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6화 (6/230)

제6화. 성화를 향하여 (2)

"꾸악, 꾸아악!"

광화문 광장에 인접한 골목길과 건물들로부터 잔나비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하나가 사람을 덮치면 대여섯이 더 달라붙어 사람을 산채로 뜯어먹었다.

"끄아아악!"

광장 곳곳에 고통에 가득찬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사람이 산 채로 뜯어먹히는 광경은 군중을 패닉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저 멀리 보이는 불꽃 기둥을 향해서 마구 내달렸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상원도 달리고 있었다.

상원 주위에서 달리던 사람들이 잔나비에게 잡혀 하나 둘 쓰러졌다.

"으악!"

"꺄악, 살려주...!"

처절한 비명이 들려와도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았다간 자기도 같은 꼴이 될 걸 알기에.

상원에게도 잔나비들이 덮쳐왔다.

"꾸아아악!"

상원 오른쪽 앞 자동차를 디디고, 잔나비 하나가 상원에게 도약했다.

'젠장, 귀찮게.'

달리는 기세 그대로, 상원은 날 듯이 뛰어올라 잔나비의 미간에 무릎을 꽂았다.

빠각!

골통이 박살난 잔나비가 몇 미터를 날아갔다.

[코인 7을 얻었습니다.]

잔나비가 인간이 이기기 어려운 맹수라지만, 상원에겐 그저 돈뭉치일 뿐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머물면서 잔나비들을 때려잡는다면 코인을 상당히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할 건 따로 있다. 이거 못 얻으면... 첫번째 별은 못 얻는다.’

미련을 가지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1호선 시청역이 보였다.

그리고 시청역으로 향하는 도로 한가운데 온 털이 새빨간 집돼지가 있었다.

"꾸륵, 꾸륵."

돼지는 자기 쪽으로 뛰어오는 사람들을 보다가, 천천히 지하철역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멸망한 세계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새하늘교의 경전 <승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돼지는 생명과 권능과 승천을 이끌기 마땅하니 그가 향하는 곳에 안녕이 있으리이다.]

새하늘의 인도자 새끼돼지는 아주 가끔 나타나 수험자들을 지름길이나 피난처로 이끈다.

'그렇다고 설마 진짜 돼지일 줄이야.‘

몇몇 사람들이 돼지를 보고 홀린 듯 따라가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검은 우물처럼 어두운 지하철역 출입구 속으로.

'출입구가 저 꼴인데도 따라가는 게 진짜 믿음이지.'

돼지에게 홀리지 않은 사람들은 숭례문을 향해 뛰어갔다.

‘저 사람들은 모조리 죽을 거다.’

상원이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숭례문을 통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끼 붉은 돼지는 사이비종계의 신이 세계를 향해 일방적으로 선포한 신앙심 테스트였다.

‘그냥 저거 따라가서 편하게 지하철 타면 쉽게 끝나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첫 번째 별>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숭례문에 가야 해,’

그리고 숭례문에 가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상원은 돼지가 들어간 우물 같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듯 뛰어들었다.

* * *

사사삿

커다란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상원은 주의를 집중했다.

저 멀리 돼지가 기어가고 있었다.

돼지가 내뿜는 불빛이 돼지 주변 반경 1미터 정도를 비추었다.

큰 개만한 개미들이 그 불빛 곁을 바글거렸다.

새하늘 시험대의 가장 깊고 어두운 동굴 속을 방랑하는 마물들, 그들의 이름은 <동굴개미>였다.

‘턱힘이 세고 발톱이 날카롭지만 그게 전부다. 하나 하나의 전투력으로 본다면 맹견과 엇비슷한 정도지.’

그럼에도 무서운 점은 첫째 그들이 새타니나 잔나비들보다도 집단행동에 훨씬 능하다는 것.

둘째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이런 어둠 속에서 동굴개미에게 덤비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된다.’

상원은 불빛의 경계에 서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굴개미를 마구 사냥했다.

동굴개미의 턱과 발톱은 상원에게 별다른 상처를 주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뒤집어쓴 체액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고대하던 메세지가 떴다.

[스킬 <동굴적 감각>을 익혔습니다.]

[동굴 속에 들어왔습니다. <동굴적 감각>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어둠이 물러가고 시청역이 평소처럼 환해졌다.

‘마물을 잡으면 그 마물이 가진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걸 그슨대들 잡으면서 알았지. 이게 이 육체의 두 번째 기능인가.’

'나머지 기능들은 자네가 알아서 찾아보라고.'

<기계장치의 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 상원은 피식 웃었다.

마물의 스킬을 익힐 수 있으면 일곱 별의 왕관에 다가가는 건 좀 더 수월해진다.

<동굴적 감각>은 동굴개미들이 동굴 속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이것 하나를 염두에 둔 것만으로도 상원은 회귀 전이라면 꿈도 못 꾸었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요새 수호자의 응시>나 <혹한 황제의 위엄> 같은 걸 얻으면.'

언젠가는 이런 밑도 끝도 없이 강력한 스킬들도 얻게 될 것이다.

그걸 가진 마물들을 마주쳤을 때 그들을 사냥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강할 때 얘기지만.

'일단은 두 번째 시험부터 해결하고.'

상원은 동굴이 된 시청역 속을 빠르게 움직였다.

