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존 훈련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여전히 곤욕스러웠다. 괴롭힘이라는 게 그리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늘은 또 어떤 괴롭힘이 있을까?’
이대로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이라도 훈련에 빠져서는 안 됐다. 출결 성적으로 최종 등수가 바뀔지도 모르니까.
“후우…, 일어나야지.”
조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옆을 보니 권명은 여전히 꿈나라였다. 놈을 깨워 함께 식당으로 내려갈까 고민했으나, 지난번 유난을 떨던 게 생각나 홀로 식사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른 시간이라 식사를 하는 생도들이 많지 않았다. 조이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음식을 퍼 담았다.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늘 조이를 괴롭히던 생도 무리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조이는 제발 오늘만큼은 저들이 자신을 그냥 지나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식판을 노려보았다. 조이의 식판 앞에 또 다른 식판이 보였다.
“변태 주제에 기도도 하냐? 밥이나 먹어. 기도 그만하고.”
권명은 얄미운 소리를 하며 조이의 앞에 앉았다. 어찌 된 일인지 조이만 보면 괴롭히지 못해 안달 난 생도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안심하고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숟가락 가득 밥을 올려 입에 넣으려는데, 이번에는 조이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앉아도 되지?”
“어? 어! 앉아!”
태혁이었다. 조이는 어서 앉으라며 의자까지 빼 주었다. 저 멀리 조이를 노려보는 한솔이 보였다. 늘 미운 소리만 내뱉는 한솔에게 엿을 먹일 절호의 기회였다.
“자리도 많은데 굳이 왜 여기 앉는 거냐?”
권명은 태혁과 꽤 친한 듯 삐딱한 말투로 물었다.
“짬밥은 싸구려 맛이라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뭐. 싸구려도 나쁘지 않더라고.”
“싸구려는 무슨. 맛만 좋네.”
조이는 권명의 유난을 작게 나무랐다. 잠귀는 어두워도 이럴 때는 곧잘 듣는 권명은 조이의 말에 인상을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이의 온 신경은 태혁에게 향했다. 조이의 몸을 꿰뚫을 듯 매섭게 느껴지는 한솔의 시선을 즐기며 태혁에게 바짝 붙었다.
“조만간 생존 테스트 한대. 들었어?”
태혁은 자신 역시 공고를 봤다며, 생존 훈련에 대해 조이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단도랑 라이터를 몰래 챙기는 게 좋을 거야. 의외로 보급품 중에 칼이 없는 경우가 많대.”
“칼? 총이 있는데 칼이 왜 필요해?”
“보급품으로는 부족하니까 사냥도 해야 하나 봐.”
“사냥? 넌 사냥 잘하지?”
“배운 적은 있어.”
겸손한 녀석. 배운 적이 있다면 분명 꽤 잘할 것이다. 태혁은 배운 건 뭐든지 잘하는 에스퍼니까.
“너랑 같은 팀 하면 좋겠다.”
조이는 장난인 척 진심을 담아 말했다. 태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혁이 생각하기에도 조이가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태혁을 바라보는데, 뾰족한 것으로 볼을 찌르듯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권명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조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 모양으로 ‘뭐’라고 물었다.
“안 먹을 거면 내가 먹는다!”
권명은 메인 반찬인 소시지를 가져가려 했다. 조이의 반찬을 노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조이는 권명이 손을 뻗기 전에 재빨리 소시지를 퍼먹었다. 볼 한쪽이 볼록해진 조이를 보며 권명은 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이는 유치한 장난에 속아 넘어간 것 같아, 뒤늦게 수치스러웠다.
‘이딴 장난에 넘어가다니……!’
* * *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조이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존 테스트를 치르게 될 인공 섬은 이곳에서 반나절은 이동해야 하는 먼 곳인데, 교관은 언제 테스트를 받게 될지 알려 주지 않았다. 방심한 순간에 데려가려는 것 같았다.
느낌상 조만간 조이의 차례가 올 것 같았다. 조이는 한동안 동생과 연락을 할 수 없으니, 미리 동생을 안심시켜 놔야 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응. 없어…. 근데 아버지가…….]
“아버지가 왜? 또 사고 쳤어?”
[아니…, 그냥… 도박장 말고 다른 곳을 다니는 것 같아…….]
“다른 곳? 도박장은 아니어도 그와 비슷한 곳이겠지. 하루 이틀인가.”
[응…….]
“여하튼. 한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밥 잘 챙겨 먹고.”
[응…. 형아 잘 다녀와.]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화를 걸었건만, 통화를 끝낸 조이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힘없는 동생의 목소리,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
생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퍽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아버지는 야망은 있되, 그 야망을 실현할 머리는 없는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그 무능력은 열등감과 결합하여 무시무시한 파장을 일으켰다. 성공하고자 하는 그의 야망이 1등급 가이드인 어머니를 7구역으로 내몰게 했으니 말이다.
온 가족이 호화로운 수도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반역자와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7구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조이는 한순간에 뒤바뀐 삶을 받아들였으나. 정작 일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지독한 도박 중독자인 아버지가 도박장 이외의 곳을 다닌다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동생의 말처럼 더욱더 불길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이 폭풍이 몰려오기 전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후우…….”
그날 밤 조이는 헬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낙하를 준비하며 어둠이 안개처럼 깔린 숲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곳에서 조이는 일주일 동안 살아남아야 했다.
“낙하!”
