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매칭
생존 훈련에서 조이는 꽤 좋은 성적을 받았다. 평가 기준에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북쪽까지 도달한 팀이었고,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었다.
‘큰 부상이라…….’
만약 조이의 구멍을 봤다면 그런 진단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이의 엉덩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한껏 벌어진 구멍은 아직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숫총각처럼 굴던 권명은 발정제라도 맞은 듯 날뛰었다. 조이가 정신을 잃고 깨어난 순간에도 권명은 성기를 박아 넣고 있었다. 어찌나 깊게 쑤셔 넣던지 조이는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을 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던 놈은, 생존 훈련이 종료되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함께 쓰던 기숙사로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으윽…….”
조이는 가랑이를 쫙 벌린 채, 그곳에 약을 발랐다. 일전에도 만져 본 적 있지만, 지금처럼 퉁퉁 부어오른 적은 없었다. 자위를 꽤 좋아하는 조이지만, 뒤쪽으로는 손도 대지 못했다.
‘권명 놈. 그 무식한 물건을 함부로 쑤셔 넣더니, 기어코 구멍을 이렇게 만들어 놨구나.’
종적을 감출 정도로 충격을 받은 권명과 달리, 조이는 그날 일을 그리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 그날 가이딩을 하지 않았다면 구멍이 망가지는 대신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다. 폭주한 권명이 이성을 잃고 조이를 공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종국에는 시한폭탄처럼 온몸이 터져 버렸을 테지.’
조이는 그 일을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실보다는 득이 더 큰 일이었다. 아마 증폭기를 보급품으로 받지 않는 한, 조이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명에게는 그 일이 그리 쉽게 정리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훌쩍 사라진 걸 보면.
‘웃겨 진짜. 지만 처음인가. 나도 처음이었거든!’
조이는 혼자 피해자처럼 구는 권명의 태도에 억울함을 느꼈다. 수도에서 곱게 자라서 그런지,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사라질 건 또 무엇인가. 그나마 이 사관학교에서 말을 섞던 상대였는데, 홀연히 사라지니 빈자리가 느껴졌다.
‘그럴 거면 말이라도 걸지 말든지…….’
유치한 다짐이지만, 조이는 권명이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거든 알은척도 안 할 생각이었다.
* * *
생존 테스트를 끝으로 2차 평가가 종료되었다. 가혹했던 생존 훈련으로 잠시 가라앉았던 교정이 다시 떠들썩하게 들뜨기 시작했다. 생도들은 짝짓기 철을 맞은 철새처럼 페어를 이룰 상대를 찾아다녔다.
교관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군에서는 최대한 상성이 잘 맞는 가이드와 에스퍼를 매칭해 주고 있었다. 오늘 교관은 조이에게 매칭 결과표를 보여 줄 것이라고 했다. 물어볼 것도 없이 후보에는 권명이 있을 것이다.
결과표를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생존 훈련 동안 조이가 직접 몸으로 느낀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이는 권명이 아닌 태혁과 페어가 되고 싶었다.
막 교관실 문을 두들기려는데, 안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칭 결과도 좋고, 직접 가이딩도 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올해 안에 권명 생도가 군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예.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똑. 똑.
노크 소리에 황급히 전화를 끊은 교관은 조금 어색한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교관은 조이에게 상성이 잘 맞는 에스퍼 세 명을 추천했다. 세 명 중 1순위는 물어볼 것도 없이 권명이었다. 92%의 매칭률이었다. 다 죽어 가던 반시체를 살려 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2순위는 정신계 에스퍼로 지금은 긴급 발령을 받아 사관학교를 떠난 에스퍼였다. 언젠가 클럽에서 보았던 약쟁이 놈이었다. 정신계 에스퍼는 실전 전투보다는 내근직이나 스파이 활동을 주로 한다고 들었는데, 저런 놈이 스파이를 한다니.
조이는 2순위를 아예 열외로 치기로 했다. 정신계 에스퍼는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큰 공을 세우지 못하는 보직을 주로 받았기에 전쟁영웅 4등급을 받기에는 무리였다. 마지막으로 3순위를 확인했다. 매칭 점수는 70%로 조이가 가장 원하던 후보였다. 태혁이 3순위였다.
“됐다…! 됐어!”
조이는 당연히 태혁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태혁에게도 조이보다 매칭 점수가 높은 후보가 있을 테지만, 조이의 뛰어난 성적을 본다면 조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권명 생도와 페어를 맺을 테지?”
교관은 당연하다는 듯 권명과 페어를 맺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조이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1순위에 태혁의 이름을 올렸다. 교관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조이를 바라보았다.
“1370번 생도. 군을 위해서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매칭 결과가 92%인 후보를 두고…….”
교관의 말에도 조이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교관은 계속해서 조이를 설득하려 했으나 조이는 태혁의 이름 옆에 별표를 다섯 개쯤 그려 넣었다. 그쯤 되니 교관도 조이의 의지를 인정해야 했다.
“본인이 강력하게 원하는 일이니, 이대로 등록은 해 주겠네. 하지만 알다시피 양쪽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일이네. 나가 보게.”
교관은 어서 꺼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조이 역시 이곳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조이는 외출증을 받아야 했다.
며칠 전부터 동생과 통화를 할 수 없었다. 7구역은 수도와 달리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종종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통화가 안 된 적은 없었다.
조이는 생존 테스트를 받기 전날 동생과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했다. 불안해하던 동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조이는 속달 우편을 보낼 생각이었다. 일반 우편보다 10배는 비싼 값이지만, 빠른 배송과 확실한 전달을 보증한다는 광고 문구를 봤다. 편지가 반송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동생이 잘 있는 것이었다.
“외출증? 아! 잘됐군.”
교관은 외출증의 대가로 심부름을 시킬 생각인 듯했다. 조이에게 두툼한 서류 봉투를 건넸다.
“권명 생도가 마침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 자가에서 치료 중이네. 이걸 전달해 주게.”
교관은 이 모든 서류를 꼭 권명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며, 전달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꼭 언급하라고 당부했다. 외출증을 대가로 권명을 봐야 한다라.
“알겠습니다.”
* * *
조이는 전달하라는 서류를 옆구리에 낀 채 정류장으로 향했다. 속달 우편국에 들렀다가 권명의 집으로 가는 노선을 떠올렸다. 그때 조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채는 이가 있었다. 태혁이었다.
“조이. 어디 가?”
“나 우체국 갔다가 권명네 집에 가야 해. 이거.”
조이는 옆구리에 낀 서류를 살짝 보여 주었다. 태혁은 마침 자신도 집에 가는 길이라며 같이 가자고 했다. 태혁의 집이 권명의 집과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수도의 길은 어찌나 복잡한지 조이는 수도에 온 지 반 학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길을 헤매고는 했다.
“22번, 저거 타면 돼.”
조이는 태혁과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태혁이 페어로 누구를 1순위에 올렸는지 은근슬쩍 떠볼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트램에 오르자마자 그런 망상은 깡그리 무너졌다.
종이 6번 치는 시간. 퇴근 시간이었다. 조이는 다시 내리지도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버렸다.
“윽! 미… 밀지 마!”
조이는 쥐포가 될 듯 창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조이가 퍽 안쓰러웠는지, 태혁은 자신의 앞으로 공간을 만들어 냈다.
