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N50 (7/16)

7. N50

디데이. 벌목 작전이 시작되는 날이자, N50 구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하루빨리 이날이 오기를 기다렸고, 그 열망과 비례하듯 이날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조이는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볍게 몸을 푼 후 무기를 손봤다. 이번 작전을 위해 조이는 특수총알을 배급받았다.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만 해도, 조이는 전장에 나가 있는 모든 군인들이 특수총알을 사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특수총알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중대장 정도의 장교들이었다. 일반 군인들은 여전히 평범한 총알을 사용했다.

이번 작전을 위해 보급받은 총알도 일반 군인들이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권명이 작전장교와 면담을 한 후, 조이의 총알은 특수총알로 변경되었다. 조이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안조이. 시간 됐어.”

그사이 준비를 마친 권명이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렸다. 조이는 주머니 가득 특수총알을 챙긴 후, 권명을 따라갔다.

“장교님들. 마지막 촬영입니다! 쫀 티 내지 말고. 알죠? 멋있는 표정?”

위험한 작전을 앞둔 대원들 앞에서도 김 감독은 방정맞은 혀를 놀려 댔다. 카메라는 조이가 헬기에 오르는 장면을 촬영한 후, 조금씩 멀어져 가는 조이의 얼굴을 담았다. 그 순간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조이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작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

점점 높이를 더해 가던 헬기는 적정 고도에 오르자 이동을 시작했다. 조이는 멀어지는 동제국 영토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서제국 영토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지난밤의 꿈이 자꾸만 떠올랐다. 조하를 잃게 되는 꿈. 조이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꿈.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권명이 조이의 손을 잡아 왔다.

“권명.”

권명은 듣고 있다는 듯 조이의 손을 조금 더 꽉 움켜쥐었다.

“조하. 무조건 조하를 먼저 살려야 해. 알겠지?”

이번 작전을 지휘할 권명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는 안 되지만, 파르르 떨리는 날갯짓처럼 심장이 떨려 와 견딜 수 없었다. 만약 이번에도 조하를 놓친다면, 조이는 권명이 알던 조이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누구보다 조하가 먼저야. 알겠지?”

“…….”

권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이는 반대쪽을 응시하는 권명의 얼굴을 돌려 재차 말했다. 꼭 조하를 구해야 한다고.

동제국의 선제공격으로 훼림이 잠에서 깨어났다. 어둑한 밤하늘을 가르며 워봇이 쏘아 대는 특수 포탄이 서제국을 향해 날아갔다. 훼림은 소형차 한 대도 쉽사리 진입할 수 없는 울창한 침엽수림이었다. 때문에 서제국에서는 숲 밖에서 포탄 공격을 퍼부었고, 동제국에서는 변변한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보병만 가지고 그곳을 사수하고 있었다.

이를 갈던 작전장교는 대형 워봇을 분해하여 숲을 통과하는 묘수를 생각해 냈다.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던 동제국에서 포탄이 날아오자, 서제국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그 혼란을 틈타 부대원들과 조이는 N50 구역 인근으로 날아갔다.

언젠가 생존 훈련을 시작하던 그때처럼, 조이는 낯선 숲에 떨어졌다. 익숙하게 낙하산 줄을 잘라내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이는 작은 목소리로 암호를 외쳤다.

“훼림.”

“사… 윽… 수.”

조이는 가까이 다가가 낙하산에 엉겨 허덕이는 이를 도와주었다. 한솔이었다. 여전히 한솔은 비호감에 얄미운 놈이지만, 어쩐지 조금 불쌍한 마음도 들었다. 한솔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혁이 신설 부대에 지원하는 바람에 이 부대로 편입되었으니까.

군의 입장을 알게 된 후, 조이는 모든 부대원들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마땅히 미안해야 하는 이들은 사람 목숨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고위급 장교들일 테지만, 그럼에도 조이는 이 프로젝트의 얼굴마담이자, 거짓 선전도구였기에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다.

“일어나.”

“꺼져…….”

