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휴가
수도로 돌아온 후 조이는 또다시 긴 휴가를 받았다. 사실 권명이 억지로 받아 냈다는 말이 더 맞았다. 권명은 이번 작전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고, 또한 꽤 심각한 부상을 겪었기에 군에서는 삼 일 정도의 휴식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권명은 곧바로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번 작전은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며 배짱을 부렸다. 권명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내뱉은 말이었고, 군에서는 권명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조이가 예상했던 것처럼 지난번 원유협회 회원들의 잇따른 죽음은 권명의 소행이 맞았다. 권명은 10년째 원유협회를 좌지우지하던 이들을 갈아엎고, 동제국에 우호적인 이들로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그것도 순전히 권명의 입맛에 맞는 이들로.
그 일로 권명의 아버지가 크게 분노했다는 걸 봐서는, 아마도 권명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런 일을 벌인 듯했다. 권명은 요즘 무척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사관학교 때부터 권명을 옆에서 지켜봤지만, 요즘처럼 기분이 좋아 보인 적은 없었다.
“안조이. 놀러 가자.”
“놀러? 어디로?”
“하뉨. 권 사장 별장이 거기에 있어. 여기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돼. 날씨도 이곳보다는 따뜻할 거야. 갈 거지?”
조이 역시 그곳에 가고 싶었다. 하뉨이라는 곳은 처음 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권명을 찾아 헤매느라 꽤 오래 자리를 비웠기에 조하를 돌보는 것이 먼저였다. 조이의 거절에 권명은 부쩍 아쉬운 듯했으나, 조이의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그럼. 오늘 저녁에 시간 내.”
“그래!”
조이가 흔쾌히 대답하자 권명은 몸을 숙여 조이와 눈을 마주쳤다. 장난기 넘치는 눈이 예쁘게 휘어져 있었다. 근래 권명은 조이를 볼 때면 저런 눈웃음을 곧잘 짓고는 했다.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권명이 옆구리를 간질이는 것도 아닌데.
“이따 보자. 안조이!”
“……!!”
쪽. 권명은 도둑 키스를 하듯 조이의 볼에 ‘쪽’ 입을 맞추고는 사라졌다. 깜짝 놀란 조이는 한발 늦게 자신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조금 전, 권명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던 그곳에.
“이… 이놈이……!”
조이는 뒤늦게 권명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쳤다. 입꼬리를 한껏 위로 올린 채.
* * *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이의 마음은 두근두근 떨려 왔다. 휴가 기간이지만 거의 매일같이 권명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저녁은 유독 기대되었다.
권명과의 관계는 조이에게 낯섦 그 자체였다. 스무 해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관계였다. 조이의 주변에 있던 이들은 미우나 고우나 핏줄이거나, 아니면 고용 관계를 맺은 이들뿐이었다.
가족 이외의 누군가가 조이의 인생에 깊숙이 파고드는 경험은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혹시라도 권명이 지난번처럼 부상을 입고 멀리 떠나 버리는 상상을 할 때면, 조하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비좁은 인간관계만 맺어 왔던 조이에게 권명의 부재는 상상 이상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큰 기쁨이기도 했다. 권명과 함께 있으면 그냥 평범한 안조이가 된 기분이었다. 7구역 출신도 아니고, 반역자의 피도 아닌 그냥 안조이. 아버지가 사고를 치지만 않았다면 수도에서 이런 평범한 삶을 누렸을 테지.
조이는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입을 살짝 꼬집었다. 이러다가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정신 차리자. 안조이.’
조이는 하얀 세숫대야에 물을 떠 왔다. 부드러운 천으로 조하의 얼굴과 몸을 닦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꼼꼼하게. 어려서 조하를 돌보던 때가 떠올랐다.
조하의 손바닥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 조하는 반사적으로 그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었다. 모든 아기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들었지만, 조하의 반응은 유독 특별했다.
조이는 그때를 떠올리며 손가락 하나를 조하의 손바닥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저 옛 기억을 떠올릴 생각에 한 행동이었는데, 조이는 벌떡 몸을 일으켜야 했다.
“조… 조하야?”
조하의 손이 조이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조이는 떨리는 눈빛으로 조하의 얼굴을 살폈다. 조하의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뜰 듯.
“조하야! 형이야! 조하야!”
조이는 조하의 볼을 살짝 두들기며 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외쳤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고, 이제 안전하니 눈을 떠도 된다고 소리쳤다.
“중위님! 갑자기 이러시면 안 돼요!”
때마침 병실 안으로 들어서던 간병인이 조이를 말렸다. 조이는 놀란 표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한 채 더듬더듬 말했다.
“조하가… 조하가……!”
“눈 말씀하시는 거죠?”
조이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간병인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태의 환자들은 종종 그런 반응을 보일 때가 있어요… 안면근육을 움직인다거나, 방금 보신 것처럼 눈꺼풀을 움직인다거나…….”
“깨어나려고요……?”
“아니요… 일시적인 반응이에요…….”
“소… 손은요? 제 손을 잡았어요. 이렇게…….”
조이의 손가락을 꽉 쥐고 있던 조하의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간병인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조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내가 꿈을 꾼 걸까……?’
조이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보았던 모든 것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조이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간병인은 조이에게 물을 한잔 가져다주며 말했다.
“진정이 좀 되세요?”
“네…….”
“다른 보호자분들도 이런 현상을 보면 다들 중위님처럼 놀라고는 해요.”
“네…….”
조이는 간병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그 모든 일이 어쩌면 조이의 간절함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하의 상태가 증명하고 있었다. 조하는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하아…….”
“저… 오늘 저녁에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벌써…….”
권명과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이는 애써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헛것을 보고 소란을 피운듯해 얼굴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죄송해요… 그리고… 급하게 연락드린 것도 그렇고.”
“아니에요. 안 그래도 조하를 통 못 봐서 먼저 연락드릴까 했어요.”
수색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조이는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만회하듯 홀로 조하를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권명과의 갑작스러운 저녁 약속으로 조이는 간병인에게 연락을 취해야 했다. 간병인은 흔쾌히 조하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깊은 잠에 빠진 조하를 간병인은 꽤 예뻐했다고 들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음에도, 조하의 얼굴은 구출 직후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그 탓인지 조하의 귀여움도 슬그머니 드러나는 듯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예. 제가 잘 돌볼게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얼굴이…….”
“아… 잠을 설쳤어요.”
조이는 그제야 간병인의 얼굴을 살필 정신이 들었다. 간병인의 얼굴은 조하를 부탁하기 미안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잠을 설쳤다는 말이 맞는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눈 밑이 거뭇거뭇했고 피부도 거칠거칠해 보였다.
“안 좋은 일이 있으신 거 아니죠?”
“아휴. 아니에요. 어서 일 보세요! 어서!”
피로보다는 근심이 큰 것 같았다. 실종됐다던 아들 때문인 걸까? 조이는 한 번 더 괜찮은지 물을까 했으나, 간병인은 어서 나가 보라며 조이의 등을 떠밀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이는 마지못해 보풀이 난 카디건을 입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 * *
병원 앞에는 권명이 조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까지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 설탕을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북부에서 권명을 찾아 헤매던 그 일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때의 눈은 조이의 앞을 가로막는 장해물이었는데, 지금은 권명을 향해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처럼 느껴졌다.
권명은 병원 앞에서 꽤 서성거렸는지, 권명 주변으로 정신없이 발자국이 나 있었다. 천하태평인 권명도 고민할 게 있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이 하얀 안개처럼 하늘 위로 날아가 흩어졌다. 만화에서처럼 조이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저 말을 손으로 잡아 확인하고 싶었다.
‘무슨 말이었을까?’
