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성화를 향하여 (3)
"쿨럭, 쿨럭."
상원이 밭은 기침을 했다.
강인한 폐는 지하철이 내뿜는 먼지까지 여과 없이 빨아들였다.
"퉷."
뱉어낸 침은 먼지로 가득차 검고 깔깔했다.
철로 옆 빈 공간에 커다란 몸을 구겨넣은 채로, 상원은 굉음을 내며 눈앞을 지나가는 거대한 지하철 바퀴를 보고 있었다.
끼이이익
고막을 찢는 듯한 마찰음과 쇠가 마찰하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지하철이 서서히 멈췄다.
상원은 열차 아래를 포복해 열차 앞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상원의 손에 뜨겁고 축축한 액체가 느껴졌다.
상원의 눈 앞에 부서진 살점과 뼛조각들로 가득찬 피웅덩이가 보였다.
피가 묻지 않게 조심하면서, 상원은 열차 아래서 나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뒤에서는 멈춰선 기관차가 씩씩대고 있었다.
기관차의 조명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철로를 비추었다.
철로의 모습은 참혹했다.
성성이들의 시신이 고깃덩어리 같은 몰골로 철로에 늘어져 있었다.
그 커다란 몸을 흐르던 피가 터져 나와, 벽이며 천장까지 온통 피범벅이었다.
'성공했다.'
상원이 큰 숨을 쉬었다.
<일곱 별의 왕관>을 이루는 첫 번째 별을 얻기 위해선 성성이의 시신을 무두질한 <성성이의 털가죽>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첫 번째 별이 있는 일곱 번째 시험 전에 성성이의 털가죽을 얻을 방법이 두 번째 시험의 성성이를 잡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 별의 왕관을 얻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성성이를 잡을 계획을 세웠다.
애초에 두 번째 시험에 배치된 성성이는 사냥하라고 있는 마물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학살을 위한 도구로, 평범한 인간과 성성이 사이의 격차는 아득하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강하다 해도 지하철에 치이고 살아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수험자의 행동은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보상이 조정됩니다. 400 코인을 얻었습니다.]
새하늘 시험에선 마물을 사냥하는 방법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방법이 영광스러울수록 보상이 늘어나는데, 그건 보통 결투를 통해 마물을 때려잡는 걸 뜻한다.
성성이 두 마리를 때려잡는 것, 가능하지만 택할 선지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부상이 심했을 거고, 그러면 일곱 별의 왕관은 얻지 못한다.
일곱 별의 왕관을 얻어 승천하려면, 극도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상원은 한 쪽 무릎을 꿇고 피반죽이 된 성성이의 시신을 만져보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가죽은 끄적한 피로 뒤덮여 있었고, 피비린내 사이로 성성이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이 정도면 <성성이의 털뭉치>가 열 개는 나오겠다.'
<성성이의 털뭉치>는 단순한 털뭉치가 아닌데, 그 진가는 <흑마술 양초>에 태웠을 때 나타난다.
일곱 번째 시험에서 델타 루트를 타기 위해선 <흑마술 양초>와 <성성이의 털뭉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록시한테 무두질을 시켜야겠다.‘
상인들의 역할 중 하나가 시신 같은 마물의 잔해를 아이템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상원은 <브라이싱크론 지갑>을 열어 성성이의 시체를 담았다.
철로를 꽉 채우고 있던 시신이 마술을 부린 것처럼 사라졌다.
성성이의 시체 두 구를 얻었으니 중요한 일 하나를 끝낸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두 번째 시험은 끝나지 않았고, 두 번째 시험에서 얻어야 할 것을 모두 얻은 것도 아니었다.
‘이제 지하철을 타볼까.’
상원은 가볍게 팔을 휘둘러 스크린도어를 박살내고 플랫폼으로 뛰어 올라갔다.
* * *
그새 동굴개미들이 다 사라져버린 플랫폼은 깨끗했다.
깨진 스크린도어와 피범벅이 된 철로만 아니었다면, 한산한 시간대의 지하철역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세계가 멸망한 줄도 몰랐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그들은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누운 채로,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고 있었다.
사지육신이 성한 이를 찾기 어려웠고,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피로와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의 눈에는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그들을 성스러운 불기둥으로 이끌어 줄 지하철이 왔기 때문이었다.
‘이게 승천 시험이지.’
상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승천 시험은 수험자들을 계속해서 절망에 몰아넣으면서 더 이상 안될 것 같을 순간에 희망을 준다.
수험자들은 그 한줄기 희망을 믿고 불나방처럼 달려갈 것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합리적인지, 합당한 건지, 그런 물음들은 깨끗이 지워버린 채로.
'애당초에 나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최선 아닌가.'
상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지금 플랫폼에 있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승천 시험이 시작될 때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수천 명의 사람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겨우 이 정도다.
붉은 새끼돼지를 따라온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수호신과 교감하기 위한 조건, 바로 ‘영감’이 있다는 것.
영감이 있는 사람들은 돼지를 본 순간 따라가야겠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두 번째 시험은 새끼돼지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실상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영감이 있는 자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지금쯤이면 인류의 95%는 죽었겠다. 이제 좀 더 고르기 편하시겠어들.’
첫 번째 시험과 두 번째 시험의 목적은 철저히 <승천자>들의 선택지를 줄여주는 데 있다.
이제 승천자들은 70억이나 되는 선택지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난데없이 종말은 찾아왔고, 인류는 시험을 지켜보는 승천자들의 편의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으득, 상원이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잡념이 많아지만 승천은 못한다. 승천을 못 하면....’