“조이. 여기 서.”
“으응…….”
조이는 태혁이 벌려 둔 공간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 이런 배려는 처음이었다. 조이는 늘 이리저리 치이다가 쥐포가 되는 사람인데.
“최종 성적 확인했어?”
“어……?”
태혁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태혁은 고개를 숙여 조이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2차 평가 결과를 확인했냐는 물음보다 귓불에 닿는 뜨거운 입김이 더 신경 쓰였다. 클럽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조이를 숨 막히게 했던 그 일이.
“조이?”
“어? 아… 나는 3등 했어.”
“뭐라고?”
조이는 태혁의 어깨를 잡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태혁의 귓가로 조이가 3등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부쩍 가까워진 거리에 조이의 입술이 태혁의 귓불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뿐인데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3등? 목표했던 등수네. 축하해!”
태혁은 대단하다며 조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축하였다. 조이는 이런 칭찬을 받은 적이 없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태혁에게 할 말을 고르느라 방심한 사이, 트램이 급정거를 했다. 신호를 무시한 스포츠카가 트램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아!!”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조이를 태혁이 재빨리 끌어안았다. 태혁이 잡아 주지 않았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괜찮아?”
“어? 어……!”
코가 닿을 듯 태혁의 얼굴이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또한 그때처럼 서로의 다리가 뒤엉켜 있었다. 그날 입을 맞추며 태혁의 다리가 조이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었다. 탄탄한 허벅지에 꾹 눌린 성기에서 찌릿한 느낌이 솟구쳤었는데.
조이는 어쩐지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태혁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색했다. 조이는 대신 태혁의 가슴팍을 노려봤다.
킁킁.
그런데 아까부터 태혁에게 아주 좋은 냄새가 났다. 조이는 코를 벌렁거리며 태혁의 냄새를 맡았다. 수도의 도련님들은 다 이런 건지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맡아졌다. 파란색이 떠오르는 아주 좋은 향.
태혁은 킁킁거리며 자신의 가슴팍에 코를 들이박는 조이를 부담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왜?”
“너한테 아주 좋은 냄새 나.”
“크음. 그래?”
태혁은 어색하게 되묻더니 물끄러미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안내 방송과 함께 트램이 다시 정상 가동되었지만, 태혁은 조이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 * *
조이는 교관이 말한 대로 권명의 아버지에게 서류를 직접 건넸다. 서류만 전달하고 바로 나가려 했으나 중년 신사는 자리를 권했다. 어색하게 소파에 앉아 찻잔을 매만졌다. 조이를 뚫어지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좋은 인상과는 별개로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조이의 가치를 살피는 표정이었다. 사업가다웠다.
“조이 군. 학과 성적이 우수하더군. 아주 훌륭해.”
“예? 아… 감사합니다.”
“서 교관한테 들었네. 7구역 출신이라고?”
“네…….”
교관이 조이에 대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모양이었다. 권명의 아버지가 조이의 출신을 아는 걸 보면. 뭐 자랑이라고 이런 얘기까지 한 걸까?
“기분 나빠 하지 말게. 사관학교에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이 여럿 있네. 혹여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네.”
“아… 예…….”
“난 조이 군의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후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예상하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후원이라니.
사장들은 다들 후원을 좋아했다. 마왕의 사장 역시 미치광이답게 주말이면 보육원으로 봉사를 가고는 했다. 값비싼 해산물이나 신선한 야채를 트럭 가득 싣고 와 퍼 주고는 했다. 조이는 속으로 나도 달라고 소리쳤었는데, 지금 조이에게도 그런 기회가 온 걸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저 신사는 7구역에 있는 사장과 달랐다. 사장은 아무 대가 없이 선의를 베풀 사람이지만, 눈앞에 있는 저 신사는 아닐 것 같았다. 조이는 어쩐지 권명의 아버지가 말하는 후원이 거래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에게 혹시… 뭔가… 원하시는 게 있나요?”
조이의 눈치 빠른 물음에 중년 신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권명. 내 아들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꽤 유능한 놈이네. 일개 하급 장료로 퇴역한 놈이 아니란 말이네. 근데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네.”
조이 역시 아는 문제였다. 권명은 놀라운 재능을 지닌 에스퍼였다. 에스퍼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가이딩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권명은 군인이고 군인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앞장서 싸워야 하는 에스퍼에게 부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가장 쉽고 빠르게 치료할 방법을 거부한다면,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우기는 요원할 것이다. 에스퍼의 자연 치유력이 물론 평범한 인간에 비하면 뛰어날지 모르나 가이딩을 받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조이가 짧은 기간 동안 권명을 살펴보며 알아차렸듯, 중년 신사는 권명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조이에게 찾고 있었다.
“조이 군, 내 아들의 가이드가 되어 주게.”
이것이 바로 후원의 대가였다. 조이가 권명의 가이드가 되는 것. 당혹스러워하는 조이의 표정을 살피던 신사는 쐐기를 박듯 탐나는 제안을 덧붙였다.
“7구역에 남아 있는 가족들 생활비까지 지원할 생각이 있네.”
조이는 눈앞에 있는 신사가 자신의 성적뿐만 아니라 가족 정보까지 미리 파악했을 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이 제안대로라면 조이의 동생은 수도의 아이들처럼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이런 부잣집에서 장군으로 키우려고 하는 아들이라면 분명 승급도 빠를 것이다.
분명 실보다 득이 더 큰 일이었다. 늘 그렇듯 이득이 더 큰 쪽을 선택해야 하는데, 어쩐지 망설여졌다. 이제 와서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하는 판단이 선 것은 아니었다.
예민한 고양이처럼 가이딩을 거부하던 권명이 떠올랐고, 밀접접촉을 사주한 이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하던 권명의 모습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권명을 몰랐다면 이 제안을 덥석 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을 알게 된 이상 이런 비밀 거래를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입만 열면 얄미운 소리를 하는 녀석이지만,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틀림없이 내일이면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친 것을. 하지만 자꾸만 가슴 한쪽이 콕콕 찔려 와 어쩔 수 없었다.
“권명이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이제 대가를 받는 가이딩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조이 군. 지금 대답하라는 말이 아니네. 천천히 다시 생각하게.”
권명의 아버지는 단호하게 조이의 말을 가로막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후원하는 아이들은 매년 정해져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명함을 건넸다. 조이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명함을 받아 들었다.
* * *
그날 밤,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던 권명이 기숙사로 돌아왔다. 부쩍 수척해진 것이, 생존 훈련을 하던 때보다 더 안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이는 며칠 전, 권명이 다시 나타나거든 말도 걸어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왜 그래?”
금방이라도 권명의 입에서 얄미운 소리가 흘러나올 것이라 예상했건만, 놈은 뚫어지게 조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이를 원망하는 표정이었다.
“왜… 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건만 조이는 말을 더듬었다. 한참 동안 조이를 바라보던 권명은 작게 이를 갈더니 침대에 누웠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어 봤지만, 권명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하는 짓을 보니 사춘기 아들이 따로 없었다.
“참 나!”
며칠 지나지 않아 권명은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군인 체질인 건지 기숙사로 돌아온 후 금세 얼굴이 반질반질해졌다. 하지만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좀 이상해졌다.
