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감이란 게 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필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발휘되는 ‘감’.
언유는 신발을 벗으면서 집 안에 맴도는 불편한 공기를 읽었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 같은, 색이 있다면 검은색일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형은 다정한 목소리를 냈지만 언유는 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습관대로 옷을 벗으려고 반팔 티셔츠를 잡는데, 형이 손짓을 했다.
“이리로 와봐.”
도로 손을 내리고 형에게로 갔다. 소파에 형이 앉는 걸 보고 옆에 따라 앉았다. 가죽의 시린 감촉이 오늘따라 거슬렸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가올 말을 기다리는데, 형이 제 허벅지 위에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탄탄한 다리 위에 앉아 형의 상반신에 몸을 기대자 형이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언유 사진.”
형이 내민 사진은 하얗고 까맣고 회색빛만 존재했다. 아무리 봐도 제 사진이라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사람 사진 같지도 않았다. 이게 뭐지. 형이 장난을 칠 리는 없는데……. 종잡을 수 없는 와중에, 괜히 찔린 탓인지 언유는 제일 먼저 혹시 형에게 들킨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곧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현재가 엠티 장소까지 데려다줘서 예정대로 기사 아저씨 차를 타고 왔다. 아무리 형이라도 모를 것이다. 몰라야 한다. 팔 안쪽에 나 있는 현재의 잇자국을 가리려고 제 몸통에 팔을 바짝 붙이며 언유가 눈치를 봤다.
“이게 저예요……?”
“응.”
형이 언유의 허리를 껴안고 제 쪽으로 바짝 당기며 덧붙였다.
“정확히는, 언유 배 안 사진.”
“배요?”
형이 말하는 배가, 이 배가 맞나? 언유는 제 배를 힐끔 쳐다봤다.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더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형이 마음이 급해져서.”
알쏭달쏭한 말에 언유는 함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표면이 매끈한 사진을 괜스레 엄지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는데, 형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난소, 이게 자궁이야. 언유 배 안에 있는 걸 찍은 거야.”
“……네?”
아무리 언유라도 난소와 자궁이 뭔지는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제 몸에 있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황당했지만, 형이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걸 언유는 잘 알았다.
“제, 제 거요? 언제부터……?”
“태어날 때부터 있었지. 제 기능은 못 했지만.”
“네……?”
“이젠 형이 고쳐놨어.”
입술을 떨어대기까지 하며 말을 더듬는 언유가 귀여운지 형이 뺨에 입을 맞췄다.
“언유야, 약 잘 챙겨 먹었지?”
“…….”
언유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여태까지 맞았던 주사, 꼬박꼬박 챙겨 먹었던 약. 기계로 하염없이 배 안을 들여다보던 형. 언유의 눈 아래가 꺼뭇해졌다. 입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달싹거리던 언유가 물었다.
“언,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게 중요하니?”
“…….”
그 때, 호텔 복도에 서서 형에게 걸었던 전화가 생각났다.
― 언유가 배에 아무 새끼 씨나 받다가, 개새끼라도 임신하면 어떡해.
언유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언유도 자궁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생식기관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언유는 방금까지도 현재와 호텔에서 뒹굴다 왔다. 배 안에다 좆물을 받고 또 받았다. 넘쳐서 구멍 밖으로 밀려 나올 때까지.
절로 침이 꿀꺽, 목 뒤로 넘어갔다. 입술뿐만 아니라 이제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집은 분명 춥지 않은데, 적당히 시원하기만 한데 오한이 든 사람처럼 언유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런 언유를 제 품에다 더욱 가두며 형이 중얼거렸다.
“뭐가 겁이 나서 이렇게 떨까…….”
부드러운 말투 안에 든 날카로운 비난을 읽은 언유가 더욱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 형이 말했다.
“언유야, 이번 학기만 다니고 학교 그만두자.”
권유도 제안도 아닌 명령이었다. 과도하게 빨리 진행되는 변화에 언유의 머리가 멍해졌다. 여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저번에도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니 바로 보내준 형이 아니던가. 언유가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지만, 형은 번복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3년이나 다녔으면, 이제 다닐 만큼 다녔지 않아?”
“그, 그래도, 이제 1년밖에 안 남았는데…….”
“언유야.”
