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발령 1 (4/16)

4. 발령 1

조이는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깨어났다. 이내 눈이 부실 정도로 쏟아지던 빛이 떠올랐고, 뒤통수를 무지막지하게 가격하던 힘이 생각났다. 조이는 여전히 지끈지끈한 통증이 올라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분명 조이에게 낯선 곳이지만 그럼에도 이곳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인 남성이 겨우 몸을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 투명한 샤워부스. 팔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촘촘한 쇠창살.

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는 곳이라면 감옥일 테고, 탈영한 군인이 가는 곳이라면 영창일 것이다.

“일찍도 일어난다. 가만 보니 영창 체질이네. 너.”

조이가 깨어난 것을 알아차렸는지, 아래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권명은 기숙사에 있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긴……?”

“앞으로 4주간 있어야 하는 영창.”

“4주나?”

조이는 암담하기만 했다. 북쪽 어딘가에 있을 동생을 찾아야 하건만, 영창이라니. 4주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날 그 숲에서 조이를 잡아들인 이들은 동제국의 군인이었다. 서제국 놈들에게 잡히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그런데 동제국의 군인들이 어떻게 때맞춰 그곳에 들이닥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보았던 군인들은 아무리 보아도 탈영병을 잡으러 온 것 같지 않았다. 정신을 잃기 전 조이의 눈에 보였던 모든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보려는데, 귓가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이.”

“어? 태혁아!”

창살 밖에는 태혁이 있었다. 조이는 2층 침대에서 껑충 뛰어내려 창살에 달라붙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고…….”

“교대 시간에 잠깐만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 시간이 많지 않아.”

“…….”

태혁은 걱정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조이는 쉽사리 눈물을 보이지 않는 편인데, 어쩐지 태혁의 얼굴을 보니 울음을 나올 것 같았다. 악몽을 꾼 조이를 달래던 어머니의 표정이 떠올라서였다.

“괜찮아? 대체 왜… 탈영을……?”

“동생이… 동생이 없어졌어… 연락도 안 되고, 걱정되는 마음에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동생은 그럼 찾았어?”

“아니… 흡… 못 찾았어…….”

울음을 참는 조이의 표정을 보던 태혁은 울지 말라며 따뜻한 말투로 조이를 위로했다. 조이는 어쩐지 더 울고 싶어졌다. 7구역으로 이주한 후 단 한 번도 부릴 수 없었던 어리광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걱정 마. 여기서 내가 잘 위로해 줄 테니까.”

등 뒤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살을 꽉 쥐고 있던 조이의 손 위로 권명의 손이 닿았다.

조이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오르듯 붉어졌다. 겨우 손이 닿았다고 이러는 게 아니었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엉덩이에 권명의 성기가 닿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무슨 상상을 했는지 그 물건이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권명은 조이를 찌부러트릴 듯 창살에 꾹 누른 채 태혁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평소에는 손가락만 닿아도 난리를 피우던 녀석이 징그럽게 왜 이러지?

“권명이랑 같이 갔던 거야……?”

“같이 간 거 아냐! 쟨 다른 볼일 있다고 했어. 아마… 으읏! 떠… 떨어져!”

권명이 드디어 돌아 버렸는지 조이의 엉덩이 위로 성기를 비비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태혁에게도 고스란히 보일 것만 같아 정신이 아찔했다.

“잘 있는 모습 봤으니까 이만 가 봐. 교대 시간 끝나 가.”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 조이야.”

“어… 어! 또 와야 해! 알았지?”

조이는 태혁의 뒷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살에 매달렸다. 권명은 태혁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알아서 조이에게서 떨어졌다.

“너… 너!”

“뭐?”

놈은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이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다. 분명 구렁이 같은 물건이 조이의 엉덩이를 파고들듯 꾹 눌렀었는데. 조이는 의혹에 가득 찬 시선으로 권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놈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아닌가……?’

* * *

조이가 정신을 차린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권명 말로는 심문을 담당할 장교는 왜 7구역을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땅굴을 발견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을 것이라고 했다.

조이는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조이는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이로울지, 또 어떤 말을 숨기는 것이 나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저 가능한 한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탈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장교와 서기관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지만, 굳이 애쓰지 말게나. 지금까지 탈영 문제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승소한 적은 없으니.”

“…….”

장교는 기선 제압을 하듯 ‘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조이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탈영 목적지는? 서제국이었나?”

“아닙니다!”

장교는 프로였다. 조이의 행동을 과대 해석함으로서, 조이가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조이는 동생의 무사를 확인하고자 7구역으로 갔던 것이라고 실토해야 했다. 장교는 알아볼 수 없는 필기체로 뭔가를 휘갈긴 후 다음 질문을 던졌다.

“몸수색 중에 발견한 서류네. 이 서류를 파기하려고 했나?”

파쇄기에 반쯤 갈린 종이 뭉치였다. 생체 실험이니, 생물학이니, 일절 알지 못하는 조이에게 저 문서는 암호나 다름없었다. 조이는 그저 동생에 대한 실마리를 찾던 중 우연히 저 물건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조이는 억울함에 하소연하듯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곳에서 동생……!”

“예. 아니요. 두 가지로만 답변하도록.”

가능하다면 말을 아끼고 싶었지만 조이는 쏟아져 나오는 변명을 막을 수 없었다. 흥분한 조이를 바라보는 장교의 표정이 처음과 달리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마치 쉬운 먹잇감을 발견한 듯.

기나긴 심문 후 조이는 다시 영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끔찍하게도 작은 이 방이 취조실보다는 나았다. 탈수기에 돌려진 듯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하아…….”

“어디까지 말했어? 말이라도 맞춰야 할 거 아냐.”

권명은 조이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물었다.

“다 말했어… 동생이 사라졌고, 흔적을 찾다가 그 이상한 땅굴까지 가게 됐다고.”

“아주 술술 불었구나. 술술 불었어.”

“그럼 어떡해! 탈국 시도냐고 묻는데!”

“잘했어.”

권명은 조이의 발작에 피식 웃으며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누굴 동생 취급하는 건지. 막내 도련님 주제에.

“너무 걱정하지 마. 다 방법이 있으니까.”