‘좀. 맛이 갔달까?’
조이는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부쩍 권명과 눈을 마주치는 횟수가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조이를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또 식사를 하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번번이 권명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공용 화장실은 절대 쓰지 않는 깔끔쟁이가 화장실까지 따라왔으니 말이다. 권명은 세면대 옆에 서서 조이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다.
“권명. 할 말 있어?”
“뭔 말? 손이나 씻어.”
놈은 뻔뻔하게 모른 척하고 있었다. 세면대를 가리키며 손이나 씻으라고 말할 뿐. 조이는 권명을 따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죄도 없는데 이렇게 감시를 받으며 살 수는 없었다.
“네! 학교장님!”
조이가 바짝 군기가 든 척 경례를 하자 권명이 휙 뒤를 돌아보았다. 조이는 그 틈에 잽싸게 밖으로 튀어 나갔다.
“스토커가 따로 없네!”
조이는 권명을 따돌린 채 태혁이 기다리고 있을 스쿼시장으로 향했다. 조이는 태혁을 만나거든 사과할 생각이었다. 태혁은 모르겠지만, 조이는 꽤 오래 태혁을 스토킹했었다. 그저 순수하게 태혁과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인데, 당해 보니 꽤 불쾌한 일이었다.
최종 매칭 결과가 공포되기 전까지 생도들에게는 운동을 하거나 실습을 하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조이는 태혁에게 스쿼시를 배우기로 했다.
지난번 7구역으로 속달 우편을 보낸 후 조이의 마음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자꾸만 불길한 상상이 떠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태혁이 자유 시간 동안 운동을 할 거라는 말을 듣고 조이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달 우편 결과를 받기 전까지 정신을 쏙 빼놓을 뭔가가 필요했다.
“조금 더 허리를 숙여 봐.”
“이렇게?”
“아니. 너무 숙였어.”
태혁은 조이의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조이의 등 뒤로 태혁의 가슴이 닿았고, 어색하게 라켓을 잡고 있는 손 위로 태혁의 손이 감겼다. 라켓을 잡은 손 위치를 살피는 무심한 손길에도 조이는 자꾸 야릇한 상상을 했다.
‘못 말린다. 안조이!’
가만 생각해 보니, 이게 다 권명 탓이다. 그 물건을 뒤로 받은 후부터 이렇게 예민해졌다. 조이는 7구역을 벗어나거든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몸이 예민해서야. 몸에 닿는 모든 이들을 상대로 음침한 상상이나 하는 변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 그럼 시작할까?”
조이는 음침한 상상을 몰아내듯 라켓을 휘둘렀다. 태혁은 종종 조이의 어색한 자세를 교정해 주었고, 그러고 나면 훨씬 더 공을 받아 치는 횟수가 늘었다. 공놀이는 늘 우습게 생각했는데 보통 운동이 아니었다. 금세 하얀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꽤 잘하는데?”
“진짜?”
“응. 내일은 같이 쳐도 될 것 같아.”
도통 칭찬을 들을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조이는 칭찬 듣는 걸 좋아했다. 7구역에서 이런 간지러운 칭찬을 해 줄 만한 이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사장? 사장은 종종 조이가 술주정뱅이에게 바가지를 씌울 때면 칭찬을 하기는 했었다.
조이는 지난번 권명의 아버지가 제안한 일을 거절한 이후 더더욱 태혁에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분의 말대로 다시는 오지 않을 제안을 거절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조이에게 남은 선택지는 태혁이 유일했다.
조이는 그동안 태혁에게 여러 번 은근한 질문을 던졌었는데, 눈치 없는 태혁은 도통 조이의 물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이는 빙빙 돌리지 않고 직구로 물어볼 생각이었다.
“근데, 1순위 누구로 했어?”
“비밀.”
조이의 직구에 태혁은 망설이더니 비밀이라고 말했다. 태혁이 저런 말도 할 줄 알다니. 은근 얄미운 대답이었다. 스무고개도 아니고.
“그럼 2순위 안에 내가 있어? 없어?”
“있어.”
그럼 됐다. 2순위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조이가 권명을 걷어찼듯 태혁도 그리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조이가 1순위였든가.
“나는 네가 1순위야.”
조이의 말에 라켓을 챙기던 태혁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몸을 일으킨 태혁의 얼굴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저게 대체 어떤 표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웃는 걸 보면 좋은 거겠지.
‘뉘 집 자식인지. 참, 잘생겼네!’
* * *
조이는 다음 주에 공개될 매칭 결과를 기대하며 기숙사로 향했다. 어쩐지 예감이 아주 좋았다. 태혁과 매칭될 것 같았다. 오늘 운동을 하며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페어로 조이를 고려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시간을 보낼 리 없었다.
태혁은 타고나길 다정한 성격이지만, 공과 사를 늘 구분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짜식. 나네. 나야!’
조이는 실실 웃으며 기숙사 안으로 들어섰다. 곧바로 성난 사자의 콧김이 느껴졌다. 씨익씨익 스팀을 쏘는 듯한 불길한 소리. 침대에 앉아 있던 권명은 놀라운 반응 속도로 조이 앞으로 튀어 왔다.
“뭐… 뭐야!”
금방이라도 조이를 덮칠 것 같았던 맹수는 조이의 앞에 뚝 멈춰 섰다. 권명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탐정처럼 조이를 살폈다.
상기된 얼굴에 닿았던 시선이 꿀꺽 침을 삼키는 목젖을 타고 내려와 땀에 젖은 면 티에 정착했다. 권명의 시선이 유독 한 곳에 멈춰 있었다. 권명은 뭣이 그리 짜증이 나는지 자신의 후드티를 조이에게 던졌다.
“옷 잘 입고 다녀. 젖꼭지 다 보여!”
태어나서 들은 말 중 가장 황당한 소리였다. 조이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 나 남자야. 뭔 소리야?”
이곳은 사관학교였다. 이곳에서 웃통을 벗고 훈련하는 생도들을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젖꼭지를 보는 조이였다. 꽤 밝히는 조이였지만 그들의 젖꼭지를 보며 야한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이의 젖꼭지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유난을 떠는 모습이 우스웠다. 하지만 조이의 반응에 꽤 기분이 상했는지 권명은 조이를 거칠게 벽으로 밀쳤다.
“윽! 야!”
권명은 하얀 티셔츠 위로 살짝 튀어나온 젖꼭지를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누르거나 잡아당기며 자극했다.
“으읏!”
“남자? 수컷 젖꼭지치고는 꽤 예민하시네?”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는데도, 눈치 없는 젖꼭지가 조금씩 도드라졌다. 뾰족하게 솟은 젖꼭지를 매만지던 놈이 입을 벌렸다.
“히익!!”
유난쟁이가 드디어 미쳐 버렸는지 가슴살을 억지로 움켜쥐고는 빨아 당겼다.
“야! 미쳤어?”
조이의 고함에도 권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혀를 길게 내밀고 도드라진 부위를 이리저리 핥았다. 신맛 나는 과일을 보면 자연스럽게 침이 고이듯 권명의 혀가 젖꼭지를 자극하자 그곳에서도 찌릿한 느낌이 올라왔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앞쪽이 반응할 것 같았다.