조이는 권명의 이름을 부르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권명은 꽤 그럴듯해 보였다. 입만 열었다 하면 유치한 소리나 이상한 소리를 싸질러서 그렇지, 멀리서 보니 수도의 도련님 그 자체였다.
“안조이!”
한발 늦게 조이를 발견한 권명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전에도 봤건만 뭐가 저리도 반가운 걸까?
“뭔데? 왜 보자고 한 거야?”
조이는 오후 내내 이 만남을 기대했음에도 새침한 말투로 말했다. 권명은 조이의 물음에도 조이의 허름한 옷차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옷을 입고 올걸.’
조이는 뒤늦게 자신의 옷차림이 권명과 비교했을 때 무척 초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추워 죽겠는데 옷이 이게 뭐냐?”
“내 옷이 뭐! 멀쩡하기만 하네.”
“자. 들어와.”
“……??”
권명은 코트 앞섶을 풀어 헤치더니 조이에게 파고들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다. 지나치게 단 것을 먹고 탈이 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징그럽거든!”
조이가 기겁을 하자, 권명은 느끼한 표정을 지으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조이는 더욱더 닭살이 돋아 팔을 벅벅 긁었다. 조이의 구겨진 표정이 꽤 웃긴 모양인지 권명은 고개를 뒤로 젖혀 가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권명은 검은색 코트를 벗어 조이에게 건넸다.
“자. 옷 바꿔 입어.”
“뭐? 내가 왜?”
“바꿔 입어!”
권명은 떼를 쓰듯 꽥 소리를 질렀다. 조이가 머뭇거리며 옷을 받지 않자, 권명은 조이의 낡은 카디건을 빼앗듯 거칠게 벗겨 냈다.
“나는 옷태가 좋아서 이런 것도 잘 소화해.”
“퍽이나.”
권명의 옷은 무척 따뜻했다. 가벼워 보이는 코트였는데, 특수소재로 만든 것인지 구멍이 숭숭 난 조이의 카디건보다 훨씬 따듯했다. 조이는 힐끔 권명을 바라보았다. 권명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조이의 엉덩이를 가릴 정도로 늘어난 카디건이 권명에게는 거의 딱 맞았다.
‘늘 고급스러운 것만 걸치던 권명이 낡은 카디건이라니.’
그런데 낡은 옷을 걸친 권명에게서는 여전히 도련님 냄새가 풀풀 났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이는 그 냄새의 근원을 알아차렸다.
권명은 시간을 확인하려는지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눈인 조이가 보기에도 꽤 고가인 시계가 손목에서 반짝거렸다. 지금 보니 권명은 거지인 척하는 왕자님 같았다. 조이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지이고.
“빨리 가자, 시간 없어.”
“어디 가는 건데?”
“가 보면 알아! 빨리!”
권명은 조이의 손을 꽉 움켜쥐고는 어디론가 이끌었다.
* * *
권명이 조이를 끌고 가듯 데려간 곳은 투뤼에서 보기 드문 2층짜리 건물 앞이었다. 언젠가 길을 걷다 몇 번 본적이 있었다. 화려한 스크린이 아닌 고전적인 방법으로 그려진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던 곳. 극장이었다.
“여긴 왜?”
“「황혼」을 아직 안 봤다며. 마침 재개봉했더라고.”
“난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일전에 권명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는 조이의 말에 외계인을 본 듯 놀랐었다. 「황혼」이라는 영화가 꽤 유명한 영화인듯했다. 조이는 그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영화관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권명은 어둑어둑한 영화관 정중앙으로 조이를 이끌었다.
“잠깐 기다려. 마실 거라도 사 올게. 뭐 마실래?”
“커피.”
“아냐. 넌 콜라 마셔. 그게 어울려.”
“그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거야?”
조이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권명은 피식 웃더니 사라졌다. 조이는 촌놈처럼 극장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지만 아주 깨끗했다. 7구역과는 전혀 달랐다.
7구역에도 극장은 꽤 많았다. 하지만 7구역의 극장은 어린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포르노에 가까운 야한 영화만 주야장천 틀어 줬었다. 7구역을 담당하는 구역장의 정책 때문이었다. 3S. 섹스, 스포츠, 스크린.
20세기 작은 반도의 독재자가 시행했다는 우민화 정책을 따라 한 것이었다. 야한 영화가 매주 금요일마다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일요일이면 격렬한 미식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7구역 사람들은 자극적인 스포츠와 스크린에 빠져 깊은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깊이 있는 영화란 7구역에서 유니콘과 비슷한 존재였다. 조이는 「황혼」이라는 영화가 꽤 궁금해졌다. 분명 7구역에서 보던 포르노랑은 다를 테지. 수도의 영화니까.
“자.”
“이건……?”
“조금만 먹어. 저녁 먹어야 하니까.”
권명은 엄한 부모님처럼 조이에게 우스운 당부를 하며 팝콘을 건넸다. 영화관에서 이런 걸 먹어도 되는 걸까? 7구역의 극장에서는 음식 섭취가 금지였다. 하지만 그걸 지키는 사람들을 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스크린을 향해 술병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거 먹으면 쫓겨나는 거 아냐……?”
“뭐? 쫓겨난다고?”
권명은 조이의 물음에 또다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영화가 시작된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이쪽을 바라볼 정도로 큰 웃음소리였다. 권명은 조이의 머리를 마구 비비며 언젠가 보았던 그 표정을 지었다.
“너…! 그 표정 하지 마!”
권명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조이는 소름이 돋았다. 저런 표정을 받아 마땅한 이는 조하 정도였다. 조이가 아니라.
“그럼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하면 안 걸리겠지?”
권명은 조이의 어깨를 감싸 안더니 자신의 품 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조이의 옆에 커다란 벽이 세워진 기분이었다.
“어서 먹어. 나 정도 덩치면 앞에서 떡을 쳐도 안 보일걸?”
“그런가……?”
조이는 안심한 채 팝콘 하나를 입 안에 넣었다. 살살 녹았다. 권명은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조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이지?
* * *
영화가 모두 끝나고 조이는 잠시 얼굴을 숨겨야 했다. 주인공 둘이 설원에서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코가 시큰했다. 조금 전까지 화면 가득 보였던 그 장면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것 같았다. 조이는 눈을 비비는 척하며 눈물을 훔쳤다.
‘통속소설에서 보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이게 진짜지.’
“흡… 쪼금 지루했다. 그렇지?”
조이는 다 큰 사내가 눈물을 보인 것이 창피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권명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눈치 빠른 놈이 어쩐 일이지……?’
사실 권명은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 같지 않았다. 한번 본 영화여서 그런지 영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불안한 일이라도 있는지 양다리를 번갈아 가며 떨어 댔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힐끔힐끔 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이는 권명이 할 말이라도 있는 건지 싶어 귀를 가져다 댔는데, 그때마다 권명은 영화를 보라고 말할 뿐이었다.
조이는 문뜩 권명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앞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권명은 말을 가려서 하는 편이 아닌데,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도 고르는 걸까?
영화관 앞으로 나가자 또다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평생 볼 눈을 이곳에서 다 보는 듯했다. 또 눈이라니. 권명은 조이의 머리 위로 우산처럼 손을 펼치더니 잠시 걷자고 말했다.
“조금만 가면 돼.”
어디로 가냐는 조이의 물음에 권명은 얄밉게도 ‘비밀’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조이는 순순히 권명을 따라갔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건만 거리는 한적했다.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밤이었다. 권명과 조이는 나란히 눈을 맞으며 걸었다. 조이는 조금 전에 보았던 영화 속 장면을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권명은 조이처럼 나름대로 생각할 게 많은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 왔어. 여기야.”