권명은 무섭지도 않은지 태평한 표정이었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땅굴이라도 파게? 그것보다, 혹시 태혁이 또 왔었어?”

“아니.”

권명의 말과 달리, 어쩐지 태혁이 왔다 간 것 같았다. 권명의 침대 위에는 못 보던 책이 있었다. 저런 걸 가져다줄 만한 배려심을 가진 이라면 태혁이 유일했다. 권명은 침대에 다시 누운 채 책을 보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출처를 물으려는데, 권명의 입에서는 깔끔 떠는소리가 흘러나왔다.

“씻어. 담배 냄새 나.”

조이를 질식시킬 듯 담배를 태우던 장교의 모습이 떠올랐다. 킁킁 냄새를 맡아 보니 냄새가 대단했다.

조이는 순순히 옷을 벗고 샤워부스로 향했다. 러브호텔도 아닌데, 이런 투명 샤워실이라니. 영창에 갇힌 생도들이 혹여 목이라도 매달까 우려하여 고안한 것이라는데, 순 변태 같았다. 그리고 진짜 더 변태 같은 건 권명이고.

권명은 책을 읽는 척하며 힐끔힐끔 조이를 훔쳐보고 있었다. 어쩐지 권명의 시선이 조이의 성기에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조이는 자꾸 겸손한 자세를 취하게 됐다. 권명의 야구 빠따와 조이의 평균 사이즈가 자꾸 비교된 탓이었다.

머리 위로 이가 달달 떨려 올 정도의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뜨거운 물이었다면, 유리창에 김이라도 서려 붉게 물든 조이의 몸을 조금이라도 가려 주었을 텐데.

군에서는 영창에 갇힌 생도들이 맑은 정신으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찬물 샤워만 허용하고 있었다. 맑은 정신은 개뿔. 그저 벌을 주는 것이었다. 못된 것들.

“윽… 추워.”

후다닥 씻고 나온 조이는 권명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옷을 갈아입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덧 권명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때처럼 금방이라도 구렁이 같은 물건을 조이의 엉덩이에 비벼 댈 것 같았다.

“뭐… 뭐!”

권명은 피식 웃으며 비키라고 말했다. 늘 몸을 사리던 것은 권명이었는데, 조이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조이가 그러했듯 권명은 샤워실로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찬물을 맞았다. 조이는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몹시 민망했다. 권명은 항상 조이를 보며 발정이 났다며 핀잔을 주곤 했는데, 조이가 보기에 저놈이야말로 발정이 났다.

‘징그럽게. 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

심문과 감금이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다행히도 첫날과 달리 심문을 담당하는 장교는 조이의 변명을 곧잘 들어 주었고, 조이 역시 장교에게서 여러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조이는 이곳에서 꼬박 4주를 보낸 후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장교가 은근슬쩍 조이에게 재복무 의사를 묻는 거로 봐서는, 재판에서 조이의 재복무 의사가 중요하게 작용할 듯했다.

태혁에게 부탁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탈영병이라 할지라도 재복무 의사만 있다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재복무를 거절한다면 곧바로 감옥행이지만.

조이에게는 고민할 게 없는 문제였다. 7구역으로 떠나며 모든 미련을 버렸지만, 동생을 찾기 위해서 조이는 아직 군인 신분이 필요했다. 또한 4주라는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도 찾아야 했다. 이곳에서 헛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영창에 갇힌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심문을 끝내고 돌아오니 권명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권명이 늘 보던 책 한 권만 덩그러니 있을 뿐.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날 밤이 지나 다음 날 아침이 와도 권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권명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조이는 내심 권명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태혁이 오고서야 권명이 풀려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풀려났다고?”

“어. 알아본 바로는 그래.”

조이나 권명은 탈영병이었다. 4주라는 기간보다 빨리 풀려날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조이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권명에게는…….’

그 순간 권명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들을 장군으로 키울 것이라던 그의 말도. 영창에서 2주 이상을 머물 경우 군 기록에 남아 인사고과에 불리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2주가 되기도 전에 권명이 사라지다니. 누구의 솜씨인지 예상이 갔다.

조이가 억지로 권명을 7구역으로 데리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조이 때문에 권명이 탈영병이 된 것은 분명했다. 죄책감을 덜 수 있으니 분명 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입 안이 썼다.

“조이, 너도 곧 풀려날 거야.”

조이의 씁쓸한 표정을 살피던 태혁이 덧붙이듯 말했다. 조이는 저렇게 다정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7구역에서도, 이곳 수도에서도. 그런데 태혁이야말로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입을 달싹이며 말을 고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조이. 발령이 떨어졌어.”

“발령? 누구? 설마… 태혁이 너……?”

“응.”

“축하해… 어느 지역으로……?”

“북쪽이라고만 들었어.”

조이는 아까보다 더욱더 입 안이 썼다. 태혁과 함께 발령을 받는 그 날을 꿈꿨었다. 하지만 모든 기회는 조이가 날려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이는 탈영 사건으로 발령 보류 상태였다. 태혁이 발령을 받았다면, 조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떠난다는 말이었다.

조이는 태혁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태혁의 시선을 피한 채, 애써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북쪽이면… 많이 춥겠다. 건강… 잘 챙기고…….”

“1순위가 누구인지 물었었지?”

“어…….”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질문의 답이었다. 조이는 지금 영창에 있고, 태혁은 조만간 발령을 받고 떠날 테니까.

조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자 꽤 노력했었다. 은근슬쩍 떠보는 질문부터 단도직입적인 질문까지. 태혁의 입에서는 비밀이라는 얄미운 답만 나왔었는데.

“안조이.”

태혁의 입에서 한 번 더 조이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힘겹게 올려다본 태혁의 눈이 조이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내 1순위는 조이 너였어.”

“아… 그랬구나…….”

조이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태혁의 시선을 피했다. 애꿎은 철창을 노려보았다. 눈앞에서 놓친 기회가 아까워서였을까, 노려보던 철창이 흐려질 정도로 눈물이 맺혔다.

“조이.”

태혁의 손이 철장 사이로 들어와 조이의 얼굴을 매만졌다. 조이는 눈물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태혁은 축축하게 젖어가는 조이의 얼굴을 가만히 매만졌다. 조이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그렇게 태혁은 북부로 떠났다.

