.

하지만 등 뒤에 매달린 상원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수십 초, 켁켁대며 버둥대던 마녀의 움직임이 마침내 멎었다.

상원은 마녀의 코 밑에 손을 대 보았다.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해치웠다.”

상원은 마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었다.

[귀물급 보구, <지하를 꿰뚫는 눈가리개>를 얻었습니다.]

기다리던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지하를 꿰뚫는 눈가리개>의 기능은 <지하의 문>으로 연 차원문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스킬과 아이템이 모두 있으니 상원도 괴조들처럼 끝없는 지하를 드나들 수 있다.

'이거면, 두 번째 시험에서 얻을 건 끝났군.'

이제 돌아가야 한다.

상원이 눈가리개를 양 손에 쥐었다.

그 순간 거대한 진동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쿠구구구구

'이건 설마...!'

상원은 바위 가장자리로 달려가 아래를 보았다.

아래쪽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싱크대에 물이 빨려 들어가듯, 창공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괴조들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들었다.

아래쪽에 생긴 거대한 구멍을 중심으로 괴조들이 회오리치며 날고 있었다.

그리고 상원은 보았다.

그 구멍 속에서 꿈틀거리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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