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4화 (4/230)

제4화. 마귀 (3)

"엥? 거기는 왜요?"

이해가 안된다는 투로 록시가 물었다.

"비밀이에요."

상원이 대답했다.

"하, 거 참. 고갱, 아니 우리 투자자님, 좀 감이 없으신 것 같은데. 지금 안 쉬면 내일 모가지 날아갈 수도 있다고요. 거기다 지금 보니 저 건물... 안에 뭐 있는 것 같은데?"

록시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묻어 나왔다.

"우리 투자자님이 건재하셔야 나도 사업을 좀 벌릴 거 아니요. 부탁이니까 좀 잠이나 자면 안되우?"

"걱정하지 마시고 물건이나 잘 준비해주십시오."

록시의 말에 대답한 상원은 천막을 빠져나와 곧장 정부종합청사로 향했다.

<일곱 별의 왕관>을 이루는 일곱 개의 별, 그 중 첫 번째 별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거기에 있었다.

* * *

승천 시험은 50개의 <중심 시험> 외에도 수많은 <던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원의 머릿속에는 그 많은 던전들에 대한 정보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승천 시험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경전 32권과 3백 페이지짜리 노트 198권을 모조리 외워버렸으니까.

상원이 정부서울청사로 향하는 것도 거기 있는 던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귀 전 상원이 이곳을 들렀던 건 그저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부서울청사 던전에는 <일곱 별의 왕관>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얻어야 하는 물건이 있었다.

회귀 전 겪었던 일을 생각하니 등골을 타고 오한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지만, 정부청사에서의 경험은 특히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정말로 죽을 고비를 넘긴 첫 번째 기억이니까.

‘그땐... 4층이 끝이었지.’

한편으론 50번째 시험까지 겪고 나니 시험 극초반에 그렇게 쩔쩔맸던 게 우습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상원은 어느새 정부청사 입구에 서있었다.

청사는 어느새 흉측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조리 깨져 있었고, 건물 곳곳에 불이 나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빨간 액체로 그려진 뒤집어진 오망성과 그걸 둘러싼 원이 이곳 저곳에 그려져 있었다.

‘마귀들을 상징하는 불경한 문양이다.’

상원은 곧장 승강기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승강기까지 시신이 즐비했다.

시신엔 새타니가 물어뜯고 할퀸 자국이 선명했다.

승강기 몇 대는 입구에 시체가 걸려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하고 있었고, 안은 유혈이 낭자해 본래 모습을 짐작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청사 내부는 지나치게 적막했다.

간간이 승강기가 홀로 여닫히는 소리, 그리고 저 멀리 광화문 광장에 있는 생존자들이 내는 신음소리나 곡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시각적으로는 끔찍했지만 청각적으로는 고요했다.

그 격차가 섬뜩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인류의 구할이 죽는다. 마지막 시험까지 이렇게 많은 시체를 보게 되는 곳은 몇 군데 없지.’

후우.

상원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십수 대의 승강기, 그 중 던전으로 이어지는 승강기는 단 한 대 뿐이다.

상원은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끝에서 두 번째 엘레베이터 승강기의 버튼을 눌렀다.

다른 승강기들과는 달리 이 승강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깨끗했다.

분홍 빛 도는 금색 계열의 깔끔한 벽면은 반질반질해서 상원의 실루엣이 비칠 정도였다.

상원은 정부청사의 구조를 되새겼다.

2층부터 20층까지, 각 층마다 던전이 있다.

20층에 가까워질수록 던전은 어려워진다.

2층부터 한 층씩 깨면서 보상을 얻을 수도 있고, 높은 층수에 바로 도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2층부터 보상이 누적되는 건 아니고, 높은 층의 던전을 깨면 보상이 갱신되는 구조였다.

그러므로 높은 층에 바로 도전하는 게 효율적이다.

‘하지만 높은 층에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간 블루투스 신호만도 못한 처량한 신세가 되는 거고.’

회귀 전 상원은 2층부터 차례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었다.

구조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으니까.

그랬다가 4층에서 죽을뻔 하고 포기했었다.

지금은 다르다.

<개성>에다가 <기계장치의 신>에게서 받은 신체 능력까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가야지.'

상원은 망설이지 않고 20층을 눌렀다.

* * *

정부종합청사 20층.

어둡고 음습한 공간에 짙은 향이 진동했다.

향을 태우는 냄새에 박하 향이 섞인 것 같았다.

조명이 나가버린 복도는 어두웠고, 여기저기 걸린 횃불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복도 곳곳에는 조잡한 장식품들이 걸려 있었고 청사 외벽에 그려져 있던 것과 같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정부종합청사 20층은 음습한 마귀 소굴이 되어 있었다.

누가 이 광경을 보고 여기가 한 때는 중앙정부 청사로 쓰이던 건물이라 생각하겠는가.

복도 저 편 어둠 속에서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타니들이 웃는 소리였다.

‘가자!’

상원은 빠르게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달리는 속도가 상당했기에 진작 복도 끝에 닿았어야 하겠지만 복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공간과 이어졌구나.’

달릴수록 주변은 어두워졌고 향은 짙어졌다.

어둠 속에서 간간히 튀어나오는 새타니들을 상원은 가볍게 정리했다.

정부종합청사 20층 던전에는 새타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이다 보니 상원 앞에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크고 까만 새타니가 나타났다.

