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 권명
형은 늙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꼭두각시였고, 사육사에게 이용당하는 야생 코끼리였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보다 커다란 코끼리를 사육하는 방법을.
아주 어릴 때 포획해 온몸을 묶어 둔다고 했던가? 그러면 코끼리는 집채만큼 커져도 그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형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형은 허허실실 웃기만 했다. 아이큐가 꽤 높다고 들었는데, 덜떨어져 보였다. 검사가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지능이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 아버지가 자신을 이용한다는 걸 뻔히 알 텐데.
‘왜 저러고 살지?’
조금 더 자라자 형의 다리에 칭칭 감겨 있는 쇠사슬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없고 늙은 아버지가 코끼리를 다루는 방법은 가이드였다. 그것도 가랑이 잘 벌리게 생긴 남창.
“네가 이 집 둘째라며? 형 닮아 잘생겼네.”
형의 가이드가 되지도 않는 끼를 부리며 말을 걸어왔다. 대답 대신 피식 웃자, 자신의 작업이 먹힌 것이라 여겼는지 조금 더 과감하게 다가왔다. 은근슬쩍 팔을 터치하며 유혹하는 눈빛을 보냈다.
순진한 형이 어떻게 말려 들어간 건지 훤히 보였다. 타고나길 온순하게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탓인지 형은 이런 쪽으로 영 숙맥이니까.
“한 잔 더 할까?”
“꺼져. 남창 새끼야. 네 정체 까발리기 전에.”
야살스럽게 웃던 놈이 돌처럼 굳었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놈을 향해 한 번 더 비웃음을 날리며 뒤돌아섰다. 등 뒤로 욕설이 들려왔으나 무시했다. 형보다 어리니까 나 정도는 우습게 여긴 걸까?
‘고작 저런 수작에 넘어갈 리가.’
겉껍데기만 보자면, 눈 돌아가게 생기긴 했다. 하얗고 중성적인 외모에 몸도 탄탄하게 잘빠졌다. 가지고 있는 밑천이라면 몸뚱이뿐이니 열심히 관리했겠지.
가이드만 아니었다면 한두 번 먹고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의 가장 큰 문제는 권 사장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가이드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궁해도 먹고 탈이 날 게 뻔히 보이는 물건을 먹을 수는 없지.
남창을 뒤로하고 형에게 다가갔다. 형은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얼굴들이었다.
“명아! 여기 인사해. 형 친구 동생이야. 너랑 동갑이고.”
“태혁이다. 반갑다.”
“권명.”
태혁. 딱 봐도 재미없는 놈이었다. 사관학교를 지망한다는데, 이미 사관학교 생도처럼 굴고 있었다. 저 집안 유전인지 저놈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저놈까지 소름 돋도록 똑같이 생겼다. 권 사장이 비밀리에 만들고 있다는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저런 모습일까?
형은 친구 따위는 안 키우는 날 위해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모양인데,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귀찮았다. 그저 아버지한테 엿이나 먹이며 살고 싶었다. 사람 좋은 척하는 그 얼굴이 구겨질수록 재미있었다. 그게 그 당시 내 유일한 기쁨이었다.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이 미지근한 물 같은 인생에서.
“나 먼저 간다. 형.”
“어? 아직 아버지께 인사도 안 드렸잖아. 인사는 드리고 가.”
“매일 보는 얼굴 굳이 여기서 인사까지 해야 해? 그리고 형 가이드나 잘 챙겨.”
예의 바른 형의 얼굴에 미세하게 균열이 생겼다. 그사이 형의 가이드는 새로운 물주를 찾듯 이리저리 꼬리를 치고 다녔다. 형은 진정 저 사실을 모를까?
* * *
그날도 권 사장 얼굴에 먹칠하며 돌아다녔다. 권 사장이 하라는 모든 일을 뒤로 제치고, 실컷 떡이나 치다 집으로 돌아왔다. 최상품 약이라더니 순 싸구려였다.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팠다. 벌컥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섰다. 도자기 컵이나 골프채가 날아올 줄 알았는데, 잠잠했다.
“명이… 왔니?”
형보다 두세 살 많은 주제에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었다. 딸뻘인 저 여자를 들이는 대가로 어머니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애초에 정략결혼이었다지만 집안이 망했다고 한순간에 버리다니.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
“명아…….”
새어머니는 충격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권 사장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사고를 쳐도 미세하게 금만 가던 얼굴이 반쯤 뭉개져 있었다. 이내 집안을 뒤흔든 충격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형이 폭주했다는 소식.
“…그렇게 알아라. 당신은, 명이 사관학교 입학 준비해요.”
“여… 여보!”
아버지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새어머니는 아버지를 부르며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한순간에 형의 대용품이 되어 사관학교로 끌려가게 생겼다.
“씨발.”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예비 부품이었다. 형은 10살도 되기 전에 에스퍼로 자라날 가능성을 보였고, 온 가문의 관심은 형을 향해 쏟아졌다. 때때로 형에게 쏠려 있는 관심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고, 탐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가 자라고 나서는 저 관심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독이라는 걸 알았다. 그 뒤로 집안 사업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형이 무너지다니. 유순한 성격과 달리 꽤 유능하다고 들었다. 군에서도 인정받는 에스퍼였고, 진급도 빨랐다. 권 사장이 전폭적으로 밀어준 덕분에 북부의 석유 밀수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권 사장은 지인들에게 내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종종 대견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징그러웠다. 권 사장 좋으라고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재 에스퍼의 탄생.
그딴 타이틀 따위는 원하지도 않았다. 그 탓에 귀찮게 카메라가 따라다니기나 하고.
“권명 생도, 사관학교의 아침은 어떤가요?”
“좆같지 뭘 물어?”
“궈… 권명 생도? 아무리 녹화방송이라지만… 순화해서… 알죠?”
“권명 생도, 사관학교의 아침은 어떤가요?”
“거지 같아요.”
“하아… 그래… 다음, 식당 장면이나 찍자고요!”
감독은 두 번째 대답은 그래도 마음에 들었는지, 식당에서 밥 먹는 장면을 찍자고 했다. 감독은 이번에도 사관학교의 식사는 어떤지 물었다.
“짬밥이 다 거기서 거기죠. 전 주로 집에서 보내 주는 도시락 먹어요. 촬영한다니까 먹어 주는 거지.”
“컷! 컷!!”
감독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꽤 귀찮게 할 것만 같았던 카메라는 생각보다 쉽게 떨어져 나갔다. 원래는 두 편으로 발송될 계획이었으나, 분량 부족으로 한 편만 방영됐다고 들었다. 다행이었다. 저 광대 노릇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니. 저 거지 같은 방송이 뭐 대단하다고 사관학교에서는 단체 관람까지 시켰다. 사람 쪽팔리게.
“방송 잘 봤다. 권명.”
“잘 나왔겠지. 모델이 좋잖아.”
태혁은 피식 웃었다. 멀쩡한 척하지만, 저놈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건 잘 알았다. 역시 안드로이드가 맞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멀쩡한 표정을 짓고.
저 집안 아버지가 밤마다 아들과 야구 놀이를 한다는 소문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야구 빠따가 두 동강 나도록 후려친다던가? 저놈의 형도 군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에, 둘째에게 거는 기대가 지대하다고 들었다.
형이나 저놈이나 이해가 안 가는 유형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 뭐 저리 열심히 하는지.
“발령받는다는 소식 들었어.”
“어. 잘됐지. 이 거지 같은 짬밥도 안녕이니까.”
“하… 넌 뭐든 이렇게 다 쉬운 건가?”
애써 꾹꾹 감춰 왔지만, 놈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질투가 드러났다. 존나게 쉬웠다고 말해 줄까 했으나 참기로 했다. 이제 난 풋내 나는 생도가 아닌 어른이니까.