형이 손을 배 위에다 올렸다. 커다란 손은 배 전체를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대로 피부와 근육을 뚫고 손가락을 뻗어 내장을 손에 쥘 것만 같은 느낌에, 언유는 깜짝 놀라며 허벅지를 튕겼다. 형이 진정하라는 듯 배를 느리게 쓸었다. 피부의 세포를 하나하나 다 쓸어보겠다는 듯이, 집요하리만큼 느린 동작이었다.
“형도 많이 참았는데.”
“…….”
정말로 심장이 철렁했다. 부르르 떨리는 것처럼 심장이 요동을 쳤다. 이어 나온 말에 언유는 더욱이 사색이 됐다.
“이미 많이 먹었지 않아?”
“…….”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잠시 세상이 일시 정지 되고, 그 안에 존재하는 건 저와 형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형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언유는 바닥만 내려다봤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굳어있는 언유의 배를 여전히 매만지며 형이 말했다.
“그나저나, 만약에 언유가 개새끼 씨라도 임신하면 어떡해야 할까…….”
나긋나긋한 어조였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전화로 들었던 형의 경고를 다시금 떠올린 언유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그땐 형도 못 참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언유도 알잖아. 형은 언유 못 죽이는 거.”
“…….”
시야가 삽시간에 붉어졌다. 언유가 경기를 일으키듯 형을 불렀다.
“혀, 형. 형……!”
“그래, 언유야.”
살벌한 마지막 말에 언유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방울방울 액체가 회색빛이 된 뺨을 타고 내렸다. 무한한 상상력은 언유를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개로 끝나지 않을 거다. 더 무시무시한 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건, 아마 언유가 아니라…….
언유는 순식간에 중학교 교실 안에 앉아있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듣기 싫어도 귀 안을 파고들었다. 사고가 났대, 그런데 그게 쟤한테 말 걸어서 그런 거래. 쟤가 왜? 몰라, 병문안 가니까 그러던데. 헛소리 아냐? 나야 모르지…….
집요하게 말을 걸어대던 반 아이가 지난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사고라고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 형은 그게 사고가 아니라고 했다. 언유 때문이 맞다고 했다.
언유가 고개를 마구 저으며 말했다.
“형, 제가 잘못했, 흐읍,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형은 뭘 잘못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당연히 잘못했다는 듯한 말이었다. 그저 뒤에 나올 말만 묻는 형에게, 언유가 입만 뻐끔거렸다. 걔는, 걔는 가만 놔두시면 좋겠어요……. 내뱉지 못한 말은 결국 몸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말을 했을 때 형의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 언유는 짐작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 보고 산 사람인데도, 언유는 형이 어려웠다. 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매듭지어진 실처럼 말이다. 형이 재촉해 왔어도 언유는 결국 저 말을 하지 못했다. 뺨을 타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으며 형이 조곤조곤 말을 뱉었다.
“형이 언유랑 살려고 새로 집도 구했어. 언유도 맘에 들 거야. 다음 달에 이사 가자.”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처럼 지낼 수 없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언유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걔는 안 건드렸으면 좋겠어요.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이건 언유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벌을 받을까 봐 무서워한 적은 있어도, 누군가 자신 때문에 다칠까 봐 겁이 난 적은 없었다.
분명 협박으로 시작한 관계였다. 형에게 벌을 받은 것도 어떻게 보면 현재 탓이 컸다. 모든 원흉은 현재였다. 그런데도, 왜? 그저 아는 사람이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가? 도통 알 수 없다.
급기야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미친 건가? 머리가 빙빙 돌았다. 현재와 함께 있었더니 정말로 저가 이상해졌다. 언유는 토할 것처럼 울며, 목이 고장 난 사람처럼 고개만 자꾸 끄덕였다.
* * *
“오늘은 언유 학교 안 갈래요…….”
현관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형에게 언유가 말했다. 그런 언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형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유 하고 싶은 대로 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 형은 내심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번 학기까지는 다녀도 좋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언유는 멍한 눈을 하고 소파 위에 풀썩, 몸을 뉘었다. 간밤에는 자꾸 잠을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저를 단단히 껴안은 형의 팔 안에서 뜬 눈으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기나긴 사고의 끝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깨달음에 닿자 온몸이 축 처졌다. 이제 언유에게 선택지라곤 없었다. 무슨 궁리를 하든 쓸데없었다. 학교도 더 못 다닐 거고, 형과 이사한 집에서 살게 될 거다. 그게 다인데, 딱 하나 언유 스스로가 할 일이 남아있었다.