뒤에 있던 교관이 조이의 어깨를 두들기며 낙하 신호를 전했다. 조이는 불길함을 뒤로하고 허공으로 몸을 내던졌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훈련받은 대로 적당한 시기에 낙하산을 펼치자, 온몸이 위로 훅 잡아 당겨졌다. 블랙홀처럼 조이의 몸을 빨아 당기던 중력을 거스르며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조이는 이리저리 엉킨 낙하산 줄을 단도로 끊어 냈다. 태혁의 말대로 단도를 몰래 숨겨 놓길 잘했다.
‘이번 훈련에서 페어를 이룰 에스퍼는 누구일까? 혹시… 태혁?’
태혁이라면 더없이 반갑겠지만, 혹여 태혁이 아니더라도 조이는 하루빨리 페어를 이룰 에스퍼를 찾아야 했다. 짧은 단도만 가지고 야생동물과 워봇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조이는 주머니를 뒤져 지도를 펼쳐 봤으나, 지금으로서는 별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날이 흐린 탓에 별이 보이지 않았고 주변 지형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 날이 밝거든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위치를 가늠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조이는 조용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종종 짐승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다행히도 조이를 공격하기 위해 승냥이 떼처럼 워봇이 몰려오지는 않았다.
지난번 실전 테스트에서는 다섯 명이 죽고 세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 안타까운 죽음이 조이를 피해 갈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조이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도시와는 달리 이곳의 어둠은 영영 길을 잃을 것 같은 미로였다. 인적이 드문 탓에 풀이 허리까지 자라 있었고, 나무 넝쿨이 장벽처럼 길을 막아섰다. 조이는 단도로 나뭇가지를 베어 내며 조금씩 이동했다.
두둑.
불현듯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조이는 재빨리 검을 쥐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노란빛이 반짝거렸다.
‘흐읍!’
눈이었다. 그것도 늑대의 눈. 사냥감을 발견한 늑대가 이를 드러내며 어둠 속에 파묻힌 몸뚱이를 드러냈다. 조이는 황급히 몸을 돌려 무작정 달렸다.
조이를 따라붙는 짐승의 발소리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늑대는 최소 두 마리에서 열 마리로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었다. 배고픈 늑대 무리가 조이라는 사냥감을 한쪽으로 몰고 있었다.
“하아…, 하아…….”
조이는 점점 숨이 가빠 왔다. 등 뒤로 ‘컹컹’거리는 짐승의 숨결이 가깝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등을 물릴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빨리. 더 빨리.
“아악!”
거친 숨을 내쉬며 달리던 조이의 등 뒤로 짐승의 발톱이 스쳤다. 조이는 그 충격에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으윽!”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하나둘 조이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조이는 짧은 단도를 꽉 쥐고 가까이 다가오는 늑대를 위협했다. 유독 몸집이 큰 회색 늑대가 조금 더 앞으로 다가왔다. 알파 늑대의 공격을 시작으로 조이를 무참히 물어뜯을 테지.
조이는 놈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놈을 처리하면 나머지는 겁을 먹고 도망갈지도 모른다.
“크으으윽.”
조이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던 회색 늑대가 조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이는 놈의 목덜미에 칼을 박아 넣을 생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단도를 휘둘렀다.
“깨애앵!”
늑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단도가 살가죽을 파고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꽉 감긴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조이를 향해 입질하던 늑대는 나무에 처박혀 있었다.
“야! 7구역! 자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이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무 위였다. 권명이 조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잡으라는 듯. 조이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권명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인형 뽑기의 인형처럼 나무 위로 쑤욱 올려졌다.
“컹컹!”
갑자기 하늘로 치솟은 사냥감을 물어뜯기 위해 한발 늦게 늑대들이 뛰어올랐다. 조이의 발목을 물어뜯을 듯 입질하던 늑대들은 아쉬움에 조이를 올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권명?”
“이 밤중에 왜 돌아다니는 거냐? 잡아먹히고 싶어?”
생존 훈련의 페어가 권명이라니. 조이는 내심 실망하고 있었다. 태혁과 한 팀이 되고 싶었는데.
권명은 분명 뛰어난 에스퍼이지만, 조이를 4등급 전쟁영웅으로 만들어 줄 에스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일단 부상병이라는 것이 걸렸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이 4등급 전쟁영웅이라는 조이의 목표에 어깃장을 놓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 권명이라니.’
“7구역! 따라오라고!”
“조이야. 안조이. 7구역이라고 부르지 마!”
“쳇! 이름도 안 알려 줬으면서. 여하튼 따라와!”
권명은 무섭지도 않은지 이리저리 나무를 옮겨 타며 조이보고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물론 조이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발아래만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물끄러미 조이의 표정을 살피던 권명이 말했다.
“너 무섭지?”
“무… 무섭긴!”
조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무서웠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4등급 전쟁영웅이고 나발이고 즉사였다. 죽더라도 전쟁터에서 죽어야 했다. 그래야 보상금이 나오지, 이런 곳에서 뒈져 봐야 조이가 쓰던 낡은 물건이나 집으로 보내질 것이다.
“이리 와.”
권명은 조이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손을 내밀었다. 권명은 하얀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조이가 단검을 챙겼듯 놈은 저딴 하얀 장갑을 챙긴 모양이었다.
‘유난이다. 진짜.’
수도의 도련님들은 다 저런 걸까? 유난 떠는 저 모습이 꼴불견이었다. 저런 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조이는 권명의 손을 잡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 이동했다.
“저쪽 공터 보이지? 저곳에 보급품이 내려올 거야.”