“끄르륵!”

새타니의 상위종 <그슨대>였다.

'첫째날 밤인데 그슨대까지 나온다고? 역시 괜히 20층이 아니네.'

보통 수험자에 그슨대는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마물이었다.

그슨대에게는 새타니에게는 없는 스킬 <마력 삼키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끄에에에엑!"

그슨대가 입을 쩍 벌렸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수험자에게서 피어난 파란 연기를 그슨대가 입으로 빨아들였을 것이다.

그게 그슨대가 수험자의 마력을 빨아먹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킬이란 스킬은 모두 무효화하는 개성 <불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원은 그슨대를 조금 큰 새타니 정도 이외로는 여겨본 적이 없다.

“그르륵?”

당황한 그슨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흥.”

상원은 가볍게 웃으며 그슨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슨대가 피떡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분명 달랐다.

[스킬 <마력 흡수>에 대한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상원은 그슨대의 스킬을 맞는 순간 머릿속에 들린 낯선 음성을 곱씹고 있었다.

* * *

한참을 달려 상원은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공동(空洞)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거대한 공간 가운데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공기가 불어왔고, 짙은 향에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끼륵 끼륵 끼르르르륵

그리고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나는 소리가 온 방 가득 울리고 있었다.

제단을 중심으로 적게 잡아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 새타니와 그슨대들이 둘러앉아 절을 했다.

제단 앞에는 성인 남성 키는 되어 보이는 마물 하나가 있었다.

신체 비율은 비교적 온전한 사람의 형상.

좌우로 쭉 찢어진 눈에선 노란 빛이 형형했고 귀까지 찢어진 입 속에선 길다란 혀가 꿈틀거렸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제물에 돌칼을 박으려는 듯 보였다.

제물은 체모란 체모는 모조리 밀린 사람의 시신이었다.

'이매! 20층 끝엔 저놈이 있었구나.'

도깨비 족속의 2급 마물 <이매(魑魅)>였다.

50번째 시험까지 겪었던 입장으로서 2급 마물 이매는 누가 뭐래도 하급 마물이 맞다.

하지만 첫 번째 시험 직후에 이매를 만난다면 그건 분명 이야기가 다르다.

‘네 번째 시험까지는 가야 만나는 놈이 여기 있다니. 이거 그냥은 주기 싫다는 거구만.'

상원이 작게 웃었다.

"인간! 인간이다!"

이매가 동작을 멈추고 째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와 함께 웅성거리던 소리가 뚝 그쳤다.

소름끼치는 정적.

그 직후 방 안에 있던 새타니와 그슨대들이 일제히 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끼에에에엑!”

마물들이 포효하며 상원에게 달려들었다.

상원도 그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주먹질과 발길질, 한 번 한 번에 마물들이 절명했다.

포위당하거나 몰리는 상황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상원은 공동 안을 빠르게 정리해나갔다.

아무리 전투 경험이 풍부해도 보통 사람의 몸으로는 이런 무용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새로 받은 육체는 그걸 가능케 했다.

그때였다.

화르륵

요란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복도 저 편에서 쐐기 모양의 불덩이가 날아왔다.

그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공동에 퍼졌다.

이매의 스킬 <유황불 화살>이었다.

상원에게 들러붙었던 마물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쾅!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불덩이가 상원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 * *

<유황불 화살>

마신 <세상 끝의 불꽃>의 영토인 <지옥>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건져올린 불덩이.

맞으면 인간은 물론 새타니나 그슨대 같은 잡졸 마물들은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후끈한 열기와 코를 찌르는 냄새가 퍼졌다.

첫째날 밤, 인간이 이걸 맞고 버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원이 멀쩡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불덩이에 맞은 옷이 누더기가 되어 드러난 상원의 단단한 가슴팍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키이이익! 무슨...!”

그럴 리가 없다.

유황불 화살에 맞고 상처 하나 없다니.

이매가 유황불 화살 두 발을 연달아 던졌다.

쾅 쾅

두 개의 불덩이 또한 굉음을 내며 상원에게 명중했다.

짙은 연기가 이매의 시야를 가렸다.

유황불 화살은 꽤 많은 마력을 잡아먹는 스킬.

세 발을 연달아 던져 힘이 빠진 이매가 제단에 기댔다.

당연히 그 인간은 잿더미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며.

조금 후 연기가 걷혔다.

분명 보통 인간이라면 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저벅, 저벅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상원은 멀쩡한 모습으로 제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이매에겐 그렇게 걸어오는 남자가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사신처럼 보였다.

그 기세에 놀란 마물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우글거리는 마물들 사이로, 홍해가 갈라지듯 제단으로 향하는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 상원이 걸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 뭐냐 넌?”

쓰러지듯 주저앉은 이매가 상원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물었던 놈들이 한 둘이 아니야. 수험자들도, 마물들도 너와 똑같이 물었었지."

이매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대체 이녀석은 왜 스킬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 눈빛에 대답하듯 상원이 차갑게 웃었다.

“나는 불신자다.”

건조하고 딱딱한 단답.

목소리에선 오래된 피로감이 묻어 나왔다.

“나는 스킬 따위 믿지 않아.”

“무슨...?”

의혹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이매가 물었다.

이매의 눈동자에, 자기 머리통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주먹이 비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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