* * *
발령을 받고 매일같이 살인 병기처럼 살았다. 작전을 마치면 온몸이 터져 버릴 듯 뜨거웠다. 얼음이 가득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면 순식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로 변했다. 다음 날이면 또다시 적군 진지를 쓸어 버리거나 보급로를 폭파했다.
그저 하루하루가 쳇바퀴 같은 일상이었다. 원하는 만큼 쌈질은 할 수 있었지만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작전에 투입됐다. 눈 속에 숨어 있을 적을 향해 미사일을 발포했다. 첫 발포 후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적군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1소대가 있을 것이라던 했던 그곳에는 2중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퍼다! 잡아라!”
에스퍼는 동제국의 유일한 희망이며 무기였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서제국의 무기에도 동제국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 하지만 에스퍼의 힘은 무한이 아니었다. 뛰어난 신체 능력과 설명할 수 없는 강한 힘에도 한계는 있었다.
혼자의 몸으로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무장 군인을 해치우기 위해 극한의 힘을 사용했다. 이곳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몸 안에 흐르는 한 방울의 돌연변이 피까지 뽑아냈다.
솔직히 말한다면 아쉬움은 없었다.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에스퍼로 발현한 순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폭탄처럼 온몸이 터져 죽는 결말.
시간이 지날수록 온 세상이 회색빛을 보였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짙은 허무를 담고 있었다. 삶의 목표도, 의욕도 없는 무기력한 살인 무기. 그래서였다. 온 힘을 써 버리고 그냥 죽자고 결심한 것이.
적군에게 쫓기며 눈 덮인 산을 올랐다. 미끄러지고 굴러떨어져도 더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하얀 눈밭을 더럽히는 붉은 핏자국이 과자 조각처럼 놈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더 높이. 더 높이.
바람을 가두는 천 길 낭떠러지가 눈앞에 보였다. 휭휭 비명 소리 같은 바람이 귓가에 들려왔다.
‘이곳이구나.’
망설임은 없었다. 미련 없이 몸을 내던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죽음처럼 차가운 얼음물에 빠지는 순간 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다 끝났다는 안도보다 아쉬움이 떠올랐다. 무의미한 상상이 시작됐다. 에스퍼가 아니었다면, 형의 그림자가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하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뼛속 깊숙이 파고들던 차가움이 조금씩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구분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바위처럼 무거워졌다. 이것이 죽음일까?
지독한 꿈을 꾸었다. 죽기 전 눈 덮인 산을 계속해서 오르는 꿈. 종종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멍한 기분이 꽤 오래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체야, 일어나라. 돈값을 해라.”
들어 본 적도 없는 목소리. 황당한 요청. 그럼에도 심해에 갇혀 있던 정신이 수면 위로 끌어 올려졌다. 인어의 노랫소리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뱃사공처럼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차가운 물 속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뜨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흥분과도 닮은 열기가 온몸에서 느껴졌다.
“아읏… 아흐윽!”
간지러운 신음 소리에 청각이 살아났고,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압박감에 촉각이 살아났다. 달콤한 살 내음에 후각이 살아났고, 마지막으로 시각.
침대 난간을 부여잡고 쌔액쌔액 숨을 내쉬는 자가 보였다. 그 호흡이 마치 뺨에 닿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몸을 일으켜 뜨거움을 안겨 주었던 자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이 결박된 것처럼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날 봐!’
확인하고 싶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 갇힌 날 꺼내 준 뜨거움의 정체를.
* * *
안조이. 이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이라는 이름은 한없이 쉬워 보였는데, 성이 안씨란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괘씸함이었다. 죽음이라는 안식을 방해한 놈이 짜증스러웠고 자위 인형처럼 날 쓰고 버린 놈을 혼쭐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잡고 보니 허탈할 정도로 때릴 구석이 없는 놈이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뭐… 뭐? 강간범? 말조심해! 씨… 씨발!”
“씨발?”
피식 웃으며 씨발이라고 되묻자 놈의 눈동자가 날갯짓을 하듯 파르르 떨렸다. 때릴 맛도 안 나는 놈이었다. 적어도 상대가 되는 놈하고 붙어야 싸우는 맛이 나지, 이런 작은 놈하고 싸움이라니.
이번에도 역시 권 사장이었다. 가이딩을 거부한 이후 아버지는 여러 차례 꼭두각시를 보내왔다. 내 취향은 어떻게 알았는지 순진하게 생긴 놈들을 가져다 바쳤다. 눈앞에 있는 이 작은 가이드처럼. 야한 짓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저런 얼굴이 쾌락에 물들면 꽤 볼만할 테지. 하지만 놈이 가이드라는 걸 안 이상, 손댈 맛이 뚝 떨어졌다.
죽다 살아났다 할지라도 형처럼 될 생각은 없으니까. 가이드만 아니었어도 형이 개처럼 부려지다 몰락할 리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놈이 신경 쓰였다. 꽤 곱게 자란 얼굴인데 7구역 출신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형이 떠올랐다. 7구역으로 버려진 형. 수도승처럼 이쪽과는 연을 끊고 산다고 들었다.
형을 폭주하게 만들었던 남창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장담하는데 그놈은 벌써 다른 놈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가이드라는 놈이 형이 폭주하자마자 내뺐다고 들었다. 그런 놈을 기다리다니 참으로 답답한 인간이었다.
“7구역 출신이라고?”
“그래! 7구역이다. 뭐!”
순하게 생긴 놈이 발작하며 소리쳤다. 갓 태어난 강아지에게 손가락을 물린 기분이었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새끼. 발작은. 7구역은 어떠냐?”
“어떻긴 끔찍하지.”
“7구역에도 에스퍼가 있다며?”
“어. 한 명.”
신기하게도 놈은 형과 함께 일을 했었다고 떠들었다. 이게 우연일까? 아니 그럴 리 없지. 방 배정부터가 권 사장의 술수일 테니까. 대뜸 방을 옮기라고 해서 와 봤더니 저 가이드가 있었다. 그것도 권 사장한테 돈을 받고 그 짓을 한 가이드.
권 사장이 심어 둔 가이드라는 확신이 들었다. 놈과 선을 그어야 했다. 하지만 이 쪽방에서 놈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관심을 끄려 해도 놈의 생활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안조이, 참 부지런한 참새 같은 놈이었다. 모든 일에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요령이라고는 조금도 부릴지 몰랐다. 그리고 어찌나 궁상맞은지 세탁실도 이용하지 않고 손빨래를 했다.
우습게도 권 사장이 심어 둔 가이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하얀색 삼각 팬티를 본 이후였다. 권 사장에게 돈을 받는 거로는 보기 힘든 궁핍함이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옷장 문고리에 젖은 팬티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저 멋없는 흰색 팬티가 이상하게 꼴렸다. 고추도 작던데, 그래서일까? 팬티도 손바닥만 했다. 아침마다 핏줄이 불끈 솟은 성기를 훑었다. 그런데 아무리 자위를 해도 풀리지 않았다.
“하아… 그냥 싸라. 좀.”
가이드 따위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눈만 감으면 놈이 떠올랐다. 오줌 싸듯 그냥 한 발 뺄 생각이었는데 막상 열이 오른 성기에서는 쉽사리 정액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군으로 끌려오기 전까지 매일같이 보냈던 광란의 밤을.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떠오른 얼굴은 안조이였다.
“하아… 씨발.”
놈을 상상하며 정액을 뱉어 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놈 얼굴이 또렷하게 떠오른 순간 어이없게 정액이 튀어나왔다. 짜증스러움에 샤워실 타일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갔다. 참새 같은 놈이 눈을 뾰족하게 뜨고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잔소리라도 쏟아 낼 듯.