* * *

태혁이 떠난 후, 조이는 큰 결정을 내렸다. 동생을 찾기 전까지는 절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다짐. 조이는 심문을 담당하는 장교에게 최전방에서 복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전방으로 보내 주세요.”

이곳에서 4주라는 시간을 보낼 마음은 없었다. 밤새 고민한 결과 조이가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패는, 최전방 복무였다.

어느 부대든 에스퍼와 가이드는 부족할 테지만, 최전방만큼은 아닐 것이다. 주 단위로 국경선이 달라질 정도로 교전이 빈번한 곳이라고 들었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고, 잘해야 본전인 곳이었다.

그 때문에 최전방으로 발령받기를 희망하는 생도는 없었다. 그런 곳으로 조이는 자진하여 갈 생각이었다.

조이는 어차피 전쟁영웅 4등급과는 멀어졌고, 그런 타이틀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을 되찾기만을 바랄 뿐. 그날 작은 에스퍼가 헛소리를 한 게 아니라면 조하는 북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최전방에서 복무라…….”

“예. 의무병으로라도 복무하고 싶습니다.”

장교의 무뚝뚝한 얼굴 위로 흐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이의 결심이 꽤 만족스러운 듯했다. 장교 입장에서야 더없이 반길 말이었을 것이다.

최전방 복무를 결정지으며 조이의 구금 기간은 4주에서 2주 반으로 줄어들었다. 조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창을 벗어났다. 조이는 당연히 누군가가 조이를 태우고 사관학교로 데려다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장교는 걸어가라며 조이를 그냥 내보냈다.

“하……?”

건물 밖으로 나가자 조이는 허탈해졌다. 조이가 지금까지 머물렀던 영창은 기숙사 바로 옆에 있는 창고 건물이었다. 대체 저 용도가 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영창이었다니.

출소하는 죄수처럼 조이는 쓸쓸히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로 돌아가거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한숨 잘 생각이었다. 조만간 발령 공지가 뜰 테니, 그전까지는 그저 죽은 듯 쉬고 싶었다.

* * *

기숙사로 돌아온 이후, 조이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이면 북쪽에 있을 조하가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태양이 떠오르고 나서야 한두 시간쯤 잠을 잘 수 있었다. 짧지만 죽음과도 같은 숙면이었다.

아마 권명이 조이를 흔들어 깨우지만 않았다면 조이는 조금 더 단잠을 취했을 것이다. 권명은 조이의 이불을 걷어 내고,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

“빨리 일어나!”

“으윽… 뭐야……?”

자다가 일어난 조이의 앞에는 보들보들한 두부 한 모가 있었다. 홀연히 사라졌던 권명은 다시 홀연히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등장도 황당한데, 권명은 심지어 어서 먹으라는 듯 조이의 입술 앞으로 두부를 가져다 댔다.

대체 이딴 걸 왜 먹어야 하냐고 따졌으나, 권명은 지금 두부를 먹지 않는다면 또다시 감방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불길한 소리를 지껄였다. 헛소리일 게 뻔한데, 권명은 진지하게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그거 진짜야?”

“7구역에서는 제대로 가르치는 게 없네. 수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 그러니까 닥치고 먹어.”

앞으로는 죄짓고 살지 말라고, 두부처럼 새하얀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영창에 다녀왔을 뿐인데, 권명은 무슨 악질 범죄를 저지르고 교화된 범죄자처럼 조이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는 지도 영창 동기면서!’

꾸역꾸역 두부를 먹어 치우자, 그제야 권명은 조이에게서 떨어졌다. 조이보다 일찍 영창을 벗어났는데도 권명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입가에 피딱지를 생긴 걸 보니, 호되게 주먹질을 당한 모습이었다.

‘누가 권명을 때렸을까?’

권명은 염력을 제외하더라도 대단한 싸움꾼이었다. 7구역에서 사장을 후려치던 걸 보니, 굳이 염력을 쓰지 않더라도 사람 하나 잡아 족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패싸움이라도 한 걸까?

“뭘 또 엉큼하게 봐! 그냥 봐!”

권명은 그냥 보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조이는 몸을 뒤로 쑥 뺐다. 피식피식 웃는 걸 보니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조이는 지난밤 고민했던 부탁을 지금 말해도 될 것 같았다.

황량하고 위험한 북부에서 동생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조이는 북부로 떠나기 전까지 최대한 정보를 모아 볼 생각이었다.

“권명. 너… 부탁 같은 거 할 거 없지?”

“뭔 부탁?”

“나한테. 아무거나.”

권명은 조이의 꿍꿍이를 가늠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서 그래? 됐어.”

고맙다니. 설마 두부? 물론 두부도 고맙긴 하지만, 두부 한 모에 부탁을 들어줄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게… 우리 부탁 하나씩 들어주기 할까?”

조이는 지난번 7구역에서 마주쳤던 군인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들이 그저 조이와 권명을 붙잡기 위해 출동된 수색군이 아닌 것 같았다.

조이는 그들이 분명 사냥개처럼 땅굴을 이 잡듯이 뒤졌을 테고, 조이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정보를 추가로 발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조이는 그날 보고서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 보고서를 보려면 권명이 가지고 있을 접속 권한이 필요했다. 아직 임관하지 않은 조이와 달리, 권명은 이미 소위로 임관한 상태였다. 물론 하자가 생겨 반품되어 돌아왔지만.

“보고서?”

“응. 그날 동생에 대한 어떤 흔적이라도 발견했을까 싶어서…….”

조이는 가만히 권명의 표정을 살폈다. 권명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오거든, 부탁을 두 개 정도는 더 들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권명의 입에서는 선뜻 긍정적인 답변이 흘러나왔다.

“좋아. 대신. 오늘 저녁에 시간 내.”

“오늘?”

권명은 저녁 7시에 기숙사 앞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구질구질한 옷 말고 잘 차려입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 * *

7시가 되자 조이는 약속대로 기숙사 앞으로 향했다. 잘 차려입으라고 했으나, 조이가 차려입을 옷이 어디 있겠는가. 조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드물게 깨끗한 셔츠를 입었다.

