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마귀 (1)
수호신을 받을 수 없는 <불신자> 상원이 승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자체로 신격을 담은 칭호 <일곱 별의 왕관>을 얻는 것.
처음 경전에서 일곱 별의 왕관을 보았을 때, 상원은 그 칭호를 얻기 위한 방법을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반드시 얻어야만 했다.
승천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니까.
* * *
천사가 자기 몸을 감싼 날개를 펼쳤다.
짙은 분홍색 피막엔 선홍색 혈관들이 어지러이 오가고 있었다.
황혼에 물들어가는 하늘은 붉었고, 천사의 핏빛 날개는 한층 더 붉게 보였다.
아름다운 나신은 순백색이었다.
이목구비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시체 같은 무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광화문 광장의 남쪽 하늘 전체를 무단 점령한 거체, 그녀가 바로 섭리의 집행자이자 <승천 시험>의 관리자 <사마에트>였다.
새하늘의 옥좌 왼편에 서서 지상에 시험을 내리며 새하늘에 입성할 자들을 가리는 존재.
승천계시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마에트가 강림하면 지상의 존재들은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미쳐 날뛸 것이라고.
그녀의 외형 묘사를 보았을 때, 상원은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강림했을 때 상원은 깨달았다.
승천계시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으악! 아아악!"
"살려주세요! 밟지 마세요!"
누구는 바닥에 엎드려 기도했고, 또 누구는 어린 제 딸을 끌어 안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압사당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날뛰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사마에트는 미쳐 날뛰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나무의 자식들아."
그녀가 입을 떼었다.
말투는 조곤조곤했지만 그 음성은 천둥같았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너희에게 표식을 주나니 이로 인해 너희들이 제 분을 알게 할 것이라."
무슨 소린가?
사람들이 얼빠진 얼굴로 사마에트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곧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어, 으악! 아파!"
"갑자기 뭐야 이게?"
살이 익는 냄새가 났다.
그와 함께 광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왼 손등에 빛나는 표식이 나타났다.
가운데 있는 동그란 점을 두 겹의 원이 감싸고 있는 모양.
표식은 은은한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상원의 손등에도 표식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당황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단지 조금 따끔했을 뿐.
그게 바로 <시험의 표식>이다.
지겹도록 보았던, 승천의 시험에 든 자들의 운명을 옭아매는 표식.
표식이 있는 이상 살아도 산 게 아니다.
표식을 받은 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승천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인장을 받았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첫번째 시험의 대상이 될 것이고.
"뭐지 이거, 어떻게 지울 수는 있나?"
"모르겠어요."
당황한 사람들은 손등을 문질러보기도 했고 손수건으로 닦아보기도 했다.
'소용 없다.'
<시험의 표식>은 죽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한 번 겪은 일인데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군.'
상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
"너희에게 말씀을 내리노라."
사마에트가 말했다.
"그 말씀으로 오를 이와 가라앉을 이를 구분할 것이라. 이 말씀은 나무의 자식들에게 내리는 시험이라."
오를 이는 승천할 사람, 가라앉을 이는 승천하지 못할 사람.
승천 시험의 세계에서 승천 이외의 결론은 죽음밖에 없다.
시험을 통과하면 사는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그것이 승천 시험의 질서.
누군가는 지극히 간단한 것이라 했었다.
그 말을 했던 게 교리 강사였지 아마.
"죽고 사는 데 간단한 게 어딨어."
상원이 이를 갈며 사마에트를 노려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건 착각일까.
그녀는 오른손에 길이가 자기 상체만 한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천천히, 그녀가 두루마리를 폈다.
그 광경을 보며 상원은 새하늘교의 경전인 <승천계시록>의 문장을 떠올렸다.
[천사가 인을 떼고 첫 번째 두루마리를 펴며 가라사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벌할 마귀를 내리노라."
말을 마치고 그녀가 두루마리를 말았다.