“야. 그런 건. 좀. 주말에 몰아서 해.”
“뭘?”
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으나 당당해지기로 했다. 그놈의 흰색 팬티만 아니었어도 성기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꾸만 저 참새가 흰색 팬티를 조물조물 빨거나 입는 모습이 상상됐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밖에서 풀고 와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사정을 했는데도 아래가 당겨서 미칠 것 같았다.
“그거 말이야. 대체 왜 아침부터 그 짓을 이렇게 오래 하냐고! 다음부턴 내가 먼저 씻을래.”
“하? 너 딸친 곳에 나보고 들어가라고?”
저 작은 놈이 겁도 없다. 놈이 싸지른 정액을 봤다가는 눈이 돌아갈지도 모른다. 저놈의 작은 구멍이 쫙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을 때까지 박아 버릴 텐데, 저 총각 같은 놈이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나… 난 그런 거 안 해!”
“팬티 닳아 없어지겠더라. 그거나 좀 어떻게 해 봐. 그럼 나도 참아 보고.”
참아 보겠다고 했으나 그날 밤 꿈속에 놈이 등장했다. 병실에서의 일이 조금 변형되어 되풀이됐다. 내 몸 위로 올라탔던 놈을 깔아뭉개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날 청각을 되살리던 작은 신음 소리가 떠오르자 온몸에서 열이 올랐다.
‘그냥 한번 날 잡고 먹어? 말아?’
가이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저놈은 좀 참기 힘들었다. 자꾸 눈앞에 알짱거리는 게 꼭 먹어 달라고 애원하는 거 같았다. 온몸에 꿀을 바른 상태로 살랑살랑.
불쑥불쑥 놈의 살을 발라 먹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지만 참아야 했다. 놈은 가이드니까. 그것도 권 사장의 꼭두각시일지도 모르는 가이드.
* * *
사관학교에 눌러앉을 기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권 사장은 안달이 났는지 매일같이 닦달했고 군에서도 회복이 끝나거든 바로 돌아오라고 난리였다. 하지만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군의 명령 따위는 무섭지 않았고, 권 사장이 날 휘두를 무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싸구려 약을 하거나 쌈질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물건이 이곳 사관학교에 있었다. 안조이.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참새 같은 놈이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놈의 흔적을 찾았다. 이상할 정도로 놈의 파장이 쉽게 읽혔다. 페로몬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처럼.
청승맞게 혼자 밥을 먹는 놈 앞으로 다가갔다. ‘밥 정도는 같이 먹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로봇 새끼가 거슬리게 안조이 옆자리를 차지했다.
“짬밥은 싸구려 맛이라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뭐. 싸구려도 나쁘지 않더라고.”
“싸구려는 무슨. 맛만 좋네!”
가만 보니 안조이, 저놈은 내가 아니라 태혁을 노리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난 날 앞에 두고 저 로봇이라니.
“너랑 같은 팀 하면 좋겠다.”
며칠 전만 해도 자위 좀 작작 하라고 앙칼지게 소리치던 놈이 저 로봇에게는 아양을 떨 듯 귀여운 소리를 내뱉었다.
‘하? 같은 팀?’
어림없지. 저 둘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나빴다.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날 교관에게 생존 테스트까지 받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교관은 이미 필드에 나가 본 적이 있는 내가 생존 훈련을 받겠다고 나서자 퍽 당황한 듯했다. 그럼에도 기회를 발견한 것처럼 눈을 빛냈다.
이참에 권 사장한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인 듯했다. 권 사장이 날 이용하는 것만큼 나도 이용해 줘야지.
예상대로 안조이와 임시 페어가 되었다. 놈은 보자마자 퍽 실망한 듯했다. 울컥 화가 났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뒤늦게 이런 짓을 한 것이 후회됐다. 가만 생각해 보니 사서 고생이었다. 이 불결한 환경도 그렇고 손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쇳덩이도 그렇고.
억제구. 손목에 걸린 쇳덩이가 꽤 걸리적거렸다. 저 정도 공격은 손쉽게 막아 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가 이기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힘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거 액셀을 밟듯 서서히 몸이 달아올랐던 것과는 달리 불쑥불쑥 힘이 솟구쳤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난번 사고로 몸이 망가진 것이었다. 폭주 후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읽은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내 몸처럼 그들 역시 힘을 제어하지 못했고 결국 폭주해 죽거나 정신이 나가 죽었다.
‘씨발.’
놈 역시 날뛰는 파장을 느낀 것인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폭주 후유증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걱정받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꽤 기분이 좋았다.
“괜찮냐……?”
“뭐가.”
“팔…….”
놈은 연신 눈치를 살피며 가이딩을 해 주겠다고 설쳤다. 또 달달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잡아먹어 달라고. 하지만 가이딩은 받지 않을 것이다. 아직 저 작은 놈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으니까.
그날 밤 뜨거운 열기에 취해 잠이 들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처럼 익숙한 열기였다. 얼음물에 몸이라도 담근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온몸을 시원하게 식혀 주는 기운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그 기운을 내뿜는 존재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조금 더 깊게 저 기운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럼 이 열기도 가실 텐데.
‘이게 뭘까?’
그저 막연하게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기운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구멍 안에 손가락을 처박자 곧바로 알아차렸다. 이게 가이딩이구나.
“하? 주먹을 넣어도 되겠다. 이 소리 들려? 어?”
“꺼…져!”
수도에 있는 웬만한 구멍을 다 먹어봤지만 이렇게 물 많은 구멍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남자가. 손가락을 푹 쑤셔 넣고 흔들자 홍수 난 것처럼 물이 흘러나왔다.
‘씨발. 야한 구멍.’
“남창도 너처럼 물이 나오지는 않을 거다. 싸구려.”
“하읏… 박을 거면 빨리 박고 끝내!”
안 그래도 자지가 저 구멍에 자신을 넣어 달라고 난리였다. 뱃가죽에 달라붙을 정도로 발기했다.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가이드는 먹지 않겠다는 다짐은 이미 흐릿해졌다. 망설임 없이 벌렁거리는 구멍에 살 기둥을 쑤셔 박았다.
“아악!!”
주름진 입구가 한계까지 쫙 벌어졌다. 구멍을 망가트리듯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 넣었다. 곧바로 쫀득한 속살이 성기에 달라붙었다. 빠듯한 그 느낌에 사정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싸 버릴 수는 없지. 절대.
‘씨발.’
환장할 정도로 좋았다. 지금까지 먹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한두 번 먹고 버릴 물건이 아니었다. 평생 저 구멍에 성기를 끼우고 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아…! 아! 하읏!”
“하아… 하아……!”
몇 번을 사정해도 부족했다. 아마 저 좁은 구멍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박아 대도 만족하지 못할 테지. 삐쩍 마른 허리를 꽉 부여잡고 힘껏 성기를 쑤셔 넣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강렬한 엑스터시가 몇 번이나 온몸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질주하는 말처럼 내달렸다. 빠듯하게 성기를 물던 구멍이 느슨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읏…! 아흣!!”
교성과 함께 천국을 보여 주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안조이는 묽은 물을 뿜어내며 기절해 있었다. 그럼에도 성기를 빼고 싶지 않았다. 난생처음 느껴 본 밀접 가이딩에 정신이 나간 건지 안조이의 온몸을 핥고 맛있는 속살을 이로 물었다. 울긋불긋하게 변한 몸 위로 유독 도드라진 붉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젖꼭지를 입 안에 물고 젖먹이 아기처럼 힘껏 빨아 당겼다. ‘쭈욱’ 빨아 당길 때마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놈의 구멍이 미약하게 반응했다. 또다시 아래에서 자극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발정이 난 것 같았다.