낙하산 줄에 이리저리 엉킨 모습이 꽤 창피했는지 놈의 말투가 유독 까칠했다. 친근한 척 조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야 저런 싸가지 없는 말투가 더 듣기 편했다. 태혁 옆에서 순진한 척 조이의 이름을 부르던 모습이 어찌나 얄미웠던가.

“입 다물고 따라와. 한솔 소위.”

한솔은 조이의 입에서 꽤 상급 장교다운 말이 흘러나오자 기습을 당한 표정을 지었다. 조이는 어쩌면 군 생활이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계급으로 깔아뭉개는 맛이 있었다.

조이는 주변 지형을 통해 집결지가 그리 멀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동제국과 서제국의 언어는 엄연히 다르지만, 동제국 북부와 서제국 북부의 방언은 꽤 비슷했다. 조이는 표지판에서, 커피라는 단어를 알아봤다. 도심까지 타고 갈 개조된 군용차가 숨겨진 곳은 커피 농장이었다.

길가를 조금 벗어나 풀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지나다니는 이들이 있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반대쪽 풀숲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세 낮춰!”

조이는 소총을 들고 반대쪽 풀숲을 노려보았다. 잔뜩 긴장한 조이는 먼저 암호를 외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풀숲에서 장신의 사내가 경계심 없이 걸어 나왔다.

“안조이. 나와.”

저놈은 인간이 아니라 개다. 어떻게 조이가 있는 곳을 저렇게 족족 알아맞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 * *

빨간색 탐스러운 커피 열매가 그려진 개조 차량 세 대가 N50 구역으로 진입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차량 세 대가 연달아 달리는 모습이 퍽 어색했으나, N50 구역은 고랭지 커피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기에, 저런 차량을 보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부대원을 태운 군용차는 실험실 옆 건물에 멈추어 섰다. 대원들은 A, B, C팀으로 나누어져 각자의 임무를 위해 흩어지게 될 것이다.

A팀과 B팀은 주위를 살피며 하나둘 차량에서 내린 후 서둘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A팀과 B팀은 이 건물 옥상에서 실험실이 있는 건물 옥상으로 밧줄을 연결하여 이동할 계획이었다. C팀은 군용차에서 대기하다, A팀이 경보시스템을 제거하거든 실험실 건물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정보원에 따르면, 7층과 지하 2층에 실험체를 가둔 수용소가 있다고 했다. C팀이 지하를 맡고, 조이와 권명이 속한 B팀은 실험실 건물 외벽을 타고 7층으로 내려가 잠입할 계획이었다.

조이는 7층에서 조하를 만나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때 조이의 귓가로 무전 음이 들려왔다.

“이곳은 A. 이곳은 A. 경보시스템 제거 완료. 다음 작전 진행 바란다.”

무전을 듣던 권명은 조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는 카메라가 달린 야시경을 눌러 썼다. 촬영감독은 관찰자로 이 작전에 참여하고 싶어 했으나, 작전장교가 만류했다고 들었다.

아무렴. 이렇게 리스크가 큰 작전에 관찰자까지 대동했다가는 군의 썩은 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꼴일 것이다. 촬영 감독을 대신하여 데리고 온 것이 바로 이 야시경이였다. 야시경 중앙에는 소형 칩이 있어 조이가 보는 모든 것을 녹화하고 있었다.

“작전 실시.”

조이는 곧바로 밧줄을 타고 건물 외벽을 따라 내려갔다. 아직 사방이 어두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외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군인들을 쉽사리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

위잉-

조이는 커팅 장비로 창문을 뚫은 후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온통 시커먼 옷을 입은 조이를 보고 놀란 군인이 보였다. ‘픽-’ 하고 낮은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날아가 박혔다.

권명은 손동작으로 복도를 점령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대원들이 훈련받은 대로 두 명씩 짝을 지어 복도를 어슬렁거리던 군인들을 처리했다.

복도를 하나씩 지나쳐 점점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조이의 심장도 점점 빠르게 뛰고 있었다. 건물 중앙에 다다르자 둥근 형태의 벽이 보였다.

‘저곳이다.’

저곳에 조하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간격으로 문이 나열되어 있었다. 철문과 철문 사이의 간격이 손바닥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방안은 성인 하나가 간신히 누울 정도로 비좁을 텐데, 저런 작은 방을 실험실로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내부를 확인한다.”