그러자 상원의 눈앞에 파란색 창이 나타났다.
승천 시험 특유의 <시스템 메시지>였다.
[첫 번째 시험 <마귀>를 시작합니다.]
[전 인류의 구 할이 죽을 때까지 생존하십시오.]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기기기기긱!
발정난 원숭이들이 내는 것 같은 소리.
기분나쁘고 공포스런 소리였다.
'시작됐다!'
"으악!"
목청을 찢는 듯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사람들이 비명이 난 쪽을 돌아보았다.
비명을 지르는 중년 남성, 무언가 등에 달라붙어 그의 어깻죽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어린아이만 한 체구, 분홍 피부에 마른 몸.
말라붙은 몸뚱아리 위에는 커다랗고 맨들거리는 머리통이 붙어 있었다.
이목구비 중 머리통에 붙어있는 건 두 개의 콧구멍과 커다란 귀 그리고 귀까지 찢어진 입뿐이었다.
입에는 상어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세 개 뿐인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 있었다.
등에는 전혀 나는 용도로는 쓰지 못할 것 같은 작은 날개가 두 장 붙어 있었다.
새하늘에 드는 첫 번째 시험에 나타나 사람들을 덮치는 마귀.
지옥에 사는 1급 마물 <새타니>였다.
"세상에, 저게 뭐야?"
"도망치자, 빨리."
"어...? 저기도 있어요!"
겁에 질린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소용 없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백 수천의 새타니 떼가 사람들을 덮치고 있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했다.
그 가운데서 상원만이 침착했다.
끼기기긱!
새타니 하나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깡총거리며 뛰어왔다.
새타니의 머리통에 상원의 주먹이 박혔다.
퍽!
수박처럼 새타니의 머리통이 터졌다.
'오호!'
엄청난 힘이었다.
상원은 새타니의 피로 물든 주먹을 내려다 보았다.
새타니가 아무리 하급 마물이라 해도 맨주먹으로 그 머리통을 박살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능력치 합계 100은 되겠다!'
회귀 전에는 스무 번째 시험에서 이정도였던가.
인세(人世)의 기준으론 초인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준.
[코인 5를 얻었습니다.]
상원이 새 몸에 놀라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음성이 들렸다.
'<일곱 별의 왕좌>를 얻으려면... 일단 여기서 코인을 최대한 모아야 된다.'
그때부터 미친 듯한 새타니 사냥이 시작됐다.
[코인 5를 얻었습니다.]
[코인 5를 얻었습니다.]
[코인 5를 얻었습니다.]
코인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조금 더... 조금 더!’
비명과 피로 가득찬 광화문 광장, 그 안에서 상원만이 홀로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사마에트는 차가운 눈길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첫 시험에 대해, <승천계시록>엔 이렇게 적혀 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벌할 마귀를 내리노라 그러자 마귀들이 구할을 데려가더라.]
승천 게임의 참가자는 모든 인간이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1할이 살아남았을 때, 시험은 끝났다.
"첫번째 시험이 끝났노라."
사마에트는 우레 같은 음성으로 첫 번째 시험이 끝났음을 선포하고, 제 머리 위에 있는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새타니들이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첫 번째 시험 <마귀>를 통과했습니다.]
달이 휘영청했다.
지상에 빛이 사라져서일까, 밤하늘엔 유독 별이 총총했다.
아름다운 달빛과 별빛이, 긴 밤을 견뎌낸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쿨럭, 쿨럭. 으으, 살려줘."
기침할 때마다 피를 쏟아내는 청년.
"끄으으윽."
왼팔이 잘려나간 어깨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여자.
피칠갑이 된 광화문 광장에 듬성 듬성 남은 생존자들.
그 중 심신이 멀쩡한 이는 오직 상원 뿐이었다.
'이제 나타날 때가 됐는데.'