“하아… 좆됐네. 씨발.”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던 형이 이해가 갔다. 남창 앞에서 덜떨어진 놈처럼 굴던 형. 절대 목줄은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순순히 목줄을 물어 주인에게 가져다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날 키워’ 하고.
* * *
생존 훈련이 끝나자마자 사관학교를 박차고 나갔다. 도저히 그 참새 놈과 한방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익숙한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숨 막히게 좁은 기숙사 안에 있었다. 온종일 안조이를 생각했다.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잔상이 앞에 아른거렸다.
앞으로 개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가 갈렸지만, 그렇다고 목줄을 던져 버릴 용기는 샘솟지 않았다. 그날의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 몸에 딱 맞는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그 기운. 뜨거울 때는 시원하게 식혀 주는 바람이고, 차가울 때는 따뜻하게 데워 주는 햇볕.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이 그 순간 충만했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완전함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안조이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목줄을 물어다 바치고 싶었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온몸이 뜨거웠다. 저 멀리 누군가 정원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환각을 보는 줄 알았다. 며칠째 계속 생각하던 얼굴이었으니까.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가?’
그럴 리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혹시 나처럼 안조이도 그날을 잊을 수 없었던 건 아닐까?
집 안으로 들어선 놈이 아버지가 있는 서재로 향하는 걸 보고는 그 망상도 내던졌다. 아닐 것이라 기대했으나 안조이 역시 아버지가 보낸 가이드였다.
앞으로 벌어질 짜증스러운 일들이 떠올랐다. 권 사장 명령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꼭두각시.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옆에 붙어 있는 안조이. 형을 보며 지긋지긋하다 여겼던 그 상황이 나에게도 똑같이 벌어질 테지. 대체 저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엿들을 생각에 서재 옆 방으로 향했다.
“권명이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대가를 받는 가이딩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조이 군. 지금 대답하라는 말이 아니네. 천천히 다시 생각하게.”
우습게도 저 말에 안조이에 대한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순진한 얼굴로 날 꼬여 낸 가이드가 아니라, 그냥 안조이였다. 요령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부릴 줄 모르는 안조이.
하지만 안조이가 아버지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란 걸 확인한 후 더 미칠 것 같았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것 같았다. 예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을 테지.
그 후 내 모습은 유기견 센터에 있는 불쌍한 강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오늘은 내 주인이 나타날까? 내일은 내 주인이 나타날까 기다리는 유기견. 눈물 나게 불쌍한 모습에도, 내 주인이 되어야 마땅한 놈은 자꾸만 다른 강아지를 예뻐하고 있었다. 물어뜯고 싶게.
‘혹시 저 새끼도 안조이랑 떡 쳤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조이와 붙어먹는 로봇 새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상상을 하고 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태혁을 망가트리고 싶었다. 실수인 척 놈을 조질 생각이었다. 군에서 사람 하나 죽는 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놈을 잘근잘근 조질지 상상했다. 힘을 쓴 것도 아닌데 온몸에서 열이 올랐다. 좁은 기숙사가 금세 사우나실처럼 후끈해졌다.
“또 이러네.”
차가운 물로 몸을 식혀야 했다. 이가 떨려 올 때까지.
한참 동안 찬물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사이 안조이가 돌아온 듯했다. 익숙한 파장이 문밖에서 느껴졌다. 몸을 닦으며 밖으로 나가자 가까스로 식힌 몸이 또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뿌연 김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너 뭐야? 얼굴은 왜 이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참새 같은 얼굴에 핏자국과 멍 자국이 가득했다. 때릴 데도 없는 얼굴을 야무지게도 조져 놨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잡히면 뼈 마디마디를 부러트릴 생각이었다.
‘씨발, 감히 누굴!’
“안조이! 누가 그랬냐고!”
“비켜.”
이름만 대라는 내 태도에도 안조이는 모든 물음을 무시한 채 사관학교를 벗어났다. 저 모범생이 이 밤에 학교를 떠나려 했다. 당연히 내가 함께 가야 했다. 혹시라도 이대로 학교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안조이는 목적지를 쉽게 알려줄 마음이 없는지 사람들이 많은 틈을 노려 날 따돌리려 했다.
‘어림없지!’
날 떼어 놓고 싶었으면 저 파장부터 어떻게 했어야 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난 놈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기차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 예상했다. 놈이 고향인 7구역으로 향할 생각이라는 걸. 그런데 그 일이란 게 동생의 실종이었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보다 못해 가까이 다가갔다.
여태 꼴리는 놈들과 떡이나 쳤지, 마음을 나눈 적은 없었다. 알아서 가랑이를 벌리는 놈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기에 내 쪽에서 뭘 해 줄 필요성을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 탓인지 힘들어하는 안조이를 보며 대체 뭘 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인심 쓰듯 손을 내밀었다.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짓을 해 주었건만 안조이는 감사함을 몰랐다.
내 손을 보더니, 헛웃음을 치며 명령했다.
“따라와.”
쫄래쫄래 놈을 따라갈수록 미간에 주름이 지어졌다.
‘씨발. 대체 이 끔찍하게 더러운 곳은 뭐지?’
안조이만 없었다면 절대 발도 디디지 않았을 곳이었다. 공기 중으로 더러운 바이러스가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겁쟁이 에스퍼, 가이드에게 뒤통수 좀 맞았다고 세상 무너질 듯 구는 한심한 종자가 있었다.
“며… 명아!”
반가움에 주먹부터 날려 줬다. 동생이 사경을 헤매는 줄도 모르고 있던 저 한심한 놈에게 딱 맞는 인사였다.
꼴에 한 대 맞았다고 반격을 하는데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주먹질다운 주먹질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에. 그런데 참새 같은 놈이 겁도 없이 막아섰다.
“그… 그만해!”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아야…….”
“맞지도 않았는데 아픈 척은. 뭐야…? 어디가 아픈 건데……?”
턱을 부여잡는 놈을 살피다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스치기라도 한 걸까?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놈이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목이나 발목도 가늘고 몸도 지나치게 말랐다. 가만 생각해 보니 성기도 앙증맞았었다.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못 먹어서 덜 자란 것 같았다.
‘불쌍한 새끼.’
* * *
안조이도 참 대단한 아버지를 두었다. 7구역에서 알아주는 도박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국경 근처에서 사라졌고.
안조이는 치사하게 그 어떤 것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사라진 아버지와 실종된 동생이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도박 중독자들에게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일반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 부모를 팔고 자식을 파는 그런 일. 그런 불가능한 일이 도박 중독자에게는 가능했다.
“명아!”
안조이를 따라 국경으로 가겠다는 날 형이 막아 세웠다.
“조이가 네 가이드인 거 맞지? 아버지도 알아?”
아버지는 안조이의 존재를 잊어야 할 것이다. 또다시 그 더러운 마수를 뻗지 못하도록 앞으로는 내가 감시할 생각이었다.
“쟤 내 가이드 아냐. 아직은.”
“확실히 해. 너. 형처럼 되는 거 한순간이야.”
형의 뭘 걱정하는지 알지만 난 형처럼 될 생각이 없었다. 아직 안조이의 입에서 페어를 맺자는 말이 나온 건 아니지만. 안조이와 페어가 될 거라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와도 페어를 맺지 못하도록 만들 테니까. 그 로봇?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감히 날 두고? 어림없지.’
미련 없이 죽으려던 날 멋대로 살려 놓았으니 이제 안조이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평생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대가.