권명이 안내한 곳은 투뤼식 전원주택이었다. 지난번 태혁이 소개한 곳과 비슷해 보였다. 도련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거였던가? 집을 빌리는 게?
“마음에 들어?”
“응… 뭐. 근데 다들 이렇게 집을 빌리나 보네?”
“다들?”
“응. 태혁이… 흡!”
금기어를 내뱉은 조이는 하던 말을 주워 담았다. 하지만 이미 그 단어를 들어 버린 권명은 뿌연 연기를 내뿜는 기관차처럼 콧김을 뿜어냈다. 보기 좋게 휘어져 있던 눈도 위로 삐쭉 솟아올랐다.
“네가 그걸 어떻게……!”
버럭 성질을 내려던 권명은 한숨을 내쉬며 화를 가라앉혔다. 이가 갈릴 듯 억눌린 목소리로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하아… 아니다. 후우… 들어가. 안조이.”
“……?!”
조이는 권명의 표정을 힐끔 바라보았다. 애써 화를 꾹꾹 눌러 담는 표정이었다. 권명의 저 지랄맞음도 참을 수 있는 거였다니. 조이는 어쩐지 저런 모습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다행히도 식사가 시작되자 조이의 불안한 마음도 눈 녹듯 사라졌다. 권명은 또다시 제비 짓을 하려는지 귓가로 은은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황혼」의 사운드트랙이었다. 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자,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행복한 미래를 보여 줄 것만 같았던 한 쌍이 헤어져야만 했던 비극을 그린 영화 「황혼」.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마음이 조이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권명과 헤어져 있는 동안 조이가 느낀 감정 역시 그와 같았으니까. 그 때문에 황혼이라는 영화가 더욱 감명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안조이. 디저트까지 다 먹어야 해.”
권명은 협박하듯 조이의 그릇에 커다란 고기 조각을 덜어주었다. 지난번부터 권명은 조이를 잘 먹이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그 탓인지, 요즘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고는 했다. 동생인 조하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건만, 조이의 얼굴은 나날이 좋아지니, 여간 머쓱한 것이 아니었다.
“와인?”
“응. 한 잔만 할래.”
보는 사람도 절로 불안하게 하던 권명은 어디로 갔는지 권명은 차분하게 와인을 따라 주었다. 조이는 드물게 입맛이 돌아 권명이 건넨 커다란 고기 조각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옆에 있는 으깬 감자까지.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해졌는데, 권명은 셔벗이 남았다며 그것까지 꼭 먹어야 한다고 난리였다.
“조금만 먹을래. 배가 터질지도 몰라!”
“자. 조금.”
조금이라고 말해 놓고 조이의 셔벗은 고봉밥처럼 수북했다.
“진짜 배부른데…….”
“레몬 셔벗이야. 오히려 먹고 나면 속이 더 편할걸?”
정말로 그랬다. 상큼하게 퍼지는 레몬 향이 혀를 춤추게 했다. 배가 부른데도 입에 침이 고이는 맛이었다. 셔벗을 이리저리 퍼먹고 있는데, 권명의 다리가 또다시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쯤 되니 도저히 저 모습을 무시하고 넘길 수 없었다.
“권명. 너 뭔 일 있어?”
조이는 슬슬 권명이 걱정되었다. 권명이 저 정도로 긴장할 일이 무엇일까? 아까부터 할 말을 고르는 것 같은데, 설마 사귀자는 말을 하려고 저러나?
조이와 권명의 관계는 그런 말을 하기에 너무 애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 후 한 단계씩 밟아 가는 순서를 모두 건너뛰었으니까.
물론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권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권명 역시 알지 않을까? 조이와 권명이 연애 비슷한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조이.”
권명은 조이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일으켰다. 드르륵 나무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큼성큼 조이의 앞으로 다가온 권명은 구애하는 왕자님처럼 무릎을 꿇었다.
“왜… 왜 그래……?”
늘 장난기 넘치던 권명이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수록 조이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혹시 지난번 검진 결과가 안 좋게 나온 건 아닐까? 암이나, 백혈병.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였다.
조이의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권명은 조이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더 불안하게 떨리는 것은 권명의 동공이었다. 늘 당당하던 권명이 저런 표정을 짓는다니.
“권명……?”
“후우…….”
권명은 큰 결정을 내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조이가 조하의 주먹 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듯, 권명은 조이의 손안에 뭔가를 밀어 넣었다.
‘이게 뭐지?’
조이는 곧바로 손바닥을 펼쳐 볼 생각이었다. 권명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만 아니었다면.
“안조이, 결혼하자.”
“뭐… 뭐?”
조이는 자신의 손안에 있는 물건을 예상할 수 있었다. 반지일 것이다. 그 순간 이 작은 반지가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조이는 멍하게 권명을 바라볼 뿐이었다.
“결혼하자고.”
“사귀는 게 먼저 아니야?”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헤어지면 그만인데. 그러니까 결혼해!”
권명은 떼를 쓰듯 결혼하자고 소리쳤다.
“뭐……?”
권명의 눈에는 조이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권명은 조이의 손을 펼쳐 부담스러운 반지를 끼워 주려 했다. 조이는 자꾸만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방어와 공격이 오가는 손가락 싸움이 끝이 나고, 조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 마침내 반지가 끼워졌다.
“결혼식은… 지금은 어렵지만, 조만간 끝내주게 치르자. 하뉨에서.”
권명은 꼭 하뉨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체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이러는 걸까. 오늘 오전 권명은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했었다. 아마 그곳에서 이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보수적인 7구역과 달리 수도는 동성끼리의 연애나 결혼이 퍽 자유로운 곳이었다. 때문에 권명과의 결혼도 불법적이거나 세간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니…….’
조이는 권명이 좋았다. 늘 조이를 웃음 짓게 하니까. 하지만 결혼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다.
조이는 마주 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권명의 손가락이 조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꽉 부여잡고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지만 조이의 마음은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조이 역시 권명과 쉽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권명이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원한다면 조이 역시 따를 생각이었다.
“조만간, 큰 작전 하나를 맡게 돼. 그 작전을 끝으로 은퇴할 생각이야.”
“은퇴? 군을 나간다고?”
군은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또 함부로 나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특히 에스퍼와 가이드라면 더더욱 쉽지 않았다. 군에서는 안 그래도 만성적인 돌연변이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돌연변이에게만 제대가 허락되었다. 정신적으로 망가지든, 육체적으로 망가지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거야?”
“다른 놈들은 안 되는데, 나는 돼. 아주 큰 건 하나만 해결하면. 그건만 해결하면 너랑 나, 둘 다 제대할 수 있어.”
“…….”
제대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군 생활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찍 제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이딩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든 제대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만약 이대로 제대를 하게 되면 조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고민에 휩싸인 조이의 표정을 살피던 권명은 혹시 군에 남고 싶은 것이냐고 물었다.
“아니! 제대할 수 있다면야… 좋지. 근데… 그럼 우린 어디로 가? 또 뭘 먹고 살고?”
조이는 권명과 함께하는 미래를 떠올려 봤다. 어디에서 살게 될지, 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오히려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평온함, 안정감이 떠올랐다.
조이의 현실적인 물음에 권명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안 어울리게 진지한 표정을 하던 권명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리자 조이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안조이.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넌 그냥 가고 싶은 곳을 찍기만 해. 그럼 우린 그곳으로 갈 거야.”
“4구역이어도?”
“응. 4구역이어도.”
“그… 권 사장 별장이 있다는 하뉨도?”
“응. 하뉨도.”