7구역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입던 옷이었다. 돌연변이 테스트를 받을 때면 조이는 꼭 이 옷을 입고는 했다. 그때 조이에게 그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으니까.

현관 유리에 비친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는데,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도자기처럼 매끈한 자동차가 조이 앞에 멈추어 섰다. 잘은 모르지만, 굉장히 비싸고 좋아 보였다.

“웬 차야?”

“타.”

권명은 징그럽게 차 문까지 열어 주었다. 대체 왜 안 하던 짓을 저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조이는 소름이 돋아, 팔을 매만졌다. 권명이 조이에게 할 부탁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러는지 불안하기만 했다.

“무슨 부탁인데 이러는 거야? 지금 말해 주면 안 돼?”

“가면 알아.”

권명은 안전벨트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조이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얼굴이 닿을 듯 가까워진 거리에 조이는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숨을 참고 있는 조이를 확인한 권명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더러운 성격과 달리 얼굴은 참으로 착했다.

“출발한다.”

권명은 드물게 기분이 좋은지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늘 예민한 고양이 같던 놈이 달라 보였다.

“태혁. 걔 발령받은 거 들었지?”

“어.”

조이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왜 굳이 이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조이는 애써 태혁을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 봐야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눈물만 나왔으니까.

“매칭에 실패한 가이드나 에스퍼는 한 번 더 매칭 기회가 있는 거 알아?”

“몰라.”

“이 기회에 알아둬라.”

권명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혼자 피식거렸다. 매칭 따위는 관심 없는 일이었다. 조이는 며칠 내로 북부로 날아가 의무병으로 복무하게 될 테니까. 특정 에스퍼가 아니라 닥치는 대로 가이딩을 뽑아내야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조이는 그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다 죽어 가던 에스퍼를 살려 낸 경험이 벌써 세 번이나 있지 않은가. 반시체 권명, 폭주 직전 권명, 배가 뚫린 에스퍼.

“자, 내려.”

그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권명은 내리라고 말했다. 목이 뒤로 꺾일 정도로 올려다봐야 하는 건물 보였다. 7구역 출신인 조이에게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또 어색한 곳이었다. 문을 열어주거나 의자를 당겨 자리를 권하는 사람들. 그들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태도가 더없이 낯설었다.

조이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이 어색함을 덜어 주는 것은 귓가로 들려오는 음악이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클럽의 기계 음악이 아닌 클래식 음악이었다. 수도에 온 이후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문은 내가 미리 했어. 괜찮지?”

“어…? 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긴장은 식사가 시작되며 조금씩 수위를 낮추어 갔다. 평소 싸가지 없고 얄밉던 권명은 어디로 갔는지, 젠틀한 제비 한 마리가 이곳에 있었다.

달팽이인지 조개인지 동글동글하게 생긴 음식이 나왔을 때, 권명은 손수 집게로 살을 발라 조이의 접시 위에 올려 주기까지 했다.

분명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 행동인데, 조이는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조이가 이런 대접을 어디에서 받아 보겠는가.

‘권명이 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부탁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한 잔 더 줘?”

“어. 좋아!”

조이는 어느새 와인을 두 잔째 마시고 있었다. 도통 기분이 좋을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신기할 정도고 기분이 좋았다. 조이를 짓누르던 모든 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급하게 잡은 자리라 뷰가 영 별로네.”

“어?”

그제야 조이는 창문 밖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수도의 랜드마크인 커다란 조형물과 대관람차가 반쯤 가려 있었다. 권명은 좀 더 고층으로 올라가면 근사한 뷰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위에 올라가서 한 잔 더 할까?”

“그래!”

위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는 분명 주량을 넘어서게 와인을 마셨지만, 조금 더 마시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권명의 손이 조이의 허리에 올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이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통속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서 어떻게 됐더라……?’

뒷이야기를 떠올리는데, 스르륵 문이 열렸다. 벽면 한쪽이 통유리로 된 아주 멋진 곳이었다. 커다란 유리창 안에 동제국의 수도가 담겨 있었다. 조이는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가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볼만하지?”

“어!”

조이는 사진을 찍듯 멋진 야경을 눈에 담았다. 몇 년이 지나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7구역 출신인 조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

권명은 조이에게 와인 한 잔을 더 건넸다. 그때, 조이의 귓가로 아주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어?”

괴상한 수도의 음악과 달리, 7구역은 여전히 협주곡이나 오페라가 대세였다. 고된 일을 하느라 음악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으나, 사장은 술집 분위기에 안 맞게 마왕이라는 오페라를 주궁 장창 틀어 댔다. 사랑에 빠진 마왕이 연인에게 배신당해 버림받는 아주 음침한 노래였다.

“좋아하는 노래라며?”

“내가?”

조이는 어쩐지 살짝 취한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식사를 하며 음악 얘기를 했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는 물음에 대충 7구역에서 매일같이 들었던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를 답했던 것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나도 이 음악 자주 들어. …할 때.”

“어? 뭐 할 때?”

취기가 도는지 발밑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권명은 자연스럽게 조이를 소파로 이끌었다. 온몸을 아래로 잡아끌 듯 푹신한 소파였다. 권명은 조이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기숙사를 내내 함께 사용했지만, 이렇게 가깝게 붙어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여긴. 왜 이렇게 덥냐?”

조이는 흐느적거리며 목을 조르듯 답답한 셔츠를 잡아당겼다. 첫 번째 단추를 겨우 풀고, 두 번째 단추를 풀려는데 권명의 손이 닿았다.

“내가 해 줄게.”

조이는 단추 두어 개만 풀 생각이었는데, 권명의 빠른 손이 어느덧 조이의 셔츠 단추를 몽땅 풀어냈다. 다시 단추를 채울까 했으나,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그냥 두기로 했다.

“난 이 부분이 좋아.”

권명은 조이의 셔츠 끝을 매만지며 말했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가사가 들려왔다. 마왕이 아리따운 여인을 유혹하는 부분이었다. 붉은 장미로 만개한 정원, 금은보화, 설탕으로 지은 성. 여인이 좋아할 법한 것들을 속삭이는 마왕의 목소리가 어쩐지 야릇하게 느껴졌다.