* * *
안조이와 내가 영창에 갇혀 있는 사이 로봇 놈은 집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놈과 날라 버렸다. 뒤 수작을 부릴 생각이었는데 퍽 싱겁게 끝났다. 그 후 내가 할 일은 낙동강 오리 알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는 안조이를 줍는 일이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날 놔두고 저런 로봇을 페어로 고민하다니. 영창 복무도 2주 반으로 줄여 줬건만 안조이는 뭐가 그리 아쉬운지 죽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청승맞은 참새를 데리고 드라이브도 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도 먹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도 마음껏 포식했다.
지난밤 충분히 아래를 풀어 줬다고 생각했는데 샌드위치를 먹는 안조이의 모습을 보니 다시 아래에서 반응이 올라왔다. 참새 부리처럼 뾰족한 입술을 쩍 벌리고 빵을 물어뜯는 모습.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쪽쪽 핥아 먹는 모습. 지난밤의 일이 떠올랐다. 살 기둥을 입에 문 채 울먹이던 표정. 뿌연 정액을 혀로 핥아 먹던 모습.
“뭘 그렇게 빨아? 어제 그렇게 빨고도 부족해?”
“빨… 뭐…?!”
정신 차릴 수 없게 야한 표정을 짓던 놈이 쑥스러운지 눈을 피했다. 순진한 얼굴을 구석구석 훑었다. 저 순진한 얼굴이 대놓고 끼를 부리는 놈들보다 야해 보인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진 상태도, 폭주 직전의 상태도 아닌 멀쩡한 정신에서 먹어 보니 더욱 맛이 좋았다.
물속에서 하는 것처럼 푹 젖은 성기를 꺼내자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주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강아지처럼 기절한 안조이의 몸에 한참 동안 쪽쪽 입을 맞추었다. 온몸에 내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핥고 맛을 보았다. 설탕으로 만들기라도 했는지 하얀 속살이 달았다.
기절한 듯 잠든 안조이를 내려다보며 이상한 욕구가 샘솟았다. 안조이를 위해 뭐든 해 주고 싶다는 욕구. 혼자 죽으라는 것만 빼고.
그래서였다. 안조이의 동생을 찾기 위해 무작정 북부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 발령 서류 따위야 일단 가면 알아서 가져다 바칠 테니 문제없었다. 차에 타자마자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골목에 차를 박아 넣고 낮은 차체가 쿵쿵 흔들리도록 그 짓을 하고 싶었다.
“아읏! 그만해! 야!”
하얀 셔츠 한쪽이 둥그렇게 젖어 있었다. 더 빨아 달라는 듯. 안조이의 젖꼭지 한쪽을 꽉 쥐고 협박하듯 물었다. 눈가를 찡그리는 표정도 꼴렸다.
“나랑 북쪽으로 갈 거지?”
“윽…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떨어지겠어!”
“떨어지며 내가 갖지 뭐!”
“미… 미친놈!”
질색하는 태도에도 웃음만 나왔다. 아무래도 폭주 후 내 인생이 단단히 달라진 것 같았다. 어쩌면 머리 한쪽이 완전히 망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죽을 뻔했던 북부로 다시 돌아가는 일인데도 기분이 좋다니. 입술 사이로 실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북부의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결한 환경, 욕 나오는 추위. 맹렬한 폭격. 그럼에도 이전과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때처럼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온몸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뜨겁게 달아오르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이 설원이 오색찬란한 봄처럼 느껴졌다.
품에 안겨 있는 이 참새 때문이겠지. 눈을 뜨고 감는 순간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곳이 비록 적군의 폭격이 수시로 쏟아지는 전장이라 할지라도.
“으윽…….”
귀를 꽉 막고 있는 안조이를 내려다보았다. 폭격이 쏟아질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는 놈을 보니 좀 짠했다. 손바닥으로 안조이의 귀를 더 꽉 막아 주었다. 그러자 잘게 떨리던 몸이 조금은 안정을 찾을 듯했다.
불시에 시작됐던 폭격은 불시에 끝났다. 그럼에도 안조이는 폭격이 끝난 줄도 모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겁 많고 둔한 소동물을 보는 것 같았다.
‘귀엽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아랫도리가 또다시 반응하려 했다. 안조이를 놀려 줄 생각에 살짝 발기한 성기를 엉덩이에 비벼 댔다. 그러자 꼭 감겨 있던 눈이 새초롬하게 떠졌다.
“떨어져!”
“조금만.”
“너… 넌! 이런 상황에도!”
“이런 상황에도 뭐?”
뻔뻔한 물음에 순진한 안조이는 콧김만 뿜어냈다. 귀여운 자식. 이런 거지 같은 환경만 아니었으면 온종일 물고 빨았을 텐데, 퍽 아쉬웠다.
“소대장님! 권명 중위님! 중대장님이 찾으십니다!”
“귀찮아 죽겠네. 왜 자꾸 사람을 오라 가라야!”
저 멀리서 멍청하게 생긴 놈이 날 부르고 있었다. 무시하려 했으나 심부름꾼은 기어코 코앞까지 다가왔다.
자진해서 북부로 온 이후 권 사장은 또다시 군을 통해 지령을 보내왔다. 북부의 석유 문제. 형이 도맡아 하던 그 일을 내가 이어 가길 바라는 듯했다. 군에서도 날 서제국 북부와 가까운 지역으로 발령 내리고 싶어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발령 서류가 내려오는 족족 땔감으로 사용했다. 군에서도 꽤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하루걸러 이렇게 심부름꾼을 보내는 걸 보면. 이 정도 애를 태웠으면 내가 원하는 걸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부로 향하자 역시나 중대장이 아닌 고위급 장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문 쪽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중위. 가까이 자리하게.”
대령 옆에 앉은 장교가 눈치를 줬으나 무시하기로 했다. 상석에 앉은 대령 역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소리치듯 말을 꺼냈다.
“쓰임이 큰 사람이 훼림에 있어야 되겠나?”
“추위만 빼면 있을 만합니다. 공기도 좋고. 산림욕도 하고.”
“흐흠. 권명 중위.”
또다시 대령 옆에 있는 장교가 눈치를 줬으나 이 역시도 무시했다. 늘 그렇듯 내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다. 대령은 한 번만 더 참는다는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서제국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실험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네.”
이제 좀 대화가 통할 것 같았다. 반쯤 드러누웠던 자세를 반듯하게 고쳤다.
“지대한 관심이 있죠. 제가.”
* * *
이야기가 잘 끝났다. 실험실 급습 작전을 계획할 거라는 것과 훼림을 사수하고 있는 S중대를 F중대로 교체해 주겠다는 확답까지 받았다. 투뤼로 이동하면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테지. 참호에서 땅강아지처럼 살던 것도 끝이었다.
거지 같은 참호로 돌아가기 전에 투뤼에서 쉴 만한 곳을 알아보았다. 훼림과 가까운 탓에 산림욕이 대부분이었다. 피톤치드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온천?’
뜨거운 건 질색이지만, 안조이가 좋아할 것 같았다. 군에서는 눈을 녹여 생활용수로 사용했는데, 군에 있는 더러운 것들은 물 온도가 차갑다며 씻기를 거부하거나 건너뛰기 일쑤였다. 하지만 부지런한 참새, 안조이는 아침마다 그 차가운 물로 얼굴을 뽀득뽀득 닦았다. 그러고 나면 얼굴이 벌겋게 얼었는데 그 모습이 꼭 섹스 도중 흥분한 얼굴과 닮아 꽤 볼만했다.
“온천이라.”
훼림에 도착한 이후 그 짓도 할 수 없었는데, 잘되었다. 발가벗고 온천수에 몸을 담근 안조이가 떠올랐다. 호텔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 그 짓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계획대로 온천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온천은 처음이라며 기대하는 안조이를 볼 수 있었고 스트립쇼도 볼 수 있었으니까.