“아윽! 떨어져! 그만해!”
다행히도 그 짓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지, 젖꼭지를 잘근잘근 씹던 녀석이 떨어져 나갔다. 조금 전까지 권명의 입 안에 있었던 젖꼭지는 눈에 뜨일 정도로 빳빳하게 서 있었다. 가슴 한 곳이 투명하게 젖어 그 부분만 속살을 보이고 있었다. 꼭 젖꼭지에서 물이 나온 듯해 여간 꼴불견이 아니었다.
“이대로 다니려면 이대로 다니든가.”
“야!”
놈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 욕실로 향했다. 조이는 망측하게 변한 티셔츠를 벗어 권명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놈은 얄밉게도 조이의 구겨진 티셔츠를 잡아채서는 세탁 바구니에 넣었다.
“세탁물 잘 분리해. 섞이기만 해 봐! 그리고 책상 봐 봐. 전화 왔었어.”
“무슨 전화?”
물음에 대한 답으로 권명은 ‘쾅’ 하고 욕실 문을 닫았다. 저놈의 버르장머리. 씩씩거리면서 책상 위의 메모를 확인했다. 그 순간 조이의 머리 위로 얼음물이 와르륵 쏟아졌다.
지난주 보냈던 특급 우편이 반송됐다는 연락이었다.
* * *
7구역으로 보낸 편지가 반송됐다. 동생도 아버지도 집에 없다는 의미였다. 조이는 곧장 휴게실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기나긴 신호에도 전화를 받는 이는 없었다.
푸르른 하늘에 삽시간에 먹구름이 낀 듯 조이의 마음이 불안하게 떨려 왔다. 손톱을 물어뜯던 조이는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우편물을 담당하는 사관에게 달려갔다.
“제 이름으로 우편이 온 게 없나요? 안조이요! 그동안 통 우편을 못 받았어요.”
사관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우편함과 우편 장부를 뒤적거렸다.
“1주 전에 온 우편 말고는 없는데?”
“1주 전이요?”
1주 전이면 조이는 생존 훈련을 받을 때였다. 조이는 사관학교에 없었는데 대체 누가 조이의 우편을 받아 간 걸까?
“전 그때 생존 훈련 받을 때였어요. 우편물 담당이 누구였죠?”
‘한솔. 망할 새끼.’
1주 전의 우편물 담당은 한솔이었다. 조이는 주체할 수 없이 손이 떨려 왔다. 1주 전 편지 말고도 놈은 꾸준히 조이의 편지를 훔치고 있었다. 우편물 담당일 때마다 조이의 편지를 가로채, 수령인에 엉뚱한 사인을 휘갈겨 놓았다.
온 교정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소문. 조이가 7구역 출신에 몸을 팔고 있다는 소문. 대체 누가 조이의 출신을 알아내 이런 이 악의적인 소문을 낸 것인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었다.
‘너였구나. 이 개자식.’
조이는 도저히 냉정을 찾을 수 없었다. 에스퍼도 아니건만 온몸에 열이 올라 펑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조이는 곧바로 한솔의 기숙사로 향했다.
쾅!
문짝이 떨어져 나갈 듯 거친 소리를 내며 조이는 기숙사 안으로 들어섰다. 낄낄거리며 야한 잡지를 보고 있던 한솔과 패거리는 ‘쾅’ 하는 커다란 소리를 듣고는 놀란 듯 허겁지겁 잡지를 숨기고 있었다.
“뭐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확인한 한솔은 벌떡 일어나 성질을 냈다. 조이는 곧바로 미친개처럼 한솔에게 달려들었다.
“씨… 씨발! 얘 뭐야!”
한솔은 기가 죽어 있던 조이가 거세게 날뛰자 퍽 당황한 듯했다. 조이는 놈의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다.
“내 편지 훔쳐 갔지? 내놔! 당장 내놔!”
멱살을 잡힌 채 당황하던 한솔은, 조이가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이유가 편지 때문임을 알아차리자 곧바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 쓰레기라면 진작에 버렸지. 냄새나게 지금까지 갖고 있겠냐?”
한솔의 말에 주변에 있던 생도들도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며칠째 동생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런 동생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였다. 그 중요한 편지를 한솔은 지금 버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투둑. 조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선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 후, 조이의 기억은 편집된 영상처럼 일부 컷만 남아 있었다. 조이는 괴성을 지르며 한솔에게 달려들었다. 누군가 조이를 잡아당기고 바닥에 눕혀 때렸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조이는 끝까지 한솔을 물고 늘어졌고, 쓰러진 한솔을 향해 의자를 내려치려 했다.
안타깝게도 신고를 받고 달려온 사관이 의자를 붙잡는 바람에 내려치지는 못했다. 퍽 아쉬웠다. 한솔은 억울하다며 난리를 피웠으나, 어찌 되었든 그가 편지를 가로챈 정황은 확실했기에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리 무거운 벌은 아니겠지만.
“개새끼.”
조이는 홀로 피 묻은 얼굴을 씻어 냈다. 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지던 붉은 핏물이 투명한 색이 되어 쏟아졌다.
“흡… 흐읍…….”
약한 모습은 죽어도 보이고 싶지 않은데, 지금 이 순간은 참을 수 없었다. 조이는 가슴을 움켜쥐며 세면대 밑으로 주저앉았다.
조이가 떠나기 전까지 매일같이 울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차역에서 창문을 두들기던 작은 손. 왜 조이는 그때 동생을 무시했던가. 조이는 몰려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조하야… 조하야…….”
무릎에 얼굴을 묻고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10살짜리 동생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 동생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자신은 무엇을 하던 걸까. 조이는 자신이 지금처럼 미운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흐읍…….”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 왔던 눈물이 터진 것인지 쉽사리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흐느껴 울던 조이는 어렵게 몸을 일으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이는 거칠게 눈물을 닦아 냈다. 동생을 찾아야 했다. 조이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판돈이 부족해지면 돈 대신 조이를 들이밀던 사람이었다. 분명 동생의 실종도 아버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조이는 기숙사로 달려갔다. 그사이 샤워를 마친 권명은 조이의 얼굴을 보더니 퍽 놀란 듯했다.
“너 뭐야? 얼굴은 또 왜 이래?”
권명은 옆에서 누가 그랬냐고 따지듯 물었으나, 조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옷장을 열어 낡은 가방에 여벌 옷과 돈을 챙겨 넣었다. 홀린 듯 허겁지겁 물건을 챙기는 조이를 말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권명은 조이의 어깨를 잡으며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안조이! 누가 그랬냐고!”
조이는 권명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기력도 없었다. 누가 조이를 때렸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비켜.”
조이는 가방을 둘러메고 곧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등 뒤로 권명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어디 가?”
조이는 권명이 내뱉는 모든 물음을 무시했다. 묵묵히 교문을 향하려던 그때. 조이의 걸음을 멈춰 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가면 탈영이야. 이쪽으로 가면 외출이고.”
권명은 조이에게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권명이 가리킨 곳은 사관학교의 높은 담벼락 중 유일하게 낮은 곳이었다. 권명은 훌쩍 위로 올라가 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조이는 저 유난쟁이가 장갑도 챙기지 못하고 따라 나왔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 지가 안 챙긴 거지 뭐!’
