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3화 (3/230)

제3화. 마귀 (2)

신격(神格)을 담은 칭호인 <일곱 별의 왕관>은 달성 불가능한 업적 7개를 달성해야 얻을 수 있다.

회귀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50번째 시험 통과를 위해선 신격을 얻어야 한다는 걸 안 이상 반드시 일곱 별의 왕관을 얻어야만 했다.

‘이 몸이 있으면... 일곱 별의 왕관을 얻을 수 있겠다.’

상원이 커다란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코인은 새타니를 잡으면서 잔뜩 모았다. 지갑이랑 재료 사는 건 문제 없어.’

<코인>이란 승천 시험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화폐다.

수험자가 가진 코인의 양은 수험자의 주요 정보로서 <시험의 표식>에 기록된다.

지금 <성전>의 상인 <록시>가 보고 있는 것도 상원의 표식에 기록된 코인의 양이었다.

록시는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고객님, 대체 이 많은 코인이 어디서...."

상원을 바라보는 록시의 표정이 바뀌었다.

온화했던 그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눈동자와 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보통 수험자가 이 타이밍에 1,120코인을 갖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글쎄요."

상원이 생긋 웃었다.

"그걸 말해줄 이유는 없는 것 같네요."

록시가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원에겐 뻔히 보였다.

1,120코인이면 새타니 224마리를 혼자 잡았다는 얘긴데, 수호계약도 하지 않은 인간이 그런 걸 해낼 리 없다.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수호계약을 체결한 것.

그것도 첫 번째 시험에서 자기 계약자에게 1천1백 코인을 내줄 수 있는 특급 승천자와.

그런 자가 다른 상인과 계약하게 놔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먹혔군.'

상원은 굴러가는 록시의 눈알을 보며 생각했다.

<레힌도프>나 <골리야스>같은 대상(大商)들을 운운하며 건 도발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나를 지금 잡으면 레힌도프나 골리야스를 넘어설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허리 숙이지 마세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 예? 예, 암요. 그래얍죠."

상원이 주변을 슥 훑어보고 말하자, 록시가 허리를 폈다.

그리고 록시가 주머니에서 천 덩어리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순식간에 천이 펼쳐지며 천막이 되어 두 사람을 감쌌다.

'이제 시선 신경 쓰지 않고 거래를 진행할 수 있겠군.'

"일단 물건부터 봅시다."

"네, 네 알겠습니다."

록시가 말했다.

그와 함께 상원의 눈앞에 창이 떴다.

가장 위쪽 탭에는 <특별 할인>이니 <물약>이니 하는 구분 창이 있었다.

<특별 할인> 창에 아이템이 죽 늘어서 있었다.

아이템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초보 수험자를 위한 스타터팩, 30% 할인>.

일정량의 능력 물약과 각종 버프를 제공하는 아이템.

수험자의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늘려주는 물약과 유용한 버프를 제공해주는, 효과 자체로는 효자인 아이템이었다.

문제는 그 버프들이 다섯 번째 시험이 끝날 때 까지만 유지되는 것이다.

‘갑부 수호자들은 자기 화신들한테 막 퍼주겠지. 나한테는 필요 없다.’

<수수께끼의 아이템 상자>.

높은 확률로 유물급, 낮은 확률로 귀물급, 그리고 거의 없다시피 한 확률로 성물급 아이템이 나온다.

성물을 뽑는다면 더없이 횡재한 것이겠으나 그건 말 그대로 횡재다.

‘이것도 기댓값으로 생각해보면 절대 살 이유가 없지.’

물약 탭에는 <회복의 돌>과 <능력 물약> 같은 것들이 있었다.

새하늘 시험에서 <능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연약한 인간이 나중에는 신과 같은 힘을 다루게 해준다.

능력은 <괴력>, <용력>, <술력>으로 이루어지는데, 괴력이 쌓이면 산을 뽑을 수 있게 되고 용력이 쌓이면 바람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회귀 전이라면 능력 물약을 샀겠지만, 지금 살 건 그게 아니다.’