권명은 조이보다 먼저 도착했는지, 이곳 지형에 대해 꿰고 있었다. 그날 밤 조이와 권명은 나무 위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는 사이에 늑대에게 살점이 뜯기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이는 7구역 출신이 가질 만한 장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구질구질한 점. 끈질긴 점. 장점 같으면서도 묘하게 단점 같은 것만 떠올랐었는데, 지금 보니 7구역 출신의 가장 큰 장점은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는 권명과 달리, 조이는 불편하고 딱딱한 나무 위에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권명이 가리킨 공터에는 보급품이 내려와 있었다. 숫자가 쓰여 있는 다섯 개의 박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들었다.
“저쪽 3번 어때?”
조이는 숫자 3을 좋아했다. 권명은 가장 가까운 물건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조이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4번 물건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수도에서는 어쩐지 모르겠으나 7구역에서 숫자 4는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혹시 꽝도 있어?”
권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있다는 말 같았다. 그렇다면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았다. 보급 상자에는 며칠 동안 생존할 소량의 음식과 무기가 들어 있었다.
“3번. 3번을 가져가자.”
“가까운 4번으로 해.”
“불길해.”
“퍽이나.”
권명은 조이의 말을 무시하더니 4번 박스로 향했다. 권명이 4번 박스에 손을 대자마자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워봇이었다. 본격적인 생존 훈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은 조이와 권명을 향해 실탄을 쏘아 대며 공격을 개시했다.
“뛰… 뛰어!”
워봇보다는 차라리 늑대가 나았다. 조이와 권명은 황급히 워봇을 피해 숲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린 끝에 뒤쫓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왔다.
“하아…, 하아…, 좀… 쉬었다 가자.”
“좋아. 보급품을 확인해 보자.”
숨이 턱까지 차오른 조이와 달리 권명은 태연했다. 권명은 꽤 자신만만하게 4번 보급품을 골라야 한다고 했었다. 불길하긴 했으나, 사관학교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인 그의 선택은 꽤 믿음직했다.
하지만 조이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팔자를 타고났다.
“이게 뭐야……?”
“뭐…, 뭐가!”
“4번이라며.”
“그…, 그래 4번!”
권명 역시 당황한 모양인지 꽥 소리를 지르며 눈을 피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뭔가가 더 나오지 않을까 뒤적거렸으나 권명이 고른 상자 안에는 소총과 수통뿐, 식량은 없었다.
“이게 뭐야! 배고파 죽겠는데 뭘 먹으라는 거야?”
조이는 매섭게 권명을 몰아세웠다. 조이보다 머리 하나는 큰 권명도 조이의 기세에 밀려났다. 조이는 신경질을 내며 상자 내부를 감싸는 가죽을 뜯어냈다. 혹시 뭔가가 숨겨진 것은 아닐까?
“기다려.”
“뭐? 너 지금 불리하다고 도망가는 거냐? 야!”
권명은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어째 시작부터 불길했다. 권명을 믿는 게 아니었다. 권명이 힘을 쓰는 데는 꽤 유능할지 모르나, 그 밖에는 뭔가 못 미더웠다.
조이는 한참 동안 상자를 이리저리 뒤져 보았지만, 여전히 나오는 것은 없었다. 풀숲으로 사라진 권명은 본인도 민망했는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조이는 7구역에서 늘 겪었지만, 수도로 돌아온 이후 느껴 본 적 없었던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어제부터 먹은 것이 없었다. 조이는 수통을 흔들어 보았다. 뭔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혹시 수프?’
조이는 기대감에 수통을 열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냥 물이었다. 아쉬운 대로 물을 한 입 머금었다. 한번 물을 마시고 나니 목이 탔다. 조금 더 마실까 했으나, 권명을 생각해 남겨 두기로 했다.
권명 놈은 가이드 잘 만난 줄 알아야 했다. 최악의 보급품을 선택한 에스퍼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 가이드는 없을 것이다. 뒈지게 싸운 후 각자도생을 선언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속으로 한참 동안 권명을 욕하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며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워봇?’
조이는 서둘러 소총을 집어 들었다. 워봇이 가까이 다가오거든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소총을 쥔 손에 점점 더 강한 힘이 들어갔다. 방아쇠를 당길 듯 말 듯.
하지만 부스럭거리며 접근하는 물체를 확인한 순간 조이는 한숨을 내쉬며 총을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어휴! 일찍도 나타난다!”
“뭐하냐? 그걸로 날 날려 버리게?”
권명은 조이의 폼을 비웃으며 약을 올렸다. 권명의 손에는 토끼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조이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이걸 어디서 났어?”
“잡았지. 뭐 주웠겠냐? 불이나 피워.”
조이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구해 와 불을 피웠다. 권명은 능숙하게 토끼의 털을 벗기고 내장을 땅에 묻더니, 나뭇가지에 살코기를 쏙쏙 꽂은 후 불 위에 올려 이리저리 굽기 시작했다. 도련님 주제에 꽤 능숙한 모습이었다.
“쫌… 한다?”
권명은 조이의 어색한 칭찬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난 꽤 잘해. 쫌이 아니라.”
이번에는 조이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뻔뻔한 자기 자랑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조이는 꼬챙이에 꽂힌 토끼 고기를 맛있게 뜯어 먹었다.
일반적으로 먹는 고기보다 향이 강했으나,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틀 동안 굶주린 조이의 입에는 천상의 맛이었다.