곧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가 보였다.

* * *

상원은 숭례문으로 향하는 언덕을 뛰어 올랐다.

언덕의 끝부분에 시신이 즐비했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여기저기가 짓이겨져 성한 데가 없었다.

잔나비들에게 물어뜯긴 것과는 달랐다.

시신 주변에 피 묻은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상원은 언덕 끝의 숭례문을 올려다보았다.

숭례문은 지붕 한 쪽이 완전히 쪼개지고 축대에 흉한 균열이 가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 주변에는 바윗덩어리며 공사 기자재 같은 잡동사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지붕 위에 커다란 짐승이 어슬렁거렸다.

생김새는 커다란 고릴라와 같았는데 얼굴은 멧돼지 같았고 길게 튀어나온 육중한 어금니는 상아처럼 보였다.

그런 짐승 두 마리가 숭례문을 지키고 있었다.

‘<성성이>. 숭례문을 지키기 위해 안배된 짐승.’

숭례문 루트를 탔을 때 성공률이 0에 수렴하는 까닭은 성성이들이 지키는 숭례문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한 완력으로 사람 머리통만 한 바윗덩어리를 던져대는데 그 기세가 투석기와 같아서, 성성이의 영역을 잘못 침범하면 벌집이 되기 십상이다.

영역을 지키는 성성이를 사냥하는 건 중반부에 접어드는 수험자들로서도 쩔쩔매는 일이었다.

상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숭례문을 향해 다가갔다.

"꺼르르르릉!"

영역을 침범당한 성성이들이 천둥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성성이들이 철근과 바위를 마구 던져댔다.

상원은 뒤로 몸을 굴려 날아오는 철근을 피했다.

후웅, 거친 파공음이 상원의 귓전에 울렸다.

'역시, 영역에 들어가서 때려잡는 건 무리군.'

상원은 영역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성성이들을 바라보았다.

성성이들도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는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출혈이 너무 크다. 그럼 다음 계획에 차질이 생겨.’

그러면 반대로 성성이를 영역에서 끌어내면 된다.

'이 때를 위해서 준비해두었지.'

상원이 브라이싱크론 지갑에서 <어린 성성이의 두개골>을 꺼냈다.

성성이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상원은 두개골을 높이 쳐들었다.

"꺼르르릉!"

"끄르르르렁!"

성성이들이 미친 듯 포효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성성이들은 동족애가 끔찍한 동물이다.

‘자기들 눈앞에 어린 새끼의 두개골이 있는데 제정신일 리 없다!’

성성이들이 미친 듯 바위와 자재들을 던져댔다.

하지만 상원은 이미 그것들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러나 있었다.

몇 번 더 포효한 성성이들이 상원을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벌판에 울렸다.

‘됐다!’

상원이 씩 웃고는 몸을 돌려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은수 아빠 창훈이 든 횃불이 어두운 플랫폼을 밝히고 있었다.

빛의 바깥에는 동굴개미들이 드글거렸다.

'횃불이 언제까지 버틸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창훈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횃불을 보았다.

횃불이 꺼지는 순간 부부는 개미들의 밥이 될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빠. 나 배고파. 밥 줘."

아내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바닥을 적시는 웅덩이를 본 창훈의 표정이 착잡했다.

"괜찮아... 괜찮아, 혜경아."

창훈이 혜경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어린 부부가 고락을 함께하며 키운 딸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들에게 죽었고. 아내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통에 딸의 시신마저 잃어버렸다.

창훈도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내라도 살려야 하니까.

그때였다.

지하철 스피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역, 서울역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하철에 열차가 들어올 때 나는 음악과 함께 플랫폼에 불이 들어왔다.

동굴개미들이 사삿거리는 소리를 남기며 어딘가로 바삐 사라졌다.

창훈은 횃대를 만들어준 거구의 청년을 떠올렸다.

‘1호선을 타라고 했었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됐는데 지하철이 돌아다닐 리가.

'그런데 진짜로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철로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나타났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가면 두 번째 시험이 끝난다. 하지만 다음 시험이 또 있겠지. 그 땐 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창훈이 걱정에 찬 한숨을 쉬었다.

그 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역사(驛舍)가 흔들렸다.

지하철 한 대가 낼 리 없는 진동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창훈이 횃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누군가 그 거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플랫폼으로 뛰어들어왔다.

횃불을 만들어 준 청년이었다.

그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청년을 쫓아 온 거대한 괴물 두 마리가 계단을 가득 채우고 돌진해 들어왔다.

진동은 그 괴물들이 내는 것이었다.

"꺼르릉!"

"꺼르르릉!"

둔중한 포효에 놀란 창훈이 주저앉았다.

플랫폼으로 뛰어든 청년은 그 기세 그대로 스크린도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콰직, 스크린도어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뜯겨 나갔다.

청년은 철로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괴물들도 청년을 따라 철로에 뛰어들었다.

짐승들이 철로에 뛰어들자마자, 단단한 무쇠로 된 거대한 전차가 맹렬한 기세로 그들을 덮쳤다.

빠아아앙

스크린도어가 뜯겨져 나가자 지하철이 내는 굉음이 온 플랫폼에 울렸다.

퍽!

살점이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온 철로에 피가 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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