셔츠 끝을 매만지던 권명의 손이 어느덧 조이의 맨살에 닿아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커다란 손이 조이의 옆구리를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조이는 단단히 취한 것 같았다. 조이를 바라보는 권명의 표정이 아리따운 여인을 유혹하는 마왕과 닮아 보이니 말이다.

* * *

어느새 낮게 울려 퍼지던 음악 대신 귓가를 적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명의 질척한 혀가 귓불을 핥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에 조이의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으흣…….”

조이는 물에 젖은 귀를 손으로 벅벅 긁고 싶었다. 손을 올리기도 전에 권명의 손이 귓가에 닿았다. 질척한 귀를 손가락으로 애무하며 권명의 입술이 조이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왜… 왜…….”

조이는 왜 권명과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 질문을 던지려 했다. 그런 질문을 막아 내듯 권명의 입술이 조이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능숙하게 파고든 권명의 혀가 술에 전 혀를 꽉 옭아매고 하나가 될 듯 뒤엉켰다.

중간중간 버거운 호흡에 입술이 떨어졌고, 그때마다 권명은 입 안으로 와인을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입을 맞추면 맞출수록 자꾸만 목이 탔다.

“하아… 더… 더…….”

미처 넘기지 못한 와인이 입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물길을 찾아 헤매는 작은 도랑이 조이의 가슴까지 내려왔다. 하얀 가슴 위로 흐르는 붉은 물을 바라보던 권명은 쪽쪽 입을 맞추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아… 하아…….”

이런 각도로 권명을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키가 큰 권명은 늘 조이를 내려다봤지, 조이를 올려다본 적은 없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얼굴을 조이는 낯설게, 또 익숙하게 바라보았다. 서로의 코가 닿을 듯 가까워지자 짙은 바다 같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눈이 부드럽게 감기며 서로의 혀가 맞닿았다.

조이는 멍하게 입을 벌렸다. 조이의 입 안을 탐색하듯 조심스러웠던 입맞춤이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 갔다.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조이를 옭아매고 몰아붙였다. 입을 맞췄을 뿐인데 단전에서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하아… 하아… 자… 잠깐…….”

끈적하게 달라붙던 입술이 떨어지자 곧바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가슴을 부풀리며 숨은 내쉬는 조이와 달리 권명의 입술은 조이의 목을 타고 내려가 빨간 유실에 닿았다. 기대감에 한껏 치솟은 붉은 열매 위로 권명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가벼운 접촉에도 조이의 입에서는 야릇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읏!”

권명의 입술이 벌어지며 붉은 혀가 젖꼭지에 닿았다. 성기처럼 발기한 유실을 혀로 쓸어 넘길 때마다 조이의 가슴이 점점 더 위로 들렸다.

조이는 흐릿한 눈을 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권명의 커다란 손이 조이의 가슴살을 아플 정도로 모아 잡고 있었다. 그 위로 뾰족하게 솟은 유실은 젖이라도 나오는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더… 더 해 줘. 하아… 더.”

“더?”

조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권명이 고개를 들었다. 푸른빛을 띠던 눈동자가 이제는 석양처럼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권명은 곧바로 고개를 파묻고 두 개의 젖꼭지를 번갈아 가며 입에 물었다. 조금 전 부드럽게 핥는 것과는 달리 조금은 난잡하게 젖꼭지를 뭉개고 빨아 당겼다.

권명의 입 속으로 사라진 젖꼭지에서는 몸을 움찔움찔 떨리게 만드는 감각이 피어났다. 젖꼭지가 입천장에 꾹 눌릴 때면 조이의 구멍도 숨을 쉬듯 꽉 오므라들었다 벌어지기를 반복했다. 다리를 배배 꼬며 그 감각을 견디는데, 권명의 손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손가락 하나가 닿았을 뿐인데, 열이 오른 구멍에서 투명한 물이 흘러나왔다. 조이는 자신의 몸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구멍이 이렇게 젖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빨린 건 젖꼭지인데 왜 아래가 흥건해?”

“으읏!”

“무슨 상상을 한 건데? 이런 상상?”

손가락 두 개가 벌어진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입으로 손가락을 애무하는 것처럼 조이의 속살이 손가락에 철썩 달라붙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쫙쫙 무네. 너도 기대한 거지? 언제부터 이렇게 젖어 있었어? 밥 먹을 때부터?”

“아…니야. 아읏!”

아니라는 조이의 말을 비웃으며 권명의 손가락이 조금 더 성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넣었다 빼는 동작을 성기의 움직임으로 착각한 것인지, 조이의 구멍에서는 민망할 정도로 물이 흘러나왔다.

“이것 봐. 아래 다 풀렸어. 질질 물도 나와.”

“으읏… 그… 그만해. 으읏!”

“그만은 무슨.”

“하아흣! 아아!”

권명의 손가락이 물을 털어내듯 조이의 구멍에서 마구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맞춰 물속에서 살을 비비는 것과 같은 젖은 소리가 들려왔다. 간질간질 그곳이 자극되어 온몸이 잘게 튀어 올랐다.

“아읏. 아… 으윽. 그… 그만…! 빼! 빼에!”

조이의 말대로 권명은 꾹 박혀 있던 손가락을 빼냈다. 살짝 벌어진 구멍에서 주르륵 물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생생했다.

“아쉽지? 지금 너 구멍이 어떤 줄 알아?”

권명은 조이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벌렁벌렁’거린다고.

조이의 얼굴이 터져 버릴 듯 붉어졌다. 지금 당장 병째 술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취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권명은 그런 조이의 구멍을 엄지손가락으로 애무하며 유혹하고 있었다.

“박아 줄까? 실컷 먹여 줄게. 어?”

권명의 손이 느긋하게 훑는 구멍을 피가 나오도록 긁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안쪽을. 권명은 손가락 대신 발기한 귀두를 가져다 대고는 원을 그리듯 문지르고 있었다. 조이의 구멍은 이 물건을 달라는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달라고 해 봐.”

조이는 자존심을 부릴 일도 아니건만,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었다. 권명과 이러고 있는 상황이 꿈처럼 낯설었고, 그럼에도 온몸이 달아올라 애가 탔다.

“고개만 끄덕여. 바로 쑤셔 줄게.”