* * *
다음 날 날이 밝기도 전에 ‘쿵쿵’ 온 산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란한 소리에 놀란 산짐승들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짐승들이 날뛰는 모습을 바라보던 권명은 나뭇가지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조이는 영문도 모른 채 나무에 매달려 권명을 따라 조금씩 위로 움직였다.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자 권명이 한쪽을 가리켰다.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가 나무를 뒤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 훈련의 출발지는 남쪽이었고, 목적지는 북쪽이었다. 기다란 바나나 모양의 인공 섬은 선선한 가을 날씨인 남쪽 구역과 혹한의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북쪽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울 테니, 이곳에서 최대한 식량을 비축한 후 떠날 생각이었는데, 워봇의 공격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도망가야겠어!”
조이의 외침에 권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나무 밑으로 내려갔다. 조이는 당혹스러웠다. 함께 도망가자는 말을 대체 어떻게 이해했기에 혼자 나무 밑으로 폴짝 뛰어내린다는 말인가.
“야! 빨리 와!”
권명은 조이가 가이드라는 걸 까먹은 듯했다. 권명처럼 저리 콩콩 뛰어서 내려가다가 발이라도 헛디뎠다가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느릿느릿 기어 내려오는 조이를 보다 못한 권명이 훌쩍 뛰어올라 조이의 허리에 줄을 감았다.
“뭐야…? 서… 설마 아니지? 아니… 으악!!”
권명은 그대로 조이를 나무 아래로 밀쳤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지던 조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7구역에 있는 동생이 산산조각 난 조이의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이 떠올랐다.
“미안해 조하야아! 컥……!”
억눌린 숨을 내쉬며 조이는 눈을 떴다. 허리에 칭칭 감겨 있던 밧줄이 고통스럽게 허리를 조여 왔다. 대롱대롱 매달린 조이의 다리가 보였다. 권명은 아무렇지 않게 밧줄을 잘라 냈다.
“윽……!”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조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7구역으로 이주한 이후, 조이는 단 한 번도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 상상만 해도 두드러기가 났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대접은 피하고 싶었다. 권명은 마치 조이와 몸이 닿으면 안 된다는 듯 굴고 있었다. 장갑도 그렇고, 밧줄도 그렇고.
‘7구역 출신이라고 뭐 씻지도 않는 줄 아나!’
* * *
위험한 물체로부터 탈출한 조이와 권명은 물을 찾아 헤맸다. 수통에 있던 물은 두어 번 나누어 마시자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물이 가까이에 있어.”
권명은 흙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이는 괜히 권명이 만졌던 흙을 따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젖은 듯한데, 어떻게 알았을까?
“물이다!”
콸콸 물이 쏟아지는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다. 물을 찾은 조이는 가장 먼저 수통에 물을 담았다.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인 후 몸을 씻을 생각이었다.
옆에 있던 권명은 아예 몸을 담글 생각인지 옷을 훌러덩 벗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권명이 솔선수범하여 벗어 주니 조이도 옷을 벗고 씻어도 될 것 같았다.
“으윽! 차가워.”
시원하다 못해 조금은 차가운 물 속에 발을 담갔다. 조이는 앞서 물속으로 사라지는 권명의 몸을 바라보았다. 쩍 벌어진 등짝에는 총상과 꿰맨 흔적이 보였다. 가이드가 있었다면 저런 상처가 남기 전에 치료했을 텐데, 그동안 가이딩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맞는 것 같았다.
“뭘 자꾸 힐끔거려?”
권명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 얄미운 표정. 조이가 무슨 흑심이라도 품은 줄 아는 게 아주 얄미웠다. 조이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는 뜻을 담아 권명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퓃! 뭐야?”
“넌 내 취향 아냐.”
조이는 그 말만 남기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사실 조이도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아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야 저 예민 종자가 안심할 테지. 이 테스트를 받는 동안 무뢰한 취급받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럼……?”
물 밖에서 권명이 발끈하며 뭐라고 소리쳤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또 굳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저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얄미운 소리니까. 조이는 첨벙첨벙 헤엄을 쳤다. 유독 거세게.
‘근데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 * *
권명은 수렵‧채집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꽤 이쁨받았을 것이다. 그날 저녁에도 권명은 탁월한 사냥 솜씨로 꿩을 잡아 왔다. 난생처음 먹어 보는 꿩고기는 없어 못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권명은 ‘쫍쫍’ 손가락까지 빨아 대는 조이를 밥맛 떨어진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멋쩍은 조이는 손가락을 슬그머니 내린 채 화제를 돌렸다.
“근데 왜 이렇게 빨리 이동하는 거야?”
권명 정도의 실력이라면 워봇쯤이야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권명은 도망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에 권명은 자신의 손목을 보여 주었다.
“이게 뭐야?”
“억제구.”
이 생존 테스트가 가이드에게는 어려울지 모르나, 에스퍼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이런 제어장치가 있었다니. 폭주 직전의 에스퍼에게 사용하는 도구였다.
폭주하는 순간 에스퍼는 생화학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온몸의 살점이 폭탄의 파편처럼 터져 나간다. 그 때문에 군에서는 폭주 직전의 에스퍼가 폭발하기 전에 그 힘을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이런 억제구를 차고 생존 테스트를 한다면, 아마 권명도 자신의 힘을 모두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제야 권명이 왜 도망을 다녔는지 이해가 갔다.
그날 밤 급습하듯 워봇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조이와 권명은 또다시 쫓기듯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살갗에 닿는 온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추워. 이곳을 지나야 한다고?”
