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A
남자의 이름은 오래도록 불릴 일이 없었다. 허물없이 이름을 부를 만한 친구는 없었고, 이름으로 저를 불렀었던 유일한 두 사람은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신경 쓰는 사람은 저를 ‘형’이라고 불렀기에 더욱이 이름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남자는 원목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따닥, 따닥 쳤다. 시선을 아무 데나 던지고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데려온 아이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왜 그렇게 관심을 가졌을까. 신체적인 특이성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래에 성기가 하나 더 달렸다는 이유로 아이는 팔렸다. 겉으로는 입양이라 포장돼있었지만 그건 거래였다. 제 부모는 돈을 지불하고 아이를 사 온 셈이었다.
목적은 뻔했다. 그들은 뼛속까지 도전정신에 도취된 연구원이었다. 아마 그들을 덮친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언유는 어떻게 돼 있을지 모른다.
그래, 불의의 사고……. 남자가 작게 읊조렸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 그 덕분에 이언유는 그 상태로 머무를 수 있었고 남자의 손에 떨어졌다. 다행인 일이었다. 남자가 따로 손을 쓸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남자는 늘 이언유를 묶어두고 싶어 했다. 꽁꽁 숨겨 저만 보고 싶었다. 저 몸에 대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서 더욱 날을 세웠다.
하지만 영원히 묶어두기에는 부작용이 만만찮았다. 남자는 누구보다 이언유에 대해 잘 알았다. 낯선 것에 한눈팔기 일쑤인 지나친 호기심. 유혹에 약한 성정. 남을 나쁘게 보지 못하는 지나친 순수함. 의심할 줄 모르는 멍청함까지도 아주 잘 알았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가둬두기엔 이언유는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었다. 잠시라면 모를까, 그게 평생이 되면 부작용이 생기리라. 그래서 남자는 목줄을 거는 방법을 택했다. 제멋대로 해도 되지만 무조건 제 눈치를 보게끔 만들었다.
세상에 기댈 가족이라곤 남자 하나뿐이었던 이언유에게는 그 방법이 제법 잘 먹혔다. 사랑받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는 남자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선사했다. 중학생 때 날파리 같은 놈이 하나 달라붙어 처리했던 것 말고는 모든 게 순탄했다.
속박당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후로도 최대한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았는데도 언유는 모든 걸 감사히 받아들였다.
언유가 그렇게라도 해서 형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건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집에서 마주칠 때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죽는 게 눈에 보였다. 지금 건드리기 시작했다간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접촉하지 않는 길을 택했는데, 그럴 때면 언유는 티가 나게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에 아래가 동했다.
남자가 본격적으로 계획한 모든 것들을 쏟아부은 건, 언유가 스무 살이 된 해부터였다. 기다리기에 터무니없이 길고 긴 시간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남자는 언유의 몸을 길들이고, 매일같이 아래로 좆을 받는 생활에 적응시켰다.
그렇기에 대학에 보내 달라는 말은 사실 뜻밖이었다.
보내지 않을 이유를 대자면 백 가지는 댈 수 있었지만, 허락해줬다. 나중에 허튼 생각이 들 바에는 지금 뭐라도 해주는 게 나았다. 어차피 사람인지라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주장하는 일이 한 번은 생길 걸 예상했다. 지금 무시했다 나중에 다른 일로 번질 바엔, 이 정도는 들어주는 게 능사였다. 그래야 이후론 반항 없이 제 운명을 받아들이겠지. 이 정도는 해줬으니, 너도 해줘야 한다는 합당한 주장을 남자는 내세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몇 년 동안이나 안 만나본 이언유라면, 다른 사람들과 능숙하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했다.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말라는 명령이 없더라도 언유는 남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게 분명했다. 처음 몇 마디라면 모를까, 조금만 깊이 있게 대화를 하면 누구든 이언유가 어딘가 이상한 걸 알 테다. 미리 말하자면 남자는, 그걸 다 감안하는 새끼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러한 이유로 이언유는 자유를 누리게 됐다. 기사를 대동해 학교에 다니고 수업만 듣고 바로 집에 와야 되는 삶.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 끊임없이 감시당하지만, 그건 남자가 골라준 ‘자유’가 맞았다.
갑작스럽게 잡힌 장기 세미나는 언유를 데리고 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탓이 아니더라도 남자는 언유와의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언유가 스무 살이 되고부터 슬슬 다시 가동을 걸기 시작한 연구 때문에 남자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출장을 간 지 고작 며칠이 지났을 때 운전기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동안 집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겠다고 하시는데요.’