안조이는 온천을 할 생각에 옷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그저 목욕탕에 도착해 옷을 벗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야해 보였다. 꼭 날 유혹하는 것 같았다. 하얀 팬티가 허벅지를 타고 스르륵 내려가는 모습에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아래쪽에서 강한 자극이 올라왔다. 이미 발기한 그 물건이 좁은 바지에 갇혀 있었다. 둔한 안조이도 위험을 감지했는지 슬금슬금 온천으로 내뺄 생각을 했다. 도망가려는 안조이 팔을 붙잡았다.
“샤워 먼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안조이의 부드러운 몸을 손으로 매만졌다. 살짝 도드라진 붉은 점을 집요하게 쓸고 주물렀다. 그러자 젖꼭지가 조금씩 도드라지더니 딱딱해졌다. 순진한 얼굴과 예민한 몸. 어떻게 내 취향을 이리도 때려 박을 수 있는지 신기했다.
안조이는 자신의 몸이 예민하게 반응할 때마다 멋쩍은 표정을 짓고는 했는데, 그게 깨물어 먹고 싶을 정도고 귀여웠다.
“너 젖꼭지 섰어.”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더욱 부끄러워했는데 그 모습이 보고 싶어 자꾸만 더 심하게 몰아붙이는지도 모르겠다.
“빨아 줄까?”
“…….”
안조이는 힐끔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작은 물건도 입 안에 넣고 쭉쭉 빨아 먹고 싶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거울 쪽으로 안조이를 밀친 채 휙 몸을 돌렸다. 순진한 안조이는 순순히 몸을 내맡겼다. 내가 어디를 빨지 상상도 못 하는 듯했다. 통통한 볼기를 과일 쪼개듯 힘주어 잡아 벌리자 빨간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가락 하나를 받아먹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저 구멍이 흥분하면 쩍쩍 벌어진다는 걸 잘 알지만 볼 때마다 신기했다. 꽉 오므라든 그곳에 혀를 가져다 댔다.
“아으… 거… 거길… 아읏!”
단언컨대 아래쪽을 빨려 본 적이 없는 총각의 반응이었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아랫도리를 돌리고 다녔건만, 안조이는 총각이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탓이었다. 주름진 겉면을 길게 핥을수록 안조이의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려 왔다.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퍽 아쉬웠다. 아래를 빨리면 안조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그만. 하앗!!”
그만은 무슨. 슬금슬금 풀린 구멍 사이로 혀를 쑤셔 넣었다. 코가 꾹 눌릴 정도로 깊게. 낯선 침입에 깜짝 놀란 구멍이 혀를 꽉 물었다. 엉덩이를 조금 더 잡아 벌린 채 성기를 쑤셔 넣듯 혀를 넣었다 빼며 자극했다. 안조이의 입에서 낑낑거리는 강아지 같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더 깊게 혀를 쑤셔 넣자 빨갛게 달아오른 몸이 푸드덕거렸다. 손가락 하나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꽉 물려 있던 구멍이 어느새 자지 꽤나 밝히는 야한 구멍으로 변해 있었다. 뾰족하게 세워진 혀를 더 달라고 벌렁거렸다.
꽤 좋았는지 안조이의 성기도 내 것처럼 발기해 있었다. 앞을 매만지려는 손을 막아 세웠다.
“뒤로만 가 봐.”
“시… 으흣… 싫어… 아… 앞에… 하읏!!”
예민한 안조이의 몸은 조금만 더 개발하면 앞쪽을 만지지 않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들일 의욕이 샘솟는 몸이었다. 완벽하게 내 취향에 맞춰진 몸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울처럼 귀여운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그러자 엉덩이를 흔들며 놔 달라고 속삭였다. 더 해 달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쿡 혀를 쑤셔 넣고 내벽을 핥았다. 구멍이 발발 떨리며 안조이의 입에서는 애원이 흘러나왔다.
“으… 줘…! 아읏… 더……!”
“이렇게?”
뭘 더 달라는 건지 알았지만 놀려 주고 싶은 마음에 혀로 더 노골적으로 구멍을 자극했다.
“아… 으읏… 아니… 아읏. 네… 네 거!”
“내 거? 자지? 그럼 벌려 봐. 그래야 넣지.”
꽤나 성기가 고팠는지 스스로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작은 손 가득 엉덩이 살을 잡고. 순진한 얼굴로 이런 짓을 하니 진짜 사람 돌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구멍에 성기를 박아 넣고 싶었다.
“더 벌려. 안 보여. 하아…….”
“읏… 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더 벌리느냐고 묻는 얼굴을 본 순간, 원래도 그리 질기지 않았던 인내의 끈이 ‘투툭’ 끊어졌다. 물에 젖은 몸, 스스로 엉덩이를 잡아 벌린 자세, 순진한 얼굴로 되묻는 야한 말. 수도승도 돌아 버리게 만들 상황이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안조이를 꽉 붙잡고 깊게 성기를 쑤셔 넣었다. 습한 동굴 끝까지 성기를 밀어 넣자 안조이의 입술이 하늘을 향해 벌어졌다. 그 모습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눈에 담았다.
미친 소리 같지만 길 한복판에서도 이 짓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조이가 하자고 하면. 그곳이 어디든. 진짜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
* * *
오랜만에 기분 좋은 관계를 맺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분위기를 잡고 사귀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안조이를 탐내는 파리들이 하나둘 꼬이고 있었다. 페어를 맺고 나면 이런 고민도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난번 작전에서 임 소위가 안조이를 훑어보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또한 초콜릿도.
온종일 붙어서 감시하는데 그사이에 어떤 잡놈이 안조이에게 초콜릿을 건넨 걸까? 순진하고 착해 빠진 안조이에게 더러운 마수를 뻗는 놈은 꼬리가 잡히는 대로 족칠 예정이었다.
내 눈이 확실히 틀리지 않았다. 안조이는 꽤 귀엽다. 수컷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너무 위험할 정도로.
“조이 형아도 수고했으니까 잘 먹어.”
“으윽!”
안조이의 엉덩이를 희롱하며 투뤼식 전통 요리를 코스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귀자는 고백을 할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구름처럼 들떴던 마음이 지하 24층까지 가라앉았다.
꼴도 보기 싫은 놈의 낯짝을 하필 이곳에서 마주치다니. 사관학교에서 실수인 척 저놈을 처리했어야 했다. 다리 하나쯤 망가트리면 의가사 제대했을 테고 그럼 북부에서 저 로봇을 다시 만날 일은 없었겠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안조이에게 접근하려는 개수작이 훤히 보였다. 로봇답지 않게 사람인 척하는 게 우스웠다. 순간,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기회에 안조이의 에스퍼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었다.
안조이의 어깨를 잡으며 태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 봐라. 안조이가 누구 것인지.
“식사하러 온 거야?”
“어.”
“그럼 합석해.”
“그래.”
하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날 텐데, 안조이가 비협조적으로 굴고 있었다. 내가 아닌 저 죽상 로봇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내가 그러했듯 안조이도 나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발가벗고 섹스를 하던 사이였으니.
“아- 해.”
“내… 내가 그냥 먹을게.”
“아!”
안조이는 마지못해 음식을 받아먹었다. 안조이가 순순히 음식을 받아먹었음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식사를 마무리하며 로봇 놈이 결제를 하겠다고 설쳤다. 안조이 밥값을 저놈이 왜 낸다는 말인가.
“내가 낼게. 덕분에 식사도 바로 했고.”