“안조이! 피해!”
“히익!!”
조이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에는 불 포탄이 이글이글 땅을 태우고 있었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조이는 곧바로 총을 꺼내 들었다. 특수총알을 장전한 조이는 불 포탄이 날아온 곳을 향해 발사했다.
작은 총에서 발사됐다고는 믿기 힘든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불 포탄을 쏘아 대던 워봇이 폭발했다. 권명은 염력으로 이리저리 날아오는 불 포탄을 잡아 던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권명! 안 되겠어! 도망가자!”
점점 더 많은 불 포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조이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까지 방어하고 있는 권명이 걱정되었다. 권명 역시 이곳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북쪽으로 달리라고 소리쳤다.
“북쪽으로 달려!”
조이는 곧바로 몸을 돌려 달렸다. 북쪽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나 그저 저 불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내달렸다. 등 뒤로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권명이 막고 있는지 조이가 있는 곳까지는 날아오지는 않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가슴에 손을 올리며 달리는데 머리 위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물이 순식간에 온몸을 흠뻑 적시는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눈앞을 가린 폭우에 방향을 잃었다.
하지만 이 폭우가 불 공격을 쏟아붓던 워봇에게도 악재로 작용했다. 불 포탄 공격이 주춤하더니 뚝 끊겼다.
“권명! 비를 피해야 할 것 같아! 저기 동굴!”
눈앞을 가로막는 폭우에도 조이는 몸을 피할 동굴을 발견했다. 뒤를 돌아 권명에게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권명 역시 비를 피할 곳을 발견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안으로 몸을 피한 조이는 곧바로 옷을 벗어 물을 꾹 짜낸 후 젖은 옷을 다시 입었다. 불을 피워 옷을 말린다면 좋을 텐데, 라이터는 흠뻑 젖어 있었고 마른 장작도 찾을 수 없었다.
권명은 동굴 벽에 몸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가만 보니 권명의 팔에는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괜찮냐……?”
“뭐가.”
“팔…….”
조이는 상처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대려 했다. 가이딩을 한다면 이 정도 상처는 쉬이 나을 것이다.
“됐어. 손대지 마.”
“가이딩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손대지 말라고. 필요 없어.”
권명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조이의 손길을 피했다. 조이는 자신을 무능하게 만드는 권명의 태도에 화가 났다. 조이는 가이드였다. 에스퍼처럼 물리적인 힘을 쓸 수는 없지만 유일한 힘이라면 에스퍼를 치료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거부할 거라면 날 대체 왜 데리고 다니는 걸까?’
“금방 나을 상처가 아니잖아! 치료해 준다고.”
“난 가이딩 안 받아. 필요 없어.”
조이는 자꾸만 필요 없다고 말하는 권명의 말이 꼭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누가 너 이뻐서 이래? 내일도 이렇게 피 질질 흘리면서 다닐 거냐고.”
조이는 억지로 권명의 팔을 잡고 힘을 불러일으켰다. 며칠째 숲을 헤매며 도망 다닌 탓인지 회복 속도가 더뎠다. 조이는 상처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점막으로 하는 가이딩은 좀 더 효과가 좋았다.
“야!”
권명은 조이를 내동댕이쳤다. 발라당 나자빠진 조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권명을 바라보았다. 권명은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힌 채, 조이의 입술이 닿았던 부분을 벅벅 닦았다. 조이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내가 무슨 병균이냐!”
“씨발. 됐다잖아! 잠이나 자!”
권명은 꽥 소리를 치더니 휙 돌아누웠다. 조이도 가이딩을 해 줄 맛이 떨어졌다. 숫제 조이를 치한 취급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누군 좋아서 입술을 가져다 댄 줄 아나.
조이는 권명의 반대편에 몸을 말고 누웠다. 씩씩 숨을 내쉬며 권명에게 받은 수모를 되새김질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씩씩거리며 속으로 화를 삭이는데, 문뜩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혹시 그 일 때문에?’
조이에게는 그날의 일이 트라우마를 걷어 낼 정도의 기쁨으로 기억됐지만, 권명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본 적도 없는 이가 위에서 실컷 즐기고 있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뭔가가 심장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복잡해진 마음에 조이는 몸을 일으켰다. 권명에게 다시 말을 걸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권명의 몸에서 후끈후끈 열기가 느껴졌다.
“권명……?”
조이의 부름에도 권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젠가 수업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에스퍼의 폭주 전 증상. 과도한 힘을 사용할 때마다 에스퍼의 몸은 강한 열기를 뿜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힘을 방출하게 되면, 폭탄 터지듯 폭발한다. 파편처럼 살점이 터져 나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조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권명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불 포탄에 그을린 상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억제구 주변의 살이 화상을 입은 듯 붉게 익어 있었다.
“이 정도면… 말을 하지…….”
조이는 망설임 없이 권명의 상처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을린 목에 꾹 입술을 맞추고, 핏물을 토해 내는 팔을 혀로 핥았다. 얄미운 짓만 해 대던 권명은 잠결에 어머니의 살결을 찾는 아이처럼 조이의 옷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본능적으로 더 강한 가이딩을 찾는 것 같았다. 조이는 가만히 몸을 내맡겼다. 권명은 자연스럽게 조이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유실을 매만졌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지금, 이 순간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흐읏…….”
목욕할 때를 제외하고는 만져 볼 일 없었던 그곳에 권명의 손이 닿자 부쩍 낯설게 느껴졌다. 어쩐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쯧쯧.”