<기계장치의 신>에게 받은 새로운 육체의 피지컬만으로 초반 진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다.

특별할인 아이템이나 능력 물약을 살 여유는 없었다.

상원은 다음 질문을 꺼냈다.

"<성전>의 상인 <록시>, 당신도 귀물급 보구들은 가지고 있지요?"

"아, 귀물급요? 하하, 암요 그렇고 말고요. 보여드립지요."

록시의 표정이 굳었다.

유물, 귀물, 성물, 그리고 신기로 나뉘는 아이템 등급을 어떻게 벌써 알 수 있는지.

이 자의 수호신은 누구길래 이런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건지.

‘궁금하겠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아는지.’

꿀꺽, 록시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사이 상원은 록시가 가진 귀물들을 훑어보았다.

'<날으는 양탄자>에 <소원의 램프>라.'

가격은 하나같이 2천 코인을 넘어섰는데, 비싸긴 하지만 돈 값 못하는 물건들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몰랐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양심 완전 팔아먹은 건 아니구나 .’

그렇게 뜸을 들이면서 물건을 살펴보다가 상원이 운을 떼었다.

"아,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데."

"아, 하하! 선생님, 그럴 줄 알고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이거 한 번 보시죠."

아이템 창 오른쪽에 새로운 창이 떴다.

<전속 거래 계약서>.

내용은 간단하다.

수험자가 해당 상인과만 계약하겠다는 증서.

거기에 서명하고 나면 다른 상인과의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계약을 맺으면 해당 상인으로부터 싼 가격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다.

반면 독소조항들도 많다.

시험을 진행하다 보면 계약에 발목을 잡혀 상인의 노예에 가까운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상원이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계약서를 뜯어보았다.

전속계약에 따른 할인율이 50%를 넘어간다.

'이 정도 할인율, 흔하지 않은데? 이 놈 첫날밤에 천 백 코인을 보더니 눈이 제대로 돌아갔구만.'

"오, 그럼 지금 제가 가진 코인으로도 이걸 살 수 있겠군요."

상원이 놀란 투로 말했다.

상원 자신이 듣기에도 어색한 말투였지만 록시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암요 암요! 그렇고 말고요!"

상인에게, 첫 번째 밤에 1천 코인을 확보하고 가는 건 하늘에 별 따기와 같은 일이다.

여기서 거래를 성사하면 업계 1위로 가는 길도 멀지 않다.

록시로서는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내용이 좀 이상하네요."

상원은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가며 수정사항을 이야기했다.

"이거 이거는 빼고, 이거는... 10%p만 올리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몇 번 대화가 오가고, 상원은 마음에 꼭 맞게 만들어진 계약서를 보고 있었다.

록시와의 전속계약, 하면 좋긴 하겠지만 못해도 큰 탈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상원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들만 제시했다.

그런데도 록시가 너무 순순히 움직여 줘서 상원으로서도 놀랐다.

초반부터 다른 상인들을 운운하며 도발과 블러핑을 섞은 게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오히려 내가 이익을 보는 전속계약인데. 그렇다면 한 술 더 떠볼까?'

"좋습니다. 아 그리고, 계약서 하나 더 쓰시죠."

"예, 무슨?"

"제가 그쪽에 투자를 좀 하고 싶은데요. 투자계약서 있지요?"

"아, 그럼요."

록시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투자계약서 초안을 띄웠다.

* * *

상원은 전속거래계약서와 투자계약서 최종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하시죠."

상원이 록시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하하, 좋습니다! 제 첫 전속 고객이니 통 크게 해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록시가 생각하는 건, 상원이 아닌 상원의 수호신이었다.

부자 중의 상부자, 슈퍼 갑부 수호신과 전속계약에 투자계약이라니!

[상인 <록시>와 수험자 <조상원> 간의 전속거래계약 및 투자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록시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상원의 눈을 보았다.

"응?"

록시가 이상함을 느낀 건 상원의 오른손을 보고나서였다.