늘 못된 말만 내뱉던 입이 야살스럽게 조이를 뒤흔들고 있었다. 밑을 슬슬 비비는 그 물건을 조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커다란 것이 조이의 아래를 꽉 채우던 그 감각을.

조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도 충분한 답이 된 것인지, 권명의 성기가 구멍을 빠듯하게 벌리며 파고들었다.

“아아흣!!”

아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이물감에 몽롱했던 정신이 또렷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쿵’ 하고 구멍 속 어딘가가 짓눌리자 온 세상이 하얗게 탈색됐다.

“아읏…! 아으흐…….”

조이의 양다리가 권명의 허리에 넝쿨처럼 감겼다. 구멍을 찢어 낼 듯 벌리던 그 물건이 빠져나가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뜨거운 살 기둥이 훑고 지나간 자리가 허전해 잠시도 참을 수 없었다. 조이는 권명의 몸에 매달렸다.

“나… 나가지 마! 아흣. 나가… 아아……!”

“하아… 씨발. 나가지 마?”

“으… 응… 아읏!”

권명의 움직임이 점점 더 포악해지기 시작했다. 조이의 다리가 귓가에 닿을 정도로 꾹 누른 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듯 성기를 쑤셔 넣었다. 퍽퍽 정을 치는 소리에 조이의 온몸이 쿵쿵 떨려 왔다.

“아흐…! 아읏! 아아……!”

“하아… 좋아? 안조이. 좋냐고?”

조이는 대답을 회피하듯 권명을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권명은 기어코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조이의 턱을 움켜쥐며 재차 물었다. 조이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친 움직임에 피를 보일 듯 붉어진 구멍과 벌겋게 변한 엉덩이가 분명 아파야 하는데, 아프지 않았다. 구멍이 발발 떨릴 정도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이는 미약한 실선을 잡고 버티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아슬아슬하게 참아 내듯. 푹푹 성기가 꽂혀 올 때마다 온몸을 비틀었다.

“아흣! 윽! 아읏! 자… 잠깐만! 멈춰……!”

“하아… 하아… 구멍이 씹어 먹을 듯 무는데 어떻게 멈춰? 구멍에… 윽. 힘 좀 풀어.”

그날 눈 내리는 산장에서 그러했듯, 권명은 발정 난 종마처럼 허리를 움직였다. 성난 불기둥이 빠르게 파고들어 그곳을 짓찧고 있었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힘에 조이의 몸이 조금씩 소파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흣… 아… 아……!”

권명의 목을 꽉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이 빠지는 순간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상체를 뒤틀며 잠시만 멈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짐승의 소리였다.

“하흣… 아…! 아흐…! 아흐흣!!”

귀두가 보일 정도로 쑥 뽑혀 나간 성기가 뱃가죽을 뚫을 듯 푹 꽂혀 왔다. 딱딱하게 굳은 귀두가 건드려서는 안 될 곳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움직임이 조금씩 깊이를 더해 갈수록 구멍이 미친 듯이 떨려 왔다.

팽팽하게 잡아당기던 실선이 끊어지듯, 조이의 머릿속에도 뭔가가 뚝 끊어지는 순간이 왔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성난 불기둥이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혔다.

“아아!!”

비명을 지르며 조이의 허리가 동그랗게 뒤로 넘어갔다. 단단한 팔이 조이를 잡아채지 않았다면 바닥으로 나뒹굴었을지도 모른다. 쩍 벌어진 입가로 침이 뚝뚝 흘러넘쳤고 태풍처럼 몰아치는 쾌감에 이대로 온몸이 재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크윽! 하아…….”

성기를 물어뜯듯 꽉 좁아진 내벽 탓에 권명 역시 사정을 한 듯했다. 육식 동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사정 후 쾌감을 음미하던 권명은 물에 젖은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하아… 구멍으로 물 쏟아 내는 건 처음 봐. 씨발. 대체 어떻게 된 몸인 거냐?”

“으흐… 으으…….”

권명은 조이의 몸을 끌어당겨, 흠뻑 젖은 손을 조이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조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물에 손을 담갔다 뺀 것처럼 젖어 있을 테지.

“하으. 그… 그만… 아흣!”

“그만은 무슨. 얘한테도 물어봐 봐. 더 달라잖아.”

권명은 조이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양쪽으로 벌렸다. 울컥 정액을 토해 내는 구멍으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래쪽으로 힘이 들어간 탓에 구멍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권명은 조이의 그곳을 자지 꽤나 밝히는 구멍이라고 불렀다. 수치스러움에 혀를 깨물고 싶은 말이었다.

“으읏… 뭐… 뭐 하는 거야?”

조이는 꽉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권명은 지치지도 않는지 조이를 번쩍 들어서 침대로 데려갔다. 내려 달라는 말 대신 조이는 그저 두 눈을 감았다. 이미 권명에게 보여 줄 만큼 온몸을 내보였음에도, 조이는 앞을 가린 채 엎드렸다.

“자냐? 잠 깨게 해 줘?”

“아야!”

조이는 홀딱 속은 느낌이 났다. 허전했던 마음을 파고들 듯, 부드럽던 권명의 태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첫 사정으로 조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다정함은 다 쏟아 냈다는 듯, 놈은 조이의 엉덩이를 찰싹 내려쳤다.

“더 쓴다.”

뭘 더 쓴다는 건지는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권명은 조이의 양 볼기를 쫙 잡아 벌리며 곧바로 살 기둥을 쑤셔 넣었다.

“아아!!”

이미 한차례 사정했음에도 저 물건을 받는 것은 여전히 버거웠다. 등 뒤로 조이의 허리를 잡아끄는 힘이 느껴졌다. 권명은 조이의 엉덩이에 음모가 닿을 정도로 꾹 눌렀다가 살짝 빼내며 또 한 번의 격정적인 삽입을 예고했다.

지난번 퉁퉁 부어 엉망이 된 구멍이 떠올랐다. 어깨 너머로 권명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단단히 미친 눈이었다. 조이는 살살 해 달라는 덧없는 말을 내뱉었다.

“사… 살살… 아아!”