스스로가 한심했다. 가만 보니 조이는 쾌감에 약했고 꽤 밝혔다. 잠결에 만지는 이런 무심한 손길에도 이리 느끼니 말이다. 조이는 애써 다른 생각을 했다. 푸르른 나무. 졸졸 흐르는 시냇물.
다음 날 날이 밝자 권명은 기겁을 하며 조이를 밀쳤다.
“야, 이 변태 새끼야! 왜 또 처붙어!”
“뭐… 뭐! 좁으니까 그런 거지!”
“썅! 붙지 마. 경고야!”
밤사이 말짱해진 권명은 경고의 말을 내뱉고는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비호감인 것과는 별개로 상성이 잘 맞긴 했다. 하룻밤 사이에 권명의 상처는 꽤 아물어 있었다. 저리 꽥꽥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더 이상 가이딩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
겨울 구역에 진입하자 권명의 말대로 워봇의 공격은 더욱더 매서워졌다. 지난번 훈련에서 다섯 명이 죽고 세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 피해를 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워봇의 공격은 실제 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악랄했다.
‘서제국의 공격도 이러할 테지?’
공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시에 퍼부어졌다. 조이와 권명은 교대로 잠을 청해야 했고, 둘 다 깨어 있을 때에는 쉴 틈 없이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난 며칠간 조이는 잠다운 잠을 잘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수시로 퍼부어지는 공격에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졌다. 이전에는 모르고 지나쳤을 공격 신호를 예민한 귀가 먼저 알아차리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공격이야!”
윙- 하고 뭔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면 어김없이 뭔가가 날아왔다. 불 포탄이든, 얼음덩어리든.
“피해!”
권명은 보이지 않는 막을 형성해 날아오는 얼음덩어리를 밀어냈다. 겨울 구역에 진입한 후 권명은 이렇게 지금까지 수십 번도 넘게 힘을 사용해 왔다.
권명이 뛰어난 에스퍼이긴 하지만, 무리하는 것 같았다. 에스퍼의 놀라운 힘은 무한이 아니었다.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권명은 억제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조이는 걱정스럽게 권명을 바라보았다. 그때 또다시 얼음덩어리를 토해 내려는 워봇이 눈에 들어왔다. 조이는 곧바로 특수총알을 장전해 워봇을 불태웠다.
“권명! 이제 그만하자. 너… 얼굴이 너무 하얘.”
권명의 얼굴이 한층 하얗게 질려 있었다. 우려했던 대로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게 맞았다.
권명과 조이는 떼로 몰려오는 워봇을 피해 더 깊은 숲속으로 파고들었다. 장벽처럼 막아선 침엽수가 날아오는 얼음 공격을 막아 주고 있었다. 종아리까지 쌓인 눈길을 가르며 쉼 없이 이동했다.
“자! 잡아!.”
조이는 권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굴이 눈처럼 창백해진 권명에게 가이딩을 해 줄 생각이었다. 권명이 지쳐 쓰러지는 순간, 이 테스트도 조이도 끝장이었다. 조이 혼자서 저 많은 워봇을 어떻게 해치우겠는가.
권명은 조이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할 뿐 잡지 않았다. 또 이런다.
“됐어.”
“튕기는 것 좀 작작 해!”
조이는 억지로 권명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을 빼내려고 하기에 깍지까지 껴서 꽉 주먹을 쥐었다. 너덜너덜해진 장갑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권명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아까와 달리 한층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빽빽한 침엽수를 뚫고 나가자 이번에는 커다란 강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이는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내려 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물살이 너무 강해!”
권명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순간 권명과 조이의 사이로 불 포탄이 떨어졌다. 조이와 권명은 그 충격으로 뒤로 나자빠졌다. 얼음 공격도 부족해서 이제는 불 포탄이라니. 이런 맹렬한 공격을 뚫고 탈출할 생각을 하니 벌써 눈앞이 캄캄해졌다.
“으윽.”
어렵게 몸을 일으키려는데, 또 한 발의 불 포탄이 조이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안 돼!!”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조이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비… 윽… 비켜!”
조이는 억눌린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권명이 불 포탄을 붙잡고 있었다. 조이의 앞머리를 태울 듯 일렁이는 불꽃이 느껴졌다. 조이는 황급히 몸을 굴려 볼 포탄을 피했다.
“안조이. 강. 강을 건너자!”
조이는 빠르게 흘러가는 물살을 불길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총공격을 퍼붓는 워봇보다는 차라리 저 강에 뛰어드는 게 생존 확률을 높이는 일이리라. 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명을 따라 조이 역시 강물로 뛰어들었다.
“푸우!”
이가 달달 떨려올 정도로 차가운 물이었다. 뼛속 깊숙이 냉기가 스며들었다. 물의 온도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유속이었다. 조이는 열심히 팔다리를 놀렸으나, 점점 더 권명과 멀어지고 있었다.
유속을 감당하지 못하고 조이의 몸이 아래로 떠밀려 가고 있었다. 권명은 어느새 강가에 다다른 듯했다. 팔을 더 빠르게 놀리며 따라잡으려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에 잠겼다.
“우웁!”
워봇이었다. 조이를 향해 커다란 나무 기둥을 뽑아 던지고 있었다.
“안조이! 빨리 와!”
어느덧 강 건너에 도착한 권명이 워봇의 공격을 막으며 조이에게 소리쳤다. 조이는 있는 힘껏 헤엄을 쳤다. 하지만 또다시 거대한 나무 기둥이 떠밀려오고 있었다.