그 순간 왜 7구역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조이에게 끔찍한 기억만 가득한 곳인데, 돌아갈 곳을 상상하니 7구역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찌 되었든 조이가 반평생을 보낸 곳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차마 7구역으로 함께 갈 것인지 권명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죄로 한순간에 추락한 어머니가 떠올라서였다. 만약 조이가 아버지처럼 권명을 7구역에 끌어들이는 짓을 저지르거든, 조이는 기필코 혼자 떠날 것이다. 절대 권명을 어머니처럼 만들 수 없으니까.
“서제국만 아니면 다 돼.”
권명은 또다시 장난을 치듯 서제국에 갔다가는 그대로 암살이라며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근데 그 큰 건이라는 게, 대체 뭐야? 엄청 위험한 거 아냐?”
“위험한 일 아냐. 내가 아는 모든 정보와 인맥을 군에 넘기는 일이야. 권 사장은 기업 기밀을 팔아넘겼다고 난리를 피울 테지만, 뭐… 그거라도 팔아야지.”
“정말로?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응. 정말로. 대신 N62 구역에 잠시 다녀와야 해.”
“N62 구역?”
권명은 유전협회에 꽂아 놓은 인맥을 군에 넘겨야 하기에 북부에 잠시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조이는 권명을 따라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그 일만 아니었다면 분명 조이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조하…….’
간병인은 오늘 조하가 보인 반응이 그저 뇌사 상태의 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어쩐지 조이는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며칠 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안조이. 그리고 이거 받아.”
“이게 뭐야?”
“통신구.”
권명은 자신이 쓰던 거라며 주머니에서 통신구 하나를 꺼냈다.
“이걸 왜?”
“왜긴! 매일 밤 통화해야지. 그것도 영상통화로. 너 새장가 들려는 건 아닌지 감시할 거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조이는 권명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러니까 딴짓하지 마. 난 다 알아! 알겠어?”
조이가 아버지 탓에 바람기가 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의심을 하다니. 사실 진짜 걱정되는 사람은 권명이었다. 괴팍한 성격만 빼면, 권명은 꽤 그럴듯해 보이니까. 북부 방언도 능숙하게 하던데, 누구 하나 꼬시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참나! 그러는 너는. 너나……!”
“나? 나 뭐?”
눈치 빠른 권명은 조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어서 계속 말해 보라며 조이의 앞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너… 너도 하지 마! 알겠어?”
“뭘 하면 안 되는 건데?”
능구렁이 같은 표정. 저리도 노골적으로 물어 대니, 조이도 노골적으로 답해 줄 수밖에.
“아랫도리 조심하라고!”
“걱정하지 마. 조이 형아! 내 자지는 조이 형아 거야. 지금 당장 증명할 수도 있어!”
권명은 지금 당장 증명해 보이겠다며 조이를 강아지 들듯 들어 올렸다. 조이가 비록 권명에 비하면 몸집이 작은 편이지만, 이렇게 쉽게 들리다니.
“내… 내려놔! 내가 무슨 짐짝이냐!”
조이는 내려놓으라고 꽥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권명은 그런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조이의 귓가로 낯간지러운 말을 속삭였다. 권명의 입에서 나왔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직한 말.
“안조이. 정말 사랑해.”
* * *
“아흣… 아하… 아으흣!”
침구를 꽉 움켜쥔 조이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쾌감에 상체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를 악물고 참아 보려 했지만 가냘픔 신음 소리가 조이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잠깐… 하읏…….”
권명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잠시만이라고 외치자 성기를 머금고 있던 얼굴이 조이를 올려다보았다.
‘야해…….’
조이가 권명의 물건을 입에 물었을 때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는 더러운 모습이었는데, 권명은 섹시했다. 요령이 좋은 건지 아니면 조이의 물건이 그리 버겁지 않은 건지 권명은 그 와중에도 멀쩡한 얼굴이었다.
“싸꺼가타?”
“빼… 빼고 말해!”
“쌀 거 같냐고.”
“응… 이제 손으로 해 줘.”
하지만 권명은 조이의 말을 순순히 들을 위인이 아니었다. 조이의 말을 무시한 채 권명은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아아!!”
입 안 깊숙이 성기를 물고 강하게 빨아 당겼다. 성기가 얼얼할 정도로. 앞에서 올라오는 쾌감도 쾌감이지만 구멍을 들쑤시는 손가락 세 개가 더 참기 힘들었다.
앞과 뒤를 동시에 자극당하자 조이의 몸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뒤를 파고드는 손가락이 그곳을 꾹 누를 때마다 천장에서 줄이 내려와 조이의 상체를 끌어 올리는 듯 튀어 올랐다.
낚싯바늘에 걸린 활어처럼 조이의 몸이 펄떡거렸다. 권명은 도망가려는 물고기를 잡아채듯, 조이의 골반을 꽉 움켜쥐었다. 손자국이 벌겋게 날 정도로 강한 힘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모든 감각은 쾌감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아흣… 아… 아……!”
달리기를 하듯 조이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미하는 뱀처럼 온몸을 배배 꼬던 조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했다. 때맞춰 권명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성기에서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흣!!”
새된 비명과 함께 조이의 턱이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아찔한 느낌에 두 눈이 질끈 감겼다. 누군가 머리를 거세게 후려친 듯 별이 보였다.
“아흐… 하아… 으윽……!”
뜨거웠던 권명의 입에서 빠져나온 성기 위로 찬 기운이 느껴졌다. 조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조이의 성기를 실컷 맛본 권명은 커다란 덩치를 일으켰다.
“며칠 안 했다고 꽤 찐해. 봐 봐.”
권명은 자신의 입 안에 하얗게 고여 있는 정액을 보여 주려 했다. 조이는 한 번 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정액 맛이나 색깔 같은 건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다.
“어땠어? 좋았어?”
“하아…….”
조이는 대답 대신 거칠게 숨을 내쉴 뿐이었다. 조이의 묵묵부답이 꽤 자존심 상했는지, 권명은 조이의 얼굴을 꽉 움켜쥐며 되물었다.
“안조이. 좋았냐고 묻잖아.”
조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고약한 권명은 기어코 조이의 입에서 좋았다는 말이 흘러나오길 바라는 듯했다. 턱을 움켜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어…….”
“어? 똑바로 말해. 안 그러면 좋았다는 말 나올 때까지 빨 거야. 더 빨아?”
“조… 좋았어!”
그제야 권명은 피식 웃으며 조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늘 그렇듯 쫓기듯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권명은 어쩐 일인지 조이의 옆에 몸을 뉘었다.
권명은 오늘 확실히 이상했다. 조이의 몸을 달구고 나면 권명은 조이의 가랑이를 쫙 벌리든가 아니면 몸을 휙 뒤집고는 했다. 그러고는 저 말도 안 되는 물건을 쑤컹쑤컹 쑤셔 넣었었다.
“근데 조이 형아. 우리도 이제 애칭을 정할 때가 된 것 같아.”
“애칭……?”
“어. 내가 생각해 봤는데, 형 거는 귀여우니까 탄피로 하고, 내 것은 바주카포야. 어때?”
어쩐지 저 애칭이 사이즈에 따라 정해진 느낌이라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조이의 물건이 권명에 비하면 작다지만 탄피라니. 고작 그 정도 취급받을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싫어. 내 것은 TNT로 해.”
군에 있는 단순 무식 수컷들은 TNT라는 포탄을 보며 성기를 떠올리고는 했다. 누군가의 성기가 꽤 실하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면 곧바로 TNT만 하냐는 물음이 따라붙었었다. 조이의 물건이 물론 그 포탄만 하지는 않지만, 이왕 선택할 수 있다면 큰 물건으로 불리고 싶었다.
“TNT? 너무 과한 거 아냐?”
“그러는! 너도… 그건 아니잖아!”