"잠깐, 투자자님. 왜 오른손에 아무것도...?"

"없냐고요? 하하, 당연하죠."

상원이 웃으며 말했다.

"수호신이 없는걸요."

"뭐라고?"

록시가 벙찐 얼굴로 상원을 보았다.

"잠깐, 투자자님. 그러면 천 코인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어허, 그건 아실 거 없고요. 계약했으니까 이제 물건부터 좀 봅시다."

"이런 육시럴."

록시가 똥씹은 얼굴로 아이템 창을 열었다.

첫째날 밤에 천코인 씩이나 가진 수험자가 수호신이 없을 줄이야.

그렇다고 위약을 하자니 귀책사유는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고.

첫째 밤부터 빚 져서 위약금 내고 시작하면 당분간은 재기하기 힘들 것이다.

록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상원이 말했다.

"아 카탈로그는 보여주실 필요 없고요. 그거 있지요? <브라이싱크론 지갑>."

상원의 말에 록시의 눈이 두 배가 되었다.

상인 록시와 <전속계약>한 <투자자>만이 살 수 있는 물건이 세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상원이 록시에게 요구한 물건, <브라이싱크론 지갑>이다.

"뭐야, 수호신도 없다면서. 우리 잘나신 고갱님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우리 계약서에 거래 거절 못한다고 돼있을 텐데? 자 빨리 줍시다 이러지 말고."

상원이 웃으며 록시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에이 썅."

록시가 품에서 지갑을 꺼내 상원의 손바닥에 올렸다.

꽤 고급으로 보이는 검은 카드지갑.

"아 그리고 필요한 게 또 있어요."

"뭔데요 고갱님."

록시가 눈으로 욕하며 상원을 쏘아보았다.

상원이 싱글거리며 답했다.

"그것도 있죠? <어린 성성이의 두개골>."

"아 뭐 그거 있긴 있는데. 그건 어디다 쓰시게?"

"다 쓸 데가 있으니까, 파세요. 값은 정확하게 치를 테니까."

"하아, 알겠수다."

[거래 성립, 1,120 코인을 지불합니다.]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록시가 탁자에 <어린 성성이의 두개골>과 회복 물약 10개를 올려두었다.

<어린 성성이의 두개골>은 생김새는 원숭이 두개골이었으나, 이름과는 달리 크기가 거의 돼지 머리통만 했다.

상원이 두개골에 지갑을 갖다 대자, 두개골은 빨려 들어가듯 지갑 속으로 사라졌다.

<브라이싱크론 지갑>, 겉으로 보기엔 그냥 카드 지갑이지만 사실은 아공간(亞空間)으로 통하는 통로인 데다가 다른 기능들도 잇었다..

아공간의 부피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귀물급 중에서도 최상급, 어쩌면 성물급일지도 모른다는 평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지갑에 재료에다가 회복 물약까지 1,120코인.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헐값에 샀다.’

상원이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일곱 별의 왕관>을 얻으려면 가지고 다녀야 할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므로, 브라이싱크론 지갑은 필수였다.

문제는 보통 수험자들이 지갑에 대해 알게 되는 시험 중반이 되면 절대 이 가격에 살수 없다는 것.

이렇게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게 승천 시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원의 특권이었다.

"자, 볼 일은 끝났습니다. 아 그리고 부탁할 게 있는데."

"아 진짜! 뭔데요 또?"

록시가 소리를 질렀다.

"세 번째 시험의 첫 번째 밤이 끝나기 전까지, <늪지 광견의 발톱>이랑 <구렁이 화살촉>을 구해주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상원의 말에 록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야 어려운 건 아닌데, 그건 또 어디다... 됐수다, 선생. 해 뜨면 두 번째 시험 시작될 건데 빨리 어디 가서 잠이나 좀 자쇼."

"아, 저는 갈 데가 있어요."

짜증 섞인 록시의 말에 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어디요?"

록시의 물음에, 상원이 천막 문을 걷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상원의 손끝엔 여기저기 불이 붙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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