“흡!”
조이는 물속으로 잠수해 가까스로 나무 기둥을 피했다.
“퐈!!”
하지만 물 밖으로 나온 조이의 앞에는 수십 개의 나무 기둥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 잦은 잠수로 점점 숨이 가빠 왔다. 손끝이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곱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머… 먼저 가! 푸하! 하… 하류에서 만나!!”
조이는 더 이상 강을 건너갈 힘이 없었다. 배 속 가득 물을 들이마셔서인지 온몸이 무거웠다. 조이는 마지막으로 권명에게 소리치며 물속에 잠겼다.
권명에게 하류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설령 하류까지 떠내려간다 할지라도, 바위처럼 무거운 눈을 다시 뜰 수 있을까?
조이의 호흡을 담은 물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갈수록 조이의 몸은 점점 더 아래로 가라앉았다. 심해를 닮은 강물 속으로.
* * *
꿈을 꿨다. 수도에서 온 가족이 살던 때의 꿈이었다. 부엌에서는 쿠키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고, 어머니와 조이는 알록달록한 방울을 달아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커다란 트리 위에 가장 반짝이는 별을 올리고 나면 부엌으로 달려가 쿠키를 기다렸다.
눈사람이나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쿠키 위로 하얀 설탕이 눈처럼 내렸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 조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큰 선물을 주시길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조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영혼마저 지치게 만드는 노동을 할 필요도, 7구역 출신이라고 업신여기는 시선을 받을 일도 없었던 그때. 그 평범한 일상이 조이에게 더없는 행복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잠든 어린 조이를 바라보았다. 조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 평온함. 이 작은 행복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조이! 안조이!”
하지만 어디선가 조이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날 이렇게 부르는 걸까?’
조이는 그 소리를 무시하려 했으나, 낯선 목소리는 끊임없이 조이를 흔들어 깨웠다. 꿈속에 갇혀 있던 조이의 정신이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으윽…….”
“정신이 들어? 날 알아보겠어?”
권명의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조이의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와 함께 온몸이 덜덜 떨려올 정도의 추위가 느껴졌다.
“궈… 권명……?”
“하아.”
조이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권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뜩 권명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 찬 기운만 뿜어내던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조이를 걱정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조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낡은 나무집이었다. 반쯤 허물어진 벽을 보니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아…….”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조이와 마찬가지로 홀딱 젖은 권명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조이는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상황을 기억해 냈다. 커다란 나무토막에 맞아 물속에 잠겼었는데. 이번에도 권명에게 신세를 진 듯했다.
“괜찮아? 너… 몸이……!”
권명의 몸은 엉망이었다. 온몸에 그을린 흔적이 가득했고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울컥울컥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조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조이는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댄 후 권명에게 가이딩을 할 생각이었다.
“손대지 마! 떨어져!”
조이는 권명의 말을 무시한 채 손을 뻗었다. 꽝꽝 얼었던 몸이 화르르 타오를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권명은 매섭게 조이의 팔을 쳐 냈다.
“떨어지라고!”
“너……?”
권명의 팔은 타다 만 장작처럼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그 팔에 감겨 있던 억제구는 보이지 않았다.
조이는 권명의 몸에 스쳤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거세게 날뛰는 파장과 열기. 폭주 전 증상이었다. 온몸이 갈기갈기 조각나 터질지도 모른다.
“권명……?”
권명의 눈빛 역시 이상했다. 짙은 바다 같은 눈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조이는 폭주 직전의 에스퍼를 잠재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24시간 교대 가이딩. 하지만 이곳에는 교대해 줄 가이드도 증폭기도 없었다.
순간 권명을 두고 멀리 도망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냈다. 권명이 저런 상태가 된 게 누구 때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조이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자.”
고개를 든 권명은 무슨 말이냐는 듯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내 조이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흉측한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조이를 노려보았다. 저런 표정을 지으니 좀 억울했다.
증폭기도 없는 이곳에서 폭주를 잠재울 방법이라면 밀접접촉뿐이었다. 폭주라도 했다가는 조이 역시 죽은 목숨이다. 워봇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폭주한 에스퍼라니.
“발정 났냐?”
“뭐?”
이게 또 기분 나쁜 소리를 싸지르려는 것 같았다. 조이의 죄책감을 단번에 날려 버릴 얄미운 소리.
“씨발. 그렇게 구멍이 간지럽냐고?”
“말조심해. 너 폭주 증상이야. 폭탄처럼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권명은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쓰면서도 미운 말만 내뱉었다.
“썅. 폭주는 무슨. 발정 난 거면서. 윽…….”
“됐다. 됐어! 네 맘대로 해!”
조이는 당장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저놈이 폭주하기 전에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조이가 문을 열고 나가기도 전에 권명이 조이를 덮쳤다.
“윽!”
권명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조이를 압박했다. 조이의 팔을 바닥으로 내리누르며 내려다보는 권명의 얼굴이 더없이 낯설었다. 눈동자가 피가 나올 듯 붉었다.
“가… 갑자기 왜 이래!”
“발정 난 새끼. 그놈의 구멍 한동안 못 쓰게 박아 버릴 거야.”
“비켜! 꺼… 꺼지라고!”
완전 맛이 갔는지 우악스럽게 조이의 옷을 찢어발겼다. 조이는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들어 놈을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간단한 군대 훈련이나 받은 조이가 에스퍼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권명은 조이의 반항을 아주 손쉽게 제압했다.