권명은 조이에게 눈빛을 보냈다. 조이는 절단기로 자물쇠 부분을 잘라 냈다.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코를 찌를 듯한 악취였다. 이윽고 끔찍한 악취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윽.”

충격과 분노에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기근이 아이를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어린아이가 몸을 작게 말고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게 맞긴 할까?’

전장의 참혹한 모습을 익히 보던 대원들도 어린아이의 상태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앙상하게 마른 팔에는 검은 점처럼 주삿바늘이 뚫고 나긴 흔적이 가득했다.

참혹한 전장에서도 어린아이는 언제나 보호 대상이었다. 전쟁은 어른들이 만들어 낸 참극이니까.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으니까. 무법천지인 7구역에서도 아이들을 전쟁에 내보내라는 말을 하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충격에 말을 잊지 못하는 조이를 대신해 대원중 하나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살아 있습니다.”

대원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후 보고했다.

“하름. 대양. 따라와. 1층까지 정리한다. 나머지는 환자들을 구조한다.”

권명은 충격을 받은 듯 절단기를 쥐고 있는 조이에게 나머지 자물쇠도 모두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멍한 표정을 하던 조이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절단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툭’ 하고 자물쇠가 떨어져 나갔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던 것이 벌써 열 번째에 다다랐다. 문을 열면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이 데자뷔처럼 펼쳐졌다. 앙상하게 마른 몸.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아이. 조이는 마지막 문을 열었다.

역시나 앙상하게 마른 몸.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몸이 보였다. 하지만 조이는 이번에는 데자뷔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똑같아 보이던 아이들과 저 아이는 다르니까. 조이가 먹이고 입혀 키운 아이가 바로 저곳에 있었다.

“조… 조하… 조하야……!”

조이는 작은 아이를 들어 올렸다. 10살인 조하는 원래도 그리 몸집이 큰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가볍지는 않았다. 7구역에서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았어도 절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조하는 아기 때로 돌아간 듯 가벼웠다.

“조하야…….”

조이는 조하의 온몸을 꽉 끌어안았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조하의 앙상한 몸 위로 조이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이는 조하의 어깨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엉엉’ 큰소리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조하야… 조하야…….”

“안조이. 이제 동생을 데려가자. 동제국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조이의 눈에 권명의 두 다리가 들어왔다. 그사이 퇴로가 확보된 모양이었다. 권명은 조하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조이는 조하를 넘겨줄 수 없었다. 조이는 절대 조하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조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조이는 조하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 * *

1층으로 내려온 조이는 조하를 첫 번째 군용차에 태웠다. 커피콩이 그려진 겉모습과는 달리, 짐칸 내부에는 환자들을 이송할 수 있도록 낮은 침대가 있었다. 조이는 가장 안쪽.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에 조하를 눕혔다.

“억제구 잊지 마.”

권명은 억제구 착용을 언급한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작전장교가 수십 번도 넘게 강조한 것처럼, 조이는 조하에게 억제구를 착용시켰다. 가느다란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억제구가 무겁게 느껴졌다. 조이는 침대 밖으로 흘러내리는 조하의 팔을 가슴 위로 올려놓았다.

“부상자야! 차에 태워야 해!”

등 뒤로 총소리가 들려왔다. 내부에서 벌어졌던 교전이 입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순조로웠던 7층과 달리 지하에서는 교전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부상당한 부대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서둘러! 빨리!”

작전이 시작될 때만 해도 깜깜한 밤과 같았는데, 어느새 주변 건물과 간판이 보일 정도로 환해졌다. 지하에 있던 환자들까지 모두 탑승하자, 건물 내부와 외벽에 설치된 폭탄이 ‘띡띡-’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밟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세대의 군용차가 도심을 질주했다. 곧바로 국경을 향해 달려야 했다. 도심과 멀어지고 국경과 가까워질수록 폭격음이 미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어쩐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지금쯤이면 훼림에서 공격을 퍼붓던 동제국의 군인들이 N49 구역까지는 진격해 왔어야 했다.

“본부랑 통신해 봐! 씨발. 왜 아직도 이렇게 조용한 거야?”