권명의 물건이 꽤 크긴 하지만 바주카포 정도는 아니었다. 그 물건이 조이의 뒤를 쑤셨다면, 조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
“알았어. TNT. 그럼 앞으로 밖에서 떡치고 싶을 때는 이렇게 말할게. TNT 따먹고 싶다. 어때? 비밀스럽지?”
“비밀……?”
명사가 문제가 아니라 동사가 문제였다. 저 말을 꺼내는 곳이 과수원이 아닌 이상 무엇을 뜻하는지 모두가 알아차릴 것이다. 아무리 조이가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라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조이는 진지하게 적당한 동사를 떠올려 봤다. 권명은 이런 대화가 퍽 재미있는지 피식피식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먹고 싶다는 말 말고… 쏘고 싶다고 하는 건 어떨까?”
반동분자, 테러리스트처럼 들릴 테지만. 조이와 권명은 어찌 되었든 군인이니, 차라리 저렇게 말하는 게 더 비밀스럽게 들릴 것 같았다.
“쏘고 싶다?”
“어…….”
“좋아. 바주카포 쏘고 싶다! 지금 당장! 세 발 정도!”
권명은 명랑한 말투로 소리치며 조이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또 무슨 해괴한 자세로 그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권명은 조이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앉히더니 벽 쪽을 가리켰다.
‘이… 변태!’
벽면 한쪽에 거울이 있었다. 권명의 덩치도 담을 정도로 커다란 거울.
“지난번에 보니까. 거울 보면서 잘 싸더라고. 그래서 준비했어. 잘했지?”
“그… 그거 아니거든!”
권명은 칭찬을 기대한 듯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이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거울을 보며 쌌다고 말하면 지독한 자아도취 환자였고, 솔직하게 뒤에서 느껴지는 권명의 물건 때문에 쌌다고 하면 권명이 실실 웃으며 좋아할 게 뻔했다.
조이의 마음속 청개구리는 권명이 웃는 꼴은 절대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니면? 아니면 왜 싼 건데?”
권명은 이미 조이의 입에서 나올 말을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호락호락하게 그 말을 내뱉을 생각은 없었다.
“바주카포… 쏜다며…….”
“하?”
조이가 말을 돌리듯 엉뚱한 말을 내뱉자 권명은 조이의 머리를 마구 비벼 댔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조이의 머리를 꽉 깨물었다. 미친놈.
“악! 아파!”
“으이그! 안조이!!”
권명은 조이의 다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 탓에 조이의 엉덩이가 벌어지며 빨간 구멍이 드러났다. 거울 속 조이의 모습은 타인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이런 자세로 거울을 본 적이 없거니와, 저 구멍은 부끄러움을 모르는지 성기를 달라며 벌렁거리고 있었다. 권명의 뚫어질 듯한 시선은 물어볼 것도 없이 구멍에 닿아 있었다. 조이의 얼굴이 붉게 불타오를수록 권명의 표정은 밝아졌다.
“하아… 안조이. 다음에는 저 맛있는 구멍을 실컷 빨아 줄게. 질질 쌀 때까지. 혀를 깊게 쑤셔 넣어서 내벽을 핥…….”
“그… 그냥 해!”
민망함에 조이는 그냥 하라고 소리쳤다. 권명은 피식 웃으며 커다란 물건을 작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이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충격에 빠졌다. 저리 큰 물건을 어떻게 받아 내는 걸까? 그리고 뱃가죽 위로 솟아나는 저건 무엇인가? 이대로 구멍이 망가져 버리는 건 아닐까?
“나…! 나… 읏. 안 할래! 아흐. 안 본다고!”
겁에 질린 조이는 저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조이의 표정이 무슨 효과를 일으킨 것인지 권명의 눈은 완전 맛이 갔다. 거울을 노려보며 조이를 장난감처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반으로 접힌 상태로 권명의 물건에 처박힐 때마다 조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울먹였다. 이렇게 노골적인 장면을 본 적이 없기에 무서웠다.
“아흣! 아…! 아흐……!”
“하아… 안조이. 네가 보기에도 맛있지? 윽… 그렇지?”
조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울먹였다. 무서울 정도로 핏줄이 불끈 솟은 살 기둥이 빨간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그 모습이 기괴했다. 그동안 저런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싫어! 안 볼 …읏… 래. 싫…다고!”
“구멍 좀 봐 봐. 좋다고 받아먹잖아.”
조이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한 번 더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권명이 조이를 밀쳐 엎드리게 만들었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저런 노골적인 장면을 눈앞에서 보지 않아도 되니까. 권명은 조이의 엉덩이를 잡아 벌리더니 곧바로 성난 살 기둥을 쑤셔 박았다.
“아아!”
한 번, 두 번 천천히 넣었다 뺀 것으로 권명의 다정함은 끝이 났다. 조이의 골반을 꽉 움켜쥐며 말을 타듯 빠르게 허리를 놀렸다.
“아흣! 아흐……!”
“하아. 안조이. 거울 한번 봐 봐. 그때처럼 싸는 거 보여 줘.”
“하읏… 아…! 우욱!!”
조이는 고집스럽게 눈을 감았지만, 엉덩이에 음모가 닿을 정도로 깊숙이 성기가 박혀 올 때마다 헛구역질을 하듯 입이 벌어졌다. 볼기를 맞는 것처럼 퍽퍽 소리가 들려왔고 조이의 몸이 또다시 정신없이 흔들렸다.
“아읏! 아아! 사… 살살… 아흐……!”
권명은 조이의 애원이 들리지 않는 건지 거침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공격하듯 불기둥을 쑤셔 박았다. 머리가 쿵쿵 울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고, 조이의 이성을 함락하는 움직임이었다.
“하읏! 아아…! 하읏!”
부들부들 떨리던 조이의 팔이 뒤에서 밀려오는 강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권명은 무너지는 조이의 몸을 들어 올렸다. 권명의 가슴에 조이의 등이 닿았고 아까와 같이 조이는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성기의 각도가 달라지며 조이가 느끼는 그 부위를 더 지독하게 누르고 있었다.
“아흣!!”
조이는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런 조이를 핥는 듯 바라보며 권명은 고환까지 쑤셔 넣을 듯 푹푹 성기를 밀어 넣었다. 한계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 그곳이 공격당할 때마다 가까스로 잡고 있던 이성이 흐릿해졌다.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던 그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여기? 이렇게 해 줘?”
“아…! 응! 흐으읏…….”
조이는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권명은 조이의 상체를 꽉 끌어안으며 절정을 향해 내달렸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아찔함과 함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 탓에 온 세상이 흐릿해 보였다.
“아흐… 아읏! 제… 제발! 제발!! 아흐흣!!”
누구를 향한 애원인지 모르지만, 조이는 구걸하듯 제발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 귀두가 그곳을 ‘쿵’ 찍어 누르는 순간 조이의 성기에서 우윳빛 액체가 빗방울처럼 튀어 올랐다. 투명하게 조이의 모습을 비추던 거울 위로.
권명은 조이의 성기에서 정액을 짜내듯 그곳을 재차 쿵쿵 때렸다. 그 움직임에 맞춰 조이의 성기에서는 주체할 수 없이 물이 흘러나왔다. 조이는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쾌락에 조이는 완전히 함락당했다.
권명은 엉엉 오열하는 조이의 얼굴을 잡아채서는 뺨을 핥았다. 목마른 짐승이 물을 핥아 먹듯 길게.
“안조이. 거울 좀 봐 봐. 나 오늘 밤새도록 쌀 수 있을 것 같아. 안조이… 하아…….”
눈 위까지 핥아대던 권명은 조이의 얼굴을 잡고 거울 속 낯선 형체를 가리켰다. 붉게 열이 오른 몸. 눈물과 침으로 흠뻑 젖은 얼굴. 쾌락에 잠식당한 눈. 거울 속 저 모습은 도저히 조이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조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으…….”