언유는 거실을 초조하게 왔다갔다거리다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냉장고를 한 번 열고는 과장되게 안을 살폈다. 이어서 옷을 입고, 지갑을 챙겼다. 마치 누군가에게 간단한 걸 사러 슈퍼에 간다고 온몸으로 알리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형도 이 정도는 봐줄 테다. 슈퍼 정도는 예전에도 혼자 다녀온 적이 있기도 했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계단을 냅다 뛰었다. 대로변에서 택시를 타고 언유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혹시 현재 못 봤어? 채현재?”
“네?”
단과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무나 붙잡고 묻자 학생이 인상을 찌푸린다. 모르는 모양이었다. 빠르게 털어내고 다음 사람을 붙잡았다. 얼마나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맨정신으로 말을 거는 건지 감회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
곧 언유는 이래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걔가 그러니까, 1학년이니까, 내가 1학년 때 어느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더라……? 기억을 더듬은 언유는 거기 있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일단 303호 강의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언유는 현재의 시간표도 알지 못했다.
“채현재!”
강의실 앞문을 벌컥 열자 앉아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마침 수업 시작 전이었는데, 다행이라 생각할 만한 정신이 언유에겐 없었다. 빠르게 강의실 안을 훑다, 창가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다, 다행이다……. 속으로 탄성을 내지르며 언유가 현재에게로 뛰어갔다. 얼떨떨한 표정을 한 현재가 언유의 어깨를 잡았다.
“뭐예요, 무슨 일 있어요? 뛰어왔어요? 땀나잖아.”
“그게, 그게……. 잠깐만 나와봐.”
도저히 안에서 할 얘기가 아니었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돼 언유는 현재를 밖으로 불렀다. 하지만 복도에서도 입을 뗐다가 다물기만 반복하자, 현재는 언유를 자기 차로 데려갔다.
“여기선 말할 수 있죠?”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메려다 도로 푸는 언유를 보고 현재는 웃을 뻔했다. 혼자 잔뜩 심각한 얼굴로 저렇게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니 웃음이 샜다.
언유가 마른 입술을, 마찬가지로 바짝 마른 혀로 축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설명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다소 어수선했다. 내 몸에, 제대로 된 기관은 아닌데, 그런데 처음부터 있기는 했는데, 아무튼 형이 약을 먹여서 억지로 만들었어. 어쩌면, 어쩌면 임신했을지도 몰라……. 뭐가 그렇게 급한지 말하는 속도가 빨랐고 자주 말을 더듬었다.
사실 현재는 이 이야기가 그다지 놀랍지 않았기에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아예 처음 듣는 거라면 모를까. 하지만 급기야 언유가 울음을 터뜨렸을 땐 현재도 놀라 어버버거릴 수밖에 없었다.
“흑, 그래서, 그렇게 됐어. 흐읍. 나도 몰라. 이제.”
“왜 울고 그래요.”
현재가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훔쳤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눈물 따위에나 신경 쓰는 현재가 짜증 나 언유는 그 손을 슬며시 밀었다.
“내 말 제대로 들었어?”
“네. 그런데 난 별로 나쁘지 않은데.”
“뭐?”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었다. 언유가 어이가 없어 눈을 찌푸리자, 눈물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현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된 거면, 어쩌겠어요. 형 버리고 나랑 살면 되지. 하긴 그쪽 형보다야 내 좆물을 더 많이 먹었을 테니까 내가 더 가능성 크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농담할 때야?”
“농담 같아요?”
아까도 느꼈지만 아무래도 현재는 눈치가 제법 없는 듯했다. 언유는 부랴부랴 달려온 저가 약간 불쌍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 싶어, 자초지종을 설명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조심해. 형이 많이 화났어. 되게 많이. 널 가만 안 둘지도 몰라…….”
이렇게 말해봤자 뭘 조심해야 하냐고 묻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언유는 한숨을 포르르 내쉬고 차 문을 열려고 손을 얹었다. 손목만 잡히지 않았어도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왔을 거다.
“잠깐만, 이거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현재가 낯을 잔뜩 찌푸렸다. 음지에 주차된 덕분에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차 안은 그늘져있었다. 그 탓에 현재의 얼굴 반절에 옅은 음영이 자리했다.
“지금 형한테 갈 거라고요?”
당연한 걸 묻는 바람에 언유는 멀뚱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가 찬다는 듯 현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짓을 당하고도 그 형이란 새끼한테 가겠다고?”
“…….”
“선배는 화도 안 나요?”