‘…….’
‘사장님이 허락하셨다는 말도 같이 하시던데…….’
저녁에 지금 잘 거라는 티 나는 거짓말을 할 때, 어쩌나 보자는 마음으로 놔둔 게 잘못일까. 언유는 집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 줄 몰랐지만, 남자는 언유가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는 걸 이미 다 본 뒤였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시고요.’
그리고 바로 상황 파악에 나섰다. 언유의 비밀은 몇 시간 만에 모든 게 종이 한 장에 정리돼서 메일로 들어왔다. 들킬 거라 생각을 못 한 건지 숨기려는 생각이 없었던 건지 모든 정황이 투명했다.
‘우리 언유가 요즘 재밌게 사네…….’
계획한 대로 무탈하게 잘 가는가 싶더니 웬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인내심은, 이언유가 집에 채현재를 데려왔을 때 바닥이 났다. 지금 나서봤자 도망갈 게 분명하니 모든 건 돌아가서 해결하려던 생각이 박살 났다. 뒷보지에 오줌을 받고 흥분한 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걸 어떻게 조져야 하나 고민하느라 매시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언유가 아예 자지를 낀 채로 전화를 걸었을 땐 머리가 한없이 차가워졌다.
휴대폰 너머로도 들릴 것 같았다. 물 많은 보지가 잔뜩 젖어 자지를 빨아들이고 있겠지. 축축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자지를 감쌀 거고. 좆물을 싸주는 것만으로 느껴서 온몸을 경련하듯 떨어댈 것도 눈에 선했다. 그리고 한 방울이라도 흘리기 싫다는 듯 자지를 빼자마자 황급히 오물거리며 조이겠지.
남자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결국엔 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아무리 별생각 없이 사는 이언유라고 해도 충격이 클 거라 최대한 미루고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약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도 이언유는 묻지도 않고 따랐다.
이건 남자의 부모가 남긴 연구의 산물이었다.
부모는 살아생전 이언유의 신체를 탐구하고 또 탐구했다. 이언유는 아마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일 거다.
두 개의 성기를 가진 몸에 장기는 어떻게 존재할까 하고 초음파로 봤을 때, 둘은 그 안에서 자궁과 난소를 발견했다. 방광 뒤에 존재하는 그것은 분명 생식기관이었다. 하지만 거의 흔적기관처럼 남아있는 수준이어서 정상적인 기능을 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에 부모는 호르몬 투여를 하며 몇 차례의 실험을 거듭했지만, 선뜻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했다. 아직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이라 이런 형편없는 성과가 나왔다고 생각한 그들은, 실험을 중단하고 기다리기로 합의를 봤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질지도 모르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때 가서 다시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생식기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그들은 몹시도 궁금해했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궁금해서 벌인 실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죽어버려 그 이후를 보지 못했고, 대신에 남자가 언유의 성장을 모조리 지켜보았다.
언유는 두 가지 특성을 다 갖고 있었지만 둘 다 애매했다. 체모는 적고 거의 나지 않다시피 하는데, 초경도 하지 않았다. 두 개의 성기는 모두 작은 편이었다. 체격은 평균적인 남성보다 왜소했고 여성보다는 컸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이제 호르몬을 투여하고 결과를 보자고 했겠지.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이언유에게서 후천적으로 하나의 성별을 끄집어내고 결과치를 기록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가 좋았다. 이유 모를 사랑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남자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갖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이언유에게 저를 각인시키기엔 그만한 방법이 없었다.
어리광도 제대로 부릴 줄 모르던 이언유는 이제 손바닥을 내밀면 뺨을 부비고, 어려운 말을 하기 전에는 입맞춤을 한다. 안아주면 목을 껴안으며 가슴에 제 얼굴을 기대고, 힘이 들면 어깨에 제 이마를 비빈다. 이 모든 습관을 만든 건 전부 남자였다. 이언유를 구성하고 있는 건 죄다 남자가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봐줄 만큼 봐줬다고 생각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언유가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고 나름의 고민을 했었다. 그래서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 개한테 던져주려다가도 차마 던져주지 못하고, 쇼크 받을까 봐 스무 살짜리 애새끼도 결국엔 가만 놔뒀다. 가고 싶다던 엠티에 보내준 것도 저가 만든 작품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었는데,
결국엔 이렇게 나오는군.
밖은 해가 환했다. 정오가 막 된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돌아올 시간이었다. 남자는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대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형. 집에 계셨어요?”
“언유야.”
책상 위에는 아까부터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까맣고 하얀 그 사진을 챙겨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