배 속을 꽉 채우던 커다란 물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허전함에 구멍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침대 위로 허물어진 조이의 몸 위로 권명의 입술이 닿았다. 닿지 않는 부위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안조이… 안조이…….”
새끼를 돌보는 어미 개처럼 조이의 온몸을 핥던 권명이 조이의 이름을 불렀다. 쾌락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조이를 진정시키듯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조이는 홀린 듯 눈을 떴다. 그곳에는 짙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권명…….”
조이는 손을 올려 권명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던 짐승처럼 권명은 조이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밝은 빛이 조이의 눈을 간지럽혔다. 수면과 함께 잠들어 있던 통증이 서서히 깨어났다. 조이의 입에서 ‘아이고’ 하는 신음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청혼을 받아들인 날 이후로 조이는 거의 매일 밤 권명과 격렬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놀고먹는 권명은 힘이 넘쳤고, 조이는 쾌락에 약했다. 밤새 가랑이를 벌리고 있던 탓에 뼈가 어긋난 것 같았다. 커다란 성기를 머금고 있던 구멍 역시 온전하지는 못했다. 그곳에서 여전히 뜨거운 열감이 느껴졌다.
“아흐…….”
“일어났어? 물 줄게. 입만 벌려.”
조이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입을 ‘쩍’ 벌렸다. 조이의 입 안으로 차가운 혀와 얼음이 파고들었다.
“으흣…….”
엄지손톱만 했던 얼음이 뜨거운 체온에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조이는 아직 목이 말랐다.
“더… 더 줘.”
“지금 성기 물리면 난 개새끼인 거지?”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은근슬쩍 조이를 떠보는 것 같은데, 지금 조이의 입에 성기를 물린다면 단언컨대 개새끼였다. 안 그래도 온몸이 망가졌는데, 더 했다가는 권명의 도움 없이도 은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가사 제대로.
조이는 매섭게 권명을 노려보았다. 권명 본인도 꽤 찔렸는지 조이의 입에 순순히 물컵을 가져다 댔다.
“조이형. 체력 좀 키워 봐. 우리 앞으로 할 플레이가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비실거리는 거야. 지난밤 약속한 것도 있잖아.”
권명은 지난 밤 숨기고 있던 성적 판타지나 페티쉬를 솔직하게 털어놓자고 제안했었다. 사실 페티쉬가 뭔지도 잘 모르는 조이는 그다지 할 말이 없었는데, 권명은 기다렸다는 듯 말도 안 되는 페티쉬를 마구 쏟아 냈었다. 괴상한 상황극이나, 상상도 못 할 장소에서의 섹스.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조이는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는데, 격렬한 삽입 중 권명은 정신이 반쯤 나간 조이에게 그중 몇 가지는 꼭 함께 해 보자고 강요했었다.
신경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쾌락에 절어 있던 조이는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두고 조이가 약속했다고 하다니. 양심도 없다.
권명은 조이의 성화에 못 이겨 종합 검진을 받았었는데, 결과표를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은 없었다.
‘신기하네. 저렇게 돌았는데…….’
권명은 조이가 먹다 남긴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권명 역시 몇 시간 못 잤을 텐데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보양식을 해치운 것처럼 얼굴에서 광이 났다. 조이는 괜스레 저 반질반질한 낯짝이 얄미웠다. 권명의 볼을 꽉 꼬집었다.
“아?!”
권명은 그럼에도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허허실실 웃고 있었다. 막 이가 나기 시작한 강아지에게 물린 것처럼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침 먹어야지. 오늘부터 특급 관리를 해야겠어.”
“특급 관리?”
권명은 밥보다는 잠이 더 고프다는 조이를 번쩍 들어 올려 식탁 의자에 내려놓았다. 권명이 말하던 특급 관리가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목적이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식단이었다. 정력 증진.
조이가 갱년기를 맞아 부족한 남성 호르몬을 보충하듯 보양식을 찾는 중년 남성도 아닌데, 이런 걸 먹어야 하는 걸까? 식탁 위에는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갖가지 음식이 늘어져 있었다.
“이게……?”
“다 먹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맛만 봐 봐. 그중에 마음에 드는 건 매일 해다 바칠 테니까.”
“다 마음에 안 들면?”
“내일도 보양식 파티인 거지. 마음에 드는 걸 찾을 때까지.”
권명은 의지에 불타 있었다. 조이가 떨떠름하게 보양식을 입 안에 넣자, 권명은 자신도 한입 먹어 보겠다고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돼! 이건… 내 거야! 그러니까 넌 시리얼 같은 거 먹어.”
조이는 속으로 ‘넌 보양식 말고 안 좋은 거나 먹어라.’라는 말을 속삭였다. 권명은 지금도 지나치게 건강했다. 여기서 더 건강해졌다가는…….
* * *
거북한 식사를 끝내고 조이와 권명은 외출 준비를 했다. 군에서는 지난번 권명이 말했던 은퇴 조건을 빨리 이행하라고 성화였다. 권명은 오랜만에 군부대로 가야 했는데, 아침부터 전화기를 붙잡고 자신이 진정 가야 하는 게 맞느냐고 반협박투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하는 게 맞느냐고. 확실해? 확실하냐고!”
아직 휴가가 며칠 남아 있었는데, 군에서는 제대 전까지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조이에게 따로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다만 며칠 전 김 감독이 조이를 찾아오기는 했었다. 수색 작전을 담은 후속 방송이 물거품이 됐다며 권명을 설득해 달라고 은근하게 부탁했었다. 권명은 복귀하자마자 그날의 일을 방송에 내보낸 감독을 왕 주먹으로 한 대 갈겼는데, 감독은 통나무처럼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권명에게 실컷 두들겨 맞는 모습을 떠올렸는데, 퍽 싱겁게 끝났다.
조이는 한 번만 더 찾아와서 방송 얘기를 꺼낸다면 권명의 주먹 맛을 연타로 보게 될 거라고 협박했다. 그날의 주먹맛이 꽤 매웠는지 감독이 조이를 또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안조이. 조하도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헛소리 말고 옷 입어.”
조이는 그런 권명을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저 멀리 조하가 있는 병원 건물이 보였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권명의 걸음은 거북이처럼 느려졌다. 휴가 중 군부대로 가야 한다는 게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었다.
“자, 이제 가 봐.”
“안조이. 전화할 거니까 받아.”
“전화? 오늘 늦어?”
“아니. 세 시간만 딱 있다가 나올 거야. 그딴 회의에 내가 왜 가야 하는 거냐고!”
저 분리불안이 또 시작된 모양이었다. 권명은 조이의 몸을 끌어안으며 ‘정말 가기 싫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놈이 원하는 말은 ‘그렇게 싫으면 그냥 가지 마’일지 모르나, 조이는 태업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가! 빨리!”
“쳇. 진짜 간다.”
권명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조이를 꽉 끌어안은 후 뒤돌아섰다. 조이는 물끄러미 권명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가 조이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그런 누군가에게 잘 다녀오라며 배웅하는 이 별 볼 일 없는 일이 왜 이렇게 뿌듯한지 모르겠다.
“안조이!”
“왜!”
“…….”
“안 들려. 뭐라고?”
“바주카포 한 번 더 쏘고 갈까?”
“영원히 가라! 가!!”
조이가 당장이라도 신발을 집어 던질 듯 대로하자 권명은 낄낄거리며 멀어졌다. 지긋지긋한 놈.
* * *
“중위님, 오셨어요?”
“예. 별일 없었죠?”
“순한 아기처럼 잠들어 있었어요.”
“고생하셨어요. 이제 제가 지킬게요.”
“그러세요. 그럼.”