서제국의 군인들이 가장 많이 배치된 곳은 당연히 국경이었다. 만약 동제국이 N49 구역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차량이 향하는 곳은 적군의 아가리나 다름없었다. 맹수의 입 안으로 알아서 기어들어 가는 꼴이었다.

“대위님. 아직 훼림에서 교전 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죠?”

“씨발!”

권명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실험실 건물이 폭발한 것이었다. 이번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앞뒤로 포위되는 상황. 앞쪽에는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뒤쪽에는 건물 폭발로 군인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밀고 가. 후진해 봐야 놈들 손아귀야.”

권명은 교전 중인 아군과 합류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저 멀리 통제소가 눈에 들어왔다. 10킬로로 서행하라는 표지판이 보였지만 조이가 탄 군용차는 ‘부우웅-’ 하는 엔진음을 내며 내달렸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소동을 전해 들었는지, 서제국의 군인들이 길 위로 장해물을 내던졌다. 뾰족뾰족한 못이 촘촘하게 박힌 로드 스파이크. 하지만 권명은 염력으로 길을 막아 세운 장해물을 손쉽게 날려 버렸다.

권명은 가이딩을 거부하던 습관 탓인지 힘을 남용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 작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이는 동제국으로 귀환하는 이 여정이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 밟아. 꼬리가 붙었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서제국의 군용차량 수십 대가 총알을 난사하며 따라붙었다.

“C팀. C팀. 지원 요청 바란다. 차체 이상 발생. C팀. C…….”

지원 요청을 반복하던 C팀 군용차가 ‘펑’ 하는 소리를 내며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앞쪽에 타고 있던 권명은 사이드미러로 상황을 확인하더니 차를 멈추라고 지시했다. 끼익 소리를 내며 두 대의 군용차가 순차적으로 멈추었다.

“세 번째 군용차. 확보한다.”

권명은 총을 장전하며 밖으로 튀어 나갔다. 조이 역시 문이 열리자 엄호사격을 하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안조이. 뒤로 와!”

권명은 앞서가는 조이를 조금 거칠게 잡아당겨 자신의 등 뒤에 세웠다. 조이는 순순히 권명의 뒤에 몸을 숨긴 채 전방을 살폈다. 차체 앞부분이 푹 파여 있는 것이 꽤 심각해 보였다. 문제가 생긴 세 번째 차를 손보던 대원은 권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복구 불가능합니다. 이곳에서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뒤에서 추격해오던 서제국의 공격을 피하다 사고가 난 듯했다. 조이는 불길하게 치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차보다 저 안에 있을 환자들이 더 걱정되었다.

“폭발할지도 몰라. 대피시키자.”

“두 번째, 첫 번째 차에 환자들 밀어 넣어! 방어 대형!”

권명과 태혁은 장거리포를 어깨에 걸치더니 마구 발사했다. 조이는 커다란 에스퍼 둘을 엄폐물 삼아 붉은색 특수총알을 날렸다. 권명과 태혁의 공격보다는 미약하지만 조이는 저격 수업에서 곧잘 칭찬을 받고는 했었다.

돌연변이 셋이 방어를 맡자 뒤쫓아오던 적군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서제국의 군용차량은 불붙은 채 도랑으로 빠지거나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멈추어 섰다.

“대위님! 두 번째 차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씨발. 이런 거지 같은 차로 뭘 하라는 거야!”

권명이 거칠게 머리를 뒤로 넘겼다. 조이는 혹여 작전장교가 일부러 이런 차를 보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안 풀릴 수 있을까. 불길한 전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첫 번째 차로 전부 옮겨. 부상병은 가장 마지막에 옮기고.”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은 거의 구겨지듯 첫 번째 차에 실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원들이었다. 대원들이 탑승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

“대원들은 도보로 이동한다. 출발한다!”