언유는 현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언유가 답답한지 현재는 날숨을 무겁게 쉬었다. 어쩐지 허탈해 보이기도 했다. 언유는 그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 때, 현재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벨트 매요.”
“뭐? 나 집에 갈 거라니까.”
“벨트 매요.”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현재는 그대로 차 문을 잠갔다. 곧이어 차를 출발시켰다. 겁도 없이 엑셀을 마구 밟더니, 차가 빽빽하게 밀집된 주차장을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언유가 뭐라 항의할 새도 없이 차는 학교를 벗어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너 어디 가는 거야, 내려달라니까?”
“어쨌든 선배의 정체성은 남자인 거잖아요.”
왜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었다. 언유는 외형상 남자였고, 스스로를 남자라고 여기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럼 선배네 형 새끼가 잘못한 거잖아.”
호칭이 형 새끼로 너무 자연스럽게 바뀌어 언유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보다는 그 내용이 거슬렸다. 형이 잘못한 거라고? 형은 언유에게 있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엔 그보다 위에 위치해 있는 사람이 형이었다. 현재가 운전을 하면서도 언유를 힐끔 쳐다보며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결국엔 이런 대답밖에 내놓지 못했다. 현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언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산 지 스무 해가 넘었다. 현재가 자유분방하게 살아오는 동안 언유는 구속된 삶을 살았다.
현재가 한숨을 쉬었다. 무거운 날숨에 주변 공기까지 흔들리는 듯한 환상이 일었다.
“내가, 선배를.”
현재가 말하다 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든 말든 언유는 이 차가 점점 익숙한 길을 타고 가는 것 같아 살짝 난감해진 상태여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
그래서 살면서 처음으로 고백을 받은 순간에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의 패기가 담긴 고백을 받고도 언유는 멀뚱히 쳐다만 봤다.
“이유는 묻지 마요. 나도 모르겠으니까. 굳이 궁금하면, 몸정이라고 생각하든지.”
현재는 뭐가 그렇게 답답한지 또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랑 형 중에 한 사람만 선택하라고 하면 누굴 선택할 거예요? 아, 됐어. 말하지 마요. 됐다고.”
“아까부터 네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어…….”
저가 묻고는 도리어 저가 성질이었다. 현재가 핸들을 거칠게 꺾으며 익숙한 지하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리고 여전히 양손으로 핸들을 꽉 잡은 채로 언유에게 물었다.
“내가 봤을 땐 좆나 쓰레기 같은 새끼가 너네 형인데, 너는 아직도 그렇게 좋아? 걔보단 내가 낫지 않아?”
“…….”
아까부터 언유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현재는 왜 자꾸 저런 걸 물어보는 걸까. 좋아한다는 말보다도, 형에 관한 이야기를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었다.
형이 현재를 어떻게 할까 봐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혼날 각오를 하고 학교에 왔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원수 같은 채현재지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막상 오니까 신발 안에 들어간 모래처럼 형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자꾸 안절부절못하며 돌아가고 싶어졌다. 지금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복잡한데, 현재는 저더러 한 가지를 택하라고 성화였다.
“……그, 그냥 나는 둘 다, 둘 다 좋아.”
어렵사리 입을 뗐을 때, 목소리는 잔뜩 떨리고 있었다. 이어서 결국 눈물이 터졌다. 아까 울던 게 잠시 멈췄다가 지금 다시 시작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우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너도 형도, 흑, 나는 다.”
“…….”
“그냥 나는, 둘이 이러는 것도 싫어. 흑, 흐윽, 이렇게 된 걸 어떡해. 형이랑 있으면 네 생각이 나는데, 흐, 끕! 너랑 있으면 형 생각이, 난단 말이야…….”
“…….”
이번엔 눈물을 닦아줄 생각도 못 하고 현재는 언유를 바라보기만 했다.
현재의 집은 언유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현재는 아직도 어깨를 떨며 훌쩍이는 언유에게 물잔을 건넸다.
“마셔요.”
“응…….”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현재는 바 형태의 식탁에 팔꿈치를 기댔다. 눈높이를 얼추 맞춘 뒤 언유를 가만 관찰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차에서 한참 울던 언유는,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쓸 기운이 사라졌는지 이끄는 대로 제집에 올라왔다.
제 얼굴의 절반만 한 컵을 들고 열심히 마시는 사람을 보며 현재는 상념에 잠겼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처음 술자리에서 봤을 때부터 신경 쓰였다. 그래서 굳이 제집에 데려가서 재우려고 했던 거고. 거기서 언유가 저를 형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을까? 우리는 첫 단추를 잘못 꿰운 걸까?