“됐어. 고작 밥값인데 뭐.”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무조건 내가 내야 하는 일이었다. 로봇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끝내고 당당히 결제를 마쳤다. 막상 옆에 있던 안조이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김새게. 아무래도 오늘 고백은 아닌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온 이후 수탉처럼 푸드덕거렸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내 상태를 뻔히 알면서도 안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사한 저녁 식사를 망친 주범은 태혁이지만, 방관자 정도에 속하는 이는 안조이였다.
“잠이 안 와……?”
한참을 푸드덕거린 끝에 잠이 안 오냐는 물음을 받아 냈다. 그런데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안조이를 끌어당겼다. 쭉 끌려온 안조이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 불길한 상상 하나가 떠올랐다. 안조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절의 말.
속이 뒤집혔다. 짝사랑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해 볼 생각도 없었는데 지금 내 꼴이 일방통행 짝사랑이지 않은가.
도저히 이곳에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짧은 메모를 남기고 군부대로 돌아왔다. 이 거지 같은 숙소에 혼자 있으려니 그 모습이 꽤 처량했다.
‘내가 좋다는데 누가 날 거절하겠어?’ 하던 자신만만하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단 한 번도 거절당해 본 적이 없던지라 적지 않게 충격이었다.
‘날 거절하다니.’
역시 안조이. 쉽지 않은 이름다웠다.
* * *
안조이에게 제대로 된 고백을 하기도 전에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작전을 마치거든 한 번 더 고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참 재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순조로웠던 작전 초반과 달리 후반부에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두 대의 차량이 망가지고 다리 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폭격이 쏟아졌다.
“안조이! 앞만 보고 달려!”
“너… 너는?”
“난 에스퍼야. 내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빨리!”
안조이는 쉽사리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생존 훈련을 할 때 보았던 표정이었다. 날 걱정하는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안조이가 날 걱정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게 좋았다. 그 탓에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저 표정을 보려고.
“가! 안조이!”
안조이의 어깨를 한 번 더 밀었다. 뒤돌아 달리라고. 지금 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솔직하게 말한다면 다른 새끼들은 죽든 말든 상관없었는데, 안조이와 안조이의 말라깽이 동생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안조이가 바라는 일이니까.
등 뒤로 조금씩 멀어지는 안조이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쉴 틈 없이 쏟아지는 포탄을 막아야 했다. 힘을 끌어 올리자 파장이 뒤죽박죽 요동쳤다. 지난번에 느꼈던 대로 몸 한쪽이 망가진 것 같았다. 이 파장을 제어하기가 더욱더 어려웠다.
“윽…….”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를 꽉 물었다. 문뜩 안조이를 만나기 전 북부에서 홀로 복무하던 때가 떠올랐다. 매일매일 살인 병기처럼 힘을 쏟아 냈고 그럼에도 미련은 없었다. 힘을 몽땅 써 버리고 죽자는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안조이가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발밑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폭격이 쏟아졌고. 누더기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다리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지하에서 누군가 내 다리를 부여잡고 지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등 뒤로 날 부르는 안조이의 절박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권명!!”
그 목소리가 점점 아득하게 들려왔고 심해에 갇힌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됐다.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는 진공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으로는 쉴 틈 없이 안조이를 떠올렸다. 사진 찍듯 눈에 담아 놓았던 그 얼굴을 돌려 보았다. 색에 물든 얼굴, 장난스럽게 웃는 표정, 쫑알쫑알 말하던 입술.
그 어떤 표정을 떠올려도 마지막은 아쉬움이었다. 이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안조이에게 고백할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일, 그 일이 가장 후회됐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솔직하게 고백할 것을.
‘안조이는 어떻게 됐을까? 무사히 본국을 돌아간 걸까?’
그 순간 안조이의 옆자리에 다른 놈이 앉아 있는 상황이 그려졌다. 울먹이는 안조이의 어깨에 올려진 낯선 손. 힘을 쓰는 것처럼 열이 올랐다. 순진한 안조이를 꼬여 낼 잡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람인 척하는 로봇, 몰래 초콜릿을 건넨 놈, 안조이를 훑어보던 임 소위.
조금 전까지 떠올렸던 안조이의 귀여운 표정 하나하나가 내가 아닌 다른 놈에게 향할 걸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윽……!’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빨리 이 족쇄를 벗어 던지고 안조이에게 돌아가야 했으니까.
“흐윽… 권명…….”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버둥 치던 움직임이 뚝 끊겼다. 다시 귀를 기울이자 또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눈앞은 여전히 어둠이었다. 울먹이는 안조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울지 말라고 눈물이라도 닦아 주고 싶은데 온몸이 결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안조이와 내 사이를 가로막는 담벼락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저 담벼락만 넘으면 안조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참을 수 없이 마음이 급해졌다. 어떻게든 딱딱하게 굳어 있던 감각을 일깨웠다. 손가락, 팔, 어깨, 다리. 온몸을 비틀고 팔다리 근육이 불끈 솟을 정도로 힘을 주었다.
손가락을 시작으로 온몸의 감각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다. 어색하게 팔을 휘저으며 수면 위로 향했다. 눈부신 태양이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곳으로.
“권명! 나… 나 알아보겠어?”
“권명 대위!”
누워 있는 날 내려다보는 두 쌍의 눈이 보였다.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안조이의 귀여운 갈색 눈이었고 두 번째는 죽은 듯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로봇의 눈알이었다.
‘씨발.’
저 둘이 나란히 있는 걸 보니 예상했던 대로 내가 잠든 사이 뭔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심해에 갇혀 있는 동안 시간의 흐름 역시 느리게 흘러갈 줄 알았는데, 날 제외한 세상의 시간은 어김없이 째깍째깍 지나갔던 모양이었다. 로봇에게 아양을 떨듯 귀엽게 말하던 안조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로봇 주제에 사람한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 역시 떠올랐다.
“둘은… 뭐야…? 사귀는 거야?”
태어나서 이토록 커다란 두려움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 것인 안조이를 다른 놈에게 빼앗기는 것. 그때는 정말로 죽어야 했다.
“네 에스퍼는 누구야……?”
“…? 너잖아! 너! 난 네 가이드이고 넌 내 에스퍼잖아!”
안조이는 당황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에스퍼는 나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먹구름 낀 듯 어두웠던 마음이 평화를 되찾았다.
‘그래, 안조이 에스퍼는 나뿐이야.’
그 순간 본국으로 돌아가거든 곧바로 청혼하리라 다짐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안조이를 빼앗기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덜컹거렸었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그러니 안조이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도 그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안조이는 온종일 로봇이 아닌 나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역전된 상황에 승리자 같은 미소를 띠며 마음껏 꾀병을 부렸다.
조금만 아픈 티를 내도 안조이는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으니까. 언젠가 생각한 거지만 안조이에게 걱정받는 건 꽤 기쁜 일이었다. 팔 한쪽이라도 다쳤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러면 볼일을 볼 때마다 자지를 잡아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 * *
시추 시설 중 하나를 폭파시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아버지와 군의 합작품이었다. 형이 몰락한 이후 조금씩 줄어들던 밀수량이 마침내 뚝 끊겼다. 그러니 이번에는 당근 대신 공포탄을 날려 그들을 회유할 생각인 듯했다.
문뜩 이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형을 폭주하게 만들었던 그 일을 내가 맡는 것이. 형은 자신의 폭주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권 사장도 마찬가지였고. 어쩌면 이 기회에 형의 폭주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전을 진행하며 예상대로 형을 폭주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올곧던 형이 미쳐 버릴 만했다.
북부의 두꺼비들을 회유하던 당근이 꽤 저급한 방법이었다. 형과 형의 가이드는 북부에서 석유를 빼 오는 대가로 포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형은 두꺼비들에게 바칠 재물을 보고도 그저 그들이 국경을 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 것이라 여겼다. 형은 생각보다 더 순진했다.
“그럼 피해자들은 어떻게 됐어?”