조이의 말을 보란 듯이 무시하며, 권명은 ‘퍽’ 소리가 나도록 성기를 쑤셔 넣었다. 조이의 얼굴이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첫 사정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한 몸이 또다시 달아올랐다. 뜨거운 물을 다시 끓이듯 조이의 몸에서 금세 열기가 솟아났다.

“하읏… 윽… 아흣!”

“하아… 이 발정 난 새끼. 하아.”

한숨처럼 내뱉은 저 말이 조이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권명 본인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권명 말대로 조이는 발정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거친 움직임에도 숨길 수 없이 느끼고 있었다. 온몸을 불태우는 이 강한 열기를 조금도 거부할 수 없었다.

권명이 물라고 하는 성기를 입에 물었고, 먹으라고 하는 뿌연 액체를 혀로 핥았다. 조이는 권명의 눈이 늘 바다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헷갈렸다. 푸르른 바다색인지, 아니면 노을 진 바다색인지.

* * *

몸 위로 느껴지는 침구는 실크처럼 부드러웠고, 몸 아래에 닿은 매트는 구름처럼 포근했다. 이런 침대에서 잠을 잔다면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조이의 몸은 고된 노동을 한 것처럼 욱신욱신 아팠다.

“아흑…….”

누군가에게 목이라도 졸렸는지 침을 삼키는 것도 힘들었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목이 찢어질 듯 메말랐다. 물이라도 마실 생각에 조이는 힘겹게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반질반질하고 잘난 낯짝이었다. 그 얼굴에 있던 상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멍하게 잘난 얼굴을 감상하던 조이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얘… 얘가 왜……?”

기다렸다는 듯 뜨거웠던 지난밤의 사건이 영화처럼 조이의 눈앞에 펼쳐졌다. 조이는 당혹스러움에 모든 동작은 멈춘 채 굳어 있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권명은 조이를 힐끔 보더니, 벌거벗은 몸을 일으켰다.

“물 줘?”

“어… 어…….”

권명이 건넨 물병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물을 삼켰다. 꽉 막혀 있던 혈관에 피가 돌 듯 목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한결 나아졌다. 조이는 또 한 모금 물을 삼키며 눈치를 살폈다.

조이는 이런 상황이 몹시 낯설었다. 7구역에서는 내내 동정이었고, 수도에서도 뭐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관계를 맺은 후 다음 날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또한 조이가 주로 보던 소설 속에서 이런 관계는 사랑의 확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후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조이와 권명 사이에서 확인해야 하는 사랑 따위는 없었고, 특별한 사이로 발전할 이유도 없었다. 구름처럼 포근했던 침대가 점점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조이는 수고했다는 인사말을 건넨 후 알아서 돌아가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씻어. 브런치 잘하는 곳 알아.”

다행히도 권명의 입에서 태연한 말이 흘러나왔다. 조이는 권명이 뒤돌아선 사이,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다리를 바닥에 디딘 순간 갓 태어난 사슴처럼 주저앉았다.

뒤를 힐끔 보자 권명은 벌거벗은 채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참 낯짝도 두껍지. 홀딱 벗고 저게 뭐람. 조이는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욕실 안으로 쩔뚝쩔뚝 걸어갔다.

“와. 진짜 좋다!”

스무 해 인생 동안 본 욕실 중에 가장 좋았다. 과장 없이 이 욕실이 세 식구가 모여 살던 7구역 집보다 컸다. 조이는 그 와중에도 이렇게 큰 욕실을 청소하려면 꽤 힘들겠구나 하는 7구역 출신다운 감상평을 남겼다.

조이는 촌스럽게도 샤워기를 켤 줄 몰라 한참을 헤맨 끝에 몸을 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비처럼 내리는 물을 맞을 수 없었다. 지난밤 실컷 괴롭힘당한 젖꼭지가 말도 못 하게 아팠다. 위에서 내리는 물방울이 바늘처럼 따가웠다.

조이는 빗물로 몸을 씻듯, 두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받아 씻어야 했다. 이리 좋은 샤워 시설을 두고.

* * *

권명은 예민하고 깔끔하며, 재수 없는 말투를 쓰는 도련님이었다. 그런데 그 예민함과 깔끔함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끼는 조이였다. 어제부터 권명이 추천한 식당은 먼지 하나 보이지 않게 깨끗했고,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7구역은 동제국 영토 중 가장 내륙에 위치했고, 서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 때문에 해산물이 귀한 곳이기도 했다. 종종 사장이 어렵게 구해 온 해산물을 바라볼 때면 외계 생명체를 본 듯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나 먹을 것이나, 생긴 거로 판단하면 안 된다. 랍스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내린 결론이었다. 돌처럼 딱딱한 껍질 안에 이리 맛있는 속살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순식간에 커다란 샌드위치를 먹어 치운 조이는 손가락을 쫍쫍 빨아 댔다. 그 모습을 보던 권명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뭘 그렇게 빨아? 어제 그렇게 빨고도 부족해?”

“빨… 뭐…?!”

지난밤의 일이 불시에 떠올랐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권명은 조이에게 지난밤을 상기시키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해서 조이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불시에 그 일을 입에 담다니. 권명 놈. 몸싸움 말고 말싸움도 잘할 것 같았다.

“더 줘?”

“배불러…….”

“뭘 줄 줄 알고 배부르대?”

권명은 피식거리며 조이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난밤 조이의 입가를 찢을 듯 파고들던 물건이 떠올랐다.

‘그 물건이 숨도 쉴 수 없게 목구멍까지 틀어막았었는데.’

조이는 애써 모른 척 말을 돌렸다.

“근데… 나 보고서 빨리 봐야 해. 그리고 그… 부탁이… 뭐야?”

권명은 옆자리로 옮겨 오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조이는 혹여 권명이 또 이상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닌지 싶어 뭉그적거렸다. 조이가 굼뜨게 움직이자 권명은 하얀 서류를 흔들면 다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보고서였다.

“하급 장교도 볼 수 없는 서류야 이건.”

권명의 말대로 표지에는 2등급 기밀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구했지?’

두툼한 서류를 한 장씩 넘길수록, 조이의 예상이 맞아떨어져 갔다. 그날 마주쳤던 군인들은 땅굴을 급습할 목적으로 출동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남은 적군을 생포 및 사살하였고, 그 과정에서 실험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실험실이 이주한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 표시된 지도도 첨부되어 있었다. 작은 에스퍼의 말대로 북쪽이었다. 하지만 유력 후보지는 최전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잘 봤어.”