권명은 마지막으로 군용차 두 대를 폭파해 길을 막았다. 뒤돌아 오던 권명은 조이의 불안한 표정을 봤는지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

“약속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권명의 말에도 조이는 불안하기만 했다. 동생을 품에 안으며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던 불행이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환자들을 가득 실은 군용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군용차의 속도에 맞춰 달려야 했다. 권명은 가장 마지막으로 달리며 후방을 살폈다. 아득하게 들려왔던 폭격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교전이 벌어지는 곳과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기다란 다리를 앞에 두고, 유일하게 남은 군용차가 멈추어 섰다. 차체 옆에 몸을 숨기고 있던 부대원들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권명은 운전병에게 다리를 건너거든 북쪽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교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모두 긴장해!”

“예!”

부대원들의 뜀박질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하게 달리던 군용차가 조금씩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차체 옆에서 몸을 숨긴 채 이동하던 대원들의 뜀박질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다리만 건너면 훼림으로 진입할 수 있어!”

권명은 힘을 내라는 듯 소리쳤다. 조이는 먹은 것도 없건만 물을 토해 냈다. 조이뿐만 아니라 에스퍼인 태혁을 제외한 대원들 모두가 죽음을 마주한 병자처럼 얼굴이 좋지 않았다. 특히 경미한 부상을 입은 대원들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았다.

훈련 당시에도 몸짓이 어색했던 한솔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 한솔을 태혁이 부축하며 뛰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짐칸에 탑승해야 했지만, 차 안에는 이들보다 심각한 환자들이 가득했다.

점점 군용차와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을 실었다지만 네발 달린 저 쇳덩이의 속도를 인간이 무슨 수로 따라잡겠는가.

거대한 다리를 중반쯤 건너갔을까? 조이의 귓가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생존 훈련을 할 때 듣던 소리였다. ‘윙-’ 하고 뭔가가 작동되는 소리. 이런 소리가 들리고 나면 어김없이 포탄이 날아왔었는데.

“피… 피해!!”

조이와 대원들은 다리 양쪽 가장자리로 몸을 숨겼다. 저 멀리서 날아온 포탄이 다리 중앙에 떨어졌다. 초록색 넝쿨로 위장한 전차부대가 다리를 사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차야! 저기!”

본국으로 돌아가는 귀환길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예 다리를 부술 작정인지 거침없이 포탄이 날아왔다. 위치가 노출된 부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조이는 가장 먼저 군용차를 확인했다. 앞서가던 군용차가 공격을 알아차렸는지 잠시 멈추어 섰다. 조이는 계속 가라고 소리쳤다. 조이는 자신이 표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조하를 꼭 동제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가! 먼저 가라고! 아악!!”

“안조이!”

권명이 조이를 안고 뒹굴뒹굴 바닥을 굴렀다. 조이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는 싱크홀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속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이 보였다.

“안조이! 앞만 보고 달려!”

“뭐? 너는?”

“난 에스퍼야. 내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빨리!”

권명은 조이의 등을 밀치며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리라고 소리쳤다. 후방은 자신이 막을 테니 다리를 건너라고.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권명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이 맞바람을 맞은 듯 튕겨 나갔다. 하지만 뛰어난 에스퍼의 능력도 전차부대의 포탄 세례에는 조금씩 허점을 보이고 있었다.

방어막처럼 권명이 내뿜는 기운을 집요하게 파고든 포탄이 하나둘 다리 위로 떨어졌다. 권명은 앞만 보며 달리라고 소리쳤지만, 조이는 자꾸만 뒤쪽이 신경 쓰였다. 권명 홀로 비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어떻게 막고 있는 걸까?

‘권명…….’

조이보다 수십 배는 강한 에스퍼이지만, 고군분투하고 있을 권명이 자꾸만 그려졌다. 누군가 조이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처럼 걸음이 느려졌고, 또 누군가 등 뒤에서 조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한 발짝, 두 발짝 앞을 향해 걸어가던 조이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추었다. 조이는 홀린 듯 고개를 돌렸다.

“아……!!”

조이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언젠가 보았던 신화 이야기가 떠올랐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오르페우스. 죽음의 신이 내건 금기를 어긴 그는 결국 사랑하는 아내를 잃게 되었다. 조이에게도 그런 금기가 있었던 걸까?

조이의 눈앞에 보인 것은 허물어져 가는 다리와 그 밑으로 추락하는 권명의 모습이었다.

“아… 안 돼!! 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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