그러나 현재는 곧 부정했다. 형 새끼한테 미친년인데 보편적인 단계를 밟고 친해질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보지를 달고 있는 이언유를 협박해 다리 벌리게 하는 게 성격 급한 저에게 어울리는 시작이다. 현재는 스스로의 쓰레기력(力)을 인정했다.
오히려 시인하니 홀가분해졌다. 현재 또한 누구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는 게 나은 방식일지 계속 고민을 했었다. 만난 기간을 치자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채현재는 이언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아까 저가 자조적으로 말한 것처럼 몸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언유가 형 새끼만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걸 알아 망설였는데, 방금 대화로 제 지분이 꽤 커진 걸 깨달았다.
현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둘 다 좋다는 말을 하며 엉엉 우는 걸 보고 처음에는 당황스럽다가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 걸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 사이에 머리가 돌았나.
오래 산 건 아니지만, 현재는 여태 남한테 고백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저가 난생처음 한 고백에 저따위 대답이 날아왔는데도 기분이 좋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워낙에 형, 형거리며 무조건 현재보다 형을 우선시하던 언유다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걸 차였다고 봐야 해, 받아줬다고 봐야 해. 이런 자신에게 자존심이 상해, 현재는 다소 못마땅한 얼굴로 언유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집에 가지 말고 여기 있어요.”
“왜……? 나 집에 가야 해.”
컵을 얼마나 세게 입에 대고 마셨는지 입술 가장자리가 새빨개져 있다. 씨발, 꼴리게. 현재는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가까이로 다가갔다. 뭐만 보고도 세울 나이라고 하더니, 저가 딱 그 꼴이었다.
현재는 언유가 손에 쥐고 있는 컵을 뺏어선 쳐다보지도 않고 옆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리곤 언유의 가는 허리를 한 팔로 감싸고 다리 사이에다 제 오른쪽 허벅지를 넣었다. 뭉근하게 다리로 고간을 부비며 귓볼을 잘근잘근 씹었다. 다른 한 손으론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꽉 쥐었다.
“너 나 보러 온 거 네 형 귀에 안 들어갔을 것 같아?”
“으흥, 읏, 그, 그럼 형이 여기, 으으응…… 찾으러 오면 어떡해. 아, 잠깐…….”
“오면 나도 드디어 얼굴 한번 볼 수 있겠네.”
“흐으응……! 네, 네가 왜 형을, 아, 읏!”
말랑한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아래로 들어갔다. 바지 너머로 성기가 있는 부분을 꾸욱 눌러대기 시작했다. 읏! 아, 잠깐만……! 속옷을 입지 않아 바지의 면이 여린 살을 그대로 쓸며 자꾸 자극하자, 금세 애액으로 얇은 바지가 축축해졌다.
잔뜩 습해진 입구를 현재는 계속 눌렀다가 매만졌다가를 반복했다. 클리토리스까지 집요하게 괴롭히는 바람에 언유가 몸을 빼려고 했지만 현재가 꽉 안고 있는 바람에 그도 여의치 않았다. 자꾸 보지 안이 간지러워 언유는 다리를 모으려고 했으나, 그건 현재의 허벅지를 누르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갑자기 궁금해서 그런데, 형이랑 있을 때 내 얘기 한 적 있어요?”
“아, 무슨, 네 얘길, 왜 ……으으응, 읏. 앙!”
“왜, 하다가 잘못해서 내 이름 부른다든지.”
“없, 없어. 읏, 아응!”
반쯤 발기한 자지를 언유의 샅에다 문지르며 현재는 언유와 코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에 댔다. 슬며시 느려지는 손에, 언유는 방금까지의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풀린 눈을 하고 현재를 바라봤다. 하려던 말은 금세 잊은 채였다.
당장 아래에다 자지를 넣어주면 좋겠다. 잔뜩 애액으로 미끌거리는 입구에 부푼 귀두가 닿자마자 아랫배가 저릿할 것이다. 저가 느끼는 지점을 마구 쑤셔주면, 안이 자꾸 수축해 납작한 배가 자지로 볼록해지겠지. 안으로 더 깊게 빨아들이면, 큰 성기에 입구가 찢어질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안으로 집어넣으면……. 흥분에 할딱이는 숨이 현재의 얼굴에까지 닿았다. 그 생각을 읽은 듯이 현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내 자지만 좋죠, 선배는?”