권명은 밤에 조하를 돌볼 간병인을 따로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그 일을 맡겠다고 나선 이는 예전 간병인이었다. 조하에게 꽤 애착을 느끼는 것 같아 안심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지만, 실종된 아들로 인해 허해진 마음을 조하에 대한 집착으로 채우려는 건 아닐지 우려되기도 했다.
사람 심리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 구멍을 채울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할 경우, 엉뚱한 물건을 쏟아붓는다는 것도. 아버지가 대표적으로 헛된 물건을 쏟아붓는 사람이었다.
명성과 사회적인 성공을 갈구했지만, 정치적 감각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정쟁에 휘말려 처참하게 버림받았다. 7구역으로 이주한 후, 어머니와 조이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만은 그러지 못했다. 그 헛헛한 마음을 일확천금 도박으로 채웠으니까.
“실종된 아들이 있다고 하셨죠? 제가 좀 찾아볼까요?”
조이의 말을 듣던 간병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제가 제대할 수도 있거든요. 그전에 군인 신분으로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해 드리려고요.”
“아… 말만으로도 고맙네요.”
“정말이에요. 조하를 이렇게 돌봐 주시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간병인은 입을 달싹이며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하더니 결국 침묵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조이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아직 어려운 듯했다.
간병인이 떠난 후 조이는 늘 그렇듯 하얀 천으로 조하의 몸을 이리저리 닦았다. 조하의 눈이 파르르 떨렸던 그 일이 떠올라서인지 다리를 닦으면서도 눈은 조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조하야…….”
손을 닦을 때는 혹여 자신의 손을 꽉 움켜쥐었던 그 일이 재현될까 싶어 보드라운 조하의 손바닥 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기도 했다.
“하아…….”
그날 일이 어쩌면 정말 환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하의 손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조이는 조하를 씻기고 책을 읽어 주었다. 조하가 좋아할 만한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잠시 물을 한잔 마시려는데, 조이의 주머니에서 작은 물체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윙- 윙-
전화를 건 이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권명일 테지. 조이는 서둘러 통신구를 움켜쥐었다.
“뭐야…….”
내심 권명의 전화를 기대했건만 막상 전화를 받자 시큰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해?]
“뭐 하긴. 조하한테 책 읽어 주고 있었지.”
[무슨 책? 야한 거?]
“조하는 10살이거든!”
귓가로 권명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이는 권명의 실없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권명은 재수 없는 일이 생겼다며, 이 일은 집에 돌아가거든 말해 주겠다고 했다. 조이는 그 재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권명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또 다른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조이 형아. 우리 이렇게 전화로 얘기하니까 엄청 그렇다, 그지?]
“뭐가 그렇다는 거야?”
[전화 목소리 꼴려.]
옆에 누군가 있는 건지 권명은 작게 꼴린다고 속삭였다. 조이는 그제야 지난밤 권명이 떠들었던 목소리 페티쉬가 떠올랐다. 자신이 북부로 가게 되거든 전화로 그 짓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조이도 희망을 버렸다. 권명은 아파서 저러는 게 아니라 원래 저런 놈이었다.
* * *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조이와 권명은 거품 목욕을 했다. 권명은 미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고 해 놓고는, 조이가 욕조에 물을 받고 샤워 밤을 풀자 훌러덩 옷을 벗어 던졌다.
“미끄럽다며.”
“이쪽으로 기대.”
권명은 조이의 말을 무시하며 조이를 잡아당겼다. 자신의 가슴에 등을 기대도록. 이럴 때면 함께 목욕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동차는 아니지만 권명의 몸은 꽤 승차감이 좋았다. 등 뒤로 가죽 소파가 있는 느낌이었다.
권명은 조이의 어깨 위로 푸른빛의 물을 끼얹었다.
“근데 아까 재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했잖아. 그게 뭐야?”
오랜만에 군부대에 다녀와야 했던 권명은 마라톤처럼 긴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만 있다가 돌아온다고 한 것치고는 꽤 늦은 귀가였다. 권명은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고 화가 나는지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뜨거운 콧김을 씩씩 뿜어냈었다. 재수 없는 일이 생겼다며 화를 냈는데, 조이는 그 재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북부로 갈 날짜가 잡혔어.”
“언제?”
“내일. 그러니까 그전까지 실컷 떡치자.”
“…….”
권명이 북부로 가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권명의 성격이라면 한 달 걸릴 일도 일주일 만에 해치울 거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권명의 빈자리를 상상하니 기분이 한층 가라앉았다. 아침마다 조이를 깨우는 목소리, 식사를 하며 나누는 평범한 대화들, 조이의 몸을 꽉 끌어안는 체온. 불과 며칠 전부터 누리기 시작한 것인데도, 평생을 누려 왔던 것처럼 조이의 몸과 마음은 이미 그 모든 것에 적응한 상태였다. 그런 권명이 없다니.
“왜 말이 없어?”
“잘 갔다 와.”
삐진 것처럼 뾰로통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등 뒤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권명의 탓도 아닌데, 왜 자꾸 이렇게 유치하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유치한 행동은 권명 탓일지도 모르겠다.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는데, 유치한 물건과 24시간을 보내는 조이는 어떻겠는가.
“안조이. 나 좀 봐 봐.”
“왜…….”
“나 좀 봐 줘. 응?”
권명은 어리광을 부리듯 조이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조이는 어렵게 고개를 돌렸다. 권명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어쩌면 조이만큼, 아니 조이보다 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는 권명일지도 모른다. 권명의 푸르른 눈은 불안과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권명이 저런 표정을 지으니, 조이는 조금도 화를 낼 수 없었다. 조이는 예쁜 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뾰족한 코끝에도 쪽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에도.
권명은 조이의 목 뒤를 꽉 움켜쥐며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뜨거운 혀가 서로를 옭아매며 뒤섞였다. 심해에 갇혀 서로의 호흡을 나누는 사람들처럼 모자란 숨을 쪼개고, 또 쪼개며 깊게 입을 맞추었다.
“으읏… 하아… 흐으…….”
“안조이… 하아…….”
서로의 입술이 짝을 맞추듯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조이의 몸은 이런 입맞춤에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드럽게 시작한 입맞춤이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 갔다. 권명은 조이의 허리가 꺾일 정도로 몰아붙였고 조이는 그런 권명을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두 팔로 권명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하아… 권명…….”
조이의 허리를 꽉 움켜쥐던 권명의 손이 조금씩 내려와 엉덩이에 닿았다. 말랑거리는 엉덩이를 떡처럼 주무르자, 살짝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미지근한 물이 찰박거리며 부딪혔다.
평소의 권명이었다면 이미 조이의 구멍 안으로 손가락 세 개를 쑤셔 넣고 벌렸겠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주름진 입구를 느릿느릿 쓰다듬기만 했다. 아쉽게. 마치 조이의 입에서 먼저 어떤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권명… 하자.”
조이로서는 드물게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권명의 푸른 눈에 붉은 섬광이 스쳤다. 권명은 기다렸다는 듯 조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물기를 닦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 침대 위에 조이를 내려놓았다. 따뜻한 물을 벗어나자 조이의 몸 위로 찬 기운이 닿았다. 하지만 이내 권명의 뜨거운 몸이 이불처럼 조이를 덮쳤다.
“안조이…….”
또다시 뜨거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내일이면 권명이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 조이는 평소와 달리 더 적극적으로 입맞춤에 응했고,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붙였다.
“하아… 안조이, 왜 그래?”
“뭐가… 하아…….”
“나 못 가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아… 아니거든! 아쉬우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지.”
조이는 드물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권명은 조이의 얼굴을 매만지며 쪽쪽 입을 맞추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응…….”