권명의 손을 잡고 담벼락을 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충 어디인지 감이 왔다. 조금만 걸어가면 기차역과 광장이 나올 것이다.
“들어가. 이제.”
조이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덧붙인 후 몸을 돌렸다. 곧바로 기차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뒤쫓아오는 발소리만 없었다면. 조이는 ‘휙’ 뒤로 돌아 권명에게 한 번 더 말했다.
“돌아가라고. 난 볼일 보고 돌아갈게.”
이쯤 되면 권명이 돌아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권명은 여전히 조이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대체 왜 돌아가지 않고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조이는 기차역에 도착하기 전에 권명을 따돌릴 생각이었다.
두 번이나 말했는데도 따라붙는 걸 보면 쉽사리 돌아갈 맘이 없는 것이었다. 마침 광장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레이저쇼인지 뭔지를 하는 것 같았다. 잘되었다. 이곳에는 사람이 많으니 권명을 쉽게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이 눈앞에 보이자 조이는 전력 질주하여 인파 속으로 파묻혔다. 곧바로 가방 안에 있던 모자를 꺼내 쓴 후, 겉옷을 벗어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옷차림이 달라졌으니 권명도 조이를 쉽사리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다행히 4구역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레이저쇼 기간 동안 연장 운행 중인 열차였다. 조이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초조함. 불안함을 담고 있는 눈이 보였다.
“후우…….”
조이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7구역에 도착하거든 가장 먼저 집을 뒤져 보고 그곳에도 없으면 마왕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러고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조이는 탈영병이라는 오명을 쓸 테지. 동생을 찾을 수 없다면 사관학교도, 전쟁영웅 4등급도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때 조이의 옆에 앉는 이가 있었다.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이곳에 앉다니. 덩치도 보통 큰 게 아니었다. 옆에 벽이라도 세워진 듯 답답했다. 불편한 마음에 조이는 힐끔 옆을 봤다가 기겁을 하며 놀라고 말았다.
“왜… 왜 여기 있는 거야……?”
“졸리니까 도착하면 깨워.”
권명이었다. 권명은 태연하게 편한 자세를 잡으며 두 눈을 감았다. 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따라온 걸까? 조이는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에스퍼가 아니라 개 아냐……?’
도착하면 깨우라던 권명은 4구역에 도착하기 무섭게 눈을 떴다. 조이는 이곳에서 권명을 한 번 더 따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권명은 조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훤히 알고 있었다.
조이가 관광을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면, 조이가 향할 곳은 한 곳뿐이었다. 7구역 출신인 조이가 7구역 말고 어디로 가겠는가. 6구역까지 가는 고속 열차에서 권명은 조이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조이의 슬픈 얼굴만 내비치던 창문 너머로 6구역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깜깜한 어둠이 내리고 출발한 이 여정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외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러 버렸다.
‘쟨 대체 무슨 생각이지?’
권명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이는 대체 권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7구역으로 향하는 낡은 기차에 자리를 잡자, 데자뷔처럼 권명이 옆자리를 차지했다. 조이는 이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꾹꾹 눌러 왔던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 지금 나 따라오는 거야?”
“하? 7구역이 다 네 거냐?”
조이는 뽀드득 이를 갈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쩌면 권명도 7구역에 볼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이는 애써 한 번 더 권명을 무시하기로 했다.
* * *
낡은 석탄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플랫폼에 들어섰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듯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밤새 열차를 타고 달려온 조이는 깜빡 잠이 들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곧바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솔 패거리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몸이 비명을 지르듯 아팠다.
“으윽… 온몸이 아파.”
조이는 온몸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무시한 채, 낡은 가방을 움켜쥐었다. 역시나 뒤에는 권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조이는 이제 정말로 권명을 참아 줄 수 없었다.
“먼저 가.”
기차역 문 앞에서 조이는 권명에게 먼저 가라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권명은 살짝 당황한 듯했으나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기차역 앞에서 두리번거리던 권명은 힐끔 조이를 바라보았다.
‘알아 달라는 표정 같은데, 대체 뭘 알아 달라는 건지……?’
조이가 그 시선을 외면하자 권명은 대차게 삐친 듯 휙 몸을 돌렸다. 쿵쿵 소리가 날 듯 거칠게 뒤꿈치를 박아 넣으며 걷던 권명은 기차역 건너편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곳은 7구역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이자 홍등가였다.
권명의 유난을 익히 알고 있는 조이는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진짜 피곤한 놈이었다.
“이쪽이야!”
조이가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치자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권명이 잽싸게 달려왔다. 그러더니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쪽이었어?”
“하?”
조이는 마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마차를 본 권명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7구역에서는 아직도 마차가 운송 수단으로 사용됐다. 중고차도 흔히 볼 수 있지만 7구역의 임금 수준을 고려하면 기름값을 감당할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가 너희 집?”
문 앞에는 독촉장 및 위협적인 문구가 빼곡히 담긴 경고문이 못질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아버지를 토막 내 죽이겠다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역시나 사고를 치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조이는 뒷문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집 안을 뒤졌다.
“조하야. 조하야!”
방 두 칸짜리 단출한 집을 이 잡듯이 뒤져도 조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옷장을 뒤지던 조이는 가슴을 움켜쥐며 주저앉아야 했다. 차라리 옷가지와 가방이 사라졌다면 안심했을 것이다. 빚 독촉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을 갔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늘 사용하던 모든 물건이 이곳에 있었다.
“안조이. 괜찮냐……?”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조이의 곁으로 권명이 다가왔다. 권명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동생이… 동생이… 없어졌어.”
조이는 지끈지끈 아파 오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조이는 늘 최악의 상황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야만 그보다 덜 최악인 상황과 맞닥트릴 것이라는 황당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이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팔자를 타고났다. 조이가 생각한 가장 최악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자 길을 잃은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방어하는 팔 사이로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었다.
“하아…….”
조이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조이를 내려다보던 권명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조이의 얼굴 앞으로. 곱상한 얼굴과는 달리 조금 거친 손이었다.
“잡고 싶으면 잡아도 돼.”
‘위로인 건가……?’
권명은 조이의 얼굴 앞으로 바짝 손을 가져다 댔다. 어서 잡으라는 듯. 손가락이 닿기만 해도 난리를 피우던 놈이 답지 않게 위로를 하는 듯했다. 우습게도 저 황당한 위로에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마왕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 중 하나는 마왕의 사장일 테니까.
“나와. 갈 곳이 있어.”
조이는 권명을 달고 서둘러 마왕으로 향했다. 대낮임에도 술꾼들이 가득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조이에게는 퍽 익숙한 모습이지만, 권명에게는 퍽 낯선 모습인 듯했다. 불쾌한 냄새와 던전 같은 골목을 지날수록 권명의 잘생긴 이마 위로 주름이 지어졌다.
“여긴 뭐냐?”
음침하고 음산한 마왕의 간판을 보던 권명이 물었다. 조이는 이곳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도의 도련님이 아는 술집과 전혀 다른 곳일 테니까.
“그냥. 따라와.”
지저분한 계단을 보며 권명은 불결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름진 미간이 펴질 생각을 안 했다.
“사장님! 사장님!”
“조이?”