조이는 온몸을 비틀었으나 그 꼴이 어쩐지 더 수치스러웠다. 권명은 추위로 삐쭉 솟아오른 조이의 유실을 노려보았다.
“하? 이 상황에도 흥분되셔? 이 새끼 진짜 못 말리는 변태네.”
“이거 놔! 놓으라고!”
“젖꼭지 세우고서 그런 소리 해 봐야 박아 달라는 소리로밖에 안 들려.”
“아악!”
조이의 반항을 비웃던 권명이 조이의 젖꼭지를 꾹 잡아 흔들었다. 조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젖꼭지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기는 손길에도 조이의 아랫도리가 슬슬 반응하려 했다. 권명의 못된 말에 반격하고 싶은데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놔! 이렇게 안 해도 할게! 한다고!”
조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권명은 손가락 세 개를 입 안에 물어 적시고 있었다. 저 질척해진 손가락이 어디를 파고들지는 안 봐도 뻔했다. 조이의 몸은 종이처럼 반으로 접혔고, 벌어진 구멍 속으로 손가락이 쑤셔 박혔다.
“아읏!”
깊숙이 파고든 손가락이 구멍 속 어딘가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조이의 손가락으로는 도통 다다를 수 없었던 그곳 근처였다. 성기를 박아 넣듯 손가락을 거칠게 쑤셔 넣으며 그곳을 자극하자, 조이의 구멍에서는 창피할 정도로 많은 물이 흘러나왔다.
“주먹을 넣어도 되겠다. 이 소리 들려? 어?”
들렸다. 체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소리가. 권명은 조이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게 목적인지 손가락을 하나를 더 밀어 넣고는 빠르게 흔들었다.
“아흣! 아아! 아흑!!”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온몸이 튀어 올랐다. 구멍에서 흘러나온 물이 허벅지까지 적시고 있었다.
“남창도 너처럼 물이 나오지는 않을 거다. 싸구려.”
“하읏… 할 거면 빨리 박고 끝내!”
“안 그래도 박을 거야, 젖은 새끼야.”
“아악!!”
놈은 무자비하게 성기를 박아 넣었다. 그 성기의 크기라면 익히 알고 있었다. 그 무식한 물건을 단번에 쑤셔 넣다니. 개새끼.
권명은 조이의 몸이 위로 쓸릴 정도로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지진이 난 듯 눈앞이 사정없이 떨렸다. 권명이 꽉 움켜쥔 다리가 너무 아팠다. 어찌나 세게 잡은 건지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이를 못 견디게 하는 것은 안쪽에서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놈의 성기는 못질하듯 그 부분을 쾅쾅 때리고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그 떨림이 앞쪽까지 자극하고 있었다. 만져 주지도 않았건만 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놈이 젖꼭지를 꼬집기 시작했다.
말랑한 가슴에 손자국이 남도록 콱 움켜쥐고 강하게 성기를 박아 넣었다.
“아아!! 아…! 하읏!”
“하아… 하아… 씨발.”
“뒤… 뒤로! 뒤로 해 줘, 그냥… 하윽…….”
도저히 이 상태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세를 바꾸자고 하자 놈은 순순히 조이의 몸을 뒤집었다. 과격한 움직임으로 붉게 물든 엉덩이를 쫙 벌리며 놈의 성기가 다시 파고들었다. 적어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니 물을 쏟아 내도 될 것 같았다.
익숙한 성기를 손에 잡고 흔들려는데 입 밖으로 비명 같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악!!”
놈은 말이라도 타는지 조이의 머리채를 뒤에서 잡아당겼다. 목이 뒤로 꺾일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볼기를 후려치듯 거친 움직임에도 조이는 미칠 것 같은 환희를 느꼈다.
“아! 아읏, 아!! 아악!!”
그날처럼 눈앞이 온통 하얗게 물들었다. 뜨거운 불기둥이 쾅쾅 문을 부수듯 조이의 내부를 짓찧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온몸을 불태우는 뜨거운 열기에 조이는 완전히 함락당했다.
“아흐… 아흣! 아으… 아아!!”
열이 오른 불기둥이 쑤욱 빠져나갔다가 빠르게 쾅 내려찍었다. 그 순간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조이의 성기에서는 참아 왔던 물이 쏟아져 나왔다. 덩달아 힘이 들어간 구멍이 놈의 살 기둥을 잘라 낼 듯 꽉 움츠러들었다.
“크윽… 하아… 하아…….”
놈 역시 사정한 듯 조이의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아… 하…….”
온몸을 휘감았던 열기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권명은 조이의 귓가로 뜨거운 입김을 불어 대고 있었다. 귓가에 느껴지는 숨결이 벅벅 긁고 싶을 정도로 간지러웠다.
“하아… 비… 비켜…….”
조이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권명을 밀어냈다. 불길할 정도로 붉은빛을 띠던 눈이 조금은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 당장 폭주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권명은 조이의 엉덩이를 다시 잡아 벌렸다. 하얀색 정액을 토해 내는 구멍 위로 딱딱하게 굳은 살 기둥이 닿았다.
“뭐… 뭐야……?”
“한번 쓰고 끝내는 거 봤냐?”
“이… 이 미친… 아흣!”
‘미친놈’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끝맺기도 전에 무식한 크기의 물건이 내벽을 가르며 파고들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것처럼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살과 살이 맞닿는 질척한 소리가 최면처럼 귓가에 들려오자 또렷했던 눈이 조금씩 흐릿해졌다.