“…….”
“씨발, 내가 할 말은 아니네.”
괜히 찔린 현재가 웃음기를 금방 지우더니 중얼거렸다. 어쩐지 흥이 식었다. 현재가 슬쩍 제 다리를 떼고는 말했다. 갑자기 빠져나간 다리에 기댈 곳을 잃은 언유가 휘청거리자 어깨를 잡아줬다.
“어쨌든, 당분간 여기 있어요. 그것도 걱정하지 말고.”
현재의 말에 언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현재는 다시금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긴, 상식이 없어도 많이 없어 보이는 이언유라면 모르고도 남는다. 현재는 코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임신 안 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요.”
“네가 어떻게 알아…….”
언유가 울상을 지었다. 현재는 순식간에 난감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월경과 배란과……. 순식간에 보건 수업에 들어온 양호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 현재는 곧 침착하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선배, 생리해요?”
“아, 아니. 안 하는데.”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붕붕 젓는 언유에게 ‘그러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고 현재가 안심시켰다. 언유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반복하는 말에 안도가 되긴 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그런데 나 집에는 정말 가야 해. 형 무섭단 말이야.”
“선배, 만세.”
“응?”
현재가 다짜고짜 만세를 시켰다. 언유가 어리둥절해하며 두 팔을 번쩍 올리자, 어린아이를 목욕시키기 전에 옷을 벗기듯 현재가 티셔츠를 홀라당 벗겨버렸다. 깜짝 놀란 언유가 항의하기도 전에 현재는 맨몸을 번쩍 안아 들고는 침실로 갔다.
그대로 침대에 눕히더니 바지까지 빠르게 벗긴다. 그러자 드러난 다리 사이에 애액이 흥건했다. ‘난 선배가 잘 젖어서 좋더라.’ 즐겁게 말하며 현재는 티셔츠와 바지를 챙겨 어디론가 향했다.
“어, 어디 가? 내 옷 줘. 현재야!”
벌거벗은 채로 현재를 쫓아가며 언유가 외쳤다.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저번에 주차장에서도 그러더니, 옷을 훔쳐 가는 게 취미인 듯했다.
성큼성큼 걸어 향한 곳은 욕실이었다. 왜 여기로 왔는지 언유가 궁금해하기도 전에, 현재가 물을 틀더니 거기다 옷을 담가버렸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옷을 바닥으로 누르고 몇 초가 지나자 얇은 여름옷이 순식간에 젖어버렸다. 언유가 경악했다.
“이제 집에 못 가겠네요. 굳이 가고 싶으면 다 벗고 나가든가.”
“이러, 이러는 게 어딨어……. 그럼 네 옷이라도 줘.”
“줄 것 같아요?”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현재가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 언유는 가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아까 차 안에서 현재가 그랬던 것처럼.
* * *
언유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요 며칠간 저에게 일어난 일을 되짚어봤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언유는 현재네 집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현재가 딱히 문에다 어떤 장치를 한 건 아닌데, 다만 옷이 있는 방은 무조건 잠그고 다녔다. 언유가 입고 온 옷은 어디다 버린 건지 증발해 버렸다.
그런 용의주도함 덕분에 언유는 요 며칠 내내 알몸으로 지내야 했고, 집 밖에 나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어제는 너무 마음이 급해 옆에서 자고 있는 현재의 잠옷 바지라도 빼앗아 입으려고 했지만, 저를 꽁꽁 껴안고 있는 팔이 도무지 떨어지질 않아 실패했다.
어차피 집에서의 습관이 있어 알몸으로 생활하는 건 불편하지 않았지만 형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한 풍선을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게다가 현재는 은근히 집에 늦게 들어왔다. 행동도 평소와는 좀 달랐다. 들어왔다가도 바로 나갔고, 집에 와서도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잠시만 방심하면 몸을 지분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집에 보내 달라는 말을 현재가 무시하는 거였지만.
그렇게 4일이 지났다. 한시라도 빨리 가 봐야 하는데, 이러다간 집이고 뭐고 경찰서부터 끌려가게 생겼다. 아무리 언유라도 밖에서 옷을 벗고 다니면 신고를 먹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언유는 눈꼬리를 잔뜩 내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목 안에서 저절로 낑낑거리는 앓는 소리가 났다. 답답한 듯 엉덩이를 몇 번 들썩이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렇게 힘없이 늘어져 한쪽 뺨을 시트에 대고 있을 때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언유는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현재야!”