사장은 조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부엌에서 칼을 든 채 튀어나왔다. 식재료를 다듬고 있던 모양이었다. 놀란 눈으로 조이를 보던 사장의 눈이 곧이어 가게 안으로 들어선 권명에게 닿았다. 사장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동그랗게 떠졌다.
“며… 명아!”
사장은 정확하게 권명의 이름을 불렀다. 조이는 놀란 표정으로 권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권명의 다음 행동은 더 놀라웠다. 권명은 ‘겁쟁이 새끼’라고 중얼거리더니 곧바로 사장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우당탕 테이블이 밀리는 소리와 함께 사장이 뒤로 넘어졌다.
조이는 깜짝 놀라 권명의 이름을 불렀다.
“권명!”
“명이 다 컸네. 형한테 주먹질도 하고?”
“형……?”
조이는 권명과 사장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가만 보니 둘이 꽤 닮았다. 수도에 동생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 동생이 권명이었던 모양이었다.
사장은 태연하게 찢어진 입가를 매만지며 약을 올렸고 그 말에 권명은 주먹을 한 번 더 들어 올렸다. 이내 두 명의 에스퍼가 낡은 술집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조이는 그들의 빠른 움직임에 끼어들 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에스퍼가 아닌 일반 사람이어도 저 정도 덩치 둘이 싸우는 걸 쉽사리 말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저들은 에스퍼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주먹 다툼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 정도 거대한 불길을 끄는 방법은 그저 불길이 저절로 사그라지도록 기다리는 것이 맞을 테지만, 조이는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조하의 행방을 빨리 찾아야 하니까.
“그… 그만해!”
조이는 크게 소리치며 그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두어 대쯤은 맞을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조이를 향해 날아오던 권명의 주먹이 조이의 코앞에 멈추어 섰다.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권명은 안 그래도 못난 얼굴에 훈장 하나를 더 달고 싶으냐며 얄밉게 소리쳤다. 다행히도 조이의 활약에 저 둘의 싸움도 일시적으로 멈춘 듯했다. 하지만 얄미운 소리를 내뱉는 입은 저 집안의 내력인지 사장의 입에서 곧바로 얄미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수도에서 쌈질만 가르치냐? 쌈꾼이 다 됐다!”
“이게!”
“아야……!”
눈치 빠른 조이는 서둘러 아픈 척을 했다.
“맞지도 않았는데 아픈 척은. 뭐야…? 어디가 아픈 건데……?”
조이는 살아남은 의자에 앉으며 멀쩡한 턱을 부여잡았다. 조이의 리얼한 연기에 권명은 혹여 주먹이 스친 건 아닌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장은 조이의 연기를 알아차렸는지 턱을 매만지며 물맛 나는 맥주를 한 잔씩 가져다주었다. 조이는 눈앞에 있던 커다란 주먹이 자꾸 떠올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 주먹에 맞았더라면……?
조이는 맥주잔을 들어 올려 두세 모금 급하게 마셨다. 권명은 미간을 찌푸린 채 불결하다는 듯 맥주잔을 바라보았다.
“마셔. 맥주야.”
“이게?”
권명은 밍밍한 색의 맥주를 가리키며 물었다. 권명은 맥주잔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바꿔 마셔.”
“참 나. 독 탔을까 봐 이러는 거야?”
“바꿔 마셔!”
권명은 떼를 쓰듯 소리쳤다. 조이는 혀를 쯧쯧 차며 권명에게 마시던 맥주를 건넸다. 그런데 권명은 조이가 입을 댄 부분을 골라 마시고 있었다. 어쩐지 이 사실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시가 급한데, 저 유난 종자가 또다시 패악을 부리게 둘 수는 없었다. 조이는 사장의 팔을 부여잡으며 다급하게 조하에 대해 물었다.
“사장님! 조하. 조하랑 연락이 안 돼요. 조하 못 봤어요?”
“땅콩 녀석, 일주일도 넘게 무단결근이야. 나도 그 녀석을 찾던 중이었어.”
“일주일이요?”
조이에게 편지를 보내고 바로 실종된 것 같았다. 그 편지만 조이가 받았다면 어떤 단서라도 발견했을 텐데.
“혹시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못 보셨어요?”
사장은 집에도 안 계신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는 원래도 집에 자주 돌아오지 않았었다. 돈이 떨어지거든 돌아왔지.
‘대체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고민에 잠긴 조이와 달리 사장은 동생을 다시 만난 것이 퍽 기쁜지 권명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렸다. 권명은 그 손길을 예민하게 쳐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조하가 떠올랐다. 조이도 늘 조하의 머리를 다정하게 매만져 주었었는데.
‘안 되겠다. 이대로 있을 수 없어.’
조이는 잡생각을 떨쳐 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라도 먼저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동생의 실종이 분명 아버지와 깊은 관련이 있을 테니까.
* * *
다행히도 조이는 아버지가 있을 만한 곳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보다 더 자주 찾는 곳. 도박장이었다.
조이와 권명 그리고 사장은 7구역에 있는 도박장이라는 도박장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판돈이 맥주 한 잔 가격인 곳부터, 집값 수준인 곳까지 모조리 돌아다녔으나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안 씨가, 가방 한가득 현금을 가지고 있더라고. 그랬지?”
“어. 대체 그 큰돈을 어디서 얻은 건지… 판돈을 미친 듯이 올리더니 뭐… 그렇게 됐지…….”
가장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도박 중독자였다.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가방 한가득 돈을 가지고 왔다면, 팔지 말아야 할 뭔가를 팔아 치운 것이었다.
“조이야. 정말 이 시간에 출발하겠다는 거야?”
“네. 하루빨리 아버지를 찾아야 해요.”
아버지를 도박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사람 말로는 아버지가 돈을 모조리 잃고 국경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고 했다. 술 취한 자가 내뱉은 헛소리일지 모르나, 조이는 그 헛소리에도 희망을 걸어야 했다.
“내일 날이 밝거든 나랑 가자. 혼자는 위험해.”
“나랑 갈 건데 뭐가 위험해?”
“야!”
“명아!”
사장과 조이가 동시에 권명을 불렀다. 놈은 어느 개가 짖냐는 표정이었다.
“권명. 이제 진짜 돌아가. 지금 돌아가야 그나마 징계로 끝나.”
아마 오늘 중으로 누군가는 조이와 권명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수색대가 편성돼 붙잡히는 순간 가벼운 징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소 영창행이었다.
“누가 징계 따위 무섭대? 잘됐지 뭐. 이 기회에 은퇴하는 거지.”
권명의 가벼운 말에 사장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조이의 눈치를 살피던 사장은 권명을 골목으로 데려갔다. 남의 얘기를 훔쳐 듣는 것은 퍽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아무리 조이가 권씨가 아니라지만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니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저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귀를 쫑긋 세웠다. 아버지와 가이드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조이가 네 가이드인 거 맞지? 아버지도 알아?”
“쟤 내 가이드 아냐. 아직은.”
“확실히 해. 너. 형처럼 되는 거 한순간이야.”
* * *
수도로 돌아가라는 말에도 권명은 사장의 차에 올라탔다. 사장이 운전하는 차는 조이와 권명을 태운 채, 무분별한 벌목으로 반쯤 헐벗은 숲으로 진입했다. 밑동만 남은 숲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진입하자, 차량을 막아서듯 촘촘한 전나무 숲이 펼쳐졌다.