“다 죽었죠. 일부는 먹혔을 테고.”
“먹혀?”
씨발. 가지가지 했다. 인간같이 않다고 느끼긴 했는데 그 두꺼비들이 인육 파티까지 한 모양이었다.
“지금은 쉬쉬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라네요. 척박한 땅이잖아요.”
전통은 무슨. 그저 그 마을에서 가장 약한 놈을 희생시켜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내 보자는 얄팍한 계산이었을 것이다. 인간 피를 한번 맛본 놈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더니, 지금까지 뒤로 저 짓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 중 일부와 계획을 세웠다. 폭파로 놈들과 협상을 할 생각은 없었다. 군도 아버지도 절대 원하지 않을 방법이겠지만, 늘 그렇듯 내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다. 좀 더 확실한 공포탄을 날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고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때는 실탄을 쏴야겠지.
군에서 지시한 대로 폭파 장치를 설치했다. 대원들을 아지트에 처박아 놓고 곧바로 비밀 작전을 시작했다.
“들어가. 먹을 거 구해 올게.”
“식량? 같이 가!”
등 뒤로 같이 가자는 안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안조이는 형과 비슷한 부류였다. 도덕적 결벽증을 앓고 있는 듯 올곧았다. 형이 폭주했듯 안조이도 큰 충격을 받을 테니 그런 곳까지 안조이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 도덕성을 굳이 따진다면 안조이와 형 쪽보다는 두꺼비 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두꺼비들처럼 피를 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총보다는 맨손이나 칼을 쓰는 걸 선호했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타격이나 칼을 꽂아 넣는 그 느낌 때문에.
그날 밤 근질근질하던 폭력적인 요구를 마음껏 발산했다. 복수라는 미명하에 두꺼비를 해부해 포르말린에 담갔다.
“살살 움직여. 이거 깨지면 알지?”
“으윽!”
실실 웃으며 말하자 함께 움직이던 놈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까만 천으로 가려진 유리관 끝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럴 때마다 미처 가려지지 못한 두꺼비 다리가 보였다.
“조심하라고.”
“윽… 네…….”
두꺼비 사체가 담긴 투명 유리관을 조심스럽게 차에 실었다. 이 표본은 유전협회 회원들 전원이 볼 수 있도록 협회 회의실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다. 군의 생각과는 달리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공포탄이었다.
피 냄새를 묻히고 아지트로 돌아왔다. 깊은 잠에 빠진 안조이를 껴안고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살육의 흥분으로 날뛰던 심장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주인의 냄새를 맡으며 불안함을 잠재우는 강아지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권명…? 너… 어디 다쳤어? 피 냄새 나.”
“면도하다 다쳤나 보지. 자자.”
설핏 잠에서 깬 안조이의 배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피 냄새가 난다던 안조이는 다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도롱도롱 코를 고는 귀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 역시 잠이 들었다.
* * *
본국으로 돌아온 이후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청혼이었다. 이제 사귀는 정도로도 만족이 안 됐다. 조이를 기필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참새를 묶어 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안조이의 눈높이에 맞춰 가장 합법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감금하거나, 동생을 인질로 삼는 더러운 방법이 더 꼴리긴 했지만 그런 방법을 썼다가는 다시는 조이의 동정을 받지 못할 테니 참아야 했다.
두 번째 결정은 은퇴였다. 지난번 다리 위에서 힘을 쓴 이후 확실히 깨달았다. 내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군에 있는 한 계속 힘을 써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조이를 두고 폭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폭주에 조이가 휘말릴지도 모르고.
다행히도 안조이는 이 두 가지 결정 모두를 받아들였다. 반지를 끼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긴 했지만 억지로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넣었다. 아직 서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안조이는 이제 내 것이었다.
‘내 것.’
가이딩을 받는 것도 아닌데 가슴 한쪽이 충만했다. 반지가 끼워진 네 번째 손가락을 입 안에 물고 마음껏 핥았다.
“힘들어… 그만해…….”
조이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가랑이 사이가 흠뻑 젖도록 정액을 쏟아 낸 탓이었다. 아직 질척한 그곳을 매만지며 손가락을 길게 핥았다.
“으흣… 나 못 해… 이제…….”
그 말이 사실인지 쉽게 발기하던 조이의 성기가 도통 힘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이 구멍은 여전히 야무지게 성기를 물고 있었다.
“아흣!”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잘게 흔들자 조이의 미간에 귀여운 주름이 지어졌다. 꼭 감겨 있던 눈이 힘겹게 떠지며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에도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손가락을 맛있게 빨아 먹는 내 얼굴을 본 탓이었다.
조이는 숨기려 했지만 내 얼굴에 꽤 약했다. 다행이었다. 조이에게 도통 이 얼굴이 통하지는 않는 것 같아 황당했는데 한발 늦게라도 통하는 걸 보니.
“하읏…….”
손가락을 입 안에 깊게 밀어 넣고 쭉 빨아 당기며 유혹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대로 조이를 재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조이와 똑바로 눈을 마주한 채 손끝에 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혀로 원을 그리듯 손가락 끝을 자극했다.
“왜… 손가락을…….”
기나긴 정사로 살짝 달아오른 양 볼이 붉게 물들었다. 조이는 낮게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허락한다는 표시였다. 아직 도장을 찍지 않았지만 우린 부부가 확실했다. 이렇게 마음이 잘 맞으니 원.
* * *
꿈같은 나날이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평화로운 삶. 눈을 뜨고 감는 매 순간마다 조이와 함께였다. 부지런한 참새 역시 군을 벗어나자 늦잠을 자거나 밤새도록 영화를 보는 등 모범생다운 일탈을 즐겼다.
조이는 「황혼」이라는 영화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그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보고 있었다. 늘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는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조금도 질리지 않았다. 나에게 「황혼」이라는 영화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오래된 고전 영화처럼 흑백 화면이 재생됐다.
어머니는 정략결혼임에도 아버지를 꽤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버림받은 후 인생이 끝난 것처럼 괴로워하셨으니.
형이나 나로도 채워지지 않던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어머니는 드물게 힘을 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었다. 어머니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느껴지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러 갔던 일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며칠 뒤 마주한 어머니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사인은 약물 중독이었으나 어머니는 자살한 것이었다.
“흡… 이제 좀 질린다.”
눈앞에 펼쳐졌던 흑백 영화가 막을 내리고 안조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했다. 안조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흑백이 아닌 컬러 화면처럼 기억된다는 게.
“다음에는 다른 영화를 보자.”
조이는 붉게 물든 얼굴을 숨김 채 다음에는 다른 영화를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난 안다. 다음에도 조이가 저 영화를 고를 거라는 걸. 대수롭지 않은 그런 습관을 알아차리자 조이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붉게 물든 조이의 콧등에 쪽 입을 맞췄다.
“갑자기 왜…….”
조이는 쑥스러운 듯 날 밀어냈으나 손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조이의 손을 잡아채 손등에 쪽 입을 맞추고 손목 안쪽을 핥았다. 조이는 대낮부터 이런 짓을 하는 게 퍽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아래에서 열기가 솟구쳤다.
사실 조이가 특별한 짓을 하지 않아도 아래는 늘 이 모양이었다. 언젠가 조이가 조심스럽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래쪽에 혹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 그 말 맞을지도 모른다.
“조이 형아. 사랑해. 알지?”
조이의 몸에 올라타면서 눈을 찡긋거렸다. 조이는 조금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스르륵 눈을 감았다.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환한 조명 아래 순순히 몸을 내맡긴 조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슴 한쪽이 따뜻했다. 단 한 번도 내 것이라 여긴 적 없었던 단어가 떠올랐다. 행복.
“안조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