조이는 작게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며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뭐라고? 고. 뭐?”

권명은 짓궂게 조이의 목 뒤를 꽉 쥐며 재차 물었다. 분명 들었을 텐데 저러고 있었다.

“고… 고맙다고! 그래서 네 부탁은 뭔데?”

“뭘 거 같냐?”

조이는 어제의 그 일로 권명의 부탁이 무엇일지 추측할 수 있었다. 매칭 기간이 다가오자 짝짓기 철 철새들처럼 날뛰던 생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터에서 함께 싸울 페어를 찾는 일인데도, 그 과정은 짝짓기 상대를 향한 구애의 행위와 닮아 있었다.

어제 권명의 모습이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물론 막판에는 본성을 드러냈지만.

“안조이. 내 가이드가 되면 저 세 구역 중 하나로 무조건 발령받을 수 있어.”

“나는 최전방으로 가야 하는데……?”

“뭐?”

권명은 미간을 찌푸린 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이는 심문 장교에게 최전방 복무로 영창 기간을 협상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소리를 듣던 권명의 인상이 ‘와그작’ 구겨졌다.

“그게 뭔 개소리야? 최전방 복부 그딴 거 없어도 넌 2주 반이면 알아서 풀려났어!”

“??”

당황한 조이의 표정에 권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자신이 남긴 메모를 확인했냐고 물었다.

“무슨… 메모?”

“이 바보야! 책! 책에 꽂아 둔 메모 못 봤어?”

조이는 그제야 권명이 쓰던 침대 위에 홀로 남겨져 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그 안에 메모를 숨겨 놨던 모양이었다.

“네… 네가 읽으란 말 안 했잖아!”

조이는 소리 높여 따지듯 물었다. 권명이 친절하게 조이에게 메모를 남겼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책을 펼쳐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조이는 내친김에 할 말을 모조리 할 생각이었다.

“너야 믿을 구석이 있었겠지. 근데 난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고! 그런 걸 볼 틈이 어디 있어?”

“그 인간 도움으로 풀려난 거 아냐! 그 인간한테 받는 건 도움도 아니고 독이니까.”

조이의 예상과 달리 권명은 심문 장교와 협상을 한 모양이었다. 권명은 전장으로 복귀하는 조건으로 예정보다 일찍 풀려난 것이었다. 군에서는 이미 임관한 권명이 사관학교를 맴도는 것이 큰 전력 낭비였기에 어떻게 해서든 권명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것이다.

“복귀하는 조건으로 널 가이드로 데려가겠다고 했어. 그 조건으로 너도 곧 풀어 준다고 했고.”

“…….”

“씨발. 여우 새끼!”

심문 장교는 조이를 이용해 권명을 최전방으로 보낼 수작을 부린 것이었다. 권명은 의자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한참 동안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주로 욕설이었다. 자길 가지고 놀고도 목숨 멀쩡하게 붙어 있을 줄 아느냐는 등 위협적인 소리를 지껄였다. 군인이 아니라 마피아 같았다.

권명이 한껏 난리를 치는 동안 조이는 권명과 페어를 이루는 일을 상상했다. 분명 짜증스러운 상황이 곧잘 벌어질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 권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권명이 자신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혼자 빠져나간 듯해 조이는 서운함과 서러움을 느꼈었다. 조이에게는 그런 도움을 줄 이가 전혀 없었으니까. 권명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놈이지만, 그리 나쁜 놈 같지는 않았다.

가이딩은 필요 없다는 놈이 조이를 가이드로 데려갈 생각을 했다니.

“야. 안조이. 일어나. 지금 당장 북부로 가야 해.”

“지금?”

“어. 개새끼. 감히 날 가지고 놀아?”

권명은 단단히 화가 난 듯 이를 갈며 말했다. 무작정 N48 구역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에 나온 지역 중 하나였다.

“발령도 없이?”

“가서 깔고 뭉개면 알아서 발령 서류 가져다 바치겠지!”

대책 없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그럴듯했다. 권명 같은 에스퍼가 알아서 찾아왔으니, 그곳을 담당하는 장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발령 서류를 받아 낼 것이다.

“타. 빨리 떠야 하니까.”

조이는 매끈한 자동차에 다시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매려는데 지난번처럼 권명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엔 조이의 얼굴이 아닌 다른 곳에 권명의 시선이 닿았다.

하얀 셔츠 위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젖꼭지였다. 지난밤 어찌나 물고 빨았던지 아직도 퉁퉁 부어 있었다.

“안조이. 젖꼭지 좀 빤다.”

“뭐… 뭐? 미쳤나 봐!”

조이가 기겁을 하며 밀치자 권명은 오히려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근데 왜 세워! 꼴리게!”

“아읏! 야!”

언젠가 그러했듯 권명은 하얀 셔츠 위로 삐쭉 솟은 젖꼭지를 물었다. 뻣뻣한 천에 쓸린 젖꼭지에서는 말도 못 할 통증과 쾌감이 느껴졌다. 떨어져 나갈 듯 아픈데, 그 끝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조이는 이 순간 자신의 머리에 꿀밤이라도 쥐어박고 싶었다. 정말로 못 말리는 몸이었다.

“아읏! 그만해! 야!”

권명의 입에서 춥춥 빨렸던 가슴 한쪽이 둥그렇게 젖어 있었다. 투명하게 변한 하얀색 셔츠 위로 뾰족하게 솟은 붉은 젖꼭지가 보였다. 권명은 그 부위를 손가락으로 꽉 쥐며 협박하듯 말했다.

“나랑 북쪽으로 갈 거지?”

이딴 짓을 안 해도 간다고 했을 것이다. 권명이 좋아서가 아니라, 조하를 찾기 위해서. 조이는 권명의 손을 쳐 내며 말했다.

“윽…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떨어지겠어!”

“떨어지면 내가 갖지 뭐!”

“미… 미친놈!”

권명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했다. 조이는 권명과 페어를 이루는 것이 진정 잘한 선택인지 살짝 의심이 들었다.

‘어쩐지 맛이 갔다. 저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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