상원은 죽은 사람의 옷으로 자기 피를 닦으며 와야 할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각 다각
어디선가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지, 사람들은 한껏 경계하며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저 편에서 그림자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껑충한 덩치.
그림자가 좀 더 다가왔고, 마침내 달빛이 그림자의 정체를 비추었다.
"어, 낙타다!"
꼬마가 소리쳤다.
낙타 위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푸르르륵-
그는 세종대왕 동상 옆에 낙타를 세워 놓고, 내려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어디서 났을까, 마치 처음부터 손에 들고 있었다는 듯 그가 램프에 불을 붙였다.
램프로부터 강렬한 빛이 뻗어나왔다.
지극히 밝았지만 눈이 부시진 않았다.
순식간에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낙타 타고 온 이의 외견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는 키가 큰 중동 남성이었다.
흑발에 벽안(碧眼), 까무잡잡한 얼굴은 사막의 모래폭풍을 버텨 온 조각상처럼 단단해 보였다.
"아아, 안녕하시오들."
하얀 터번에 방풍복 차림, 중동 지방 여행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남자는 놀랍게도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첫 번째 시험을 이겨내느라 수고했습니다."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내 이름은 <록시>, <성전>의 상인입니다."
성전의 상인 록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달리 상원은 그가 얼마나 냉혹하고 가차없는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예수는 성전의 장사치들을 모두 쫓아버렸다던데, 새하늘의 시험대에선 저런 장사치들이 버젓이 돌아다닌단 말이야.'
록시는 등불을 내려놓고 청년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아프시죠? 제가 싹 고쳐드릴까요?"
청년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 코인, 오 코인만 내시오."
록시가 그에게 손가락 다섯개를 펴보이며 말했다.
"코인... 요?"
"코인 말입니다 코인. 코인 없습니까?"
청년이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 안타깝게 됐구려. 코인이 생기면 보십시다. 그때까지 선생이 이 세상 사람일지는 모르겠수만."
청년이 떨리는 손을 록시에게 내밀었으나, 록시는 매몰차게 돌아서버렸다.
그때, 젊은 남자가 달려와 록시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 정말입니까? 코인이면 돈... 돈이지요?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어요?"
"그렇고 말고요. 멀쩡하게 고쳐드리지요."
그러자 남자가 제 목걸이를 풀어 록시의 손에 쥐어주며, 손가락을 펴 광장 한 쪽을 가리켰다.
젊은 여자가 싸늘하게 죽은 아이의 시신을 안고 히죽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순금입니다 순금. 우리 은수 엄마, 은수 엄마좀 고쳐줘요. 할 수 있지요? 네?"
남자의 말에, 록시가 비죽 웃었다.
"할 수야 있지요. 정신 나간 거 고치는 건 좀 비싸긴 하지만. 그런데요 선생님, 이거 말고."
목걸이가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 사람들 참, 코인 있을 거 아닙니까. 선생님, 이런 물건은 새하늘까지 가는 길에선 쓸모가 없어요. 오로지 코인, 진짜 코인만이 필요합니다."
"아니, 진짜 코인이라니요! 무슨 소립니까 그게."
남자가 주저앉아 통곡했다.
"저, 저요! 저한테 코인이 있어요."
상원이 외쳤다.
남자를 내버려두고, 록시가 상원에게 다가왔다.
"하하, 선생님. 선생님은 뭘 사고 싶으신가요? 어디 봅시다."
록시가 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원은 표식이 있는 왼손을 내밀어 록시의 손을 잡았다.
상원의 표식이 빛났다.
"어디 우리 손님은 코인이 얼마나 있나 볼... 응?"
튀어나올 듯, 록시가 눈을 크게 떴다.
"처... 천백 코...."
덜덜 떨리는 손, 흔들리는 눈동자.
"내가 <레힌도프>나 <골리야스>랑 거래 트는 꼴 보기 싫거든 조용히 하쇼."
조용한 상원의 말에 록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