권명은 한 번 더 짧게 입을 맞춘 후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조이의 목을 강하게 빨아 당겨 흔적을 남긴 후, 뾰족하게 튀어나온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으흣…….”
톡 튀어나온 그곳을 혀로 이리저리 굴릴수록 침구를 부여잡은 조이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강하게 빨아 당길 때는 아픈 듯한데, 그 끝은 아쉬움이었다. 더 해 달라는 듯 조이의 가슴이 점점 위로 들렸다.
“하읏… 윽… 좋아… 아흣!”
한참 동안 권명의 입 안에서 괴롭힘당하던 젖꼭지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과즙을 토해 내는 과일처럼 붉게 익어 있었다. 반대쪽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이었다.
“조이 형아는 젖꼭지가 커서 피어싱해도 좋을 것 같아… 하아… 개꼴려…….”
권명은 또다시 반쯤 미친 눈을 하고 있었다. 조이의 가슴 위로 피어싱이 박히는 상상을 하는 듯했다. 조이는 어쩐지 젖꼭지를 숨겨야 할 것 같았다. 부드러운 입술로 빨리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그곳에 쇳덩이를 붙이라니.
“너… 넣어 줘…….”
조이는 재빨리 몸을 돌려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권명의 시선이 곧바로 조이의 구멍에 닿았다. 조이의 몸에는 젖꼭지와 구멍을 연결하는 선이라도 있는지, 위를 자극할 때마다 아래가 추적거렸다.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구멍으로 권명의 뚫어질 듯한 시선이 닿았다.
“으읏……!”
권명의 손가락 하나가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움직여 봐, 안조이.”
조이는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며 손가락을 깊게 머금었다 뱉어 내기를 반복했다. 권명의 손가락이 조이의 것에 비하면 길었지만, 기다란 살 기둥을 매일같이 먹던 구멍에 큰 자극을 일으키기에는 부족했다.
“하읏. 아… 더… 더……!”
권명의 손가락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내벽을 꾹 눌러 주었을 텐데, 조이는 쫓기듯 조금 더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권명은 흥분을 넘어 분노를 느낀 듯 갑자기 조이의 엉덩이를 찰싹 내려쳤다.
“아야!”
“안조이! 이 씨발 야한 새끼. 너 바람피우면 널 꼬여 낸 그 새끼는 사지 절단이야. 절대 살려 두지 않을 거야!”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것인지 권명은 흥분한 듯 콧김을 뿜으며 조이의 구멍으로 곧바로 성기를 쑤셔 넣었다.
“아흣!!”
손가락으로 풀어 주었다고는 하지만 저 무식한 물건을 저리 단번에 넣다니. 조이의 상체가 침대 위로 허물어졌다. 엉덩이만 뒤로 쭉 뺀 자세로 권명의 성기를 받았다. 퍽퍽 물건을 부수는 것처럼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조이는 아픔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아픔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권명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하읏…! 아하… 아……!”
“안조이…! 안조이!”
권명은 퍽퍽 성기를 박아 넣으며 조이의 이름을 불렀다. 쿵쿵 때려 박히는 성기가 조이의 내벽 한쪽을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그때마다 조이는 짐승처럼 울부짖어야 했다. 권명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조이의 입에서는 번번이 그 이름이 나오지 못했다.
“하아… 아앗……!”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던 권명은 조이의 양쪽 팔을 잡아당겼다. 뒤쪽에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어깨가 아팠지만, 그 고통은 쿵 박혀 오는 성기에 잊혀졌다. 권명은 조이의 양쪽 팔을 잡아당기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허리를 움직였다.
“하흣…! 아읏…! 아…! 아아!”
조이의 입은 한껏 벌어져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조이는 말을 잊은 것처럼 이상한 소리만 내뱉었다. 머릿속이 점점 뿌옇게 변해 갔다. 오직 뒤에서 느껴지는 그 감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쿵쿵. 딱딱한 귀두가 박혀 올 때마다 어둠 속에서 반짝 빛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 빛이 점점 크기를 키워 가고 있었다.
조이는 허상을 보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커다란 빛이 조이의 몸을 휘감았다. 그 순간 번개처럼 강렬한 절정이 조이의 몸 위로 떨어졌다.
“하으…! 아아…! 궈… 권명!!”
“크윽… 안조이……!”
조이는 권명의 이름을 가까스로 부르며 절정을 맞이했다. 늘 권명은 조이보다 뒤늦게 사정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조이의 사정 후 곧바로 권명의 성기에서도 정액이 튀어나왔다.
“하아… 하으으…….”
“안조이… 안조이…….”
권명은 절정의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조이를 꽉 끌어안았다. 조이의 귓가로 쉴 틈 없이 조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조이의 이름을 부를 뿐이지만, 어쩐지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조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 올려 권명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힘껏.
* * *
다음 날 예정대로 권명은 북부로 떠나게 되었다. 조이는 권명이 헬기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권명은 조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조이 역시 헬기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하아…….”
조이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뒤에서 누군가 조이의 발목을 잡아당기는지 자꾸만 걸음이 느려졌다. 조이는 한 번 더 뒤로 돌아 권명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냥 같이 가자고 할걸…….”
조이는 아쉬움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권명의 분리불안이 조이에게도 옮겨 온 것 같았다. 북부에서의 일만 마치면 돌아올 텐데 이렇게 아쉬운 걸 보면. 조이는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겼다.
군부대를 막 벗어나 택시를 잡으려는데 여러 대의 군용차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군용차가 저리 달려갈 일이 무엇일까?’
서제국은 북부를 동제국에게 빼앗긴 후 몸을 사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미친 듯이 미사일이나 포탄을 쏘아 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조이는 서제국의 광활한 영토에서 뽑아내는 자원도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추측했었다.
예전과 달리 교전을 벌이는 횟수도 줄어들었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서제국은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북부를 빼앗겼다고는 하나, 서제국의 영토는 여전히 동제국보다 컸다. 전쟁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없었다.
‘저리 급하게 달려가는 걸 보면, 국경 근처겠지.’
조이는 대수롭지 않게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가지에 들어서자 교통사고라도 났는지 길이 꽉 막혀 있었다. 조이는 조금 있으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여겼으나,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다. 투뤼의 인구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 길이 막힐 일이 없을 텐데.
“이거 꽉 막혀서, 병원까지는 아예 못 가겠는데요?”
기사는 백미러로 조이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택시 기사는 꽉 막힌 시내로 진입하기보다는 차라리 시외를 돌며 손님을 태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전 그럼 이만 여기서 내릴게요.”
택시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 비상등을 켰다. 조이가 택시에서 내리자 택시 기사는 눈치를 살피더니 역주행을 하며 사라졌다.
‘저런 성격으로 용케 투뤼에서 택시 기사를 하는구나.’
조이는 길눈이 어두운 편이었지만, 투뤼의 길만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권명과 종종 밤 산책을 하던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병원과도 그리 멀지 않았다. 아마 저 코너만 돌면 병원이 눈에 보일 것이다.
조이는 익숙하게 길을 찾아 코너를 돌았다. 그 순간 콧속으로 지독한 탄내가 맡아졌다. 그리고 눈앞에는 뿌연 안개가 깔려 있었다. 이른 새벽도 아니었고, 지독한 탄내가 맡아진다면 눈앞에 보이는 이것은 안개가 아닐 것이다.
조이는 메케한 냄새를 막아 내듯 소매로 코를 막았다.
‘불이라도 난 걸까?’
조이는 눈을 찌푸린 채 흐릿한 안개를 노려보았다. 뿌연 안개 사이로 불이 난 건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투뤼에서 보기 드문 규모의 이 층짜리 건물. 조이가 매일같이 출근하는 곳. 불이 난 곳은 병원이었다.
“조… 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