언유는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가,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것 같아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졌다. 애써 민망함을 떨쳐내며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현재의 앞에 섰다. 오늘은, 지금은 꼭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야지. 언유는 속으로 포부를 다짐했다.
그런 언유가 저를 마중 나왔다고 생각한 현재가 활짝 웃으며 언유를 껴안았다. 익숙하게 허리를 감싸고, 입술을 댔다. 아랫입술을 혀로 간지럽히다 장난스럽게 힘주어 빨았다. 읏, 응……. 언유가 작게 앓는 소리를 내자 이번엔 달래듯이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입 안쪽의 여린 살을 혀가 훑었다. 자그마한 혀에다 혓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다 힘주어 빨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언유는 고개를 힘껏 틀어 혀가 안으로 더 잘 들어오게끔 했다.
찹찹하는 요란한 소음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잘착잘착 젖은 살들이 맞닿으며 내는 소리가 요란했다. 실컷 먹을 만큼 먹고 나서야 현재는 입술을 뗐다. 그리고 익숙하게 조금씩 아래로 향했다. 입술 끝에서 턱선을 따라가서, 귀 뒤부터 목을 타고 가볍게 입 맞추며 내려갔다. 현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언유가 말했다.
“응, 아으, 읏, 잠깐만. 나 할 얘기 있단, 하앙, 아…….”
“말해요.”
젖꼭지를 무느라 불분명해진 발음으로 현재가 말했다. 유두는 하도 물고 빨아 빨갛게 물이 올라 탱탱해졌다. 알갱이를 현재가 입 안에다 넣고 혀로 살살 굴렸다. 살갗이 조금 까져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유두는 입 안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좋다고 아우성이었다. 가슴에서부터 찌릿찌릿한 감각이 정수리까지 퍼졌다.
“하앙, 앙. 읏……! 아앙! 잠, 잠깐만. 좀……!”
현재는 눈동자만 올려 언유를 힐끔 쳐다볼 뿐, 제 할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아래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언유가 현재의 어깨를 거세게 밀었다. 이러다간 또 몸을 섞게 되고, 할 말을 잊게 될 거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현재는 결국 언유가 퍽, 퍽, 몇 번 치기까지 하자 쭙, 하는 외설스러운 소리를 일부러 내며 입을 뗐다. 아릿한 젖꼭지를 괜히 한 번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언유가 말했다.
“말을 하면 좀, 들어. 나 오늘은 꼭 집에 갈 거야.”
“또 그 소리네.”
현재가 지겹다는 표정을 했다. 어쩐지 언유는 그 표정에 기가 살짝 죽었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내어 다시 말했다.
“이게 벌써 며칠 째야, 형 정말 화났을 거야.”
“…….”
“나 형 보고 싶어…….”
급기야 언유는 훌쩍였다. 코끝이 시큰했다. 형한테 혼날까 봐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보고 싶기도 했다. 어떤 감정이 우선인지 모르지만 말하다 보니 괜히 서러웠다. 언유가 입에다 꾹 힘을 주고 울먹이자 현재의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현재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 시작은 더 예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강제로 휴대폰에다 대고 신음을 들려주게 했었고, 그 결과 한동안 언유를 보지 못했던 날들로.
형과 보통 사이가 아닐 것 같았지만, 어차피 애인도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까지 구속하는 건데. 이언유는 그걸 왜 다 들어주는 거고. 알 듯 말 듯한 둘의 관계에 현재는 뒷조사를 강행했었다. 이런 데 쓰라고 부모님이 준 돈이 아닌 걸 알지만 부잣집 막내아들은 정당화에 재능이 있었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투덜거리며 건네받은 서류를 봤을 때, 둘은 같은 호적에 올라가 있었다. 거기에 놀라기도 잠깐, 형이 대외적으로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현재는 또 한 번 놀랐다. 이상한 싸이코 새끼 주제에. 속으로 깎아내리며 다시 조사를 의뢰했다. 제약회사라면 리베이트 문제 정도는 있겠지, 싶어서였다.
집에 있으면 이따금씩 귀에 들리는 이야기였다. 요즘엔 병원 내부 수리를 해준다든가, 인테리어를 새로 갈아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방법이 교묘해졌지만, 캐다 보면 티가 나는 것도 분명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회사라면 분명 뭔가 있고도 남았다.