이 숲을 넘으면 서제국이었다. 국경 부근에는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을 것이고, 이곳에 잘못 발은 디딘 사람은 민간인이라도 즉시 사살이었다. 이런 숲을 헤매고 있을 동생이 떠오르자 속이 울렁거렸다.
“자… 잠깐만. 속이 안 좋아.”
차가 멈추자 조이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 속을 비워냈다. 게워낼 것도 없건만 자꾸 속이 울렁거렸다.
“물. 입 헹궈.”
권명은 조이에게 물병을 건넸다. 조이는 그 물로 입을 두어 번 헹군 후 허리를 폈다.
“괜찮냐?”
“어… 잠깐만 쉬었다 가자.”
조이는 잠시 바람을 쐴 겸 흩어져서 주변을 살펴보자고 말했다.
“이 숲만 넘으면 서제국이야. 술 취한 아버지가 이 숲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흩어져서 찾아보자.”
“그래. 그럼 난 이쪽으로 가 볼게. 다들 조심해.”
사장은 조이와 권명을 두고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조이는 안 그래도 속이 메슥거리는데 권명 때문에 두통까지 났다. 흩어져서 찾아보자는 말을 대체 어떻게 알아먹은 것인지 조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흩어져서 찾아보자고. 못 들었어?”
“내가 이쪽 뒤질 거야. 너 저쪽 뒤져.”
“참. 피곤하게 한다!”
조이는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권명이 따라붙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이도 더 이상은 참아 줄 수가 없었다.
“야! 넌 이게 장난 같아?!”
“뭐가!”
얄미운 대답에 권명에게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으려는데 발밑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이는 그 자리에 서서 콩콩 뛴 후 옆으로 이동해 다시 콩콩 뛰었다. 분명 들려오는 소리가 달랐다.
“들려?”
“아래 뭔가 있어.”
조이는 모래를 파헤치는 고양이처럼 땅을 팠다. 흙이며 나뭇가지를 쓸어내자, 그 자리에는 스틸로 만든 입구가 있었다. 조이는 이곳을 확인해 보자는 눈빛을 보냈다.
* * *
한 사람이 겨우 내려갈 정도로 좁은 계단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조이와 권명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발이 닿자 조이는 들고 온 조명으로 어두운 동굴을 밝혔다.
“이리 줘. 넌 뒤로 가.”
권명은 조이가 들고 있던 조명을 빼앗더니 앞장서서 걸어갔다. 무섭지도 않은지 거침없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은 입구와는 달리 꽤 넓은 동굴이었다. 복잡한 개미굴처럼 양옆으로 수십 갈래의 길이 뻗어 있었다. 흙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작업한 거로 봐서는 군인들의 솜씨였다.
딸깍,
한참을 걸어가던 권명이 조명을 끄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진원지를 찾을 수 없는 소리는 동굴을 왕왕 울리며 울려 퍼졌다. 곧이어 다급하게 이동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으로 도망갈까?”
조이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지 물었다.
“내가 가 볼게. 넌 이 근처에 숨어 있어.”
“위험해! 그리고 어떻게 다시 찾아올 건데?”
“난 찾을 수 있어.”
황당한 자신감이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믿음직했다. 레이저 쇼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를 뚫고 권명은 조이를 찾아내지 않았던가.
“조심해.”
조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권명의 팔을 붙잡은 채 덧붙였다. 권명은 조이를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 입에서는 얄미운 말이 튀어나왔다.
“까불지 말고 잘 숨어 있어.”
‘까불기는. 자기야말로 앞장서서 까불고 있으면서.’
조이는 권명이 사라진 곳과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권명 말대로 숨어 있을 생각은 없었다. 조이는 아버지와 조하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이곳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주의 깊게 살펴야 했다.
옆쪽으로 길게 늘어선 여러 개의 문이 보였다. 그중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방이 눈에 띄었다. 조이는 그 앞으로 바짝 다가가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조용히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실험실인 것 같았다. 동물 실험이라도 했는지, 중대형 케이지가 이 층으로 쌓여 있었고, 급하게 실험실을 비우던 것인지 이리저리 종이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파쇄기에는 파쇄하다 걸린 종이 뭉치가 반만 갈린 채 꽂혀 있었다.
조이는 가까이 다가가 파쇄기에 걸린 종이 뭉치를 뽑아냈다. 조이의 눈에는 암호처럼 어려운 글이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보였다.
‘강화인간?’
조이는 어쩐지 이 실험실이 동제국인 아닌 서제국의 실험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제국이지만 서제국은 동제국의 세 배에 달하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동제국과의 전쟁에서 최초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힘은 방대한 영토와 자원 그리고 군인 수에 있었다. 하지만 서제국에게 유리했던 전쟁은 돌연변이의 탄생으로 우위를 가릴 수 없이 팽팽해졌다.
막대한 화력으로도 승기를 잡지 못했던 서제국은 에스퍼에 대항하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생체 실험까지 강행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투툭…….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이는 종이 뭉치를 재킷 안에 밀어 넣었다. 곧바로 몸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노려보았다. 조이는 케이지 안을 조명으로 비추었다. 케이지 문이 모두 열려 있는 거로 봐서는 남아 있는 실험체는 없는 듯했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케이지를 빠르게 살피던 조이는 뚝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익숙한 물건이 조이의 눈에 들어왔다.
“조하야……!”
조이의 옷이었으나, 이제는 동생의 옷이 된 카키색 점퍼였다. 조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조이는 아버지가 조하를 팔아넘겼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조이에게 그러했듯, 한두 달 저임금으로 실컷 부려 먹을 수 있는 공장이나, 농장에. 그런데 실험실이라니.
조이는 활활 타오르는 살의를 느꼈다. 지금 당장 아버지를 발견하거든 패륜을 저지를 것 같았다. 거세게 이를 갈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곱씹는데, 등 뒤로 조이를 덮치는 힘이 느껴졌다.
“흐읍!?”
불시에 습격을 당한 조이는 훈련받은 대로 곧바로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느껴지는 힘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조이야 늘 괴물 같은 에스퍼랑 비교를 당하니 허약하게 느껴지는 거지, 조이도 훈련을 받은 군인이었다.
등 뒤에 있는 놈 정도는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뒤꿈치에 힘을 주고 놈을 벽으로 밀치려는데, 놈의 입에서 가쁜 숨과 함께 애원 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쉬… 쉿! 제… 제발!”
벽 너머로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 소리가 아닌, 뭔가를 찾는 소리였다. 아마 조이의 등 뒤에 있는 놈을 찾는 거겠지. 조이 역시 이곳에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처지였다. 조이는 숨을 죽인 채, 발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나를… 날 구하러 온 거지? 그렇지? 하아…….”
“내가 널 왜 구해야 하는데? 좀 떨어져!”
조이는 뒤에 있던 놈을 밀쳐 내며 얼굴을 확인했다. 눈에 익은 놈이었다. 특히 술에 취한 듯, 풀린 저 눈이. 언젠가 클럽에서 만났던 놈이자, 조이의 매칭 결과표에 이름을 올렸던 놈이었다. 놈도 조이를 알아본 것인지 조이에게 달라붙었다.