순간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라, 상원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플랫폼에 모여 있는 ‘영감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 사람들 모두가 영감이 있는 건 아니구나.’
<불신자>인 상원부터가 영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회귀 전 상원이 붉은 새끼 돼지를 따라온 이유는 돼지를 따라가야 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쪽도 영감은 없겠지.'
상원은 플랫폼 저 멀리 있는 은수 아빠와 엄마를 보았다.
상원의 기억엔 없는 얼굴이었다.
회귀 전 세계에서는 시청역은 커녕 광화문 사거리도 넘지 못하고 잔나비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어쩌면 첫 번째 밤을 보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돼지를 따라와서가 아니라 상원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상원이 은수 아빠에게 횃대를 만들어주고 생존법을 알려준 게 상황을 바꾸었다.
‘생존자 목록이 바뀌겠네.’
상원의 옆에서 시험을 함께 할 동료들도 바뀔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며 플랫폼을 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금이 가 있는 커다란 둥근 안경이 작은 얼굴과 대비되었다.
'윤진아!‘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승천 시험 후반부에 들어선 사람 치고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험자 랭킹 4위, 그 유명한 <낙원의 성화(聖火)>를 모를 리가 있나.
분홍빛 성화를 뿌리며 전장을 유린하던 그 위용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나중 일이지. 지금은 그냥 난데없이 세계종말을 맞은 일반인일 뿐이다.’
그녀는 묵주를 만지며 기도에 매진하고 있었다.
무릎에 놓인 성경은 손때를 많이 타 꼬질꼬질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겠지. 기도로 뭐가 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하지만 윤진아는 알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승천 시험에선 저 기도가 누군가에게는 닿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믿는 종교의 신이라거나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신화와 종교를 끌어다 짜깁은 승천 시험의 세계엔 누군가의 기도에 대응하는 존재가 있게 마련이다.
그 존재는 자기 신도를 고르고,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새하늘교는 그 존재들을 <승천자>라 부른다.
회귀 전에도 50번째 시험에 이를 때까지 수많은 승천자를 보았다.
그 중에 <불신자> 조상원에게 호의적인 승천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권좌>를 원하는 자 <기계장치의 신>을 빼고는.
'그런데 내가 왜 칭호를 모르지? 그럴 리가 없는데....'
"열차 곧 출발할 예정이오니, 승객들께서는 속히 열차에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상원의 생각을 끊었다.
다른 수험자들과 함께, 상원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 * *
첫 번째 칸에 홀로 탄 채 상원은 가만히 건너편 차창을 바라보았다.
차창 바깥의 까만 어둠에 비친 행색이 퀭했다.
거대한 몸은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고, 회귀할 때 받은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다.
새하늘 시험의 살벌한 일정과 연이은 전투는 회귀자인 상원마저도 피폐해지게 만들고 있었다.
‘다른 수험자들은 오죽할까.’
그 때, 기차 문을 열고 사람들이 들어섰다.
“여보, 여기 앉자.”
은수의 엄마와 아빠였다.
아빠는 피곤에 잔뜩 찌든 표정으로 비틀거리고 있었고, 엄마는 불안한 눈으로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는 빈손이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딸의 시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무사하셨네요!"
은수 아빠가 상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창훈이 절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냥 선생님께서 운이 좋으셨던 것뿐입니다."
"아닙니다, 다 도와주셔서 그런 거죠. 아, 저는 한창훈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조상원입니다."
상원의 대답은 건조했다.
“어, 아빠 누구야?”
은수 엄마가 배실배실 웃으며 남편의 윗도리를 잡아당겼다.
아내를 보는 창훈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직 이런 상탭니다."
"네."
상원의 차가운 대답에 창훈은 무안한 얼굴로 상원의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혜경의 손을 꼭 붙잡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상원 씨는 군인이신가요?"
창훈의 물음에 상원이 창훈을 바라보았다.
"사실, 어제 낮에 싸우시는 걸 봤습니다. 그... 굉장하더라고요. 그렇게 움직임이 뭐랄까, 망설임이 없고 간결하고.... 그렇다면 특수부대랄지, 그런 게 아닐까 해서."
"비슷한 걸 했습니다."
‘비슷했지.’
마물을 사냥하고 다른 수험자를 상대하는 전투와 시험의 연속, 상원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앞으로는 그 누구도 목숨을 챙겨주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상원이 은수 엄마를 바라보고 말했다.
새하늘 시험대에선 홀로 살아남는 것도 버겁다.
“아....”
창훈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딸 낳았을 때 제가 스물 둘이고, 아내가 스물이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절 이겨내고 이제 좀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혜경을 쓰다듬는 창훈의 눈이 아련했다.
"아내마저 없으면... 홀로 살아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철로를 달리는 지하철이 덜컹거렸다.
"창훈씨."
창훈이 상원을 보았다.
"이제는, 생존 자체가 의미가 될 겁니다."
창훈의 표정이 굳었다.
이제까지 생존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아직 두 번째 시험이 끝난 것도 아니고.’
그때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은수 아빠와 엄마가 지나온 지하철 뒷칸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다가오고 있군.'
벌컥 지하철 문을 열면서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
"도와주세...!"
울음 섞인 여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문 옆에 나타난 구멍에서 날카로운 갈고리 튀어나와 여자를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갈고리는 여자를 구멍 속으로 쑥 잡아가버렸다.
"저게... 저게 뭐야!“
창훈이 덜덜 떨면서 외쳤다.
"신의 사자요."
떨리는 창훈의 말에 상원이 일어서며 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