하지만 정작 손에 쥐어진 정보는 아예 다른 이야기였다. 그 제약회사가 감추고 있던 것은 비밀스러운 실험이었다. 20년도 더 전에 한 아이를 입양해, 그 아이를 대상으로 시행했던 실험.
실험의 주제는 이랬다. 두 개의 성기를 가진 아이는 임신시킬 능력이 있고, 임신할 능력이 있는가? 진행된 내용을 보자면 후자에 치중된 실험이었다. 대상자의 나이가 너무 어려 몇 년 하다 중단한 모양이지만 꽤나 체계적이었고, 성인이 되고 난 후의 계획까지 있었다. 보나마나 이게 이언유였다. 왜 굳이 연고지도 아닌 곳에서, 그것도 엄청난 시골에서 입양을 해왔나 했더니, 몸의 특이성을 알고 한 모양이지.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이언유는 뭔지도 모를 약을 먹으려 했다. 아무런 거부감 없이 먹으려는 걸 빼앗았지만 정작 현재도 어디다 물어볼 곳을 찾지 못했다. 섣불리 알아보다 일이 커지는 건 막고 싶었다.
다만 같은 시간에 맞춰서 먹으라는 말에 대충 호르몬제 계열이 아닐까 싶었고, 그렇게 추측하자 전에 알아냈던 사실과 연결됐다. 거기다 이언유가 울면서 털어놓은 임신 이야기까지 더하자 더더욱 분명해졌다. 형이란 놈은 중단된 실험을 재개하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문제 되고도 남는다, 이게 밖에 알려지기만 하면.
형과 언유를 떼어내기 위해 잠시 이성을 잃었던 현재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갑자기 차분해졌다.
그러려면 이언유를 바깥에 내보여야 했다.
언유의 형처럼 병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도 언유를 밖에 드러내는 건 싫었다. 더구나 이런 일에 화제로 오르는 건 바라지 않았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나이라도 비슷하면 모를까, 대학생인 현재와 비교하면 그 형이란 사람의 능력이 월등했다. 그런 사람한테서 떼어내겠다고 애쓴 결과가 이언유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섣불리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어 현재는 그저 혼자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동안 언유는 집에 가둬둔 채였다. 괜히 얼굴 보면 붙어먹고 싶어지니 근근이 밖을 방황하면서.
그것도 모르고 집에 가고 싶다고, 형이 보고 싶다고 하는 걸 보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이걸 설명할 수도 없어 현재는 심호흡하듯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언유도 이젠 정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언유가 현재의 팔을 붙잡았다.
“응? 대답 좀 해.”
“저 지금 잠깐 나가봐야 하니까 얌전히 있어요.”
손을 떼어내며 현재가 낮게 말했다. 다급한 얼굴로 언유가 이번엔 옷자락을 잡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여전히 울먹이며 현재를 올려다봤다.
“오, 오늘은 진짜 집에 갈 거야. 네가 옷 안 줘도, 다 벗고라도 집에 갈 거야.”
“…….”
“진짜야. 흑, 흡. 집에 갈 거라고…….”
복잡한 표정을 하던 현재가 손을 떼어내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언유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저럴 거면 이유라도 말해주든가.
한참을 울먹이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을 때, 내리깐 시선에 현재의 발이 보였다. 나간 게 아니었는지 현재가 앞에 서 있었다.
이제야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줄 생각이 든 건가? 언유가 기대감에 고개를 번쩍 들었을 때, 현재가 언유의 입에다 제 입을 맞췄다. 지금 이럴 생각이 드나 싶어 따지려고 입을 벌리자, 순식간에 혀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어서 입 안에 이상한 맛이 감돌더니 현재의 혀가 목구멍까지 깊게 들어왔다. 그 탓에 본의 아니게 목울대를 움직이자, 식도로 뭔가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뭐야?”
“선배는 섹스할 때 아니면 내 말을 안 듣는 거 같아요.”
“뭔데, 뭐 먹인 거야?”
“잠깐 자요. 자는 것까지는 보고 갈게요.”
그대로 현재에게 안겨 침대에 눕혀졌다. 도로 일어나려는 언유를 두 팔로 강하게 얽어맨 채로, 현재는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었다.
“얌전히 누워요.”
“넌, 왜 이렇게 네 멋대로야…….”
“선배는 고집이 세잖아요.”
자꾸 몸을 꿈틀거리자 끌어안은 힘이 더 세졌다. 이윽고 언유의 시야가 흔들리며 머리가 몽롱해졌다. 어지러움에 결국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