“하아… 가이드 맞지? 부… 부상을 당했어.”
조이는 힐끔 놈의 복부를 바라보았다. 총상을 입은 듯 꾸역꾸역 핏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조이는 거칠게 이마를 부여잡았다. 총상이라면 이대로 가이딩을 하는 것이 위험했다. 총알이 박힌 상태로 새살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도… 도와줘.”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총상 대신 과다출혈로 숨이 넘어갈 것이다. 피를 꽤 흘린 모양인지 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아… 진짜.”
“으읍!”
조이는 작은 에스퍼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인공호흡을 하듯 입을 맞추었다. 기다렸다는 듯 입을 벌린 놈은 조이의 혀를 젖먹이 아기처럼 빨아 당겼다. 꽤 밝히는 조이였지만 이상한 상상이나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조이가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된다는 듯 애절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어쩐지 좀 짠하게 느껴졌다.
혀뿌리가 아릿하게 아파 올 때까지 놈은 조이의 혀를 춥춥 빨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조이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한참 동안 입을 문댄 효과인지, 아까와 달리 퍽 안색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작은 에스퍼는 조이의 팔에 매달렸다.
조이는 놈을 살짝 밀친 후, 조하의 옷을 들이밀며 물었다.
“너. 이 옷 입은 애 본 적 있어?”
“하아… 몰라… 난 격리실에 있었어…….”
“격리실?”
“어… 정신계 에스퍼가 국경 근처에서 실종됐다는 얘기는 들었지?”
알고 있는 얘기였다. 정신계 에스퍼가 실종된 일이 벌어졌고, 군에서는 서제국의 소행으로 잠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놈은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잠시 이야기를 하는 틈에도 계속 주변을 살폈다. 서제국 놈들에게 고문이라도 당한 걸까?
“난 실종된 에스퍼를 찾기 위해 파견된 거야. 하아…….”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정도의 능력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의외였다. 놈도 알고 있는지 자신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조이의 표정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꽤 앙칼지게 말했다.
“암시는 꽤 고급 능력이야!”
암시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저 에스퍼의 능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이 실험실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실험체를 어디로 데려간다는 말 못 들었어?!”
“실험실 위치가 노출됐다며 철수한다고 했어… 북쪽으로. 하아…….”
북쪽이라니. 북부는 최초로 동제국과 서제국의 전쟁이 발발한 곳이자, 지금도 가장 맹렬하게 교전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 주변으로 매일같이 고지전이 벌어진다고 들었는데, 그런 곳으로 동생을 데려가다니. 조이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조이가 금방이라도 북쪽으로 달려갈 듯 몸을 일으키자, 작은 에스퍼는 조이의 다리를 부여잡으며 만류했다.
“늦었어! 이미 철수할 인력은 거의 철수했고, 소수 군인만 남아 있어… 하아…….”
이미 늦었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대로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조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부로 가야 했다. 대책 없는 일이지만, 북부로 간 후 동생의 흔적을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일어나. 문밖으로 나가거든 왼쪽으로 쭉 달려. 그럼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와.”
“너… 너는?”
“같이 온 일행이 있어.”
“나 혼자 가라는 말이야…? 가지 마! 무서워!”
에스퍼 주제 무섭다며 조이의 팔을 끌어안는 놈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이상하게도 놈의 얼굴 위로 조하의 얼굴이 겹쳤다. 조하도 겁이 많았다. 조이의 입학 소식에 몇 날 며칠을 울던 조하였다. 가지 말라고. 무섭다고.
이 동굴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권명에게 북부로 떠나야 한다고 말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에스퍼를 구출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일어나!”
“부… 부축해 줘.”
조이는 놈의 팔을 어깨에 걸친 채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상처가 꽤 아물었는지, 핏물이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위치가 발각될까 싶어 라이트를 켤 수도 없었다. 오직 본능에 따라 어두운 동굴을 헤쳐 나갔다. 중간중간 총소리가 울려 퍼질 때면,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에 몸을 숨겨야 했다. 가까스로 계단에 다다랐으나, 직선으로 쭉 뻗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가 남아 있었다.
“자… 잠깐. 뭐… 뭔가 다가와.”
막 계단을 오르려던 그때, 작은 에스퍼가 어둠 속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조이는 고개를 돌려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으나,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조이는 작은 에스퍼를 감싸 안고 구석에 몸을 말았다. 이 어둠이 조이를 보호하기를.
“헙!”
하지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손은 단번에 조이를 찾아냈다. 조이의 어깨를 꽉 움켜쥔 채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우습게도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어깨에 닿은 손에서 익숙한 파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 하냐?”
“권명?”
“저 새끼는 또 뭐야?”
권명은 부상당한 에스퍼에게서 조이를 떼어 놓았다.
“잘됐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얘를 좀 들어서 계단에 올려야 해! 빨리!”
권명은 에스퍼에게 다가가더니 이리저리 상태를 살폈다.
“다 죽어 가. 그냥 버리고 가. 짐이야.”
“뭐?”
“나… 나 안 죽었어!”
권명은 예민 종자인 것도 부족해 차갑기까지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버리고 가라니.’
권명은 조금의 온기도 없이 아직 살아 있는 자에게 죽음을 선고했다. 못된 놈. 조이는 다시 작은 에스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괜찮아? 가이딩을 한 번 더 해 줄까?”
“응… 힘들어…….”
조이는 밀접 가이딩을 할 생각이었다. 손을 움켜쥐고 있을 바에는 점막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가 빠를 테니까. 하지만 입술을 가져다 대기도 전에 권명이 조이의 뒷머리를 움켜쥐는 것이 먼저였다. 목이 뒤로 꺾일 듯 강한 힘이었다.
“아윽! 뭐 하는 거야!”
“씨발.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다 죽어 간다며! 그럼 살려야 할 거 아냐!”
“너…! 경고야. 발정 난 짓 하지 마!”
조이가 옷을 벗고 관계를 갖겠다는 것도 아닌데 권명 놈은 꽤 앞서가고 있었다. 코웃음이 절로 나올 경고였다. 권명은 작은 에스퍼를 거칠게 들어 올렸다. 복부에 총상을 입은 부상자를 저리 대하다니.
“으윽!”
“살살 해!”
권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에스퍼에게 살고 싶은 알아서 기어 올라가라고 음산하게 지껄였다. 다행히도 그 말이 꽤 효과가 있었다. 다 죽어 가던 에스퍼는 살기 위한 열망으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작은 에스퍼가 기어 올라갔고 그 뒤로 권명이 에스퍼를 받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이가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내려올 때와는 달리 올라가는 길은 두 배는 더 힘이 들었다. 그사이 꽤 시간이 지났는지 숲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막 입구를 벗어나 거친 숨을 내쉬는데, 권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조이!”
그 순간 ‘탁. 탁. 탁’ 소리와 함께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조이를 덮쳤다. 조이는 눈을 가린 채 공격하듯 빛을 쏘아 대는 물체를 바라보았다.
“아!”
어둠이 내린 숲을 훤히 밝히는 조명과 함께 조이의 눈앞에는 수십 명의 군인이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이들은 거침없이 조이의 목 뒤를 내려쳤다.
“아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이의 몸이 땅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짙은 흙냄새가 점점 흐릿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